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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76화 (76/229)

〈 76화 〉 15권 ­ 화신잉태(5)

* * *

"그럼 다녀올게."

"응, 나가서라도 아침은 꼭 챙겨 먹고."

"아니, 엄마냐고...."

"칼리가 자꾸 자기 몸을 안 챙기잖아. 신경 쓰인다니까?"

니아 쟤는 왜 갈수록 나를 이렇게 챙기려는 건지 모르겠다.

저번에는 내가 푹 자야 할 것 같다면서 새벽에 깨워준다고 하고 내버려 두더니....

내가 그렇게 주변 사람이 보기에 안쓰러운가?

'...그럴지도?'

굳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워낙 바빴던 것이 원인인지, 얼굴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긴 했다.

하긴 최근에는 내 작품이랑 동아리 작품이랑 같이하다 보니까 일이 많긴 했지.

"하으음...."

"칼리, 나 자꾸 눈이 감겨."

"나도...."

"로자리아 선배, 고생 많으셨어요. 칼리도."

오르카가 조심스럽게 그림을 옮기고.

유리아는 반쯤 졸고 있는 로자리아와 나를 챙겼다.

자기 전까지 배경이 검게 변하는 기록 마법을 예쁘게 연출하느라, 우리 둘 다 거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수준이었다.

이게 조금만 더 해보면 결과가 나올 것 같으니까 계속 시도했더니.

너무 늦게 자는 상황이 발생해서 이렇게 되어버렸다.

하긴 그래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와, 그래도 이렇게 완성된 걸 보니까 기분이 좋네."

원래 그림은 물론이고, 전시관 측에 부탁해서 작품의 제목 부분까지 배경이 변하는 처리를 했고.

덕분에 순간적으로 배경이 바뀌면서 다른 그림이 되면, 작품의 제목까지 변경되게 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흰색 배경의 '행복한 일상'이라는 작품과 검은색 배경의 '현실의 일상'이라는 작품이 공존하는 형태가 된 거지.

'굉장히 자연스럽네.'

여러 형태를 시험해 봤지만, 이 그림이 바뀌는 방식은 전등이 깜빡이는 걸 모티브로 잡았다.

물론 이 세상은 마법으로 불을 켜기 때문에 그런 시스템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짧게 깜빡이다가 길게 유지되고 꺼지는 형태가 은근 분위기가 있었다.

왜냐면 그냥 깜빡이는 게 아니라, '어둠 마법'의 특징상 안개가 퍼지듯 쫘악 뻗어나가는 느낌인데.

이게 짧아지는 것으로 중간에 마법이 끊기니까, 마치 침식을 시도하다가.

끝내 침식되는 듯한 느낌을 줘서, 어둠 특유의 악랄함이 느껴져서 좋더라고.

"사본을 판매할 수 없다는 게 조금 아쉽네."

"사본으로는 이 맛을 느낄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아무래도 아직 투명한 유리 같은 곳에 고성능 인쇄를 하는 기술은 없으니까.

이건 한동안은 사본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긴 그래서 이 작품은 더 빛을 발하는 느낌이긴 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림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숴버리니까.

"응, 자유시간 가지다가 나중에 보는 걸로. 거기 카페가 괜찮지 않아?"

"그렇게 하자. 근데 설마 그렇게 말하고 자러 가는 건 아니지?"

"...어차피 오늘 일찍 들어가려고 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자고 싶지는 않아."

자면 안 된다.

내가 오늘 시내에 나온 것은 이 공동 작품 때문이긴 하지만, 다른 일도 있긴 하거든.

굳이 급하지는 않은데 괜히 잔다고 일정이 밀리는 건 아무래도 좀 그러니까.

"오랜만입니다. 하우음...."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어제 늦게 잘 일이 있어서요. 제 작품도 바쁜데, 스승님 작품까지 신경 쓰려니 죽겠습니다."

