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 25권 화신혼례(5)
* * *
"생각보다 좋은 반응이 많네."
사실 가장 걱정이었던 것은, 신을 악역에 가깝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실제 종교랑 아무 관련이 없더라도, '신'이라는 카테고리 자체에 욕을 보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니까.
우리 세상이야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이런 분위기의 신화가 대단히 많았지만.
이쪽은 그런 분위기의 신화는 전부 신이 아니라 마신이나 악신 취급을 받았기에, 애초에 신이라고 칭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화신 시리즈의 신은, 인류의 편에서 침식을 막아주는 아군의 존재면서도.
인간을 단순하게 자신보다 격이 떨어지는 열등한 종족 정도라고 여기고 있으니.
굉장히 애매한 신의 정의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임신을 축복으로 삼는 이쪽 종교관에서.
임신을 저주처럼 표현한 것도 조금 위험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애초에 신의 불꽃을 자궁에 '잉태'받는 것을 독자들이 축복이라고 여긴 것 자체가, 이 개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그 개념을 정 반대에서 부숴버렸으니까.
그래서 가장 걱정했던 것은 종교적인 문제였다.
솔직히 신전에서 지랄하는 건 상관없는데, 독자들이 싫어하는 요소라 느껴지면 미안하니까.
그래도 일단 원래 계획했던 것을 던져가며 수정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라 그대로 갔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별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는지, 종교 관련해서 비판적인 여론은 별로 없었다.
굳이 신전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더라도 불편하다는 사람은 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경우도 전혀 없어서 좀 신기했다.
하여튼 내가 그리고 싶은 것도 그렸고, 평도 문제없으니까 대성공이지.
"뭐, 이번 결말 수정한 게 여러모로 괜찮았던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눈길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 살았다는 느낌이기도 했다.
솔직히 그대로 배드엔딩이었으면 그런 부분까지 같이 짜증이 났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이번에 다 같이 알베도를 구하자는 식으로 진행한 결말이 되게 괜찮았던 것 같긴 하네.
'하긴, 나도 딱 생각하자마자 이거다 싶었으니까.'
작품에서 보여주려고 한 희생의 무게는 다 보여주면서, 그 무게를 덜어줄 방법을 그럴듯하게 제공한다.
즉, 결과적으로는 해피엔딩이면서도 그것에 도달하는 설득력이 굉장히 좋아졌다.
심지어 그 해피엔딩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작품을 읽는 독자들 자신이 참여해서 달성된 것이라 느낀다면 더더욱 그렇지.
그리고 굿즈 부분에도 좋은 영향이 갔는데, 아무래도 돈 주고 구매한 자궁 문신 스티커가 갑자기 축복의 상징에서 저주의 상징이 되는 건 마음이 아플 텐데.
지금은 저주를 직접 받는 것으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희생의 상징이 되었잖아?
그 덕분에 오히려 평범한 축복을 따라 하려는 것보다도 멋진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슬슬 판매가 막바지였던 문신 스티커의 판매량이 다시 급증했다고 들었다.
이미 살 사람은 다 샀는데도, 이 정도인 걸 보면.
기존에는 굳이 살 의미를 느끼지 못하던 사람들도 이번 작품에서 매력을 느꼈다는 거다.
심지어 더 많은 사람이 자궁 문신을 붙여서 알베도의 저주를 덜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최대한 주변에 화신 시리즈를 추천하고 다니면서.
화신 시리즈의 판매량도 전체적으로 상승하는 중이었다.
"불만을 터트리기보다는, 행동하려는 모습이 더 강해."
하긴 그 지옥도 같은 세계관에서, 불만보다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싸워왔던 아이들에 몰입해 있던 상황이니.
알베도를 구할 방법이 자신들에게 있는데, 그걸 하지 않는 것부터가 신경이 쓰였을 거다.
그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았어야 한다고 신을 원망하기에는, 그 정도 선택지가 있는 게 다행이라는 분위기가 되어 있었으니까.
"엄청나네."
"그러게...."
사실 자궁 문신 유행이야 아카데미에선 워낙 많았으니까 익숙했다가.
화신혼례 이후 거의 전교생이 하고 다녀서 익숙함을 뛰어넘어서 대단하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슬슬 그 난장판을 아카데미 바깥의 상태로도 비슷하게 체감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원래 유행에 민감한 아카데미야 그럴 수 있는데.
바깥도 이 정도로 자궁 문신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의 비율이 높다니.
이러면 진짜 알베도가 당장 살아 돌아와도 이상할 게 없겠는데?
"그래서 이거 후속작은 언제 그릴 거야?"
"...몰라?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한데."
일단 결말을 짜면서 후속작이자, 진짜 마지막 에피소드를 구성해놓긴 했는데.
어디까지나 급하게 짠 거라서 세세한 내용의 구성은 시간이 더 필요했고.
솔직히 말해서 이번에 굿즈로 보관 상자를 판매해 버려서, 한동안은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싶기도 했다.
"이제까지 후속작 내던 것보다는 좀 더 걸리지 않을까."
솔직히 이번에도 꽤나 텀을 두고 후속작을 내게 되었는데.
다음에는 더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해야 할 터라, 아마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독자들에겐 미안하지만, 급하게 내려다 이상한 작품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아, 그리고 보니까 그런 소문이 돌던데."
"무슨 소문?"
"자궁 문신 스티커를 붙이면 진짜로 저주가 생긴다는 소문."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겨우 스티커 좀 붙였다고 저주를 받을 리가 없잖아.
