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144화 (144/229)

〈 144화 〉 29권 ­ 너만을 위한 그리고 영원을 향한(3)

* * *

"대충 이런 느낌이면 되려나."

"응? 뭐야. 노조미네? 발신자 불명은 끝난 거 아니었어?"

"추가 향초 디자인이야."

로자리아에게 줄 선물로 SD 그림체의 만화를 그리느라, 이거 작업을 전혀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었다.

근데 아무래도 아카데미가 아니라 여기서 작업을 제대로 늘어놓고 하니까 빨리하긴 했네.

소형이라 그림의 디테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실물 유채화 그림이 많이 익숙해진 결과였다.

'이러다가 컴퓨터랑 타블렛을 만들기 전에, 내가 아날로그 그림에 익숙해지게 생겼네.'

하여튼 캐모마일 말고도 다른 향이 좋은 꽃들이 꽤나 있었는데.

그 꽃들의 주제에 맞춰서 다른 느낌의 노조미 일러스트를 그리는 작업이었다.

그럼 이제 그 향기에 맞는 향초를 디자인하는 것에 쓰이는 거지.

"어? 그거 다른 것도 나오는 거야?"

"편지지랑 이거랑 고민해봤는데, 이미 작품이 편지지 느낌으로 해서 팔기도 했고, 그렇게 편지지로 뽑을 여력도 없대서 향초 종류를 늘리는 쪽으로 했어."

아무래도 향초에 들어가는 컬러 그림의 인쇄는 고급화 방식이라 여유가 좀 있지만.

편지지의 경우 단색으로 디자인을 해서 잔뜩 뽑아내는 식이라서 일반 인쇄 방식으로 대량을 만들어 팔아야 하고.

그 부분은 지금 한창 만화를 복사하느라 바쁜 공장 특성상 불가능했다.

"여력이 없을 정도로 잘 나가는 거야?"

"거의 난리라더라...."

혹시나 해서 오랜만에 상황을 확인하러 갔었는데, 여전히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고 있어서 비슷한 상황이라고 했다.

아니 대체 이번엔 얼마나 내 작품에 빠진 사람이 많으면, 이걸 이렇게 까지 입소문을 태우는 거야.

조금 무섭네.

"그나저나 로자리아 너도 계속 작업 했었지. 그게 이번 신작이야?"

"응, 원고는 다 나왔는데. 읽어볼래?"

"그럴까...."

생각해보면 방학 직전부터 방학 직후까지 쉬는 것 없이 너무 바쁘게 살아오긴 했지.

오늘 하루 정도는 로자리아가 그린 신작 만화나 보면서 쉬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로자리아 취향 알아본다고 다시 읽었었는데, 그것 때문에 다음 이야기가 꽤 궁금해져 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보면 딱 좋은 타이밍인가?

"오, 드디어 최종전이네."

로자리아에게 미리 들은 바만 생각해도, 그것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일단 내가 알기로 이 작품은 핑크빛 일기장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고.

아직 주인공 커플인 우유와 딸기를 괴롭히던 근본적인 적을 처리하지 못했으니까.

"이상해?"

"아니. 좋은 느낌인데? 잠시만."

아무래도 전작은 이 메인 빌런보다는 서브 빌런인 크림을 처리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고.

따라서 그런 부분에서 이걸 메인 소재로 다루던 2번째 작품 '핑크빛 공유 일기장'의 이야기를 살짝 다시 언급해주고 시작한다.

어떠한 상황이고, 어떻게 우유가 딸기를 구했는지까지 말이지.

'구성은 참 머리 잘 쓴다니까.'

로자리아가 오랜만에 그린 만화인데도 감이 전혀 죽질 않았다.

솔직히 벌써 재밌고 흥미진진한 느낌이 확 다가오는데?

조금 전까지 일러스트 때문에 밤을 세우면서 작업해 제정신이 아닌데도, 그런 피곤한 상태에서도 정말 재밌게 다음을 읽는 것에 몸을 던지게 될 정도였다.

"은근 위험하기도 하고, 어떻게든 이겨내기도 하네."

기본적으로 작품의 스타일은 지난 작품 이후에, 다시 심해지기 시작한 고난을 이겨내고 사랑을 증명하는 이야기였다.

살짝 기존과 장르가 바뀌는 느낌이 훨씬 강해지긴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런 느낌의 작품도 되게 맛있어서, 불만을 터트릴만한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솔직히 이미 전작에서 크레이지 사이코 레즈 스릴러를 찍어버려서, 이 정도면 적절한 수준 같아.

"오...."

그리고 그 망할 적을 쓰러트렸다고 생각하게 되는 사건이 중간에 발생하는데.

초코라는 여자아이를, 마치 도구처럼 사용해서 그런 현상을 발생시키고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초코를 구출하는 것에 성공하는 내용이었다.

"얘도 귀엽긴 하네."

특히 어디 오르카라도 모티브로 삼았는지, 외모는 어른인데 하는 짓이 좀 아이 같아서 귀여웠다.

납치되어서 이용당한 기간이 길어서 그런지. 실제로 인간 세상에서 배웠어야 하는 상식이 여러모로 결여된 상태인 거지.

이런 설정에서는 굉장히 넣기 좋은 국룰 캐릭터라서 적절해 보였다.

'오....'

