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화 〉 27권 발신자 불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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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게 아쉬워?"
"당연하지. 이제 좀 뭔가를 배우나 했는데, 겨우 여기까지로 기말고사 범위가 끝이라니. 왜 이렇게 적은 거야?"
"아무래도 일주일에 한 타임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이번 학기에서 가장 재밌게 듣고 있었던 강의라면, 단언하건대 '기록 마법 기초'와 '마법 만들기의 기초'였다.
애초에 내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유부터가 기록 마법을 써서 컴퓨터와 타블렛을 만들겠다는 이유였으니.
당연히 그것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강의인 저 둘이 흥미 대상이 될 수밖에 없지.
다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정작 그 '기록 마법 기초'가 일주일에 강의가 짧게 한 번뿐인 1학점짜리라는 거고.
기말고사까지 해서 전체 강의 범위를 훑어보더라도, 사실상 정말 간단한 실습 한 번 하는 것이 전부인 강의였다.
그래서 이제야 무슨 전등 하나를 실습으로 만들어보고, 시험으로는 문제 있는 마법진을 찾는 것만 하니까.
답답해서 뒤져버릴 것 같았다.
내가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마법 만들기의 기초'처럼 여러 가지 모듈을 알려주고, 그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재료도 좀 주고 그러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서 그냥 알아서 마력 화력 요구량을 보면서 알아서 맞춰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모듈 쪽은 일반 마법을 가늠하고 만든 거라서 그대로 사용할 수 없어서 변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변환 과정은 또 안 가르쳐줬다.
그래서 그냥 강의에서 테스트하는 모듈 몇 개만 알려주고.
지켜야 하는 규칙 같은 것만 알려주는, 엄청나게 감질나는 강의였다.
물론 강의 자체는 재밌는데, 솔직히 배우는 시간도 너무 적고 예습을 마구 하면서 진행할 기회도 없어서 아쉽다.
솔직히 실습할 때 한 번 말고는 기록 마법용 재료를 지급해주지 않는 게 말이 되냐고.
이게 기록 마법진을 그리는 데 사용하는 전용 재료는 물론이고, 마력석 등의 물건도 전혀 지급된 것이 없어서.
만약에 모듈을 좀 많이 알고 있어도 직접 해보려면, 학교 이외의 루트로 억지로 재료를 구해와야 하는 수준이었다.
솔직히 너무 감질나.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아, 신작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어?"
"음, 아직도 설정이 안 끝나서. 그래도 캐릭터는 대충 감을 잡았어. 보여줄까?"
"오, 뭔데?"
이번 신작은 조금 동양풍의 분위기를 내고 있는데.
그렇다고 뭔가 특별한 설정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고, 그냥 배경이 되는 지역이 수인족이 많아서 그렇다.
뭐, 수인족 히로인을 쓰려니까 자연스럽게 이런 느낌이 되더라고.
"수인이네?
"응, 고양이 수인이야. 이름은 노조미."
요즘 사용하지는 잘 않지만, 고대 수인족의 언어는 되게 특이한 느낌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이게 현재 언어는 사용하지 않아도, 수인족의 이름에서는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럴듯하게 하면서도, 내가 설정을 짜기 편하려고 수인들 쪽 고유 언어로 이름을 짰더니.
노조미라는 희망이나 소망이라는 뜻을 의미하는 이름이 생각이 나서 지어준 것이었다.
이번 작품의 히로인은 주인공의 관점에서 볼 때 그가 구해야 하는 '희망'이니까.
"그럼 살짝 날카로운 성격? 아닌데, 그림만 보면 되게 둥글둥글한 귀여운 느낌이야."
"어, 의도한 거야."
고양이 수인이지만, 평범하게 일반적인 고양이 느낌의 분위기가 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강아지에 가까운 성격을 가졌으니, 개냥이의 수인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지.
굉장히 주인공에게 애교도 많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잔뜩 보여줄 히로인이라고 보면 된다.
솔직히 그냥 강아지 수인으로 하면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감각이지만.
아무래도 본능적이지 않은 성격일수록, 오히려 더 강조되는 느낌이 들거든.
그래서 굳이 고양이 수인으로 골랐다.
"이거, 나도 애널 플러그 꼬리라도 하나 사와야 하나. 요즘 유행인가 본데."
"제발 그만둬."
니아 네가 그런 짓을 하면, 다들 남자라고 알고 있는 애가 애널 플러그를 끼고 나타나는 것으로 보일 거 아니야.
네가 남자가 아니라서 모르나 본데, 그건 남자들이 느끼기에 고역이란 말이야.
물론 나는 네가 여자라는 걸 아니까 상관없지만.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라."
"응?"
"우리, 칼리님이랑 산책할 때의 이야기죠."
"헉...!"
니아가 갑자기 목소리 톤을 확 바꾸더니, 귀여운 목소리로 저렇게 말하니까.
당장이라도 목줄 채워서 산책하러 나가고 싶어졌다.
뭔가 갈수록 애가 요염한 암컷이 되어서 나를 유혹하니까 무섭네.
"그나저나, 그럼 그것도 나와?"
"뭐가 나와?"
"수인이면 인간이랑 가장 큰 차이가 있잖아."
"가장 큰 차이?"
"발정기."
"어, 맞다. 그건 잊고 있었어."
