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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141화 (141/229)

〈 141화 〉 28권 ­ 미래를 향한 불길(5)

* * *

"...원래라면 동아리든 개인이든 책임을 물어야 하는 부분이지만. 학교에 봉사하고 있는 동아리라서 넘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로자리아와 뜨거운 밤을 보내고, 아침에 아카데미에 도착했더니.

금방 상황을 알아차린 학생회한테 잔뜩 혼났다.

그나마 학생회에 룸메이트가 서로 있어서 연줄이 있는 것인데다, 우리 동아리 힘이 있는지라 어떻게든 넘어가긴 했지만.

또 그랬다간 어림없을 거라는 느낌이네.

"잔뜩 하고 왔어?"

"크흠...."

그리고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니아에게 들은 것이 바로 저 소리였다.

근데 진짜로 잔뜩 하고 와서 뭐라고 말을 못 하겠네.

내가 그래서 아무래도 그게 티가 나냐고 물었더니, 사실상 전교생이 알고 있을 거라는 답변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다른 것도 아니고, 지금 교내에서 가장 유명한 임산부 천재 마법사가 외박했다잖아. 그 배를 부르게 한 주인공이랑 같이."

"가십거리로 완벽하긴 하네."

"남자애들 사이에선 두 가지로 의견이 갈리더라."

"뭐로."

"그렇게 작은 애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랑, 존나 예뻐서 부럽다로 나뉘던데."

"오로지 가슴만 보는 친구들이 있네. 후, 로자리아 엉덩이가 얼마나 대단한데."

"오호, 내 옆에서 다른 여자 칭찬?"

"꼬우면 가발 끼고 와."

평일부터 개처럼 박아줄 테니까.

슬슬 강의들이 다 끝나가니까 실제로 가능한 소리긴 했는데.

그래도 오늘 학생회 일이 있다고 했었던 것 같으니, 정말로 그렇게 어울려주지는 않을 터다.

"후우, 도발 당하니까 자궁이 두근거리네."

"그 목소리로 그런 말 하지 마. 뭔가 기분이 더러워."

"그럼, 이 목소리는?"

"그건 오케이."

아무리 니아가 여자라도, 남자 목소리를 따라 하는 상태로 그런 대사를 하면 좀 그렇다.

그나저나 쟤는 은근 다른 남자애들이랑 그런 이야기 많이 나누나 보네.

나는 동아리 애들 말고는 슬슬 다 친해진 애들이 사라져서 소통이 잘 없는데.

"그건 네가 맨날 동아리로 직행하고, 공부만 하고, 만화만 그리니까 그런 거잖아? 시간을 투자를 안 하는데 어떻게 친해져."

"너도 별 차이 없잖아."

"나는 학생회 일로 부딪히니까 자연스럽게? 뭐, 그다지 친하진 않아."

"흐음.... 그렇게 보니까 확실히."

"그래서, 갑자기 그림을 그리는 거 같은데. 그건 뭐야?"

"아, 이거."

어제 이야기를 들은 만큼, 시간이 날 때 바로 시작하려고 했던 부분이었다.

향초의 다른 향기 버전을 위한 다른 노조미의 일러스트를 그려야 하거든.

각기 효능이나 유명한 꽃말 같은 걸 활용해서 컨셉을 짜고, 그것에 맞게 그릴 생각이었다.

"아, 그거구나. 나오면 종류별로 사야겠네. 저번에 써보니까 향초도 은근 괜찮더라."

이런 향초를 피워놓고 쉬는 걸 아로마 테라피라고 했었나?

하여튼 잘 모르겠지만, 가끔 정신이 없으면 이런 거라도 틀어놓고 향을 맡으면 진정되긴 하더라.

뭐, 그래도 엄청 급한 건 아니니까 시간이 날 때마다 작업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날 깜짝 놀랐어. 니아답지 않았잖아."

"아니, 그럴 만하잖아. 이건 네가 잘못한 거지...."

