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138화 (138/229)

〈 138화 〉 28권 ­ 미래를 향한 불길(2)

* * *

엔딩을 수집할 때 떼어내던 스티커처럼, 페이지의 반을 차지하는 정도의 스티커가 아니라.

페이지 전체를 채우는 듯한 스티커가 양쪽 페이지를 덮어서 사실상 보이는 2페이지 전체를 덮고 있는 스티커였다.

아니, 애초에 이게 스티커라는 내용을 보지 않았다면 평범한 빈 페이지라고 생각할만한 모습이었다.

그 스티커를 조심스럽게 뜯어내자, 자연스럽게 두 개의 페이지의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곳에는 컬러로 그려진 그림 한 장이 양쪽 페이지를 이으며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여성은 그것을 보자마자, 방금 노조미를 구하고 나서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오열하기 시작했다.

"진짜, 진짜.... 다행이야...."

페이지 2개를 꽉 채운 컬러 그림에서는 노조미와 레터는 물론이고.

둘의 아이로 보이는 자그마한 아이가 노조미의 품 안에 안겨있는 그림이었는데.

드디어 노조미의 죽음을 극복하고, 미래에 도달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녀가 고생하면서 몇 번이고 다시 하려고 했던 시간이 스쳐 지나가며.

실감이 나지 않던 노조미를 구했다는 사실이 와닿기 시작하고.

이 예쁜 그림 한 장이, 이제까지 힘겨웠던 그 시간을 보상해주는 것 같아서.

그녀는 한참을 그 그림을 보면서 훌쩍였다.

"아, 배고파...."

노조미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 말고는 아무것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 원인인지.

지금 시간은 거의 늦은 밤이 되어가는데도, 오늘 하루 한 끼도 먹지 않고 이것에만 집중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후, 이 그림 보면서 식사나 해야지."

솔직히 지금은 아주 무미건조한 빵만 씹어먹어도 맛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오랜만에 몸을 일으켰다.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

역시 다시 읽어봐도, 이 후반부는 적절하게 압축을 잘한 것 같네.

동아리 방에서 다 같이 '발신자 불명'을 읽는 중에.

나는 다른 애들이 초반부를 보는 동안, 편지의 퍼즐을 풀어낸 뒤에 진입하는 후반부를 읽고 있었다.

사실 이 후반부에 분량을 투자하는 것에 꽤나 고민을 많이 했었기에 가장 걱정이 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분량을 압축하려고 했다고 해도, 수집해야 하는 엔딩이 총 8개나 되는 미연시를 만들었으니.

그 분량을 전부 다 챙겼다간, 책 한 권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는 상황에 도달했을 것이 분명했고.

그렇다고 지금보다 더 디테일을 떨어트리면 내용의 품질이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초반부에서 나왔던 내용과 비슷한 전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초반의 경우 내용 스킵 없이 비슷한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엔딩을 보게 되어 있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세부적인 내용이 머릿속에 남게 되고.

그러니 같은 부분을 전개할 때, 아주 중요한 부분이랑 레터가 기억을 되찾으면서 바뀌게 되는 부분만 묘사하면.

자연스럽게 기존 기억이 떠오르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니.

모든 것을 묘사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분량을 줄여서 전개를 할 수 있게 된다.

조금 걱정스러운 부분인데, 일단 내가 느끼기에는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아, 이건 내가 그렸지만 좀 꼴리네....'

후반부에 선택지에 따라, 레터가 멘탈이 많이 깨진 상태에 돌입할 때가 있다.

바로 트루엔딩의 시작점인 희생 엔딩에 돌입하게 될 때인데.

이때는 사실상 후반부에서도 몇 번 실패하고 들어오길 예측하고 만들어둔 파트다.

하여튼 그렇게 멘탈이 깨진 상태인 레터를 본 노조미는, 어떻게든 위로를 해줘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뭐든 하려고 하는데.

이때 처음으로 자신의 꼬리를 만져도 된다고 말한다.

꼬리가 워낙 민감해서, 초반부에 빛 그 자체로 나오던 노조미도 만지지 말라고 했던 것이 꼬리인데.

그 꼬리마저 만져도 된다고 할 정도로 레터가 위태롭게 느껴졌다는 거지.

그리고 가장 강력한 건, 이 이후에 희생 엔딩을 마치고 최종 루프에 돌입했을 때.

노조미가 편지를 쓰게 되면서, 레터는 모든 기억을 잃고 초반부의 모습으로 돌아가는데.

이때 노조미는 자기 죽음을 각오한 만큼, 최대한 레터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을 다 해주려고 한다.

그때 해주는 게 바로 섹스 중에 나오는 새로운 체위인 꼬리 대딸인데.

꼬리가 워낙 민감한 부분이라, 정작 대딸을 해주는 노조미가 가버리면서 동시 절정을 하는 게 개꼴리는 포인트다.

가끔 이렇게 수인 중에 꼬리가 민감한 사람이 있다고 하길래 꼴림 포인트로 활용했었다.

'아무래도 이쯤에 스트레스가 높을 테니까, 이런 부분으로 좀 완화하려고 한 것도 있지.'

특히 후반부의 경우에는 이런 섹스 파트도 상당수가 스킵되어 있는데.

그걸 이 최종 루트에서 채워주는 느낌이 있다.

슬슬 이쯤이 되면 노조미를 구하기 위해 몇번이고 도전한 독자들한테 노고의 선물을 해줘야 하니까.

'그걸 위해서 맨 뒤에 컬러도 넣고, 스티커로 가려둔 거지만.'

사실 이 게임북을 만들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일러스트 수집 형태의 디자인을 하지 못했던 거다.