"아, 칼리님이 작업에 참여하셨다는 작품은 봤어요. 갑자기 그림이 변해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기록 마법을 일부 이용한 그림이라니...."

"아, 그거요."

"그림이 바뀔 때, 마치 화신전장에서 애들이 침식당할 때가 생각나던데요?"

"확실히 닮긴 했죠."

솔직히 둘 다 깨끗하던 것이 침범당하는 느낌이고.

그 현상의 디자인 자체가 현실의 확산을 모티브로 하므로 디자인적 유사점도 있으니.

당연히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게 최종 원고죠?"

"네, 샘플 부탁드릴게요."

일단 '화신잉태'의 최종 원고도 얼마 전에야 완성이 되어서 그걸 넘기는 것이 오늘 1차 해야 할 일이었다.

사실 만화 내용이야 다 완성했었는데, 표지 부분을 꼴리게 그린다고 시간 투자를 하느라 좀 오래 걸렸다.

솔직히 문신 때문에 가버리는 알베도를 가벼운 마음으로 그릴 수는 없는 거니까.

나는 항상 캐릭터의 절정 장면을 그릴 때 진심이거든.

아, 책 뒷부분에 넣는다고 일러스트 큰 거 한 장 더 그린 것도 오래 걸린 원인이긴 하지.

"이번 표지는 좀 분위기가 매우 다르네요?"

"그렇죠?"

정작 펼치면 초반부에 알베도가 몸을 요양하는 거랑 위험한 적들과 싸우는 장면 때문에 익숙한 분위기가 펼쳐지겠지만.

표지만 보면 저번에 그렸던 '행복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처럼 야한 짓만 하는 내용 같으니까.

실제로도 점점 그런 분위기로 물드니까 표지 사기도 아니었다.

'뭐, 결국 쉬어가는 파트지만.'

이런 작품이 항상 그렇겠지만.

이렇게 쉬어가는 파트가 있던 다음에 제대로 된 이야기를 터트리는 법이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힐링 파트를 넣으면서 불안한 암시를 남기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걸 야한 파트로 진행하면서, 그 야한 파트가 진행되는 원인 자체로 불안한 암시를 남기는 거다.

잘 따지고 보면 강제로 애들이 평소 생활을 침식당해가면서까지 싸운다는 거니까.

"예약은 많이 들어왔어요?"

"네, 그런데 대부분은 추가 상품도 예약에 포함하던데요?"

"...스승님이 기뻐하시겠네요. 뭔지도 모르는 물건을 그렇게 다들 흔쾌히 구매해준다니."

"그럴만한 사람이잖아요."

오히려 돈 아낀다고 그걸 사지 않으면, 이번 작품에서 얻는 감동을 덜 얻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 보다.

이건 작품을 보기도 전에 나를 믿어줬다는 거니까, 굉장히 감사한 일이지.

"그리고 그 추가 상품의 샘플도 나왔어요."

"이건 사실 제가 발품을 팔아야 했던 건데,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같이 판매하신다면서요. 그 정도는 해야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우 화가님의 신작인데."

당연히 여기서 이야기 나오고 있는 추가 상품은, 화신잉태의 굿즈로 개발된 자궁 문신 스티커였다.

아무래도 그라데이션이 들어간 것이 훨씬 예뻐서, 색을 복사할 배경색을 제출했고.

색상별 자궁 문신의 모양도 제출해서, 그 모양대로 스티커를 자르도록 부탁했었다.

"근데 여기 작은 문신은 왜 있는 거예요?"

"아, 그거요."

근데 이게 기본적으로 한 장씩 제작하게 되잖아?

그럼 무조건 빈 곳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 나는 이 공간에 작은 자궁 문신 스티커를 두 개 더 만들도록 배경과 자르는 선을 요청했다.

어차피 생산비용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을 테니까.

"하나는 여분이고, 하나는 만화 샘플 나오면 보여드릴게요."

"대체 뭐길래...."

