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 14권 처음은 나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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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이렇게 다 채워놓고 나니까 동아리 방 꼬락서니가 가관인데.
그럴듯하게 꾸며져서 대강 보면 이쁜데, 자세히 보면 다 야한 거라서 조명이나 분위기만 좀 바꾸면 야한 용품 전용샵으로 느껴지겠어.
하긴, 로자리아가 꾸미는 감각이 있어서 이 정도 분위기를 유지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생각해보면 이걸 하자고 한 게 로자리아니까, 로자리아 탓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저런 걸 유행하게 만든 내 잘못인가?'
시발 모르겠다.
그냥 얌전히 다음 작품 아이디어나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내야지.
나는 한숨을 쉬면서 노트를 꺼내고 있는데, 동아리 방의 정리를 마친 로자리아가 원고로 보이는 종이 더미를 가져와서 나에게 보여줬다.
"어, 후속작이야?"
"응, 최근에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그렸지."
"오.... 읽어보고 판단해달라는 거지?"
"어."
어차피 기존 로자리아 실력은 의심할만한 것이 없긴 한데.
저번 작품이 워낙 좋은 분위기로 끝나서 마지막일 줄 알았기에 조금 의외였다.
이게 이어지는구나.
일단 로자리아의 첫 번째 작품인 '핑크빛 일기장'은 평범한 소녀 딸기와 사명과 비밀을 가진 소년 우유의 싹트는 사랑의 이야기였고.
두 번째 작품인 '핑크빛 공유 일기장'은 그 둘이 비밀과 마음을 공유하는 진심 로맨스물이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이 거기서 이어지는 '핑크빛 혼자만의 일기장'이 되겠다.
와 제목부터 굉장히 불안하네.
"이거 막 누구 하나 죽는 거 아니지?"
정작 내가 그런 분위기의 마법소녀 물을 연재하고 있다 보니까, 내심 찔려서 물어봤는데.
이 작품은 다행히 그런 심하게 피폐한 분위기로 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 정도면 다행이긴 하네.
"아, 이 분위기 오랜만이네."
핑크빛 일기장 후속작인 공유 일기장은, 대부분 진지한 연애 및 판타지 전투로 넘어갔었는데.
이번 혼자만의 일기장은 딸기의 친구인 크림 같은 주변 여자 캐릭터들과의 케미도 되살아났다.
이 학원물 특유의 개그랑 힐링 되는 분위기도 좋지.
"오, 대충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싶었는데. 사귀는 상태에서 사건이 하나 더 터지는구나."
그래서 그걸 추적하고 막으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딸기가 납치당한다던가, 뭐 그런 분위기였다.
진지한 거랑 장난스러운 분위기가 섞인 걸 보면, 은근히 첫 작품이랑 느낌이 비슷하네.
그리고 SD와 LD의 교차 사용은 여전히 완벽한 수준이라서 감탄이 나왔다.
"응, 되게 좋아."
"다 읽었어?"
"아니? 그냥 벌써 칭찬하고 싶어서. 조금만 더 읽어볼게."
후, 오랜만에 재미있는 작품 덕질하는 감각이라서 기분이 좋네.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작품을 읽다가, 왜 굳이 이 작품 힐링 개그 파트가 그리 많았는지를 깨달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아니, 로자리아가 이런 캐릭터를 활용했다고...?
"로자리아, 이거 크림 말이야...."
"크림쨩 귀엽지?"
"어? 어...."
그, 원래 크림이 귀여운 성격의 캐릭터로 등장하긴 했는데요....
이번 작품의 메인 빌런이 크림인데, 그걸 귀엽다는 말로 표현해버리면 내가 뭐라고 해.
와, 근데 진짜 크림이 크싸레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묘하게 납득이 되는 흐름이었다는 게 소름이 돋아서 좋아.'
이제까지 크림은 항상 딸기를 좋아하는 친구로 나왔는데.
동성 친구니까 허용될만한 거리감에서, 사실상 선을 넘었다고 봐도 될법한 행동 등을 자주 한다.
귀여운 분위기의 캐릭터라 장난스러운 느낌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면 좀 이상했겠지.
심지어 이번 작품에서는 대놓고 크림이 나올 때마다 수상한 상황을 넣어놨기 때문에.
'쟤 왜 저렇게 행동하지?'라는 의문이 계속 있었고.
그나마 크림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넘어갔던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여기서 범인이 크림으로 나와도 납득할 수 있었던 거고.
'얘는 진짜 크레이지 사이코 레즈 캐릭터는 어떻게 생각해냈지? 나도 아직 이런 얀데레 계열 캐릭터는 써먹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하긴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으니까, 어디서 들은 이야기가 있겠지.
아무튼 이번 작품은 크림이 딸기와 우유의 관계를 질투해, 딸기를 독점하기 위해 벌여왔던 사건이 원인이었다.
딸기를 납치한 것도, 딸기와 함께 있고 싶어서라는 이유였고.
"엔딩은 좀 애매한데...."
"그래?"
"음, 아무리 그래도 메인 빌런인데. 이렇게 정의 구현 한 다음에 바로 용서해주고 친구로 받아준다니...."
"이상해? 그래도 딸기는 친한 친구였으니까 버릴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
"그 부분은 그렇긴 한데. 너무 하하 호호 하는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그래?"
"응, 조금 더 후회하는 장면 정도는 나오는 편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이 엔딩이 나쁘다는 건 아닌데, 너무 급전개인 느낌이 있다.
딸기가 화낸 것을 듣고 제대로 후회하고.
