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132화 (132/229)

〈 132화 〉 27권 ­ 발신자 불명(1)

* * *

"오케이...."

지난번에 내가 문신의 저주를 해결할 방법을 찾은 다음.

신나서 의뢰해, 소문을 퍼트린 덕에 위험한 상황에 놓일 사람들은 다 해결이 되었다.

이제 저주라기보다는 그냥 원해서 유지하는 것에 가까운 무언가가 된 셈이지.

다만 조금 마음에 걸렸던 건, 만약에 이 저주를 걸어 놓은 다음에 그 저주를 건 스티커를 없애버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만약 그럼 악용해서 누군가에게 영구적으로 저주를 걸어버리는 도구로 쓰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 부분의 경우에는 테스트해본 결과, 안심해도 좋다는 결론이 났다.

이미 저주가 생겨있을 때도, 같은 종류의 문신은 스티커를 위에 붙여도 중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때 기존에 걸린 저주가 지워지고 새 스티커의 저주로 덮어져서.

기존 스티커가 없어도, 새 스티커를 통해서 저주를 지워내는 것이 가능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이건 좀 어지럽네."

최종 보고서를 읽다가, 진짜 당혹스러운 부분을 보면서 좀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 사람들은 기껏 해결 방법을 마련해놨는데.

그걸 해결할 생각을 하지는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저주를 강화하고 있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문신의 저주가 합쳐져 있는 무지갯빛 문신인 '오푸스'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이 문신 스티커는 붙이고 시간이 지나더라도 활성화가 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왜냐면 작품 내에서도 이 문신은 붙이는 것으로 저주를 대신 받아주는 용도로 쓰인 적이 없었거든.

하지만 내가 작품 내의 설정을 이용해서 저주를 지우는 방법을 찾아내자.

반대로 사람들은 비슷한 개념을 통해서, 이 오푸스를 활성화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발상이 좀 천재적이야...."

일단 아까 말했다시피 같은 종류의 문신은 여러 번 붙여도 중첩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종류가 다른 문신은 따로 다 중첩이 가능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문신을 중첩한 뒤에, 오푸스의 스티커를 붙이는 거다.

그럼 기존 문신들이 전부 하나가 되어서, 오푸스의 형태로 변화하고.

이제까지 활성화할 수 없었던 오푸스를 강제로 활성화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게 만드는 난이도가 어려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더 많은 저주를 알베도에게서 덜어줄 수 있어서 그런 건지.

이상할 정도로 유행까지 타고 있어서 되게 무서웠다.

'심지어 효과에서, 모든 저주가 발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약간의 강화도 있어.'

오푸스의 문신을 사용하는 알베도가, 기존의 문신들보다 강한 마력을 발휘했다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알베도가 오푸스의 문신으로 인해서 자신을 바쳐야 할 정도로 강력한 의미여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오푸스의 문신이 되는 순간 조금 더 저주의 강도가 강해진다고 했다.

그럼 아무래도 일상생활에 조금 무리가 있을 텐데도 신나서 만들어 내는 중이란다.

진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그래도 자기들이 선택해서 하는 것이다 보니, 그다지 논란은 되지 않고 있었다.

"모르겠다. 뭐, 여기부터는 내 손을 떠난 부분이겠지...."

나야 후속작 아이디어를 잘 짜서 재밌게 선보이는 것이 제일 중요한 거지.

저렇게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팬덤 문화를 지적하는 것이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럴 시간 있으면 후속작 설정이나 짜야지.

"음? 칼리, 이게 이번에 그리는 신작이야?"

"아니, 그냥 좀 설정화를 짜보고 있는 거야. 뭐, 마음에 드는 게 나오면 쓰겠지만."

이번 신작의 경우 어떤 컨셉을 잡을지 굉장히 고민하고 있었다.

오크와의 정사를 꿈꾸는 엘프 시리즈도 끝이 났으니, 연애를 메인으로 하는 신작을 낼까 고민하는 중인데.

아무래도 그냥 평범한 것은 재미가 없어서 아이디어를 열심히 떠올리는 중이었다.

"...오르카, 우리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작품을 굳이 한 방향으로 걸어가며 관람할 필요는 없다고.

직접 과거로 걸어 돌아가는 식으로 관람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응!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꽤나 행복한 일이니까."

"...진짜로 돌아가는 느낌을 보여주면 어떨까?"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현대에 유행하던 장르 중에는 '회귀물'이라는 것이 있다.

주인공이 어떤 시점에서 과거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할 기회를 얻는 장르로.

살아가면서 많은 후회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러모로 충족감을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이건 연애물에서 진지한 분위기를 다루기에 좋은 주제는 아니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히로인과 그 히로인을 구하기 위해 주인공이 시간을 반복하는 이야기는 어떨까?'

이건 회귀물보다는 루프물이라고 부르는 편이 정답인 장르인데.

간단하게 말해서, 여러 엔딩이 있는 게임이 있고.

그 게임에서 원하는 엔딩을 보기 위해, 계속해서 게임을 반복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거라면 연애가 중점인 상황일 때, 사랑하는 사람을 구한다는 부분이 꽤나 감성에 젖게 만들 수 있다.

