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25권 화신혼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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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작의 엔딩 아이디어를 짜보려고 머리를 싸매는 중이었지만.
여전히 딱 마음에 드는 엔딩의 표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냐.
"나중에 어떻게 되던 지금은 정리부터 좀 해볼까...."
아직 결말을 정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오히려 이렇게 미리 앞 내용 가지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결말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있으니까.
물론 이게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큰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은 뭐라도 해보는 것이 중요한 타이밍이었다.
'흠, 어디 보자....'
일단 화신 시리즈의 신작인 화신혼례의 시작은, 기본적으로 전작인 화신잉태의 결말을 환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화신 잉태는 각기 자궁에 신의 불꽃을 부여받는, 일종의 신내림인 '잉태'를 받음으로써 강한 힘을 얻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다만 그 잉태로 인해서 얻은 자궁 문신이, 저주와도 같은 쾌감을 줘서 아이들을 쾌락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문제점이었고.
일단 여기서부터 내가 짜낸 세계관과 현재 작품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인식 차이가 드러나는데.
내 경우에는 그 신들이 힘을 빌려주는 대가로, 그런 저주를 걸었다고 해석하리라 생각했지만.
독자들은 그 쾌락을 이제까지 모두가 열심히 고생하면서 싸운 증거이며 보답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굿즈인 자궁 스티커도, 그런 부분에서 더 인기를 끌었던 것 같기도 해.'
그렇다고 내가 의도했던 바를 버리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그려낼 수도 없으니.
여전히 작품은 그것을 저주라고 여기고 진행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차이를 갑자기 드러내면, 독자로서는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 수 있을 거다.
따라서 시간을 들여서, 작품 초반에서 중반을 그것을 설명하는 것에 사용해야 하리라.
이 작품에서 나오는 신이 무작정 착한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은 물론이고.
다들 신들이 준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그 쾌감이, 사실은 다른 원인을 가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쾌감이 진행되어서 쾌감에 빠지면 빠질수록, 그녀들의 영혼이 그 신에게 종속되어 바쳐지는.
일종의 공물이 되어가는 산 제물 시스템이라는 것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이해시켜야 한다.
그래도 전작에서는 다들 야한 짓에 미쳐 살긴 해도.
기본적으로 싸울 때는 제정신을 차리는 느낌인데다, 평소 바깥에서 하는 일상생활도 잘하는 느낌으로 마무리되었는데.
이번에는 갈수록 일상생활이 쾌감에 잠식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바보로 전락하는 건 물론이고, 나중에는 전투까지 조금씩 방해할 정도로 몸을 잠식하겠지.
'그나마 정신을 유지하는 건, 그나마 좀 너그럽게 힘을 받아 갔던 알베도 정도.'
다른 신들은 이미 알베도가 적색 불 잉태하는 것을 보고, 그 시스템을 따라 하면서 강하게 저주를 지정했지만.
알베도가 적색 불을 잉태할 때는, 알베도의 의지를 보고 힘을 빌려주면서 대충 정해놓은 저주였던 만큼.
그나마 좀 여유가 있어서 최소한의 정신으로 버텼다는 뉘앙스로 갈 수 있으리라.
그렇게 혼자서 상황을 파악한 알베도는, 이대로 진행 된다면 결국 모든 것이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처음에야 자신들이 이렇게 희생당하는 것이야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이대로 쾌감에 잠식당해서 싸우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면?
'결국, 다음 세대의 화신을 구하는 수밖에 없지.'
그렇게 화신체가 될 재능을 가진 이들이 계속해서 불의 신들에게 바쳐지는 공물의 단계에 갈지도 모른다 생각하고.
이 상황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하게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런 고민을 했을 뿐이지, 실제로 반기를 든 것은 아닌 게.
솔직히 침식하고 싸우는데, 신의 힘이 없으면 그냥 멸망해버리는 것이 끝이거든.
아무리 신이 조건 없는 착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고 해도.
공공의 적인 침식이 있는 이상, 신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입장이다.
대가 없는 힘인 줄 알았던 것에, 강력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알았을 뿐.
그 힘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대로니까.
"하지만 계속해서 침식이 밀리는 상황이 이어지니까, 정작 침식도 자신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최종 결전을 준비해서 쳐들어오는 거지."
사실상 이것만 막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부분이니.
처음 그녀가 우려했던 것보다는 무조건 더 나은 결과였으리라.
하지만 여기서 더 싸우면서 불꽃을 사용하면,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공물로 영혼이 모두 바쳐지고.
무한한 절정의 굴레에 갇힌 희생양으로써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을 알고 있으니.
알베도는 결국, 이 끝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신들에게 새로운 부탁을 하게 된다.
"자신을 온전히 바칠 테니, 모두를 놓아달라고."
다행히 신들은 모두 알베도의 몸을 가장 탐내고 있었기에, 그 의견을 받아주기로 하고.
영혼만 억지로 조금씩 빼앗아서 망가진 것들을 얻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알베도 자체를 '혼례'로 얻어서, 함께 공유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거다.
알베도의 하얀색 문신인 소울체인.
니그레도의 검은색 문신인 드림캐쳐.
치트리니타스의 노란색 문신인 알터마인드.
루베도의 빨간색 문신인 템페이션.