내가 이걸 괜히 만든 건 아니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마지막 페이지에, 다 같이 단체 사진처럼 보이는 컬러 그림으로 마무리되는 것을 살짝 무리해서 넣었는데.

여기가 사실 이 스티커 굿즈의 추가 사용 용도가 있는 장소였다.

다 컬러인 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컬러가 없는 부위가 있거든.

"설마...."

"이거 사이즈가 여기 보이는 캐릭터들에 있는 자궁 문신이랑 같은 사이즈래요."

그래서 예쁘게 잘 붙이면 자궁 문신까지 다 컬러인 그림이 완성되는 거지.

심지어 완벽하게 완성하려면 모든 자궁 문신을 구매해야 하는 거고.

솔직히 말하면 상술이긴 한데, 이런 수집욕 채우는 굿즈가 뽕이 차잖아.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기에, 굿즈에서 버는 수익은 최소한으로 잡아서 거의 원가로 판매하기로 했다.

와, 근데 이거 스티커 품질 진짜 좋네.

간단하게 스티커를 손등에 붙여봤는데, 무슨 피부처럼 자연스럽게 달라붙어 있어서 착용감이 꽤나 괜찮았다.

"예전에 제가 봤던 것보다 품질이 훨씬 좋네요. 사람 살에 붙이는 용도 같아요."

"시우 화가님이 그 기술을 쓴다고 전해드렸더니, 갑자기 초췌해진 얼굴로 돌아오셔서 건네주시더라고요."

"오우...."

이번 일에는 진짜 고마운 사람이 많네.

내 작품이니까 뭔지 모르는 것도 일단 함께 구매해주겠다는 천사 같은 팬들도 그렇고.

굿즈에 기술 쓰겠다니까, 품질 올리겠다고 자신을 때려 박아가면서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자, 이렇게 다 붙이면.... 괜찮죠?"

"이건 진짜 좀 신기한데요?"

단점은 잘못 붙이면 다시 떼어내기 힘들다는 건데.

이번에 개선되면서 스티커를 떼어내는 방식이 약품에서 마법으로 바뀌어서 그것도 해결되었다.

튼튼하게 달라붙지만, 마법을 쓰면 쉽게 떨어지는 스티커라니.

이런 부분은 확실히 저쪽 세상보다 편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그러면 마법을 쓸 수 없는 사람은 못 떼어내는 거 아니에요?"

"그건 어쩔 수 없다던데요?"

주변에 마법사한테 부탁하지 않으면 평생 붙이고 다녀야 한단다.

아예 접착 방식이 바뀌어서 기존 약품으로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

무조건 설명서에 있는 마법진을 재현해서 떼어내야 한다는 거지?

...그건 좀 위험하지 않아?

"하여튼 이걸 5종류를 같은 개수를 만든 다음에 섞어서, 내용물이 뭔지 모르게 팔면 된다는 거죠?"

"네, 기본적으로는 그렇고요. 이거 6번째가 있는데, 이건 천 개마다 5개씩 대체해서 천 개 단위로 생산해주시겠어요?"

"어, 이건 만화에 나오지 않는 거 아니에요?"

"화신 시리즈의 다음 작품에 나오는 건데, 미리 등장해서 놀라게 하는 용도라고 들었어요."

니그레도의 검은색 문신인 드림캐쳐, 치트리니타스의 노란색 문신인 알터마인드.

루베도의 빨간색 문신인 템페티션, 비리디타스의 초록색 문신인 페이버.

알베도의 하얀색 문신인 소울체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에 등장하지 않던 무지개색 문신인 오푸스.

그렇게 6개의 문신 중 하나가 등장하는 뽑기를 판매하는 셈이다.

솔직히 뽑기 확률이 0.5%면 낮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부러 희귀하게 만들어서 존재 자체가 도시 전설처럼 느끼게 하려는 전략이니까 어쩔 수 없다.

자주 안 나와야 그게 팬이 직접 만든 문신인지, 진짜 시우 화가가 그린 정식 문신인지 헷갈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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