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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98화 (98/229)

〈 98화 〉 20권 ­ 살인멸구(2)

* * *

"니, 아...."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이 시발년이 사람 죽이면서 쳐 울고 있어, 마음 약해지게.

시발 죽일 거면 차라리 좀 자기가 쓰레기인 것처럼 하고 죽이라고.

저렇게 진짜로 미안해하면서 억지로 죽이는 게 티가 나면, 원망하기도 힘들잖아.

개같은년, 진짜....

이제까지 그녀가 내조해주는 부인처럼 나를 도와주던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필이면 왜 그렇게 나한테 잘해줬는지, 이 와중에 나쁜 생각 하나 안 떠오르는 거 봐라.

여러모로 착해빠진 녀석이라서, 지금 나를 죽이려고 하는 그녀의 행동 자체가 본심이 아니라는 것이 더 티가 났다.

"칼리는 잘못하지 않았어. 전부, 전부 다 때문이야. 그러니까, 잔뜩 원망해줘...."

"울지, 마...."

"에...?"

남을 죽인다는 새끼가 그렇게 질질 짜면서 죽이려고 하면 너무 치트키라고.

솔직히 뭐라고 태클 걸고 욕 박고 싶은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하필이면 유일한 황태자인 니아가 사실은 여자라는 점에서.

이제까지 얼마나 상황이 꼬여 있었고, 얼마나 그녀의 마음가짐이 뒤틀려 있는지는 대강 예상이 갔다.

"시발, 그게.... 사람 죽이는 새끼가 할 표정이냐?"

"나는...."

"죽여. 솔직히 나라에서 무슨 지랄이 일어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 좆같은 나라 때문에 뒤지는 거면 어쩔 수 없지."

나라가 나한테 지랄해서 좆같은 일을 겪는 것이 처음도 아니고.

진짜 인생 운 한번 더럽게 사납네.

이제 좀 행복한 삶을 사나 했는데, 이딴 엔딩으로 마무리될 줄이야.

뭐, 그래도 짧은 시간이지만 즐거운 일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가 뒤지는 거야, 이미 전생인지 뭔지 하는 거로 경험한 거기도 했고.

좆같긴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결과긴 하다.

이 와중에 마음에 걸리는 건, 후속작 기다려주던 팬들이네.

그리고 이런 녀석이라도 좋아해 주던 동아리 애들에게도 되게 미안했다.

특히 로자리아 뱃속에는 내 애도 있는데, 이대로 뒈지면 그 애는 누가 책임지지...?

'...유언이라도 남겨볼까.'

그 부분을 어떻게든 가문에 전달하고 싶은데.

일단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고 해서, 가능하면 뭔가 남기고 싶었다.

니아는 착하니까 어지간하면 그 정도 소원은 들어주려고 노력하겠지.

"야, 죽이는 건 좋은데 유언 하나만 하자."

"...뭐?"

"우리 아버지한테 전해줘. 내가 '시우' 본인이라고. 그 시발 검술 말고 그림 그리는 게 내 천직 맞았으니까. 나 죽었다고 검술의 대를 잇지 못했다고 아쉬워하지 말라고."

"...어?"

솔직히 이렇게 된 것 선택지도 없는데, 나 말고 로자리아 배 속에 있는 내 아이한테 알아서 할아버지 버텨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

그 정도 상황은 되어야 로자리아도 제대로 보살펴 줄 테니, 이건 우리 애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알아서 네 할아버지랑 해결하렴.

"그리고 로자리아 한테.... 뭐야, 너 왜 그래?"

설마 내가 시우 화가였다는 사실을 듣고 놀라서 저러는 건가?

그래도 어느 정도 나라에서는 눈치를 채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정말로 내가 평범한 제자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혹시 이거 내가 시우 화가라서 죽이지 않고 살려주는 거 아니야?

조금이지만 희망이 생겼다.

"니아야?"

"하, 하지만 칼리는 시우 화가의 제자라고. 하지만, 그...."

"...내 이름으로 활동하기 싫어서, 시우라는 가명을 썼던 거지. 하지만 활동은 내 몸으로 해야 하니까, 나는 제자고 스승에게 부탁받은 거라는 명목으로 움직였던 거고."

내가 별생각 없이 말했던 진실에, 니아는 생각보다 많이 당황했는지 엄청나게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사실 그렇다기보다는, 나를 살려줄 명분을 아까부터 계속 찾고 있었는데.

이제야 찾았다는 듯이 집요하게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모습 같기도 했다.

...시발년이 진짜 날 방금까지 죽이려 했는데도 미워하지 못 하게 한다니까.

"그, 그럼 시우 화가가 바꾸려는 미래가.... 칼리의 목표가...."

니아는 계속 내가 알아먹기 힘든 이상한 소리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알아서 이리저리 뭔가 조건을 따지더니.

결국은 뭔가를 결심한 듯, 나에게 걸려 있던 마법을 풀어서 움직일 수 있게 해줬다.

"휴우...."

"미안해. 칼리."

"...지금 풀어줬다는 건, 내가 말하지 않을 거라는 걸 믿어줬다고 봐도 괜찮지?"

"응, 어차피 칼리도 지키고 싶은 비밀이 있었던 거잖아? 그럼 서로 비밀을 공유하는 걸로...."

그런 느낌으로 해준 건가.

아니지, 혼잣말한 내용을 생각하면 그거랑은 조금 거리가 있는 것 같은데.

방금 그건 어디까지나, 방금 있었던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만들려는 장치 같았다.

