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67화 (67/229)

〈 67화 〉 14권 ­ 처음은 나야(1)

* * *

"아니, 사람은 또 왜 이리 많이 모인 거야."

"...나도 몰라."

유리아는 일주일 동안 마법 연습에 집중했고, 그 끝에 약속했던 금요일이 되어서 나와 함께 약속 장소에 나왔다.

그런데 어디서 정보가 유출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인원이 마법 실습관에 모여 있길래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니 이게 무슨 정식 대전도 아닌데 왜 이렇게 사람이 몰렸대?

'이러면 걱정이 더 커지는데.'

저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결투한다는 것 자체가, 로자리아에게 너무 큰 부담이 된다.

만약 실패하면 천재 취급받던 로자리아가 1학년 듣보한테 패배하는 셈이잖아.

유리아가 한 것 같지는 않고, 대관해준 학생회 쪽에서 당연히 로자리아가 승리하리라 생각해서 벌인 일인가?

이러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상황이 너무 복잡해진다.

일단 로자리아가 이기면 유리아가 동아리를 나가야 한다.

새로 동아리원을 구하는 것도 좀 그렇고, 유리아와 이제 친해진 상황이라 여러모로 마음이 착잡해질 것 같다.

그래서 유리아가 이기는 것을 기도했는데, 어차피 내기 내용상 로자리아는 유리아를 인정하는 것이 전부였거든.

그래서 최대한 지금과 비슷한 상황을 유지하려면, 확률은 낮아도 유리아가 로자리아를 꺾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근데 이러면 유리아가 이겨도 로자리아가 엄청난 압박을 받아서 없던 리스크가 생겨버려.

'심지어 대부분 2학년....'

아무래도 사람이라는 게,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떨어질 때 나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법이다.

왜냐면 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기와 질투의 대상인데.

위에 있으니까 건들지 않았을 뿐이거든.

약해 보이는 순간 사냥감처럼 물어뜯고 괴롭히는 게 인간이라는 동물이지.

사실 로자리아가 승리하는 게 확실할 정도였다면 나도 걱정을 하지 않았을 텐데.

최근 연습한 유리아를 보고 난 뒤로는 그 확신을 하기가 어려웠다.

유리아가 어떻게 연습하는지 미리 로자리아가 봤다면 로자리아가 이기겠지만, 그럴 리가 없으니까 저걸 처음 보고 바로 대응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게 쉬울 리가 없다.

"마법 모의전을 시작하기 전에, 규칙에 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 로자리아와 유리아가 싸우게 되면서 공부해 알게 된 건데.

마법 모의전은 검술 쪽이랑 굉장히 다른 느낌이 강했다.

일종의 실시간 턴제에 가까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공격권과 방어권을 주고받으면서 싸우는데.

공격권을 가진 사람은 훨씬 긴 시간 동안 강력한 마법을 깎아낼 수 있고, 방어권을 가진 사람은 그 마법진을 보고만 있다가 중간부터 대응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일정 이상의 타격을 입으면 패배하는 식이다.

'그래서 더 유리아가 유리한 거고.'

일단 선공은 일반적으로 약하다고 평가받는 도전자 쪽이 가져가게 된다.

즉, 이번 모의전은 유리아가 선공을 가져가게 된다는 소리다.

그런데 유리아는 처음 보면 피하거나 막기 힘든 기술을 쓰잖아.

그럼 당연히 유리아가 엄청나게 유리해지는 거지.

유리아가 경험과 화력 등 모든 면에서 밀리는데도 내가 승리 가능성을 크게 쳐주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하, 이렇게 되나 저렇게 되나 그다지 좋은 방향은 아니라서 마음이 아프네.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내가 뛰어 들어가서 막으면, 이 모의전이 나를 두고 싸우는 거라는 정보까지 퍼지면서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나는 그냥 구경하다가 결과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겠네.

"그리고 학년의 차이가 나는 만큼, 공평함을 위해서 마법 문자의 사용은 입학에 사용되는 것만 기준으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안내가 끝나고, 유리아와 로자리아가 자신의 자리에 자리한다.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 교단이나 교수님들이 근처에서 대기하고, 게임을 진행을 위한 시계가 나타난다.

"공격, 도전자 유리아 준비해주세요."

"네."

"방어, 로자리아 드 마기우스님, 준비해주세요."

"준비 끝났습니다."

유리아가 맡게 되는 공격은 총 1분의 마법진을 그리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로자리아가 맡는 방어는, 그 1분 중 30초가 지난 시점부터 시작해서 30초간 마법진을 그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타격을 최대한 줄여가며 버티는 식으로 공수를 교대하는 것이 마법 모의전의 기본이었다.

'검술이랑 싸울 때처럼 자리에서 이동하거나 하는 식으로 피하는 대처도 불가능하니까, 오로지 마법으로 마법을 카운터 쳐야 하는 방식이지.'

솔직히 이게 전통적인 방식이라 사용할 뿐, 이런 걸로 마법 실력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리 없다.

솔직히 마법의 실력 평가보다는 마법을 이용한 특별한 스포츠에 가깝지.

어느 정도는 마법 실력에 비례하니까 평가 지표로 이용되는 것에 불과하다.

생각해보니까 스포츠물 같은 것도 만화로 그리면 재밌는데, 아예 마법 모의전을 소재로 쓰는 것도 꽤나....

"뭐야 저거...?"

수많은 관중 중 하나에서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 이유는 당연히 공격용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유리아의 모습이었다.

1학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갈한 마법진의 모습에 당황한 것이리라.

