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87화 (87/229)

〈 87화 〉 18권 ­ 시간의 위를 걷는 사람들(1)

* * *

"고마워 오르카."

"뭐가?"

"내가 시우라던가, 그런 내용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잖아."

"그랬다간 난리가 났을 테니까.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있었구나.

물론 오르카가 의외로 눈치를 자주 본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가끔 폭주하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는다는 거랑 애초에 눈치를 봐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때가 많아서 그렇지.

"그래서 나는 언제 내려줄 거야?"

"기숙사까지 쭉 이러고 갈 건데?"

그건 좀 부끄러울 것 같은데.

물론 내 희망에 따라 업는 것이 아니라 공주님 안기로 안겨진 상태라서 더 부끄럽기도 하다.

그치만 이렇게 안기면 오르카의 커다란 가슴을 꼬옥 안고 있을 수 있단 말이야.

가끔 유두 건드리면 깜짝깜짝 놀라면서 느끼는 거 보면 재밌다고.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칼리도 그랬잖아. 서로 지켜주는 사이라고. 그래서 나도 하고 싶었어."

나는 아까 못 걷던 너랑 다르게 잘만 걸을 수 있으니까 다르지 않을까.

하여튼 나는 방금 그 자세로 가슴에 파묻혀서 사심 가득 채웠으니까 만족한다.

하, 시발 나중에 시간 되면 모유 일부러 짜지 말고 오라고 해서 잔뜩 빨아먹고 싶다.

솔직히 모유 뿜어대면서 잔뜩 가버리는 오르카 개꼴리는데....

"하고 싶어?"

"어?"

"자꾸 가슴으로 장난치길래. 꼬추도 커져 있고, 하고 싶은 건가 해서."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우리 지금 빨리 안 돌아가면 기숙사 통금 때문에 경위서 써야 한다?"

"아쉽다...."

그렇다고 나도 얘도 룸메이트가 따로 있는데, 기숙사에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저번에 로자리아랑 했을 때도 휘리아 선배가 자리를 일부러 피해줘서 가능했던 거잖아.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나중에 날을 잡는 게 낫지.

"아, 칼리 왔.... 어라?"

"다녀왔어."

"...어디 다쳤어? 괜찮아?"

"아, 다친 거 아니야. 아까 내가 업고 갔더니 올 때는 반대로 해준다고 해서."

아카데미에 도착한 뒤에는 다들 우리의 남녀가 역전된 듯한 자세를 보고 대체 저게 뭐냐는 듯한 눈길을 보내긴 했지만.

그런 쪽팔림보다는 오르카의 가슴이 더 중요하다.

그나마 내가 마법부고 오르카가 검술부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리라 생각한 것도 있고.

근데 요즘 만화부가 내 전용 하렘이라는 느낌의 소문이 퍼지고 있긴 하던데....

'펙트라서 대응을 못 하겠네.'

우리가 진지하게 만화를 좋아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실제로 만화부의 여학생 3명이 다 나와 그런 관계로 발전되어 있는 건 사실이니까.

다만 여기 들어오면 어떤 여자도 자기 것으로 함락시킨다는 소문까지 발전한 것은 좀 억울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금발 태닝 양아치라도 되는 것 같잖아.

"후, 그럼 어디 아픈 건 아니라는 거지?"

"어. 오르카 고마워."

"나야말로 오늘 같이 가줘서 고마워."

오르카를 보내고 기숙사 방 안으로 들어가자, 차마 본인이 있는 자리에서는 정확한 상황을 물어보지 못한 니아가 조심스럽게 어떻게 된 것인지 물었고.

건강 상태가 나빠지신 건 맞지만, 그렇게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줬다.

다만 실제로 아카데미에 연락할 때는, 상태가 아주 위험하셨던 건 사실이었을 거다.

오르카가 있으니 최대한 언급을 안 하려고 하시긴 했는데, 대응이 늦었으면 위험했다고 하는 내용을 생각하면 당시에는 꽤 심각했을 거다.

"그래도 금방 호전되셨다니 다행이네."

"그렇지 뭐. 오르카도 덕분에 금방 상태가 좋아졌고."

다만 오르카도 깨달았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전초전 같은 거다.

소드마스터 수준의 실력을 갖췄다고 들은 오르카의 아버지가, 겨우 부인과의 잠자리 때문에 저런 상태가 된다니.

슬슬 수명의 한계가 다이렉트로 신체에 부하로 걸리기 시작한 것일 테니까.

나중에도 비슷한 이유로 건강에 적신호가 얼마든지 올 수 있다는 신호탄과 같았다.

'수명이라....'

사실 이번에 오르카의 아버지가 쓰러진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굉장히 이 관계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의 상식도 그렇고, 일반적인 판타지 소설에서의 설정들도 그렇고.

오크는 다른 종족보다 더 성욕이 강한 근육질의 자지에 화가 잔뜩 난 캐릭터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설정의 기반에는 짧은 수명과 빠른 번식력이라는 종족 특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짧은 수명의 오크가, 수명이 길기로 유명한 엘프와 사랑을 나눈다.

그럼 그 결말에는 무엇이 도래하고 있을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엘프랑 오크가 떡치는 장면을 그리고 싶다면서 나온 작품에, 그렇게 많은 고뇌가 담겨있는 게 더 이상하다.

'하지만 이번 후속작에서라면...?'

안 그래도 이번 후속작의 최종 마무리에 들어갈 진지한 에피소드를 넣고 싶었는데.

왠지 나는 그 에피소드에서 수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번 작품에서 밀고 있던 컨셉은, 하프가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통한 시간의 흐름이었는데.

