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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129화 (129/229)

〈 129화 〉 26권 ­ 거룩한 희생의 절정(3)

* * *

"아니, 그게...."

"잠시만 말하지 말아봐."

유리아는 잠시 내 말을 멈추고는 혼자서 생각하며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고.

한참을 생각하던 끝에, 그녀의 바보 털이 놀란 것처럼 쭈뼛 서고.

애널 플러그가 끼워진 복슬복슬한 여우 털도 들썩였다.

"칼리가 시우 화가였어?"

"...어."

어차피 다 말해버린 와중에, 계속 거짓말하는 것도 이상하고.

괜히 추가로 이상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기에, 나는 그냥 그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표정은 그냥 좀 신기하다는 정도지만, 머리카락이나 애널 플러그의 상태를 보면 상당히 놀란 모양이었다.

"확실히, 칼리가 열심히 하는 거에 비해서 뭘 하는지 맨날 숨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서. 몰래 다른 이름으로 만화를 그리고 있을 거란 건 의심했지만...."

"의심했구나...."

"근데 시우 화가일 줄은 전혀 몰랐어. 칼리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 그런데 시우 화가는 여자가 아니었구나?"

"보시다시피 남자야."

"나는 시우쨩이 귀여운 여자애길래,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지."

...그건 잊고 있었던 슬픈 오해가 떠오르는 부분인데.

그래도 딱히 믿지 않는다거나 편견을 가지는 소리는 하지 않고.

예상했던 것보다 금방 고개를 끄덕여줘서 마음이 좀 편했다.

"선배랑 오르카는 알아?"

"알아. 거긴 이미 들켰어."

"하긴, 가끔 동아리에서 작업도 하고 그러는 모양이던데. 내가 오히려 늦긴 했네."

"아하하.... 가능하면 너도 숨겨줘."

"그야 그래야지. 별로 알려지고 싶지 않은 거지?"

"응."

저번에 우리 동아리의 합동 작품을 할 때도 그렇고.

여러모로 심상치 않은 실력으로 몰래 활동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단다.

생각 이상의 거물이라 좀 놀랐다는 느낌이라는데.

내가 최대한 숨긴다고 해봐야, 활동하는 것 자체는 티가 났구나.

사실 뭐 유리아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도, 관성에 가까운 행동이었지.

굳이 일부러 숨겨야 한다고 빡빡하게 주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다.

유리아가 이 정보로 나를 협박할 것도 아니고.

오히려 어떻게 생각하면 동아리 방에서 작업에 집중하기 더 편해진 셈이네.

그나마 좀 걸리는 건, 신작을 낼 때마다 유리아가 내 작품이라는 걸 알고 읽는다는 점인가.

"하여튼, 정작 이 작품을 그린 시우 화가. 그러니까 칼리는 전혀 아는 게 없다는 거지?"

"어. 그래서 지금 굉장히 당황스러운 거야."

나는 그냥 평범하게 만화를 그렸을 뿐인데,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건지 모르겠다.

마력이 깃드는 걸 보면 마법이랑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정작 저 문신이 몸에 남는 당사자들도 이유를 모르잖아.

'애초에 왜 갑자기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지?'

전작만 출판되었을 때도, 수많은 사람이 자궁 문신 스티커를 붙이고 살았는데.

그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심지어 제작 공정이 바뀐 것이 아닌 것을 떠나, 유리아는 그 당시에 구매한 스티커를 사용했다.

그러니까 완전히 같은 물건인데, 화신혼례가 발표되고 나서 바뀌었다는 건데....

"그럼 원인이 되는 게 화신혼례야?"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화신혼례는 평범하게 출판한 만화책일 뿐이었다.

화신혼례에서 그게 저주라는 것을 밝혔고, 일부 저주를 문신 스티커를 붙이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내용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화의 설정 같은 거잖아?

하지만 그것을 읽은 사람들은 실제로 저주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뭐, 그게 정말 영혼의 일부를 저당 잡히는 저주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저주가 발동할 때 효과인, 야한 부작용들은 그대로 발동하는 모양이니까.

"아, 아니지."

방금 생각했던 건, 조건에 오류가 존재하고 있었다.

정말로 이게 신작을 읽은 사람에게 그런 현상이 오는 건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만약 읽지 않더라도 자궁 문신을 붙이는 모두에게 발동할 수도 있으니까, 섣부르게 판단할 부분은 아니었다.

"이건 진짜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네."

"왜 굳이 감당해야 해?"

"뭐?"

"아까부터 의문이었던 건데, 왜 칼리는 이걸 해결하려고 하는 거야?"

"위험하잖아. 저주라니."

당장 유리아도 자신이 직접 저주에 노출당해서 고생했으면서.

왜 저렇게 태평한 반응을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일단 원인 중 하나가 나라는 걸 알았으니, 그걸 해결할 방법을 찾는 건 당연하지.

