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 22권 마녀 아카데미(1)
* * *
"끝났다아...."
오랜 시간을 작업에 몰두한 결과, 드디어 방학 내내 시간을 박아 가면서 준비한 작품의 원고가 끝이 났다.
이제 조금 다듬은 다음에 가져가서 샘플 받아보면 되겠네.
조금 졸리긴 하지만, 이거 제출 정도야 가서 할 수 있겠지.
"뭐야, 아직도 안 자고 있었어?"
"아, 응. 작업하느라 정신이 없었네."
"작품도 좋지만. 잠도 제대로 자야지. 방학인데 학교 다니는 것처럼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오우.... 니아가 따로 없는데."
왠지 방학이 되니까 니아 대신 로자리아가 엄마 역할을 하는 기분이야.
하여튼 아침 해놓았으니, 아침은 먹고 하라고 하고는 문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슬슬 작업이 막바지다 보니까 이렇게 달릴 수밖에 없었거든.
가능하면 이번 작품은 아카데미에 돌아가기 전에 출간하고 싶었던 것도 있고.
"진짜 항상 생각하지만, 칼리는 만화에 미쳐 사는구나."
"뭐, 그렇지."
"흐응.... 나도 신작 준비나 할까 고민이 되네. 칼리가 맨날 나 방치해놓고 그림만 그려서 심심해."
"이제 다 끝났어. 최종 작업이야."
"그래? 그건 반가운 소식이네."
이번에 작품을 그리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던 건, 평소에 내가 그리던 분량보다 훨씬 길었기 때문이다.
아마 1.5배를 가볍게 넘겨서 2배에 가까워진 상태거든.
그렇게 된 이유는 이번 작품은 스토리의 완결까지 단권으로 다 쑤셔 넣으려고, 분량 조절을 좀 다르게 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번에 노리는 독자층은, 기존에 내가 노리던 독자들이 아니니까.'
한 권을 사게 만들기도 쉽지 않은데, 작품에 담으려는 말을 하려면 일단 모든 이야기를 끝마쳐야 한다.
따라서 이 책 한 권만 어그로를 끌어서 사게 만들면 되도록, 기획했던 좀 많은 양의 스토리를 다 때려 박은 단권으로 완성하게 된 거다.
원래 기획에서는 2권으로 나누어야 하는 스토리 분량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해야 하는 이야기나 야한 장면을 빼서 분량을 줄이는 건 말도 안 되는 해결법이고.
"무슨 이야기인데?"
"마법사 이야기. 정확히는 남자 마녀 이야기?"
"...남자 마녀? 마녀라면 여자인 마법사를 부르는 옛날 별명 같은 거잖아."
아무래도 여성들이 더 마법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에.
마법을 배운 여성들을 마녀라고 부르며, 때로는 배척하거나 때로는 높게 쳐주던 시기가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너무 옛날이야기라 전승 정도로만 남아 있지만.
그래도 구전 동화 느낌으로 마녀의 이야기가 가끔 나오는 걸 보면, 꽤나 메이져한 주제지.
"맞아. 원래 마녀는 여자만 될 수 있지. 주인공은 부모님이 불치병 비슷한 것에 걸려서 영원한 잠에 빠지게 되는데, 이걸 치료할 수 있는 게 상위 수준의 마녀뿐이라는 걸 알게 되거든."
문제는 최근 마녀들의 수준이 급격하게 떨어진 탓에, 그 수준에 도달하는 마녀가 아무도 없었다는 거다.
이 부분을 어머니를 진찰해준 마녀가 설명해주는 것부터, 이번 신작인 '마녀 아카데미'의 이야기가 시작한다.
즉, 내가 열심히 고민하던 여자만 가득한 아카데미에 여장해서 입학하는 동기는 '부모님'으로 한 셈이다.
자신의 부모님을 살리기 위해 하는 행동을, 무작정 비판하기는 힘든 법이니까.