그거 첫 섹스 에피소드 때 써먹으면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생각해보니까 수인족이 꼴리는 이유 중 하나가, 인간에게 없는 발정기가 있기 때문이었지.
그냥 어쩌다 보니까 요즘 꼬리 달린 애들을 자주 봤더니, 자연스럽게 애를 수인으로 설정해 버렸던 거지.
그런 세부적인 꼴림 요소는 좀 놓치고 있었다.
"좋아, 그건 채용해야겠네. 근데 사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긴 해서."
"뭐, 다른 부분도 도와줘?"
"아니야. 이건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거지."
나는 니아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혼자서 작품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가장 중요한 히로인의 기본적인 골자도 조성했고.
제일 중요한 해피 엔딩에 대한 스토리 라인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 정도로 고민을 하는 것은, 이 작품이 게임북이라서 그렇다.
게임북 특유의 선택지에 따른 결과 변화와 루프 연출이 들어가게 될 텐데.
이걸 과연 이쪽 세상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설득하기 좋을지 모르겠다.
"끄응, 너무 뜬금없이 돌아가면 몰입에 방해가 되는데."
작품 처음에는 이게 무슨 요소인가 싶다가.
나중에는 이것들이 루프를 통해서 뭔지 알아차리는, 아는 만큼 보이는 형태를 취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작품 내에서도 주인공이 루프를 돌고 있다는 암시를 만들어줄 장치가 필요했다.
"있지 오르카."
"응?"
"만약에 오르카가 과거에 했던 행동을 바꾸고 싶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그게 무슨 뜻이야?"
"만약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어떤 방식으로 과거의 너한테 충고를 할 거냐는 거야."
"...잘 모르겠는데? 편지라도 쓰지 않을까? 예전에 내가 너한테 썼던 것처럼."
생각해보면 은근 오르카는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 평생 나를 모시는 기사가 되겠다면서 러브레터 비슷한 걸 내리밀었으니까.
물론 그건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러브레터가 아니라 정말로 기사가 되고 싶다는 뜻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생각이 꽃밭이라서 그런지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편지라...."
생각해보면 이런 시간 여행계열 작품 중에서, 이메일을 과거로 보낸다거나 하는 식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것도 있었지.
뭐, 이곳에는 휴대폰이라는 개념이 없으니까 완전히 생소한 개념이지만.
애초에 이메일이라는 것이 편지를 인터넷으로 보내는 것이니, 편지를 이용해도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소재였다.
보낸 사람을 알 수 없는 '발신자 불명'의 편지가 주인공한테 도착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
하지만 내부에 편지지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거지.
혹은 편지지는 없고 편지 봉투만 날아왔거나.
'그런 분위기로 시작하면 느낌 있긴 하겠네.'
물론 그것이 미래에서 온 편지라는 것은, 초반에 작품을 읽는 모두는 알 수 없다.
그저 아무것도 모른 채 책을 읽어나가다가, 히로인을 잃어서 배드엔딩을 맞이하고 나서야 저 장치가 동작하는 거지.
마지막 엔딩에서 주인공이 후회하며 적어 내린 편지를 보고, 딱 그 편지를 받던 시기로 되돌아가면?
"괜찮네. 편지 좋다. 오르카 고마워."
"나는 딱히 아무것도 안 했는데?"
"소재 짜는 데 도움이 되었거든."
그래서 이제 슬슬 작품의 세부적인 부분들을 들어가려고 고민을 시작하려는 순간.
주인공에 대한 설정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너무 미연시 생각하다가 주인공 설정을 생각도 하지 않았네.
이게 아무리 미연시처럼 선택지를 고르는 게임북이라지만.
기본적으로 만화의 형태를 띠고 있는 만큼 주인공을 미연시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형태로 그려낼 수 없다.
그리고 애초에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고 설정이 대충이어도 될 리가 없고.
'자, 정신 차리고 보자. 일단 주인공이 구할 히로인이 의미하는 게 희망이지?'
그렇다면 주인공을 초반에 조금 불행한 캐릭터로 설정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서 그 불행으로 괴로워하던 주인공을 유일하게 구원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던 것이 노조미인 거지.
그렇기에 노조미의 '희망'이라는 의미가 강조될 수 있을 거고.
"오케이, 그럼 이제 인간인 주인공의 이름도 짜야 하네. 이름 형식은 좀 이쪽이랑 가까운 것이 나을 테니까.... 레터 정도로 할까?"
되돌아가는 것을 반복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면서.
이 작품의 주제였던 '편지'로도 해석할 수 있는 발음이니.
조금 중의적인 느낌까지 들 수 있는 괜찮은 느낌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캐릭터는 나쁜 일을 자주 겪는 만큼, 조금 소심하고 자신이 없는 느낌으로.
밝은 분위기인 노조미가 항상 다가와서 달려들고, 그것에 당황하면서도 행복감을 느끼는 캐릭터로 가면 될 것 같다.
어디까지나 처음에는 그런 분위기인 거지.
'그런 성격인 주인공이, 루프를 반복하면서 노조미를 구하려고 하면서 닳고 닳아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것.'
이것도 이런 장르의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소심하고 자신이 없던 캐릭터지만, 노조미를 구하기 위해서는 그런 사소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목숨까지 가볍게 내던지는 간지폭풍 사나이가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런 종류의 작품에서 최고의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연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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