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 22권 마녀 아카데미(2)
* * *
"대체 책이 뭐가 재밌다고 저 난리인지."
"그건 네가 뭘 몰라서 그런 거라니까? 이 만화책이라는 게, 우리가 아는 그 글자만 가득한 책이랑 다르거든?"
"...여자애들은 진짜 이해를 못 하겠어."
남자는 자신의 친구인 여자가, 즐겁게 만화책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그 만화책이라는 건 자신이 아는 책이랑 뭐가 다르길래 저리 좋아하는 걸까.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그와 비슷하게 책이라면 기겁하는 애였는데, 나이가 들면 취향도 늙다리가 된다더니 그런 건가?
그는 자신의 친구를 속으로 그렇게 씹으며, 아무 생각 없이 책방을 돌아다니다가.
왠지 책장에 있으면 이상하다 싶은 것이 있어서 굉장히 당황했다.
엄청 두꺼운 책 같은 모양이긴 한데, 그곳에는 헐벗은 여자애들이 그려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뭐야, 이거?"
그나마 이 자리에 글자에 색이 들어간 책들은 가끔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그림이 그려진 책은 처음 봤다.
그중에서 가장 얌전해 보이는 소녀가 새빨갛게 붉어진 얼굴로, 벗은 자신의 몸을 손만으로 가리려 노력하는 그림이 가장 신경 쓰였고.
그는 별생각 없이 그 책을 뽑아 들었다가 충격에 빠졌다.
"오우, 이건 좀 대단한데."
아까 그 소녀를 포함해, 옆에 놓여 있던 비슷한 책들에 있던 여자애들이 잔뜩 그려진 표지가 나왔는데.
그 표지에는 얼마 전에 정사를 마친 듯한 여자애들이, 정액을 흘리면서 엄청나게 망가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사 후에 여자애들은 저런 표정을 짓는 건가?
그는 힘차게 반응하는 자신의 아랫도리 감각과 함께 꽤나 충격을 받았다.
"아니, 대체 무슨 내용의 책이길래 이런 표지를...."
사실 표지에 그림을 넣는다는 것도, 저 만화책이라는 걸 사는 자신의 친구가 사놓은 책들 때문에 가끔 본 거지.
굉장히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만화책들이라는 것들에서도 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정사를 표현한 표지는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왠지 신경 쓰여서 중간을 대충 열어봤는데, 내부에도 흑백이긴 해도 죄다 그림인 것을 보고 깨달았다.
"아, 이거 만화라는 게...."
그냥 글에 그림을 조금 끼워 넣은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림에 글자를 추가한 수준이었다.
물론 그는 글이 아니라 그림이라고 해서 평소에 이런 것을 관람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혹시 방금 그 정사를 마친 장면의 이전 내용인, 정사의 장면도 있을까 싶어서 안쪽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뭐해?"
"어, 어!?"
아무래도 같은 성별이 아닌, 여자인 친구에게 보이기에는 불편한 내용을 찾고 있었던 만큼.
그는 굉장히 당황해서 화들짝 놀랐고.
여자는 그가 들고 있는 '마녀 아카데미'라는 만화책도 사야겠다며, 어떤 그림이 있는 것을 살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뭐야, 다 다른 게 아니었어?"
"일반적으론 다른데, 이 작품이 특이하거든. 넌 그 '루시'라는 애가 마음에 들어?"
"루시? 아, 이 앞에 그려진 애 이름이구나. 그러네, 작게 적혀 있어."
"루시, 아미, 릴리, 비네. 이렇게 4명인가 봐. 나는 릴리로 할 거야. 이거 두 개는 네가 구매해 줘. 돈은 줄 테니까."
"어? 그럼 그냥 네가 사면 되잖아."
"왜 굳이 너랑 같이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거 남자가 사면 할인해준단 말이야."
"...근데 왜 두 권이나?"
"잔말 말고 사."
하여튼 이상한 애라니까.
그는 굉장히 짜증을 부르며 구시렁거리면서도, 그녀가 하라는 대로 물건값을 지불하고 밖으로 나왔고.
그 뒤에 그녀에게 책을 건네주고 돈을 받아서, 방금 사용한 비용을 그대로 충당 받았다.
"그럼 내가 할 일은 끝난 거지?"
"후우, 다행이네. 여기는 릴리가 아직 남아 있어서. 없었으면 너랑 다른 서점도 더 가봐야 할 뻔했어."
"...그 릴리가 그려진 걸 구하려고 서점까지 바꿔서 돌아다녀? 안의 책은 다 같다며?"
"책에는 컬러가 없잖아."
"아니 어차피 표지엔 다 그려져 있더구먼."
"자세가 다르니까 완전히 다른 그림인데, 뭐가 같다는 거야. 비슷한 거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이해가 잘 안 가는데."
"하여튼, 오늘 나랑 어울려줬으니까. 선물이야."
"...뭐?"
그는 그녀가 내민 '마녀 아카데미'라는 만화를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저걸 싸게 사려고 나랑 같이 왔다고 했는데, 나를 하나 더 사주면 할인 안 받은 것보다 돈을 더 많이 쓴 거 아닌가?
"왜 그래?"
"드디어 네가 미쳤나 싶어서."
아무리 쟤가 나랑 같은 머리에 검만 들어 있는 검술부라고 해도, 돈 계산까지 못 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는데.
그는 그런 소리를 하다가, 그녀에게 복부를 한대 얻어맞고 고통을 호소했다.
"아, 왜!"
"바보야. 진짜로 할인 좀 받겠다고 너랑 같이 왔겠냐. 그냥 해본 말이지."
"...그럼 진짜 왜?"
"에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어차피 내 주변엔 여자나 남자나 다 이런 것들밖에 없으니. 참 고달파...."