"근데 그 마녀가 말해주는 거지. 지금 어떤 여자애들도 그 정도 마녀가 될 만큼 재능이 있는 녀석들은 없다. 기다려도 달라질 건 없다."
"...절망적이겠네."
"그렇지, 대신 딱 하나 방법이 있다고 해."
바로 남자인 주인공이 마녀가 되는 것.
여성보다 훨씬 더 마법에 대한 재능이 뛰어난 그가 마녀가 되어 마법을 배운다면, 부모님을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문제는 이 세상에서는 남자는 절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마법을 배울 방법이 없다는 거지.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이 유일하게 마녀의 마법을 배울 방법이 아카데미라고 확신하고.
자신을 여자아이처럼 꾸며, 여장을 한 채로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다.
처음에는 워낙 재능이 뛰어나서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지만, 나중에는 친구들에게 하나씩 남자라는 걸 들키며 사건이 펼쳐지는 이야기다.
"칼리랑 좀 비슷하네. 마법 재능이 뛰어나고, 사실은 시우 화가님이라는 비밀도 있고."
"...그래서 표현이 좀 편할 때가 있긴 했어."
하여튼 신작의 개요는 그런 느낌이다.
당연히 엔딩은 그 마법을 정말로 배워서 부모님을 살려내는 거고.
그 뒤에는 처음 기획했던 것처럼, 자신이 남자였다는 사실을 세상에 밝히면서 끝을 냈다.
"흐음, 사실 들어서는 잘 모르겠어."
"뭐, 요약한 것도 되게 많으니까. 샘플 나오면 보여줄게."
"아, 응!"
로자리아가 해준 아침을 깨끗하게 비우고, 원고를 마지막으로 점검한 다음에 별장을 나섰다.
아무래도 하루라도 빨리 제출해야 출시가 빨라질 테니.
조금 힘들더라도 참고 하루만 고생해야지.
"오랜만입니다."
"아, 그러게요. 참고로 저번 전시회 이후로, 일반 공개로 바꾼 다음에도 꾸준하게 추천 수가 올라가서 대부분 지역에서 작품 전시는 유지되고 있다고 해요."
"어, 진짜요? 사전 공개 때 볼 사람들은 다 봐서 그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사본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어요. 아, 오히려 그 작품을 보고 만화를 구매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그건 좀 신기하네.
하긴, 그 작품에 담긴 감성을 이해하고 나서.
오히려 그 이전의 행복한 이야기를 보고 싶어 할 수도 있는 법이니까.
"그 엄청난 양의 짐을 보니. 오랜만에 신작이군요?"
"네, 예약 이야기를 안 드리고 온 것만 봐도 아시겠지만. 완전히 신작이랍니다."
그리고 내가 사실상 만화 2권 분량의 원고를 내려놓자.
그녀는 꽤나 질렸다는 표정이 되었다.
물론 나 말고도 이런 시도를 한 사람은 이미 있었기에, 500장이 넘는 만화책의 원고가 하나의 책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분량 괜찮을까요?"
"600페이지까지는 문제가 없었으니까, 아마 이 정도면 괜찮을 거예요. 근데 이건 겉표지 같은데 어떻게 쓰는 거죠?"
일단 책이 두꺼워지면서 달라진 점이 하나 있는데.
책장에 책을 꽂으면 보이는 책의 등 부분이 훨씬 넓어져서 그림을 넣기에 좋아졌다는 거다.
그래서 이 부분을 위해서 작품에 등장하는 히로인들 중 한 명이 나체로 자세를 취한 느낌의 그림을 준비했다.
"그러니까, 겉표지의 이쪽 디자인을 여러 종류로 만들겠다고요? 같은 작품을?"
"맞습니다. 내부는 똑같이 생산하고, 겉표지 부분만 따로 생산해서 끼운 다음에 판매하면 되는 거죠."
이번 작품은 굿즈를 넣지는 않기로 했지만.
워낙 굿즈 시스템에 심취한 나머지, 이런 괴상한 형태를 생각해내고 말았다.