'좋아, 이거 꽤나 괜찮은데....'

이쪽 세계관으로 녹여내기도 편한 소재면서, 확실하게 사람을 매료시키는 장르기도 하다.

그런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물론 이런 작품도 충분히 매력이 있지만, 더 나은 선택이 있지 않을까 해서 계속해서 고민해봤다.

"어?"

그리고 그런 고민 끝에, 괜찮은 아이디어 하나가 번뜩였다.

지금 이 세상이니까 사용 가능한 방법이 하나 있었네.

일단 이 세상의 모두는 작품에 진심이고, 작품에 참여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따라서 조금 불편함을 감수시키더라도, 그것으로 인한 재미만 있다면 다들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출판 시스템이 자연스레 단행본 시스템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단권의 책으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 만화계처럼 연재 시스템이라는 굴레에 속박될 필요가 없는 거지.

'이런 점들을 보면, 진짜로 게임을 구현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나?'

옛날에는 게임북이라고 불리는 종류의 소설이나 만화가 있었다.

물론 스마트폰 앱이랑 연동해서 하는 게임북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긴 한 것 같지만.

하여튼 유행 자체는 이미 옛날에 꺼진 오래된 장르였다.

게임북은 간단하게 말해, 책을 이용해서 마치 게임을 하듯 즐길 수 있게 만들어둔 것인데.

선택지가 존재하고, 그 선택지에 맞는 페이지로 이동하는 식으로 이야기의 전개가 바뀌는 형태의 책이다.

책으로 만들어둔 미연시라고 보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리라.

아까 루프물을 게임에 빗대서 표현했을 정도로.

미연시 같은 게임의 경우에는 언제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기존 경험을 사용해서 다른 선택을 하면서 나아갈 수 있다.

즉, 정말로 과거로 돌아가 결말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 것이 가능하다는 소리지.

그런 게임을 책의 형태로 구현한 것이 게임북이고.

지금 시스템이라면 충분히 나도 게임북을 만들어 낼 수 있잖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루프물이라면, 정말로 독자를 루프시켜서 참가시키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물론, 이건 자주 써먹기엔 피로한 방법이긴 해.'

같은 내용을 독자가 여러 번 읽어야 한다는 특징이 있어서.

루프를 돌면 돌수록 루즈한 감각을 느낄 가능성이 큰, 양날의 검이 되는 시스템인데.

하지만 지금 이 세상의 사람들은 누구보다 게임에 과몰입해서 진심으로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고.

그렇다면 그런 루즈한 감각조차, 루프를 통해 히로인을 구하려는 주인공에 몰입하는 요소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우연히 떠올린 것들을 통해서 도달한 결말이었고.

실제로 괜찮은 작품이 될지는 여러모로 더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게임북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는, 이번 신작에서 활용하기 괜찮은 것 같았다.

'죽음이 결정된 히로인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엔딩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

그 여정을 책을 통해 구현해서 모두가 즐길 수 있게 한다면.

이런 형식에 익숙하지 않은 모두한테, 꽤나 재밌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바로 떠오르는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루트 하나당 부여할 수 있는 분량이 매우 적다는 거다.

"흐음...."

일반적으로 미연시의 경우, 워낙 분기와 히로인별 스토리가 많아서.

텍스트양이 무지막지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긴 이야기를 담는다.

이걸 만화로 그린다면, 솔직히 책 한 권으로 표현하기에는 엄청 벅차지.

"아?"

그나마 마녀 아카데미에서 했던 것처럼, 단권 분량을 매우 길게 잡는다면 좀 가능성이 보이긴 할 것 같다.

물론 이렇게 하더라도 일반적인 미연시처럼 여러 히로인을 보여줄 여력은 없을 거다.

딱 하나의 히로인의 이야기를 하기에도 바쁠 테니까.

'하지만 이 부분은 오히려 타협해도 괜찮아.'

애초에 내가 이 방식을 생각해낸 이유 자체가, 죽음을 맞이하는 히로인을 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위해서니.

단일 히로인을 넣고, 그 둘의 사랑스러운 연애와 히로인을 구하기 위한 가시밭길만 잘 표현하면.

아슬아슬하게 분량을 맞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기본 개요는 이런 느낌으로 하면 되겠다."

물론 세부적으로 어떻게 해야 더 몰입감 있게 작품을 볼 수 있을지.

그리고 루트를 어떻게 짜야 깔끔하고 경제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내가 뭐 미연시 일러스트를 납품한 경력은 있어도, 미연시를 직접 구성해본 적도 없는 데다.

미연시를 비롯한 텍스트 어드벤쳐류 게임을 해보긴 했어도.

정작 지금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게임북을 실제로 경험해본 세대는 아니다.

아무리 비슷하더라도, 다른 플랫폼이기 때문에 오는 구현 방법에 대한 차이도 고려해야 하잖아?

그럼 이 부분에 대해서 따로 연구할 시간은 무조건 필요하겠네.

'연구할 부분도 많고, 루트별로 신경 써야 할 묘사도 늘어나니까 어렵긴 한데.'

사실 그러니까 재미있는 거 아니겠어?

솔직히 고생은 하겠지만, 그 고생을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누군가에게 준다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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