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 15권 화신잉태(3)
* * *
"역시 안경 벗은 비리디타스가 오지네."
최근에는 잠시 만화 작업을 미루고, 신작인 화신잉태의 예약 한정 프로모 카드를 위한 일러스트를 그리는 중이었다.
슬슬 이걸 전시관에 제출해야지 예약을 받을 수 있으니까.
이번에도 1권의 알베도나, 다른 캐릭터들의 프로모 카드랑 비슷한 알몸에 누워있는 구도를 한 그림인데.
기존과는 조금 다르게 이번 이야기를 담아 살짝 유혹하는 듯한 야한 비리디타스를 보여준다.
근데 그러려면 좀 강렬한 모습이 터져야 하는데, 이번에 격정적으로 애들을 성적으로 괴롭힐 때 나오는 '안경 벗은' 비리디타스를 써먹기로 했다.
비리디타스는 이전부터 얌전할 때는 안경을 쓰고 있고.
폭주할 때는 안경을 벗고 있다는 밈을 밀던 캐릭터였는데.
이번 권에서는 오히려 안경을 쓰고 있을 때까지 야한 것에 침식되는 것이 주요 소재일 정도로, 안경을 벗고 폭주하는 파트가 많거든.
그걸 이번 프로모 카드에도 어느 정도 적용해주는 게 좋겠지.
하여튼 외모 봉인구로 안경을 써먹고 있었기에.
이렇게 비리디타스가 안경을 벗고 유혹하는 표정을 하면, 다들 참지 못하고 예약 구매를 하고 말 거다.
이건 못 참지.
'이전과 다르게 야한 분위기를 내고 있으니까....'
은은하게 보지 아래쪽을 애액으로 적시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젖은 것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어렵지만.
이런 세세한 디테일이 꼴림을 완성시켜주는 법이지.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일단 유화가 모두 마른 뒤에 최종적인 확인을 해야겠지만.
지금 이 정도면 내가 원하던 느낌에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슬슬 캔버스를 숨겨두고 잠이나 자야겠다 싶어서, 유화를 안정적으로 마르게 해주는 마법 덮개를 찾고 있는데.
갑자기 나 이외의 인기척이 느껴져서 화들짝 놀랐다.
"우음.... 뭐야, 칼리 아직 안 자?"
"아, 니아였구나."
얘는 잠결에 내뱉는 신음이 왜 이렇게 여자애 같냐.
순간 니아가 아닌 줄 알고, 무슨 귀신이나 침입자라고 생각해서 깜짝 놀랐다.
물론 상대가 니아라고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시우 화가의 그림은 마법사나 마법사 지망생 중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것인데.
갑자기 그게 기숙사 방에서 마르던 도중의 상태로 발견되면 당황스럽겠지.
차라리 완성본이면 내가 제출하려고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라도 통할 텐데.
"화장실...."
"아, 다녀와. 나도 슬슬 끝내고 잘 생각이었어."
"응."
니아가 볼일을 보러 가는 것을 확인한 이후.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불까지 켜고 덮개를 급하게 찾아 캔버스를 덮었다.
나는 도구들을 정리하고, 마법을 묶어두고 있던 유화 냄새를 창문 밖으로 내보낸 뒤에야 좀 안심했다.
"아우으.... 칼리 너 잘 거야?"
"어. 할 거 다 했거든."
"아하. 잘 자."
"어, 니아도."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는 느낌이라서 다행이지.
자칫 걸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 당황했다.
뭐, 니아 성격이면 들켰다고 어디 가서 떠벌리진 않겠지만.
문제는 정작 그 니아가 황태자라서 알지 못했으면 한다는 거지만.
"끄응...."
새벽에 늦게까지 작업을 하다가 잤더니, 얼마 자지 못한 탓에 몸이 전체적으로 찌뿌둥했다.
그래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게, 오늘 토요일이랍시고 동아리에 모이기로 했던지라.
자더라도 동아리 방에 가서 자든가 해야 했다.
