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25권 화신혼례(1)
* * *
"엣취...!"
꽤나 서늘한 바람이 나신을 훑고 지나가자, 화들짝 정신이 들면서 추위가 몰려왔다.
본능적으로 옆에 있던 오르카를 껴안아서 온기를 끌어모으다가.
적당히 견딜 만해지자, 급하게 뛰어가서 이불을 가져와서 우리 위로 덮어버렸다.
"아, 문을 열어놨었네."
온천 쪽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놓은 채로 잠들었던 모양인데.
아무리 가을이라도, 새벽바람은 꽤나 추워서 얼어 뒤질 뻔했다.
진짜 이대로 있으면 감기라도 걸릴 것 같아서.
오르카를 껴안은 채로 이불을 덮어버렸다.
"끄응.... 숨막혀."
"잘 잤어?"
"에헤헤, 칼리다. 와, 자고 일어났는데 옆에 칼리가 있어. 꿈인가?"
"꿈이겠냐?"
하긴 로자리아나 니아랑 다르게, 오르카랑은 이런 잠자리 경험이 처음이었지.
하여튼 자고 일어나서 이렇게 서로 안고 있는 건, 되게 따뜻해서 좋은 것 같긴 해.
나는 한참을 오르카랑 알몸으로 비비적거리면서 아침을 보내다가.
잊고 있었던 아침 시간이 되었는지, 갑자기 들어와서 식사 준비를 하는 직원의 모습에 당황했다.
"아, 괜찮습니다. 혹시 불편하시면 조금 있다가 할까요?"
"...괘, 괜찮으시다면야."
어차피 섹스 도중도 아니고.
알몸에 이불 덮고 장난치면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던 것이 전부기에.
해야 할 일을 막으면서까지 내쫓을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여긴 아나루 온천이잖아요. 제가 식사 준비하는 동안 아나루 자위하고 계신 분도 계시고 그래요."
"허...."
시발 그걸 담담하게 말하지 말라고.
심지어 열린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그런 빌런이 다녀갔다는 게 더 레전드다.
아니지, 빌런이라기엔 그냥 이 온천이 의도하는 건가?
"저희를 뭐 억지로 어떻게 하려는 손님만 아니면 다 오케이입니다. 그렇게 접객 메뉴얼이 되어 있어요."
"...애널 자위도 오케이였군요."
"일반 자위도 오케이에요."
그건 정말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습니다.
그럼 남한테 자위 보이고 싶은 변태한테는 거의 성지가 되겠는데.
하여튼 그렇게 말하면서 웃음을 잃지 않고 접객을 하는 그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나루 온천으로 바꾼 다음부터 힘들지 않으세요?"
"전혀요. 오히려 잘 되니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솔직히 말해서 개편 전이 이상한 사람은 훨씬 많았거든요."
"...그래요?"
"네, 자꾸 스킨쉽하려고 하는 남자 손님만 잔뜩 남아서요. 그분들이라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일은 받았지만...."
오히려 이쪽은 자기 자위나, 파트너와의 섹스에 신경 쓸 뿐.
자신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터치하지 않고 보기만 하려는 편이라 좀 낫다는 듯했다.
물론 시선 자체는 야하게 보고, 가끔은 자위 재료로 삼기도 하지만.
그래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어디냐는 느낌이라고.
"그리고 솔직히 좀 귀여워요."
"네?"
"막 혼자서 열중해서 행복해지고 있는 거 보면,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원래 사람 가버리는 모습이 좀 귀엽긴 하죠."
"손님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이상한 부분에서 비슷한 취향이시네.
말꼬가 트인 이후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가 여기를 일종의 견학 삼아 온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아침 준비를 하다 만 직원분이, 몇몇 애널 자위도구를 가져와서 시범 삼아 설명해주시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갑자기 이렇게 되어버린다고?
"와아...!"
뭐, 시범을 보여주거나 그런 야한 행동은 아니고.
도구를 설명해주고, 사용법이나 주의사항에 대해서 알려주는 정도다.
그 와중에 오르카는 흥미가 있었는지, 순식간에 경청 모드가 되어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이 구슬을 하나씩 집어넣었다가, 나중에 확대가 된 다음에는 확 빼는 거죠. 엄청나다던데요?"
"해보고 싶다! 칼리 나 저거 사줘!"
"...계산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거대 애널 비즈라니, 대체 이곳에서 팔아먹지 않는 것은 대체 무엇이 있을까.
그나저나 되게 전문성 있는 것처럼 설명 잘하네.
솔직히 팔아먹는 물건이 애널 비즈라는 것만 빼면, 되게 실력 좋은 판매원 느낌이었다.
"아후...."
"잘 잤어?"
"어, 아침이야?"
"응. 준비하고 계셨어. 이제 슬슬 부탁드릴게요."
"네에. 잠시만요."
직원은 방금까지 애널 비즈를 팔아먹던 판매원 모드를 멈추더니.
자연스럽게 아침 식사의 준비로 행동을 바꾸었다.
그리고 모든 식사 준비를 마친 직원분은, 그대로 우리에게 절을 하면서 말했다.
"맛있게 드세요. 주인님."
그나저나 손님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방식이라거나.
굳이 이런 공적인 인사 타이밍마다 절을 한다는 거나.
뭘 좀 아는 사람이 접객 메뉴얼을 짜긴 했다는 생각이 드네.
솔직히 저 옷으로 절하면, 살짝 옷이 올라가면서 노출이 올라가서 되게 꼴린단 말이지.
"짜잔!"
그 와중에 오르카가 어제 난장판을 하면서 벗어버린 옷과 머리띠, 심지어 꼬리까지 입고 돌아왔다.