그 컨셉과도 맞으면서 제대로 엘프와 오크가 가질 수 있는 고민을 담아낼 수 있는 좋은 주제인 것 같았다.

"오케이, 그렇다면 거기는 그 소재로 밀어보는 걸로 하고."

그러면 이 부분은 하프가 성인이 된 이후, 조금씩 관련된 떡밥을 뿌리는 게 좋겠지.

오크가 좀 늙어 보이도록 외모 자체에 천천히 변화를 적용하고.

이번 오르카의 아버지가 겪은 사건처럼 약간 건강에도 적신호가 오는 식의 표현도 넣을 생각이다.

물론 쓰러진다거나 하는 강렬한 사건이 아니라, 그냥 좀 고생하는 정도의 가벼운 일화 정도로.

"음, 이제 기본적인 작품의 흐름은 다 잡았는데."

즉, 이제부터는 원고 작업을 들어가면 된다는 뜻이다.

세부적인 플롯이야 더 조정해야겠지만, 이 부분은 일단 그려봐야 감이 오는 부분도 있으니까 일단 스케치부터 시작해야겠지.

"그리고...."

다만 작품의 본편과는 별개로 고민이 되는 부분들이 좀 있다.

바로 내가 이번 작품에서도 괜찮은 굿즈나 사전 예약 보상을 제공하고 싶다는 것.

솔직히 저번에 자궁 문신 굿즈 팔면서 너무 즐거웠기에.

이번에도 뭔가 작품에 어울리는 무언가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일단 표지는 다 짰으니까, 이거랑은 좀 분위기를 다른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데."

표지는 기존 작품의 후속작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오크와 엘프가 메인으로 들어갔고.

둘의 딸인 하프의 귀여운 어린 시절 모습이 들어간 가족 전체가 나오는 구도였다.

이 정도면 전작에서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를 딱 알 수 있게 하면서, 작품 앞쪽의 힐링 되는 분위기를 단번에 전달해줄 수 있다.

그럼 굿즈나 사전예약 보상에서 나타내는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어두운 부분인 뒤쪽 내용을 건드리는 편이 정석적일 것 같다.

그래서 잠시 고민해본 결과, 그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자체는 생각이 났다.

그걸 구현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제일 큰 문제지만.

"후, 굿즈로 만드는 걸 포기해야 하나?"

지금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그림이 두 가지로 보일 필요가 있었다.

당장 저번에 우리 동아리에서 함께 만들었던 작품에서 사용했던 것이 그런 그림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투명한 유리에 흑백으로 그림을 그리고, 배경색을 바꿔치기하는 방식이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전시하는 형태로는 충분히 내가 원하는 걸 표현할 수는 있어도.

가장 노리던 굿즈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게 뼈아팠다.

아, 이렇게 그림 하나에 여러 개 보이게 하는 기술이 더 있지 않았나?

조명이랑 배경 바꿔치기하는 거 말고는 없나?

'...잠시만, 그게 있었지.'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머릿속에 렌티큘러라고 부르는 인쇄 기술이 떠올랐다.

각도에 따라서 다른 그림이 보이는 형태로 인쇄하는 방식인데.

예전에 굿즈를 팔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이거로 약간 홀로그램 느낌을 주는 카드를 만들었었다.

꽤나 고급 기술이라서 여기서는 그대로 재현할 수 없는 녀석이긴 한데.

정확히는 그 기술 말고 그 기술의 원리를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렌티큘러는 투명한 렌즈 비슷한 걸 그림 위에 넣어서, 보는 각도에 따라서 렌즈 때문에 빛이 꼬여서 그림의 특정 부분만 보이게 하는 방식을 쓴다.

즉, 간단히 말해서 그림 일부를 렌즈의 볼록한 모양을 이용해서 티가 안 나게 가린다는 거지.

'거기서 티 안 나게 가리는걸, 그냥 티 나게 가린다면 충분히 구현할 수 있지.'

티가 나게 가리는 경우는,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계단에 그림을 그리는 거라고 보면 된다.

계단에 그림을 그리면, 계단 위쪽에서는 바닥 부분만 이어진 그림이 보이고.

아래에서 보면 계단의 벽 부분만 이어져서 그림이 완성되어 보이게 된다.

이걸 그대로 회전해서, 왼쪽에서 볼 때와 오른쪽에서 볼 때 달라지도록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그림이지만. 서 있는 장소에 따라 다르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어.'

전시하는 장소를 잘 꾸며 놓으면, 그럴듯하게 원하는 표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방식보다 훨씬 깔끔하지 않게 보인다는 단점은 있지만, 반대로 완벽한 컬러로 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게 그냥 그림이 계단 모양으로 접혀있을 뿐인 특별한 기술이 전혀 필요 없는 방법이라는 거다.

그냥 사본을 깔끔하게 인쇄한 다음에, 접기만 하면 소형으로 재현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거지.

그럼 이제 전시로 보여준 그 작품을 소형으로 굿즈로 팔아먹을 수 있다는 거잖아?

또한 전시를 꼭 원본이 아니라 대형 사본으로 진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니, 모든 지역에서 원본에 가까운 경험을 줄 수도 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괜찮은데?"

그리고 사전예약 보상으로는 이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관람권 같은 걸 주는 거지.

공짜로 준 건데 사용하지 않을 리 없으니, 자연스럽게 전시를 보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 관람권을 다음에 티켓 형태의 굿즈로 활용할 수 있게 귀엽게 디자인하면, 그 디자인으로 사전예약까지 받을 수 있잖아...?

이거 진짜 전부 다 맞물리는 완벽한 기획인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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