평소에는 티가 나지 않는데, 오늘은 왠지 정치질 좀 했던 짬이 보이네.

"그렇게 서로 강력한 비밀을 공유했으니까 말하는 건데, 칼리가 나를 도와줄 수 있어?"

"도와준다고? 뭘 어떻게?"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는 건, 아마 이 제안은 '칼리 흐 글라디스'가 아니라 '시우'에게 하려던 제안이라는 뜻이 된다.

아마 이제까지 있었던 여러 일을 생각하면, 내가 그려온 작품이 국가에서 생각하기에 효과도 있고 힘도 될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렇게 풀어주고 조곤조곤 말로 하는 거 보면, 자신들이 생각하는 미래랑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근데 시발 그게 대부분은 내가 의도한 게 아닐 거라서 감이 안 오네.

"나를 지지해줘."

"지지해달라고? 어차피 너는 유일한 계승권자인데. 지지하고 말고 할 게 있어?"

"물론 그렇지, 하지만 봐."

자신의 팬티만 입은 나신을 가릴 생각도 없이, 팔을 벌리면서 나에게 보여준다.

야, 시발 그건 뭘 의도하는지는 알겠는데 내가 볼 때는 그냥 야동이야.

눈요기 고맙다.

"여자라는 점이 문제가 될 거라는 거야?"

"응, 아무리 마법 때문에 여자라고 큰 차별을 받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아직 왕은 남자가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들러붙어 있는 것이 이 나라니까."

당연히 그래서 니아도 자신이 남자라고 속이고 생활하는 것일 터다.

하지만 평생을 그렇게 여자인 것을 숨기고, 남자로서 살아가야 한다니.

아마 니아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보내왔겠네.

"나는 그냥 그거로 만족할 생각이었어. 내가 여자라는 것만 포기하면, 모두 정상적으로 돌아가니까. 그런데, 아바마마가 희망 정도는 품어보라고 하더라."

"...희망?"

"그게 바로 칼리 너였어."

내가 거기서 갑자기 왜 희망이 되냐고 하려다가.

그 순간 내가 그렸던 '브래지어 이야기'를 비롯한 작품들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었는지가 떠올랐다.

나는 이제까지 '여성'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던 상식을 부숴버리는 화가로 유명했지.

"...황제 폐하께서는 꽤나 엄청난 걸 요구하시네."

"물론 그게 어렵다는 건 우리도 알고 있어. 어디까지나, 우리가 원하는 길과 칼리가 원하는 길이 같을 것 같으니까. 같이 손을 잡고 싶다고 말하는 거지."

요는, 내가 이제까지 했던 작품들처럼 '여성'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여론을 돌려달라는 거다.

사실은 황태자가 여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여황제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정도로.

그렇게 이 세상의 상식을 만화를 이용해서 바꾸어달라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그런 미래를 원했다고 하기에는 오해가 엄청나게 많이 들어갔는데....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덕분에 내가 산 원인이 되었으니까 다행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근데 시발 이게 황제가 하자는 건데 거절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어차피 내 취향상 여캐 위주의 작품을 그리다 보면 비슷한 효과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그렇네?'

결국 나는 남자 캐릭터는 최소화하고, 대부분을 여자 캐릭터로 이용하려고 하는 편이다.

당연히 좆보다는 보지가 많은 게 내가 보기에 좋으니까 그런 건데.

그것 때문에 작품 내에 등장하는 요직이나 주요 캐릭터들이 여성 캐릭터들인 경우가 많아진다.

근데 어쩌면 이게 방금 요구받은 거랑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니까, 성공할지도 모르겠고 오래 걸릴 거야."

"그 정도는 알아."

"그리고 애초에 내가 원하는 조건은 따로 있어."

"...응, 수용하도록 노력할 테니까 말해줘,"

그렇게 대답한 그녀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안도가 담겨 있었다.

아마 나를 굳이 죽여서 입막음하려 한 이유는, 내가 그걸 니아의 반대편에 서서 무기로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이었겠지.

하지만 애초에 내 다른 직책인 '시우'와, 비슷한 방향의 정치 목표를 가지고 계약을 맺어버리면?

오히려 그렇게 원하는 것이 적나라하게 나오기 때문에 안도할 수 있다는 느낌이다.

"이 부분은 저번에 아카데미 제복 디자인하면서도 폐하께 말씀드린 건데. 어떤 상황에서도 그림 등의 예술 작품에 국가의 검열이 닿지 않았으면 좋겠어."

솔직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차기 황제인 니아까지 이를 약속해준다면.

사실상 내가 뒈지기 전까지는 어지간하면 지켜질 약속이라고 볼 수 있잖아?

물론 개 시발 좆같은 일이 있어서 니아가 좆되는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만, 애초에 그건 여기서 니아의 라인을 탄다는 결정을 하는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리스크였다.

'...물론 선택지는 없지만.'

아마 여기서 내가 이런 조건을 거는 것이 아니라 그냥 거절을 때렸다면.

지금은 내버려 두더라도, 방심하던 사이에 나라에서 고용된 암살자한테 쓱싹 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니아가 그럴 성격은 아니지만, 그럴 성격이 아니어도 나라를 위해 뭐든 하겠다는 듯한 오기는 가지고 있거든.

"응,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그럼 나는 충분히 도와줄 수 있어."

모든 대화가 확정되고 나서야, 니아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에게 달려들어서 안겨버렸다.

그 커다란 맘마통을 달고 있는 상태로, 심지어 알몸으로 꽈악 안아주면 어쩌자는 거야.

존나 고맙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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