입은 옷의 모티브가 되는 직원 본인을 옆에 놓고 보니까, 뭔가 자매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드네.
코스프레만으로 저런 느낌이 든다니 신기하다.
워낙 머리띠랑 꼬리의 퀄리티가 좋아서 그런가?
"잘 먹겠습니다."
"와, 엄청 맛있어...."
"이걸 어제 너희는 먹지도 못하고 잤다니까? 덕분에 우리는 배불리 먹었고."
"아니, 이건 진짜 좀 억울한데!?"
그렇게 우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아나루 온천을 재밌게 즐기고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
"칼리 뭐해?"
"얌마 간지러워. 꼬리 치워라."
"알려주면 치울게."
"...화신 시리즈 다음 거 콘티짠다."
"헉! 다음 작품은 화신 시리즈야!?"
"그래."
오르카는 드디어 다음 내용이 나온다면서 굉장히 신이 났지만.
정작 나는 사실상 마지막 이야기가 담긴 이번 파트를 쓰면서, 많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솔직히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계획이 정해져 있지만.
결말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처음에는 평범한 희생 엔딩 같은 걸 생각했는데. 그건 좀 허무할 것 같고.'
일단 분위기 자체는 전작인 화신잉태보다 훨씬 어둡겠지만.
그렇다 보니 마냥 밝은 느낌의 엔딩을 내기도 좀 그렇고, 화신전장처럼 막판 분위기 뒤집기를 하기도 애매했다.
솔직히 내가 느끼기에 딱 꽂히는 그런 게 있어야 하는데....
"많이 어려워?"
"그냥 내가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결말을 찾지 못했을 뿐이야."
다른 방법으로는 이번 작품으로 엔딩을 내지 않는다는 것도 있어서, 일단은 고민해보는 중이었다.
근데 그러면 다음 권에서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건 그것대로 결국 문제잖아.
그것까지도 어느 정도는 스토리를 짜야 이번 권의 마무리 방법을 정하지.
"맞다, 그거 들었어? 아나루 온천 완전 대박 났다던데."
"예약 밀려서 지금 하려면 반년은 걸린다며."
솔직히 워낙 퀄리티가 좋아서 성공할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나루 온천이라는 성지가 생겨버려서 기분이 묘했다.
솔직히 저 온천 때문에 애널 자위나 애널 섹스의 유행이 훨씬 빨리 퍼져나가는 느낌이야.
"다행이지. 다들 되게 어려웠다고 들었는데. 이제 아니니까."
"원래 저기 마을 출신 수인 마법사가 있었는데. 마을이 성공하고 나서부터는 마법사 때려치우고 온천에서 일한다는 이야기도 있어."
"온천에서?"
"응, 훨씬 비싼 가격에 마법사가 아니어도 접객 받을 수 있는 방을 만들고. 거길 직접 접객하면서 마법을 걸어준대."
"오호...."
평범한 마법사가 굳이 일을 때려치우고 그런 일을 할 이유는 없으니.
아마 그 마법사가 저 프로젝트를 시작한 장본인일 가능성이 컸다.
그 접객도 내 작품의 팬심 같은 느낌으로 하는 건가?
솔직히 좀 신기한데.
"근데 그 애널 플러그는 아카데미에서 안 하고 다니면 안 되냐? 너무 야해."
아무리 전용 팬티로 완벽하게 가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평소에 애널 플러그를 끼운 채로 아카데미를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좀 위험하게 느껴져.
그러다 실수로 힘이라도 잘 못 줘서 애널 플러그를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대형 사고잖아.
"동아리 방 안에서만 하고 다니는데?"
"어, 그래? 그건 몰랐네...."
"응, 이거 입고 검 휘두르면 방해되니까."
분명 오르카가 구구절절 옳은 말을 하고 있는데.
왜 나는 저게 정말 어색하게 들리는 걸까.
요즘 들어 오르카가 변태 같은 말들을 당연하다는 듯 말해서 그런가?
"아, 근데 유리아랑 로자리아는 밖에서 하고 다녔었지?"
"어. 근데 둘 다 마법으로 강제로 고정하니까 안전하다는 미친 소리를 해서 포기했어."
그게 문제가 아닌데 말이야.
나는 매일 애널 플러그 꼬리를 달고 다니면서 성적이 최상위권인 둘이 너무 신기했다.
저게 그 진짜 천재라는 거겠지?
"하여튼, 생각나는 게 없으면. 오랜만에 머릿속도 쉬어줄 겸. 전시된 신작이나 보러 갈래?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
"너 누구야. 오르카 아니지."
오늘따라 오르카가 너무 정상적인 말만 하니까 오히려 적응되질 않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오르카의 말대로 밖에 나갈 준비를 하는데.
왠지 오르카가 브래지어만 입고, 애널 플러그는 그대로 하고 있길래 물어봤다.
"...동아리 방 안에서만 한다며?"
"아카데미 학교 나갈 거잖아. 그럼 굳이?"
"그게 무슨 상관인데...."
"수도 놀러 갈 거 아니야? 그럼, 거기서는 급하게 검술 쓸 일은 없겠지."
시발 진짜로 순수하게 효율만 생각하고 있는 애라는 걸 간과했다.
말 그대로 정말 검술에 방해돼서 꼬리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얘는 매번 사고방식이 내 예상을 벗어나는 느낌인데.
"이거 꼬리 너무 귀여운데, 쓰면 안 돼?"
"에휴. 그래, 네 맘대로 해라."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내가 어떻게든 대응해주면 되겠지.
혼자 내버려 두는 건 아니니까 아마도 괜찮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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