로자리아는 그런 말을 하면서, 자신의 자궁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런 소문을 듣고 난 뒤로는, 혹시 아이한테 위해가 갈까 봐 무서워서 스티커를 떼어버렸다고 했다.
...생각해보니까 로자리아 배도 슬슬 불러오기 시작했네.
"왜, 우리 아기 신경 쓰여? 아가야 아빠의 손이랍니다."
"아니 당연히 신경이야 쓰이지."
대체 어떻게 임신한 채로 계속 아카데미에 다니겠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알아보니까 아카데미 규정에 임신하면 안 된다는 것도 없고.
오히려 출산을 위한 시스템이나 육아랑 관련된 시스템도 다 마련이 되어 있었다.
그건 진짜 좀 놀랍더라.
귀족들은 이미 좀 늦게 아이를 낳으려는 분위기라서 생각도 못 했는데.
아무래도 아카데미는 미지아 교단의 입김이 강하게 닿는 곳이잖아?
그래서 아기를 낳는 것 때문에 학업에 지장이 생기는 것으로, 아기를 낳는다는 것 자체를 문제로 삼지 않도록.
그런 시스템을 미리 마련해놨다고 한다.
근데 정작 시스템이 생기기 전부터 아카데미의 룸메이트 시스템이 전통처럼 남아 있으니.
애초에 임신하는 일 자체가 잘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라.
사실상 방학에 임신하고 돌아온 이들을 위한 조항이라고 보면 된다.
그것도 물론 거의 없어서, 있으나 마나 한 정책이지만.
"몸이 어디 안 좋거나 하진 않고?"
"엄청 튼튼한데? 가끔 뭐 먹고 싶다고 하면, 다른 거 다 내버려 두고 같이 나가서 먹어주는 아빠가 있어서 먹는 것 불만도 없어."
"자주 그러면 힘들기라도 한데, 솔직히 아주 가끔이잖아."
솔직히 로자리아는 임신 상태라고 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도 딱히 없었다.
오히려 내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라서 마음에 걸려서 문제지.
"이번 방학에는 꼭 같이 가서 머리 박자...."
"정 힘들면 그냥 안 가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 그래."
"아예 낳아서 귀여운 손주로 데려가면, 진짜로 아무 말 못 하지 않을까?"
"왜 점점 더 악질이 되어가는 건데...."
아직 배가 많이 부르기 전에 가는 거에서, 배가 많이 부르고 가는 거로 바뀌더니.
이제 다음은 아기를 낳아서 간 다음에 임신 사실을 알린다?
진짜로 그쯤 되면 내가 머리 박는 거로 안 끝날 것 같은데...?
"이렇게 둘이 데이트하니까 되게 좋다."
"예전 생각나긴 하네."
오늘은 오랜만에 유리아와 오르카 모두 시간이 맞질 않아서.
로자리아와 둘이 아카데미 바깥을 나와서 전시관을 둘러봤고.
그 이후에 이렇게 수도에서 데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아, 돌아가기 싫다."
"그럼 어떻게든 변명 박은 다음에, 둘이서 뜨거운 밤이라도 보낼래?"
"괜찮아. 그렇게 참을성이 없진 않거든? 그리고 그렇게 말하면, 진짜 오래 참은 것 같잖아."
실상은 틈만 나면 동아리 방에서 야한 짓을 하는 관계인지라.
굳이 여기서 그런 각을 볼 필요는 없는 것이 맞기는 했다.
...솔직히 당장 내일 강의도 있는데 무리수인 소리긴 했지.
"슬슬 돌아갈까?"
"응."
그렇게 우리는 은근슬쩍 즐기던 데이트를 무사히 마치고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솔직히 오늘 둘이서 이렇게 꽁냥거리는 것도 재밌었고.
화신혼례의 여파로 인해 엄청나게 퍼져나간 자궁 문신을 본 것도, 여러모로 행복한 기분이었다.
이 정도면 거의 최고의 하루지.
"칼리, 칼리...."
"응?"
그리고 다음 날, 동아리 방에 가서 괜찮아 보여서 주워왔던 만화의 샘플을 보고 있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좀 다급해보이는 유리아가 동아리 방에 들어오더니.
나에게 다가와서 손을 붙잡고는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 나 좀 이상해.... 몸이, 그게.... 윽...."
"너 괜찮아? 무슨 일인데 그래."
하지만 유리아는 자꾸 몸을 비비 꼬면서 신음을 흘릴 뿐.
제대로 뭔가를 설명하지 못하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리아가 이러는 모습은 되게 흔하지 않은데, 왜 이러는 거지?
소변이 마렵다기엔 나에게 부탁하는 톤이었고.
그럼 뭔가 몸에 야한 느낌이 들거나 그런 건가?
확실히 최근에 가슴 조교가 거의 막바지라서 많이 몸이 민감해지긴 했을 텐데.
그것 때문에 옷에 유두가 스쳐서 저러는 걸지도 모르겠네.
"하아♡ 하아...."
"왜 그러냐니까?"
"이거, 문신♡ 문신이...."
"문신?"
생각해보면 최근에 화신혼례를 본 이후에, 유리아도 오랜만에 자궁 문신을 붙이고 다녔었다.
아마 흰색인 소울체인을 붙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근데 그게 어쨌다는 거야?
"문신을 떼어냈는데도 자국이 남아있고.... 심지어 진짜로 자궁이 두근거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뭐?"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제 로자리아가 말했던 '소문'에 대한 것이 떠올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