그래도 이전처럼 가챠를 해서 뽑는 건 아니고, 그냥 판매 중인 것 중에서 골라서 사면 되니까 좀 나으리라.
"대신 정면에서 보이는 그림은 같은 거군요. 알겠습니다. 개수는 모두 같게 하면 될까요?"
"네, 맞아요."
그리고 한쪽만 많이 나가면, 그쪽을 더 많이 생산하는 식으로 물량을 맞춰주면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이건 물량으로 희귀성을 올리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
원하는 물량을 구매할 수 있게 해줄 생각이었다.
"대신 뒷면 끝에는 이렇게 얇게 잘린 그림이 들어갈 거에요."
"...설마."
"모든 겉표지를 모아서, 이렇게 붙여보면. 새로운 그림 하나가 나오는 겁니다."
쉽게 모든 걸 구매할 수 있는 만큼, 당연히 전부 모아야만 얻을 수 있는 보상도 존재했다.
그리고 그건 주인공이 입고 있던 여자 옷을 거의 다 벗고, 커다란 자지를 세우고 있는 그림이었다.
물론 나를 포함한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은 아니지만, 어차피 대부분 이걸 전부 모으는 이들은 기존에도 만화를 보던 여성이 대부분일 테니 괜찮을 거다.
애초에 표지보다는 여기에 주인공의 그림을 격리하는 것이 낫지.
"아하...."
이러면 당연히 이걸 보려고 겉표지의 종류만큼 책을 구매하는 사람이 잔뜩 나올 텐데.
그것도 이번 작품에서 노리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구매해서 남은 안쪽 책은, 다른 사람한테 선물하는 식으로 퍼져나가게 될 거고.
원래 만화책을 보지 않던 사람들을 노리는 현 정책에 딱 맞는 광고 방법이지.
"정면 표지는 흑백 버전도 있거든요? 그건 속표지로 써주시면 됩니다."
"...이걸 추가로 작업하셨대요?"
속표지에는 모든 히로인들이 각기 자세를 취하며 그림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그 히로인들이 다 행복한 절정의 표정을 짓고 있는 데다, 보지에서 진한 정액을 토해내고 있는 질내사정 직후의 모습이고.
심지어 몸에 이리저리 흩뿌려진 정액이 있는, 확실하게 야한 것에 올인한 야짤이었다.
겉표지의 정면 컬러 그림도, 이거랑 굉장히 비슷한 느낌의 사실상 같은 그림이었다.
하여튼 속표지에 그림을 넣는다고, 비슷한 구도의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다시 그려야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이 겉표지만 빠진 채로 공유될 것도 생각하면 필요한 작업이었다.
받은 사람이 남자면, 보자마자 꼴릴 수 있는 그림이 표지에 박혀 있어야 열어볼 거 아니야.
"오래 기다리셨죠? 샘플은 이렇게 나왔어요."
"좋습니다. 잘 나왔네요. 아, 그리고 혹시 이번 가격은 기존 작품의 1.5배 정도로 가능할 것 같나요?"
"네, 그렇겠네요."
"그럼 할인 판매하면 기존 작품들이랑 비슷한 가격도 되겠죠?"
"아마요? 할인해서 파시게요?"
물론 할인해서 팔 생각이긴 한데.
조금 조건을 걸어둘 생각이었다.
애초에 내가 원하는 광고 효과를 누려야 할인이라는 카드가 의미가 있는 거니까.
"남성이 구매하면 다른 거랑 같은 가격으로 할인해주세요."
"...남성이요?"
"스승님이 남자들은 만화에 관심이 적은 게 안타깝다면서,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당연히 이러면 남자들이 만화를 보는 게 아니라, 여자들이 남자들을 시켜서 책을 사게 하겠지.
근데 일단 그렇게 해서 부탁받은 남자가, 이 만화의 표지를 보고 꼴려서 펼쳐보게 하려는 것이 내 의도기 때문에.
실질적 구매자 같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