발신자 불명이 출간되고, 다음 날 아침까지 뻗은 애들을 보살펴준 다음, 기숙사에 돌아왔는데.

기숙사에 돌아오니까 밤새면서 결말을 보고는 울고 있는 니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 가슴팍을 때리면서 계속 울던 게 되게 귀여웠지.

"크흠,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

"아, 벌써 시간이 그래? 정신이 하나도 없었네.... 이건 그럼 밥 먹고 와서 해야겠다."

최근 들어 여러모로 바쁘게 살아서 그런지, 시간이 되게 빠르게 가는 것 같다.

정신 차려보면 시간이 삭제된 기분이야.

아니 솔직히 왜 벌써 겨울 방학 직전인지 모르겠다니까?

하여튼 그런 와중에 오늘은 아침부터 학생회에 불려가서 혼났으니, 더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고.

"아침은 먹었어?"

"아니? 일어나보니까 꽤나 애매한 시간이긴 했는데, 로자리아가 강의 들어가야 해서 곧바로 왔지."

정작 이쪽 아침 식사 시간은 끝났던 타이밍이었고.

근데 그렇다고 로자리아를 혼자 돌아가라고 할 수는 없잖아.

평소에도 그건 매너 없는 행동인데, 심지어 임산부한테 그런 취급을 하면 진짜 쓰레기지.

"그래놓고 바로 작품부터 그리겠다고 하는 너도 참...."

"그림 그릴 때는 덜고픈데."

"역시 제정신이 아니네."

아니, 이건 진짜로 사실이라니까?

왜냐면 진짜로 돈이 없어서 아무 커미션이라도 그려야 하는 상태면, 그림 못 그리면 굶어 죽거든.

그래서 살려고 그리다 보면 배고파도 그림은 그려지고, 그렇게 집중하다 보면 배가 덜고파져.

경험담이다.

"하여튼간에.... 가자, 내가 널 안 챙기면 누가 챙기냐."

"맞지. 니아는 아카데미에서 거의 내 마누라지."

"....... 대체 바깥에선 어떻게 지내는 거야?"

"로자리아가 대신해줘."

"도대체 넌...."

혼자 살 때도 정상적으로 살긴 했어.

대부분은 정신 차려보면 하루에 한 끼만 먹고 그래서 그렇지.

아니면 대충 집어먹을 빵 같은 것 위주로 사놨다가 먹던가.

아마 지금 아카데미에서 밥이 나오니까 이 정도일걸?

최소한 아까워서 먹으러 가는 경우가 많잖아.

'정작 여기서도 집중 흐트러진다고 몇 번 굶긴 했는데....'

솔직히 먹는 것보다는 그림 그리는 게 우선이지.

밥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그림은 그리면 살 수 없다.

"그거 맞냐...?"

니아는 질린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휘젓더니.

저러니까 마법은 잘 모르는 상태로 그림 하나는 최고를 찍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칭찬인가?

"어, 잠시만."

식당으로 가는 길에, 다른 쪽에서 어떤 여자애가 같은 학년의 남자애에게 편지를 내미는 걸 본 것 같아서.

슬쩍 니아를 당겨서 몰래 그 장면을 같이 보자고 꼬드겼다.

이거 설마 내가 어제 들었던 그 고백 방식인가?

벌써 아카데미에도 유행이 들어왔나?

'둘 다 마법부니까. 아마 남자애도 저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

여자애는 향초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고.

남자애는 꽤나 당황한 표정으로 천천히 편지를 읽으면서, 여자애를 바라봤고.

마지막에는 그 향초에 편지를 올려서 불을 붙여 태워버리고는.

양초를 들고 있던 여학생을 껴안아 줬다.

"저거 설마 발신자 불명 때문에 생긴 유행인가?"

"알고 있어?"

"이틀 전 쯤에 남자애들 사이에서 돌던 이야기야. 저게 진짜로 되는구나...."

나에게는 편지를 태워버리는 것이, 처음에는 고백을 차버리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잘 보면 그 행동이 좀 경건하고, 진중한 듯한 모습이라.