"흐음, 근데 만화에서 이미 저주가 어떤 힘이 있고. 어떤 영향이 있는 걸 알려줬잖아. 그런데도 붙였으니, 붙인 사람 잘못 아니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상식적인 생각이라는 것도 있잖아. 그냥 스티커라고 생각한 것이, 영구적으로 몸에 남는 저주가 될 거라고 누가 생각해."

변명으로 써먹을 수는 있어도, 그걸 진지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

최소한 이 이유를 찾아서, 영구적으로 몸에 남지는 않도록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문신의 효과를 체험하는 건 자유라지만, 그걸 한 번 했다는 이유로 영구 적용을 강제하는 건 내가 원하는 방식의 독자 참여가 아니었다.

내 작품을 잠시 좋아했다는 이유로, 평생 가는 낙인을 쓰게 되는 셈이니까.

"아, 발동이 문제가 아니라. 멈추는 건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지 좀 알아봐야겠다...."

일단 이 원인을 찾는 것보다는 해결법을 찾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다만 원인을 찾으면 해결법이 바로 나올 테니, 원인도 같이 고민해볼 필요성은 있고.

"일단 상황부터 더 파악해봐야겠지. 일부만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건지. 아니면 모두에게 벌어지는 건지."

당장 어제 아카데미를 나가서 잘 팔리는지 구경하고 왔는데.

이걸 하루 만에 다시 나가게 될 줄이야.

물론 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조사를 벌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아무래도 계속 부딪히며 살아갈 동기나 선배들한테 그런 야한 질문을 하기가 좀 그렇다.

차라리 아예 모르는 사람이면 한 번 보고 말 거니까 좀 낫지.

"아니지."

애초에 아카데미가 아니면 사람을 써서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잖아.

그냥 조사 요청을 하고, 그에 필요한 자금 같은 것도 때려 박으면?

돈으로 안 되는 건 거의 없는 법이니까, 금방 현재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돈을 때려 박기 시작하자, 금방 상황을 정리한 자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다만 자료마다 조금씩 말이 다른 건, 당장 이게 벌어진 초창기기도 하고.

점점 확산이 심해지는 추세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게 그것대로 데이터가 되긴 하지.'

나는 일단 자료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면서.

대체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거의 첫날부터 항상 스티커를 붙였던 사람 중 마법사는. 전부 스티커를 잠시 떼어내도 문신이 남아 있었다."

이게 정확하게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이 아직 발생하지 않거나.

유리아나 지금 사람들이 겪은 것보다 훨씬 옅어서, 사실상 효과가 없는 수준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자궁 문신을 붙이고, 시간이 지나서 활성화 단계에 진입해야 효과가 발휘되는 거지.

이게 마력을 모으는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붙이자마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래서 생각보다는 현시점의 피해자가 엄청나게 많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 기준이지.'

날이 갈수록 화신혼례를 본 사람은 늘어나고 있고.

그 수많은 사람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마법사인데.

그 마법사 중 대부분이 자궁 문신 스티커를 몸에 붙이고 있잖아?

아마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저주의 여파에 들어갈 사람들이 잔뜩이겠지.

심지어 붙이는 기간만 길면 마력이 있는 이들은 예외 없이 전부 저주가 발동하는 모양이라, 그 많은 사람이 다 대상이라고 봐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붙인 지 시간이 지난다고 쾌감의 강도가 강해지는 건 아니라는 거다.

유리아의 몸에 생긴 수준까지 진해지고 나면, 스티커를 붙이고 있더라도 더 발전하거나 하는 예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활성화에만 시간이 걸리는 느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나쁜 소식도 같이 나오네."

아직 화신혼례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했더니.

놀랍게도 최근에 계속 스티커를 붙여왔다면, 화신혼례를 보지 않았음에도 저주가 부여되었다.

이 부분은 진짜로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부분인데, 하필이면 그냥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효력이 있는 모양이다.

도대체 무슨 원리길래 저렇게 되는 거야?

"일단 기본적인 효과 같은 건, 화신 시리즈의 설정을 그대로 따르는 건 맞고."

문신의 디자인과 색별로, 각기 다른 야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는데.

이 부분도 전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파워가 약한 만큼, 이게 마법의 효과인지 정신적으로 그렇게 느끼는 건지 헷갈릴 수준이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신적인 여파를 일으키는 자궁 문신이라니, 사람을 음란하게 타락시키기 위한 저주의 음문이 따로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으려나."

그 와중에 조금 안심이 되었던 점은, 내가 조사하는 동안에도 소문은 계속 퍼져나갔다는 거다.

아마 이렇게 소문이 퍼져나갔으니, 이게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다들 지양하겠지.

그럼 피해 규모가 계속해서 커지는 것보다는 나은 상황이라고 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 부분에 대한 보고서를 열었다.

"...이게 뭐야?"

이 저주가 실제로 자신의 몸에 생겨난다는 것이 알려질수록.

화신혼례를 본 사람 중, 아직 자궁 문신을 붙이지 않은 사람들이 더 열렬하게 자궁 문신을 붙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몸이 저주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정말로 이 방법을 통해 알베도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

아니 이 미친 사람들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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