"아, 설마. 이거 어차피 선물해줄 생각이었던 거야? 그럼 2개나 사야 하니까 할인되는 게 나아서 같이 온 거고?"
"이제 조금 근접했네. 그래서 답은?"
"어, 음. 잘은 모르겠지만 읽어는 볼게?"
사실 그도 평범한 책이라면 기겁하고 거절했겠지만.
은근 헐벗은 여자애들이 많아 보여서, 그걸 구경하는 재미는 있을 것 같았다.
왜 사람들이 그림 전시회 같은 걸 가나 싶었는데, 나체의 예쁜 여자애를 잔뜩 볼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시간일 것 같긴 했다.
"근데 이런 만화책의 그림은 일반적인 사람이랑 사람 모습이 좀 다르게 생겼는데, 이건 왜 그런 거야? 더 어릴 때 너랑 전시회 갔을 때는 다 사람처럼 생겼었는데."
"데포르메라는 거야. 요즘 그림에서 유행하는 거."
"데포르메?"
"어차피 사진이 생겼으니까, 이제 똑같이 그리는 것보다는 조금 비현실적이면서 한눈에 예쁜 것만 들어오게 만드는 과정 같은 거야."
"아하."
최근 들어 그녀가 사는 만화책의 표지에 그린 그림들은 다 이렇길래.
만화책의 특징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그냥 통상적으로 저런 그림이 유행이란다.
확실히 이쁘긴 하네.
"근데 아까 너도 그 만화책은 읽어보려고 하지 않았어?"
"...그게."
"왜?"
"아니야. 그냥 좀 흥미가 동해서."
아무리 그래도 여자애한테 표지의 정사 장면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서 보려고 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말을 얼버무리면서 넘어갔다.
그래도 이걸 선물 받았으니, 천천히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는 확인할 수는 있겠네.
"재밌으면 말해. 더 추천해줄 테니까."
"과연 내가 너처럼 이걸 좋아할지 모르겠다. 너야 원래 성격이랑 안 어울리게 그림 같은 걸 좋아했지만...."
"그거 무슨 뜻이야?"
"...검술부가 좋아할 만한 취미는 아니잖아."
그리고 반대로 말하면 내가 이런 걸 좋아하기에도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솔직히 그림이라는 건 마법부의 여리여리한 애들이나 좋아하는 거잖아.
"그래도 너 가끔 남자애들이랑 음담패설하고 그러지 않아?"
"윽, 그건 어떻게 아는데?"
"대놓고 말하면서 뭘. 그래서 정사하는 내용이나 이런 건 관심이 있을 것 같아서. 이번 작품이 그런 게 잔뜩 나온다던데."
"...흐응."
그러니까, 예상했던 것처럼 남자랑 여자가 정사하는 내용이 잔뜩 그려져 있다는 거지.
그건 조금 흥미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그림이 쭉 이어지는 형태로 조금씩 넘어가던데, 그럼 정사 장면도 여러 장면으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으려나?
"요즘엔 이런 작품도 꽤 많아졌어. 왜? 역시 그런 내용에는 관심 있어?"
"남자애면 관심이 없는 게 이상할걸."
결국 그는 그런 느낌으로,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던 만화책 하나를 집으로 들고 오게 되었고.
아까처럼 아무 곳이나 펼치려다가, 그래도 사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처음부터 봐야겠다는 생각에 첫 페이지를 열었다.
그리고 천천히 만화를 읽어나갔다.
"흠, 대화 정도만 글자구나. 대부분은 그림이네."
이러면 좀 보기 편하긴 하다.
글처럼 깊게 상상할 필요 없이, 상황 대부분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그래서인지, 별생각 없이 쭉쭉 읽어나가는데도 어떤 상황인지는 잘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여자애들만 들어갈 수 있는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부모님을 구할 수 있는 마법을 배우겠다는 거지?"
엄청 수치스러워 보이는 모습을 하는 걸 보고, 상당히 효심이 지극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다가.
그 여장이라는 것의 퀄리티가 엄청나게 뛰어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솔직히 앞의 내용을 보지 않았으면 여자애라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아, 아카데미 제복이 펑퍼짐한 원피스라 체형이 잘 드러나지 않네. 그리고 머리카락이 가발로 들어가니까 엄청나게 그럴듯해...."
근데 여기까지만 보면 대체 왜 이 주인공이랑 표지의 여자애들이 관계를 맺게 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그 여자애들 자체는 금방 아카데미에서 주인공과 친해지면서 등장했는데.
여기 애들한테는 남자라는 걸 숨겨야 하는 거잖아?
"아, 들키네."
주인공은 옷을 갈아입다가 룸메이트인 루시에게 들켜버리고 만다.
룸메이트는 루시는 귀염상인 녀석으로, 되게 친절하고 착한 성격이었다.
당연히 루시는 주인공이 남자라는 사실을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와, 이건 무슨...."
문제는 책 속의 마녀 아카데미라는 곳은, 여자아이들을 성인이 되기 전부터 작은 아카데미에서 키워내 성인이 되자마자 지금의 마녀 아카데미에 입학시킨 거라서.
마녀 아카데미의 여자애들은 남자라는 것을 책에서만 접한 신기한 상대라는 거였고.
그런 이유로 루시는 남자의 몸을 궁금해하게 된다.
그 궁금증 탓에 주인공에게 부탁해서, 자지를 비롯한 남자의 이모저모를 탐구하게 되고....
"오, 여기서 하는구나?"
그 궁금증 때문에 생겨난 야릇한 분위기 속에서, 결국 둘은 정사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그는 드디어 원하는 장면이 나오자, 만화의 그림 하나하나를 뜯어보며 집중하기 시작했고.
야한 신음과 효과음 하나하나를 중얼거리며, 점점 작품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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