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25권 화신혼례(3)
* * *
"일단 표지는 이거로 된 것 같고."
'혼례'를 통해서 자궁 문신 '오푸스'를 깃들인 알베도가.
마지막 침식의 발악에 단독으로 맞서는 최종 전투가, 이번 작품의 표지가 될 예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이미 다른 그림을 표지로 쓰려고 그렸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스포일러가 너무 심할 것 같아서, 굿즈용 일러스트로 쓰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아무래도, 알베도가 신들의 불꽃에 붙잡혀서 묶여있는 장면은 좀 그렇지.'
알베도가 모든 침식을 쓰러트려서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고.
그 후에 신들과 약속한 대로 자신을 '혼례'로 바쳐지는 것을 그려낸 장면인데.
아무래도 이번 내용에서 핵심이 되는 장면이라, 처음에는 그걸 표지로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근데 아무래도 그걸 쓰는 건 오바인 것 같아서 참았다.
물론 그걸 본다고 해서 바로 내용이 이해가 가진 않아서, 스포일러가 심하게 되는 효과가 있거나 하진 않겠지만.
이 그림에서 신의 불꽃이 알베도를 우호적으로 대한다고 느끼기 어렵기에.
아직 초반부의 신에 대한 설명이 추가로 되기 전에 보면, 이전 권의 내용만 알고 있던 독자에겐 당황스러운 내용일 수 있었다.
"수고했어."
"악!? 아, 고마워."
갑자기 볼에 차가운 컵의 감촉이 닿아서 화들짝 놀랐는데.
언제 일어났는지, 니아가 나에게 물을 담아서 건네준 거였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된 건가?
"그림 마무리한다고 밤을 새운 거야?"
"뭐, 그렇지. 솔직히 이거 중간에 멈추기엔 애매하잖아."
"그럼 바로 출발하겠네? 슬슬 토요일이기도 하고."
"너무 나를 잘 아는 거 아니야?"
"저번 작품도 그랬잖아. 만화 하나에는 미쳐있는, 시우 화가님이니까."
"끄응...."
그렇게 부르니까 기분이 이상한데.
하여튼 실제로도 그럴 계획이어서, 슬슬 원고를 정리하면서 나갈 준비를 했다.
방금 그린 일러스트만 물감이 다 마르면 출발해야지.
"맞다. 예약은 아직 하고 있지? 정신이 없어서 아직 못 했는데."
"어, 네 이름으로 하나 넣어둘까? 어차피 그거 우리 동아리에서 최종 처리하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는데."
"그럼 고맙고."
화신혼례의 엔딩을 결정한 이후로, 바로 루베도가 그려진 나체 일러스트를 그려냈고.
그렇게 해서 최대한 빨리 예약을 시작해두고, 본편의 작업을 들어갔었다.
그래서 지금 꽤나 많은 예약이 쌓이는 중인데, 이제 슬슬 가서 원고를 전해주긴 해야지.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니까."
"그치만 전시관에 가는 건 즐겁단 말이야. 유리아를 빼고 이러니까 좀 미안하긴 한데...."
"뭐, 걔를 신경을 쓰고 그래. 지금쯤 혼자서 커다란 괴물 젖으로 유두 자위나 하고 있겠지."
"헉, 기분 좋겠다."
어느새 작업 상황을 알아차린 오르카와 로자리아가 나를 따라 나왔고.
혼자 가려던 원래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서, 셋이서 전시관에 가게 되었다.
그래도 내가 일할 때까지 옆에서 방해할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기에, 둘은 신작을 둘러보면서 알아서 자리를 비켜줬다.
"드디어 원고가 들어오는 건가요? 사실, 다들 출시 예정일 언제냐고 엄청 난리였거든요."
"아하하.... 스승님이 꽤나 공을 들이시더라고요. 표지 일러스트를 한 번 계획을 바꾸시느라, 좀 오래 걸리셨어요."
"표지를요?"
"처음에 생각했던 건, 표지엔 어울리지 않아서 다른 용도로 공개하시겠다던데요?"
나는 일단 표지로 사용할 일러스트와 초기 예상보다 꽤 분량이 늘어난 원고를 직원에게 건넸다.
솔직히 말해서 이 이상 시간을 쓴다고, 더 괜찮은 녀석을 뽑아낼 자신이 별로 없었다.
소년만화 특유의 강렬한 전투 표현을 유지하면서.
마법소녀물 특유의 처절함과 슬픔이 있는 전투를 그림에 담아내기 위해, 꽤나 신경을 썼고.
어느 정도는 내가 계획했던 수준을 뽑아냈으니까.
"어, 이거 설마...."
"아시겠죠? 전에 자궁 문신 스티커로 선공개되었던 오푸스에요."
"아, 그게 알베도 거였구나."
하여튼 그 문신의 무식한 가챠확률을 뚫고 구했던 사람은.
이 표지를 보자마자 엄청 기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다 보고 나면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슬픈 감정으로 바뀔 수도 있어서 불안하긴 해....
'시간을 걷는 길'을 공개할 때도 그랬지만, 왠지 이런 슬픈 엔딩을 사용할 때마다 아무래도 좀 쫄리는 마음이 있다.
"조금 기네요. 이러면 전에 말씀하셨던 상자 크기는 소폭 조정하셔야겠는데요?"
"아,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이미 그럴 수 있다고 알려 주셔서, 최대한 기다리고 있었으니 괜찮아요."
"그리고 그 상자 말인데요...."