비리디타스의 초록색 문신인 페이버.
다섯 불꽃의 힘을 상징하는 잉태의 증거이자, 그녀들의 영혼을 갉아먹는 저주의 문양을.
알베도는 자신의 몸에 모두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무지갯빛 문신인 '오푸스'를 자궁에 새긴 알베도는.
여러 색이 뒤섞인 화려한 불꽃을 불태우며 날아올라, 최종 결전을 홀로 맞이하게 된다.
"말 그대로 모두를 구하기 위해 홀로 희생하는 주인공인데...."
바로 이 장면까지는 어떠한 고민도 없이, 이미 완성되어서 그려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저번 굿즈에서는 낮은 확률로 오푸스의 문신이 나오기도 했던 거고.
그런데 이제 문제는 이 이후에 정말 어떤 엔딩을 내느냐가 문제다.
"선택지야 몇 가지 있는데."
일단 모든 상황이 끝나서 평화가 찾아오고.
그 이후에 모두를 구해준 알베도를 그리워하는 아이들이 간절하게 기도하고.
그것에 감동한 신들이 알베도를 돌려준다는 무지성 해피엔딩 전개.
'근데 이건 아무래도 어렵지.'
신 하나도 아니고, 다섯이 모두 동의하기에는.
그들이 느끼는 알베도에 대한 욕망이 너무 컸다.
솔직히 불꽃을 내려주는 것이 공짜도 아니고, 그들도 이 싸움에서 피해를 본 것들이 많았기에.
그런 비효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개연성이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근데, 또 그렇다고 평범하게 희생하고 끝나는 전개도 별론데."
처음에는 그런 전개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건 알베도가 너무 불쌍하고.
남은 이들도 알베도가 자신들을 희생했다는 사실에, 그다지 행복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것대로 슬픈 엔딩이 괜찮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하필 그냥 멋지게 죽는 것도 아니고.
신들에게 몸과 영혼을 바치는 거라서 찜찜하기까지 해.
"어렵다 어려워...."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일단 저녁이라도 먹고 생각해야겠다는 생각에 기숙사를 나왔고.
곧바로 문신에 애널 플러그형 꼬리까지 달고 다니는 여학생들이 눈에 들어와서 당황스러웠다.
솔직히 문신은 이제 익숙해졌는데, 저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며 치마 내부가 보이고.
그 내부에 살짝 튀어나온 플러그 특유의 느낌이 있으면 두려워진다.
저 흔들림을 일종의 애널 자위를 실시간으로 하면서 만드는 거잖아?
아무리 패션 아이템이라지만, 일상이 자위가 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건 여러모로 기분이 묘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유행이라는 건 모르겠다니까."
이게 굳이 우리 아카데미만 이런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열풍이라는 것이 참 대단해.
솔직히 자발적으로 이런 변태 같은 복장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다.
다들 덕질에 입문한 직후라 그런 건지, 덕질을 할 때 임하는 태도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
"...잠깐만?"
생각해보면 이 세상은 덕질에 임하는 태도의 수준이 현재 상당히 높다.
실제로 그래서 낮은 확률로 등장하는 오푸스 문신도, 꼭 뽑아서 가져야겠다며 엄청난 돈을 쓰던 사람들이 많았고.
남은 문신을 싸게 뿌려서 자궁 문신 유행을 번지게 하는 일등 공신이 되기도 했었다.
심지어 잘못하면 위험할 수 있는 애널 플러그를, 덕질과 패션의 일종으로서 활용하는 사람들도 이렇게나 많아지고 있잖아?
나는 그렇게나 덕질에 진심인 사람들에게 후속작을 보여줘야 한다.
단순히 무슨 예술 작품을 보여준다는 것을 넘어서, 그 독자들과 소통을 하는 거다.
그렇다면 그 니즈를 반영하는 건 어떻지?
"...생각보다 괜찮지 않나?"
나는 밥을 먹는 것조차 시간이 아까워져서, 그대로 기숙사 방으로 뛰어 돌아갔고.
곧바로 종이를 펴서 간단하게 설정을 정리하며, 방금 떠오른 아이디어가 사용 가능할지에 대한 부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굳이 만화라고 해서, 작품 외의 무언가가 작품 내에 영향을 미치는 듯한 감각을 느끼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정말 유명한 만화에 나오는 기술 중에, 그런 기술이 있다.
모든 것에게서 조금씩 힘을 빌려, 최강의 기술을 사용하는 개연성을 확보하는 필살기.
딱히 그 빌리는 힘의 대상이 사람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이 의지를 보태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뽕 맛 하나는 오지게 주입하는 필살기다.
그런데 만약 그 기술과 비슷한 상황인데, 해당 세상의 모두의 힘을 빌려도 모자랄 것 같다면?
과연 어떻게 해서 그 모자란 힘을 채워낼 것인가.
만약 지금처럼 사람들이 진심으로 작품에 덕질을 해줄 수 있다면, 그 힘을 이쪽 현실에서 채워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정도면 개연성은 충분하잖아?"
세계 하나의 개연성으로 어떤 소녀를 구할 수 없는 거라면.
그 개연성을 현실 세계에서도 응원해서 채워 넣을 수 있게 한다.
그것이 이번에 내가 생각해낸 엔딩을 이루는 기본 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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