나중에 용서를 받아서 새사람이 된다거나, 이렇게 중간 에피소드를 하나 더 넣는 게 자연스럽겠지.
"오, 그렇네. 고마워 참고할게. 아, 그럼 칼리는 어떻게 생각해?"
"뭐가?"
"칼리가 딸기라면, 크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흠, 근데 확실히 확 내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순간적으로는 화를 내서 뭐라고 하고 거리를 벌릴 거고, 무섭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과거 함께 행복했던 시간 때문에라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앞으로 그러지 않는 것이 보이면 받아주겠지.
"방금 내가 말한 대응 그대로. 일단 화내고 거리를 두겠지만, 진심으로 사과하면 받아줄 것 같아."
"흐응, 다행이네."
"...뭐가?"
"아, 칼리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딸기가 별난 선택을 하는 건 아니겠다 싶어서."
"딸기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굉장히 손절을 못하는 바보 같은 성격일 뿐이지."
"...히힛, 나는 그런 칼리가 좋은데?"
오히려 딱 부러지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좀 문제다.
유일하게 타협하지 못하는 게 그림에 대한 것 정도?
그림만 그리게 해주면 어지간한 건 다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긴 해.
"그래도 저렇게 뒤에서 뭔가 하면서 차지하려고 하는 건 싫다는 거지?"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그만큼 사랑해준다는 건 고맙겠지만.... 아, 근데 그런 거 말고 좀 순한 맛은 좋아."
"어떤 거?"
"어.... 로자리아처럼 나를 위해서, 나를 보여주겠다고 뭔가 준비한 걸 보여주는 거?"
평소에 내 취향을 고려해서 보지털을 깔끔하게 정리한다거나, 내가 가슴 큰 게 좋은 줄 알고 가슴을 키우려고 노력하면 되게 사랑스럽지.
속옷을 내가 꼴리게 준비하거나, 뭔가 야한 이벤트를 해주는 것도 좋고.
솔직히 그런 것들만 보면 자지가 발기한다.
"굳이 말은 안 했지만, 로자리아가 해줄 때마다 그런 거엔 감동했었어."
"진짜?"
"응."
"알았어. 그럼 최대한 그런 쪽으로 준비해볼게."
"아니, 굳이 막 그렇게 억지로 하지는 않아도 괜찮아."
"억지로 아니야."
칼리를 위해서 하는 거라면 뭐든 행복한 일이니까.
그건 어떤 일이 있어도 달라지지 않는 내 마음이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마.
그렇게 말하는 로자리아의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고마워 로자리아."
"아니야, 나야말로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 칼리. 사랑해."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난리가 나 있는 상태였는데.
갑자기 동아리 문이 벌컥 열리면서 우리 둘은 그대로 모든 동작을 멈춰버렸다.
아, 진짜 깜짝 놀랐네.
"어, 둘이 러브러브하다!"
"창피하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아줘."
"칼리는 내가 창피해?"
"아니 그게 아니라...."
"히히, 우리 엄마랑 아빠 보는 것 같아."
대체 너희 부모님은 애 앞에서 뭘 보여주시는 건데.
나는 오르카의 헤실거리는 웃음을 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속은 깊은 애라고 알고는 있는데, 겉으로는 왜 이렇게 머리가 꽃밭에 바보 같은지 모르겠다니까.
"어, 저거 '브래지어 이야기'에 나오는 거지!"
"맞아. 저번에 나갔을 때 발견해서 사 왔어. 예쁘지?"
"오오...."
오르카가 딜도에 집중해서 열심히 구경하는 걸 보니까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게 일종의 굿즈같은 느낌으로 여겨지는구나.
뭔가 저걸 보니까 프로모 카드 말고 다른 굿즈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
신작에서는 굿즈나 새로 만들어서 함께 판매하거나 해볼까?
근데 아무래도 내가 판매처가 전시관뿐이라서, 거긴 책 이외의 기술은 없을 텐데.
특별한 굿즈를 추가하려면 조금 일이 커지긴 할 것 같다.
"아, 이거 젖꼭지에 다는 거지?"
"응, 오르카도 하나 해볼래?"
"아니야. 나 모유 때문에 그런 거 달면 불편할 것 같아."
유두 피어싱을 권하는 것도 참 웃긴 상황인데....
그 유두 피어싱을 거절하는 이유가 모유 때문이라니.
이게 제국 최고 아카데미 여학생들의 대화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야.
"아, 하프는 임신 여부랑 상관없이 모유가 나온다고 했었지?"
"응, 예전에는 매번 귀찮다는 생각만 했었거든? 그런데 '행복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를 본 이후에는 엄청나게 좋아졌어!"
"오.... 착유 절정이 그렇게 기분 좋아?"
"민감해진 유두 사이에서 푸슈욱! 하고 기분 좋은 모유가 뿜어져 나오는데...."
나는 대체 왜 저런 대화를 듣고 있어야 하나 싶어서 멍하니 오르카를 보고 있었는데.
자꾸 오르카가 자신의 가슴을 더듬으면서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숙사는 자위 부분에서 엄격한 룸메이트가 있다고 불평했었으니, 젖꼭지 자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이 동아리 방밖에 없긴 할 거다.
그런데 내 앞에선 하지 말라고 했으니 눈치를 보는 거겠고.
"나는 이만 점심 먹으러 가볼게."
"아, 칼리 이따 봐!"
진짜로 자위가 많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네.
내가 동아리 방을 떠난다는 것을 듣자마자, 신나서 대답하는 오르카의 모습이 좀 귀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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