화신시리즈의 전작인 화신잉태에서는 '자궁 문신 스티커'를 추가 굿즈로 팔아먹었었다.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정식 굿즈를 같이 팔기로 했는데.
이번 굿즈로 준비한 것은, 이번 권까지 모든 화신 시리즈를 수납할 수 있는 종이 상자였다.
마치 화신 시리즈 전체가 하나로 만들어진 것처럼 판매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옆에는 총 4개의 카드를 끼워둘 수 있는 홈이 있지.'
만약 모든 작품을 예약으로 구매해서 프로모 카드를 받은 경우.
그것들을 끼워서 4개의 자리를 전부 끼울 수 있는 형태다.
책 등 부분에 그려진 일러스트가 모두 이어지면, 1권의 표지이자 나체의 비슷한 컨셉인 알베도의 그림이 나오기에.
이 보관 박스에 모든 것을 보관하는 것으로, 5명의 화신체의 비슷한 컨셉 일러스트를 단번에 구경할 수 있게 구성이 되어 있었다.
"뭐, 추가로 넣을 기능이 있으신가요?"
"기능이라기보단, 디자인의 부분인데요."
"...이건?"
"원래 표지로 쓰려다가 스승님이 포기하신 그림이에요."
"와...."
"이걸 박스 안쪽에 넣고 싶습니다."
"...안쪽이요!?"
그렇게 모든 것을 장착해야 보이는 것이 있다면.
모든 것을 빼야만 제대로 보이는 것도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모두 빼서 박스의 내부가 보이게 하고, 일부 카드를 빼서 카드가 막게 되어 있는 구멍을 열어서 빛이 들어가게 해야 한다.
그런 간단한 조작만으로, 내부에 있는 이 그림을 관람할 수 있게 변하는 거지.
"...그 부분은 확인을 더 해봐야 할 것 같긴 하네요. 이 구멍 부분도 결국 디자인 부분에서 수정이 필요하잖아요?"
"네, 적당한 값을 찾아서 샘플 뽑아주시면 되겠습니다."
그것 이외에는 사실 특별하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고.
다만 굿즈인 수납 박스 부분은, 생각보다 샘플이 나오는 것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처럼 불가능하다는 소리가 나오진 않았고, 내가 원했던 그대로 디자인이 나와서 만족하면서 양산을 하기로 했다.
"근데 이러면 예약 때 받은 가격이면 살짝 적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음, 추가 금액은 받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적자는 예약 때 구매하신 분들은 화신혼례 쪽 이익으로 해결해 주세요. 나중에 정신 출간 후에 따로 일반 판매할 때는 가격을 올려서 팔아주세요."
"알겠습니다."
원고 제출은 물론, 작품부터 굿즈까지 모든 상품의 샘플이 정상적인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작품이 출간되는 날만 기다리면 되는 셈이었다.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
"...이게 뭐죠?"
여성은 자신이 예약했던 '화신혼례'를 받다가, 함께 받은 커다란 상자를 보고 적지 않게 당황했다.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포장이 되어 있고, 가능하면 화신혼례를 모두 보고 뜯으라는 말이 적혀 있었는데.
아니, 대체 이번에 추가로 판매했던 게 뭐길래 이렇게 큰 거지?
"아, 실제로 엄청 무겁거나 한 물건은 아니에요. 들어보시겠어요?"
"...그러네요. 이거 대체 뭐에요?"
"글쎄요. 알고 싶으시면 대충은 알려드리겠지만, 그래도 직접 뜯으면서 즐기시는 게 재미있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네요."
생각해보면 지난번 작품에서 추가로 판매했던 스티커도 비슷했었다.
작품을 다 읽고 뜯으니까 얻을 수 있는 감동 같은 게 있었지.
시우 화가는 역시 이런 부분에서 배려가 깊다니까.
마치 이런 것 하나하나가 작품이 가진 매력의 일부라는 듯 관리하려고 하는데, 그게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진한 감동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둘째치고, 표지가 엄청 예쁘다...."
오푸스가 그려진 알베도가, 엄청나게 멋지게 여러 색의 불길을 일으키며 침식을 처단하는 모습인데.
알베도가 화신전장에서 소울체인을 처음 잉태했을 때가 생각날 정도로.
압도적인 전투 파워가 느껴지는 표지였다.
특히 이제까지 다른 캐릭터들의 불꽃으로만 사용되던 다양한 불꽃이.
마치 원래부터 알베도의 것이었다는 듯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것 자체가 마치 혼자인데 다섯이 된 것 같아서, 엄청나게 강한 인상을 줬다.
'대체 무슨 내용이지?'
그녀는 슬슬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서, 급하게 만화책을 펼치고 내용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전작에서부터 이어지는 캐릭터들의 야한 행동까지는 그냥 집중해서 보고 있던 그녀는.
아까부터 자꾸 느껴지는 신들의 모습에 약간 혼란을 느꼈다.
"영혼이.... 바쳐지는 거라고?"
행복한 쾌감은, 자신의 영혼이 신에게 종속되는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수적인 부작용이고.
신들은 전혀 고생한 화신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의도로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들이 탐이 나서 가지려고 했을 뿐이었다.
"에이,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신인데...."
알베도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하는 것에 맞춰, 그녀도 점점 진실에 다가가기 시작했고.
아직은 착각일 수 있다면서 계속해서 상황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잔혹한 진실은 그런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녀는 알베도와 함께 절망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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