30초가 지나서 마법진을 그리며 대응하는 로자리아의 모습도 그거에 크게 다르지 않게 침착했다.

하지만 유리아의 저 마법진의 문제는 30초만 보고 파악할 수가 없다는 점에 있었다.

정확히는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모르고, 이미 마법진을 그려버렸다는 게 문제지.

"미친...?"

"저런 게 가능하다고?"

유리아가 준비한 저 마법진은 생각보다 많은 수의 가 있는데, 이 가 마법진을 격리해 나누는 기능이 있다는 것을 활용한 마법진이다.

의 사이에는 이상할 정도로 마법 문자가 없이 비어 있는데, 그게 바로 마지막에 유리아가 선을 그어버릴 수 있도록 공간을 잡아놓은 것이었다.

이 사이에 여러 선을 긋는 것만으로도 이 마법진의 마법은 일부 마법을 버리는 걸로 완전히 달라질 수 있게 되어버리는 거지.

'마지막 5초가 남았을 때.'

유리아는 로자리아가 그린 마법진을 역으로 확인하고.

그 마법진을 카운터 칠 수 있는 공격을 5초 만에 완성해낼 수 있게 되는 거다.

아무리 화력이 딸려도 이딴 식으로 마법진을 완벽하게 카운터 치면 답이 없지.

유리아가 완성한 마법진을 보자마자, 2학년 학생들은 경악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게, 그 즉석에서 마법진을 잘 그리는 유리아도 저 마법진 하나는 며칠을 때려 박아서 겨우겨우 완성한 물건이었다.

파아앗!

강렬한 빛과 함께 파지직거리는 번개가 마법진에서 쏟아져 나가서 로자리아의 방어막에 충돌했다.

본래라면 화염이 강한 마법이라 물 계열로 방어했는데, 그것이 갑자기 번개가 되었으니 아무런 방어도 하지 못했고.

번개는 로자리아의 몸을 그대로 내려찍는다.

"꺄아아아악!"

"로자리아...!"

"읏, 으윽?"

"로자리아 드 마기우스님이 입은 타격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모의전 종료! 승자는 유리아!"

솔직히 로자리아가 이런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고 대비해서 무속성 방어막을 함께 만들고.

마법진 자체를 조금 크게 그려서 화력을 올렸다면, 피해는 보더라도 단번에 리타이어 하지는 않았을 거다.

다만 완벽한 방어를 위해서 마법진이 작더라도 세밀하게 카운터 마법을 사용해서 막으려다가 이렇게 된 것이겠지.

"하아...."

자신이 만든 방어막의 물에 젖은 로자리아가, 땅을 바라보면서 느린 속도로 마법 실습관을 빠져나갔고.

로자리아가 단 일합에 졌다는 사실에 구경하고 있단 사람들은 속닥거리고 난리가 났다.

유리아는 해냈다는 듯 V를 그리고 있었지만, 방금 로자리아가 물에 젖은 생쥐 꼴로 허탈하게 걸어가는 걸 봐서 그런지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급하게 로자리아에게 달려가서 위로하려고 했지만.

로자리아는 젖은 손으로 나를 뿌리치고는 홀로 기숙사로 돌아갔고.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른 채로 밤을 지새웠다.

잠을 자려고 하면 로자리아가 그러고 있던 모습이 떠올라서 잠이 안 오더라.

"칼리? 아침 안 먹어?"

"...안 먹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밥도 먹으러 가지 않는 모습에 걱정되는지 니아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결국은 저녁까지 계속 핑계만 대면서 도망칠 수는 없었기에, 니아에게 끌려 나오듯 저녁은 먹으러 왔다.

배가 고프니까 먹고는 있는데 무슨 맛인지는 잘 모르겠다.

"칼리 후배님?"

"...휘리아 선배님?"

학생회에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휘리아 드 후리오'라는 이름의 선배였다.

아마 아카데미에 온 첫날 안내를 도와주셨던 것 같은데.

"잠시 저 좀 봐요. 아, 니아 후배님은 자리에 계시고요. 칼리 후배님만 들으셔야 하는 이야기라."

"알겠습니다."

나를 반쯤 끌고 가듯 한 휘리아 선배는, 자그마한 몸집과는 다른 기백으로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그것이 뭔가 알고 있는 모양새라서, 나는 전혀 반항하지 않고 가만히 받아들였다.

생각해보면 저 사람 로자리아가 우리를 모티브로 그린 '핑크빛 일기장'의 팬이니 뭐니 했었지.

"모르셨겠지만, 제가 로자리아님의 룸메이트거든요."

"아...?"

"로자리아님이 어제 씻으러 욕실에 들어간 이후로 그 안에서 아직도 안 나와요."

"......"

"대충은 이번 일을 알지만, 어차피 제가 그거에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겠죠. 하지만.... 당신 말고는 로자리아님을 나오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잖아요."

밥을 먹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자신의 룸메이트가 하는 위로조차 듣고 싶지 않아서 욕실에 박혀 있다는 소리였다.

휘리아 선배는 나에게 기숙사 열쇠를 주면서, 나보고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다른 방에 신세를 질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아침까지 같이 있으면서 원래의 로자리아님으로 돌려놓으라는 당부를 들었다.

"제가 로자리아님한테 해드릴 수 있는 건 이 정도니까요."

"...감사합니다."

"그 인사는 당신이 아니라 로자리아님에게 들을 테니, 빨리 가보세요."

나는 먹고 있었던 밥을 그대로 내팽개쳐놓고 로자리아에게 달려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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