은근하게 다른 느낌으로 고백을 받아주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뭐, 태워버린 뒤에 둘이 부둥켜안는 부분부터는 그냥 받아주는 그런 거지.

"근데 조금 무드 없긴 하네. 원래 어디 괜찮은 장소라도 잡고 해야 할 텐데."

"너 모르는구나?"

"응?"

"아카데미 저 위치 말이야. 원래 고백 많이 하는 곳이야."

"...진짜?"

왠지 구경하는 사람이 많더라니.

내가 몰랐을 뿐이지, 저 애매한 듯한 장소에 무슨 전설이라도 있는 모양이네.

근데 저기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전설이 생길만한 껀덕지가 있나?

"바닥에 잘 보면 부러진 검 조각이 있을걸?"

"그래? 오, 그러네...?"

바닥에 검이 박힌 채로 부러진 듯한 느낌인데.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부러진 칼 부분이 닳아서 바닥과 완전히 평평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아무도 왜 있는지는 모른다는데."

"모르는 거야!?"

"하여튼 저런 수상해 보이는 검이 있으니까, 소문처럼 이야기가 나왔다더라. 저 검은 마지막까지 저 자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던 검사의 검 조각이라고."

그런 이야기가 검술부에서 시작되었다가, 이제는 마법부도 다 아는 사실이 되었다고 한다.

좀 미친 이야기긴 한데, 워낙 오래전부터 선배들로부터 내려온 이야기라.

이제는 그냥 자연스럽게 고백 장소 하면 여기를 떠올린다고.

"부러진 검이라...."

확실히 사람 뽕차게 하는 스토리긴 하네.

처음 생각한 사람이 되게 꼴잘알이었네.

하긴 그러니까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가 퍼져서, 이렇게 학교의 명물 같은 느낌이 된 거겠지.

나중에 작품에서 저런 분위기를 써먹어도 꽤나 괜찮을 것 같다.

그럼 실제 모티브가 되는 곳이 성지가 되어서 사람들이 놀러 오고 그럴 거 아니야?

지금 아나루 온천이 대박이 난 것처럼.

"너는 아카데미에 사귀는 사람도 많으면서 이걸 몰라?"

"...대부분 야한 짓 하다가 고백 처리를 해버려서."

"무드 없기는 자기가 제일 심했네."

"크흠...."

그렇게 말하니까 좀 찔리긴 한다.

생각해보니까 이제 로자리아는 곧 내 아이도 낳아주는데.

제대로 된 이벤트를 해줘야 하지 않나 싶긴 하네.

매번 로자리아만 야한 이벤트로 나를 즐겁게 해줬지, 나는 엄청 무드 있는 그런 행동을 해준 적이 없는 것 같아.

"이번 방학에는 좀 바빠지겠네."

"뭐가?"

"아무것도 아니야."

작품도 작품인데, 역시 이번 방학에는 제대로 이벤트를 해줘야겠지.

생각해보면 로자리아한테 고마움이랑 미안함은 느꼈으면서, 그걸 갚아줄 만한 이벤트는 전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쓰레기가 따로 없네.

안 그래도 이번에 로자리아의 본가에 가서 대가리 박기도 해야 하고.

여러모로 진지하게 우리 관계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봐야 하는 타이밍인데.

그것에 대해 로자리아도 많은 고민이 있어 보였으니.

그런 로자리아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이벤트는 있어야겠지.

"...니아, 니아는 어떤 프러포즈가 가장 분위기 있다고 생각해?"

"잘 모르겠네. 나는 개인적인 소망이 있긴 한데, 그거야 어디까지 내 취향인 거고. 사람마다 다르지 않을까?"

"사람마다 다르다...."

"평소에 말하던 거나, 아니면 뭐 표현하던 부분이 있겠지."

"아?"

생각해보면 내가 맨날 내 취향을 만화에 넣었다가, 애들한테 그거로 공략당했던 것처럼.

나도 로자리아가 그린 만화를 보고 로자리아의 취향을 공략하면 되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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