"의외네. 토요일이라 늦게 일어날 줄 알았는데."
"동아리 애들이 오늘 보자고 했거든."
"흐응, 만화부라고 했지. 만화관이 만화부가 관리하는 거던가?"
"응. 왜?"
"아니, 저번에 보니까 학생회가 건들지 못하는 몇몇 단체 중 하나길래. 신기해서."
"론도 교수님이 엄청나게 미셨다더라."
확실히 그거 하나는 되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짜 우리가 뭘 해도 건드는 사람이 없던데?
아무리 그래도 동아리가 틈만 나면 밖에 나가서 외식하고 오는데 태클이 걸리지 않을 줄이야.
원래라면 1학년은 나갈 때마다 보고서 같은 것도 작성해야 할 텐데, 그런 것도 거의 없이 자유롭게 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학생회가 원래 동아리 방은 다 순회하면서 검사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거 없이 단독이라서, 우리가 안에서 자위하든 떡을 치든 별 상관없었다.
정확히는 문제를 잡으려면 문제가 되는데, 잡을 사람이 없다는 거지.
누가 뭐 내부 고발이라도 할 거야?
"다 좋은데. 그만큼 관리할 일이 있다는 건 귀찮긴 해."
"하긴, 원래는 그냥 동아리로 할 생각이었다고 했지?"
"어쩌다 보니까 만화관에 들어갈 만화 관리를 맡아버린 셈이라서."
장단점이 있는 거겠지.
일단은 애들이 이렇게 마음 편하게 폭주하는 모습을 보니까 잘 선택한 것 같긴 했다.
우리가 조정하면서 만화관이 제대로 굴러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좀 뿌듯하고.
덕분에 아카데미 내에서 내 만화가 유행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니까 더 만화 그리기가 즐거워지는 효과도 있다.
아무래도 유행에 민감한 여학생들이 주 고객층으로 보이는 공간이라서 그렇겠지.
"하긴, 나도 가끔 가서 보는데. 재밌는 거 많더라. 다 너희가 보고 고른 거라고 했지?"
"엄선했지? 사실 그냥 상위권 작품들 가져오면 되는데, 가끔 조금 낮은 순위권 작품인데도 재밌는 것들이 있거든. 그런 것도 보여주고 싶은 법이니까."
"...열심이네. 맨날 새벽에 뭘 하나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구나."
...그건 또 그것대로 다른 이유로 그러는 거긴 한데.
하긴 생각해보면 내가 만화를 그린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으면, 굳이 그 시간에 만화를 그릴 필요는 없지.
만화 원고를 하든 만화관에 올라갈 작품 선별을 하든, 그게 낮에 동아리 방에서 하나 밤이나 새벽에 기숙사에서 하나 다를 게 없으니까.
결국 만화관 때문에 동아리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그래서 기숙사에 늦게 돌아오니 밤에 작업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건 사실이었다.
"뭐, 그렇지. 그래도 재밌어."
"잠 제대로 자는 거 맞지?"
"아마도? 3시간은 자고 있으니까 충분한 것 같은데."
"...너 그러다 큰일 난다."
아니, 정말로 3시간을 잔다는 게 아니라....
밤에는 3시간을 자고, 낮에 조금씩 채워서 총 5시간 정도는 자고 있다.
그 정도면 사람이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아, 그런 건가. 근데 왜 굳이 그렇게...?"
"밤에 잘 잠이 안 와서."
물론 몰래 작업하기 위해서긴 하지만, 동아리 방에 가서 자는 편이 더 힐링 되거든.
솔직히 나 혼자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내가 졸리다 하면 로자리아나 유리아가 가슴 베개나 무릎베개를 해주는데.
그게 더 극락이란 말이지.
"흠, 그건 별로 좋은 일이 아니네. 뭔가 잠이 잘 오는 차라도 마시면...."
"괜찮다니까. 니아 너는 걱정도 참 많아. 나는 오히려 시험이 더 걱정인데."