이 부분은 분량의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간에 컬러 일러스트를 넣지 못하기에.

일러스트를 보고 수집하는 부분을 굳이 구현하기에는 애매했기 때문인데.

그래도 마지막 엔딩에는 이렇게 일러스트를 수집하는 느낌을 주면서.

노조미를 구했다는 것과 보상의 느낌을 강하게 주기 위해서 유사한 시스템을 채용하려고 했다.

그걸 위해서 컬러를 유일하게 넣을 수 있는 맨 뒤쪽에 넣은 다음에, 스티커로 가려놨다가 최종 엔딩을 보면 뜯어보도록 유도한 거다.

그리고 그 일러스트의 내용은 노조미와 레터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내용이므로.

이 작품을 하면서 가장 독자가 원하게 되는 장면이기도 해서.

그만큼 효과가 강렬할 거라고 예상하는 중이었다.

"왜, 왜...!"

그 와중에 다른 동아리 멤버들은 초반부에서 절찬 깨지는 중이었다.

저 반응을 실시간으로 직접 보니까, 내가 너무 심하게 하드하게 짰나 싶긴 하네.

너무 작품을 매운맛으로 밀고 나갔나?

"구할 수 있어....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나마 향초의 향을 캐모마일로 선택해서, 불안감을 줄여주고 심신의 안정을 가져다주려고 했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별로 효과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하긴 겨우 향 때문에 진정하기에는 노조미가 죽는 장면들이 너무 충격적이긴 하겠지.

"제츠가 뭔데, 아악!"

"...저주 너무한 거 아니야?"

"칼리, 나 진짜 노조미 구하는 거 없으면 화낼 거야."

다들 점점 싸늘해져 가는 느낌이라, 나는 슬쩍 간식이라도 사 오겠다면서 동아리 방을 나갔다.

아마 저 정도면 자칫 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역시 내 정체를 아는 사람이 있다는 건 위험하다니까?

'그나저나 제츠 부분이 잘 전달되었을는지 모르겠네.'

제츠는 이번 발신자 불명의 메인 빌런으로, 저주로써 동작해 노조미를 죽이는 역할을 한다.

세부 설정으로는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주기적으로 달라붙은 이를 죽여야 한다는 그런 게 있지만.

사실 그건 뭐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주인공인 레터와 싸우고, 어떻게 살아남다가 어떻게 패배할지였다.

그래서 그 부분의 경우에는 편지가 작품의 주요 소재다 보니, 그거랑 엮어서 퍼즐을 푸는 것과 해피 엔딩의 조건일 때 모두 관련이 있게 만들었었지.

그걸 위해서 불에 약하다는 설정이 생겨났고.

사실 처음에는 저런 설정은 전혀 없었고, 그냥 노조미를 죽이는 저주라는 설정부터 시작했었는데.

이때 '제츠'라는 이름을 처음 결정했다.

그 이유가 수인족 언어로 '제츠'는 끊어낸다는 뜻이 있고, '노조미'가 희망이라는 뜻이므로 합치면 '절망'이 되기 때문이었다.

즉, '제츠'를 지우는 것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미래를 되찾는다는 컨셉을 생각하고 지었던 이름이다.

실제로 이 부분은 추가적인 설정이 들어간 이후에도 잘 들어맞았다고 생각한다.

저주라서 뭔가 대사가 나오거나 하지는 않지만.

최대한 검은 안개처럼 표현할 때는 살아있는 것처럼 살짝씩 감정 표현 정도는 넣으려고 했었다.

저주긴 한데 약간의 의지와 지능이 있는 녀석이니까.

"좀 먹으면서 해."

"지금 쿠키가 문제가 아니라니까? 노조미를 구해야...."

"먹고 힘내야 구하지. 그런 소리 하면 노조미한테 혼날걸?"

"그, 그건...."

셋 다 온종일 발신자 불명에 빠져 있는 걸 보고 있으니.

그걸 만든 사람으로서는 정말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상태였다.

솔직히 내 작품을 저렇게 열심히 즐기고 있는데, 기분 좋아서 이렇게 다과 준비 정도야 무조건 해줄 수 있지.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다들 마지막 엔딩인 '미래를 향한 불길'에 도달하기 시작했고.

토요일인 오늘 하루를 죄다 탕진해서 작품을 본 모두에게 감사하며.

동아리 방에서 쓰러져 잠들기 시작한 모두에게 담요를 덮어줬다.

혹시나 해서 준비한 거였는데 다행이네.

"담요라, 노조미 담요를 만들지 못하는 게 아쉽네."

솔직히 담요나 베개로 이루어진 굿즈를 내기에 딱 좋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히로인이었는데.

정작 그게 안 된다는 점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뭐, 이건 그냥 따뜻한 향초로 만족해야 하는 부분이겠지.

향초도 퍼즐에 불꽃이 필요한 부분이랑, 따뜻한 노조미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고른 거니까.

"노조미...."

"진짜, 오늘따라 엄청 뿌듯하네. 얘들만 이렇게 즐겨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짜 많은 사람이 이렇게 즐겨줬으면 행복하긴 하겠다."

솔직히 이거 만든다고 기말고사 성적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시간을 때려 박은 데다.

처음이라서 워낙 고생했던 부분도 많고, 장르 특성상 고생을 해야 했던 점도 많아서.

잠까지 포기해가며 개월 단위로 고생을 했었는데.

저렇게 하루를 다 때려 박아가면서 작품을 즐겨주는 걸 직접 보니까.

오히려 나야말로 모두에게 보답을 받는 느낌이라서 굉장히 기뻤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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