"하긴, 솔직히 아직도 새 문자들은 익숙해지질 않아서."
"맞아. 점 문자는 다 끝났는데...."
그렇게 오늘은 아침을 먹으면서 니아와 잡담을 좀 하는 식으로 날을 시작했고.
밥을 먹은 뒤에는 니아와 헤어져서 그대로 동아리 방으로 향했다.
아마 아침 먹고 바로 모이라고 했으니까, 전부는 아니어도 한 명쯤은 있겠....
"히엑!?"
"오르카. 내가 말했지. 할 때는 문 잠그라고."
"미, 미안. 깜빡했어."
저거 딱 봐도 거짓말인데.
아마 로자리아랑 유리아가 들어오면 멈출 생각도 없었을 거다.
근데 갑자기 내가 들어오니까 어쩔 수 없이 멈춘 거지.
그나저나 내가 계속 그녀에게 부끄러운 거라고 해서 그런지, 나한테 들키자마자 굉장히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원래는 저러지 않고 당당한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카, 칼리. 혹시 나 시간 조금만 줄 수 있어? 조금만 더 하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가 있을 테니까 마무리해."
"그, 그런게 아니라. 칼리가 여기...!"
뭐라고 시끄럽게 말하긴 했는데, 이상한 소리를 하기에 그냥 나가서 문을 닫아버렸다.
쟤는 진짜 어쩌려고 저러나 몰라.
...그 와중에 이제까지 개발이 참 잘 되었는지 유두가 포동포동하게 맛있게 살쪄있긴 하더라.
그리고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여자애들이 가버리기 직전의 '하아♡ 하아♡'하는 얼굴은 참 아름다워.
"뭐야, 왜 여기에 서 있어?"
"안에서 오르카가 쓰고 있어서."
"...뭘 쓰는데?"
"동아리 방을, 기분 좋아지는 용도로?"
이렇게 말하니까 오르카가 동아리 방을 범하는 것 같은 느낌이긴 한데.
대충 이해한 유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옆에 섰다.
그냥 들어가서 뭐라도 잡담을 나눌 줄 알았는데, 알고도 들어가는 사이까지는 아니었나 보다.
하긴 그게 더 이상하긴 해.
"아쉽네. 빨리 들어가서 이거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거 뭔데?"
"최근에 그리기 시작한 그림."
"아, 빨리 보고 싶은데."
유리아의 신작이라니, 그건 진짜 참기 어려운데.
완성본은 아니라지만, 솔직히 최근 들어 유리아의 스케치 실력이랑 기본 채색이 늘어서.
그것만 봐도 어떤 걸 노리는지가 눈에 들어와서 기분 좋게 구경할 자신이 있었다.
"칼리? 유리아? 안 들어가고 뭐 해?"
"오르카가 쓰는 중."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동아리 방을 왜 오르카 혼자 쓰는데?"
유리아는 내가 유리아에게 했던 것처럼, 애매한 느낌으로 로자리아에게 대답했고.
이해하지 못한 로자리아가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띄우자, 장난스럽게 바보 털을 흔들던 유리아가 자신의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는 시늉을 했다.
저걸 굳이 저렇게 표현하는 이유가 뭐야.
"흐응, 그래서 칼리가 자리 비워주고 있는 거구나?"
"시원해진 다음에 시작하는 게 좋잖아. 끝이 안 나면 찝찝하니까."
"그건 맞지."
결국 우리는 동아리방 앞에서 셋이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자아내기 시작했고.
오르카는 가버린 쾌감의 여운을 얼굴에 담은 채로 문을 열었다가.
셋이서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당황했다.
"엣, 에엣.... 미안!"
"아니, 뭐. 그럴 수도 있지."
근데 그건 그럴 수 있는데, 자위해서 난장판이 된 몸은 좀 정리하고 나오지 않을래?
지금 네 꼴이 너무 야해서 당장이라도 범하고 싶은 지경이니까.
제발 부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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