역시 로자리아 작품을 보다 보면, 나는 제대로 꺼내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튀어나오는 개념들이 무서울 정도로 현대적이라 신기했다.

로자리아가 천재라서 나오는 건지, 아니면 우연히 그렇게 되거나 원래 사람이라는 것이 다 생각이 비슷한 건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이번에 나온 '세뇌 타락은 했지만 본래 착한 녀석'이라는 개념의 적은 꽤나 괜찮았다.

바로 조금 전에 구하는 것에 성공했던 초코가 이 개념을 도입한 캐릭터였는데.

사실은 초코를 납치해서 이용하던 진짜 보스가, 초코를 미리 세뇌해놨다가 구출된 초코가 모두의 뒤통수를 치게 하는 전개였다.

다만 이 세뇌된 초코가 하는 말투나 이런 부분은 제대로인데, 디자인 부분에 그게 언급되지 않은 게 조금 아쉽네.

"디자인?"

"응, 그걸 드러냈을 때 외모에도 변화가 있으면 좋겠어."

평소에는 아무것도 없는 연약한 소녀인데, 배신하는 상태가 되면 악마의 상징인 뿔과 꼬리가 생긴다거나.

그런 디자인적인 분위기 변화로 색기를 추가하거나 해서 꼴리는 묘사를 넣어야.

그 캐릭터가 강제로 배신하는 당위성도 더 챙길 수 있으면서, 그걸 풀어서 원래대로 돌리는 뽕맛도 챙길 수 있다.

'그런 묘사조차 없으면, 그냥 암 걸리는 배신자 년이지.'

아무리 세뇌당해서 억지로 배신한다지만.

그것을 예쁘게 포장하는 것도 만화에서는 중요한 법이니까.

일단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아하...."

"물론 그 디자인은 네가 알아서 해야겠지만, 일단 그런 변화를 주는 설정이랑 변화는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지 않아?"

"그러네. 역시 칼리는 이런 부분에서 엄청 머리가 좋네. 이럴 때마다 시우화가가 옆에서 도와준다는 게 실감이 난다니까...."

"아니, 그렇게 말하면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하여튼 그것 말고는 전체적으로 재밌는 작품이었어."

그리고 이게 항상 느끼는 건데, 애가 좀 멍청하게 느껴지는 빡대가리 캐릭터는 귀엽다.

그래서 그런지 꽤나 괜찮은 존재감을 풍기면서 작품에 스며들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치고는 매력을 잘 뽑아냈어.

"오케이, 그 부분은 조금 더 고민해볼게."

"아, 오랜만에 만화 읽으니까 재밌네. 슬슬 저번에 사다 놓고 내버려 뒀던 게임북들이나 읽을까?"

"아, 칼리. 게임북 하니까 생각났는데."

"어? 어."

"체스 같은 것도 게임이지?"

"...그렇지?"

게임북에서 쓰는 게임의 개념과 가장 가까운 것이 체스 같은 보드게임 아닐까?

생각해보면 로자리아는 체스를 되게 좋아했었지.

나도 그렇게 못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로자리아는 진짜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서 너무 압도적으로 잘해서.

연속으로 여러 판 털리고 하기 싫어질 정도의 실력 차가 났던 기억이 난다.

"게임북이 결국 일회용이긴 하지만, 이런 체스처럼 판단하고 그게 영향을 미쳐서 결과를 미치는 거잖아."

"맞아. 크게 따지면 체스랑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거지."

"그렇다면 말이야. 일회용 말고 다회용으로 만들면 안 되는 거야?"

"...상관없지. 애초에 체스도 누군가가 게임과 규칙을 만들어서 생겨난 거잖아?"

물론 게임북이 아니라 평범한 보드게임에 가까워지겠지만.

생각해보니까 이 세상에서 보드게임이라고 한다면,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 놀이 정도였나?

체스 같은 추상 전략 게임이나 주사위 사용하는 운빨 게임 같은 것들이 종족별로 몇 개 기억난다.

아마 트럼프 카드 정도까지는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걸로 어떤 게임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럼 정해지지 않은 이야기를 조금씩 진행해서. 매번 다른 시작과 결말을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으면. 마치 체스가 하나의 전쟁을 그려내는 이야기인 것처럼, 만화의 이야기를 그렇게 만들 수 있지 않아?"

"못할 건 없다고 보는데...."

추리형 보드게임 중에는, 게임북처럼 한 번 플레이 하면 다시 플레이를 못 하는 것도 있겠지만.

매번 범인이나 그런 것들이 바뀌는, 다회플레이가 가능한 것도 있다.

어렵게 갈 것이 없이, 정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맨손 보드게임인 '마피아'가 그러한 형태다.

"근데 그건 왜?"

"칼리 네가 '시간을 걷는 길'을 '오크와의 정사를 꿈꾸는 엘프는 내일도 답답하다'와 별개로 따로 만들었던 것이 떠올라서."

마치 게임북이 아니라 따로 보드게임을 만들 기세였다.

즉,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동일 IP의 보드게임을 직접 만들어서 팔아먹겠다는 뜻인데....

솔직히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문제지, 아이디어 자체는 굉장히 좋다.

이 세상은 내가 살던 세상보다 보드게임 같은 게임 문화가 발전한 상태가 아니다.

정확히는 게임 자체는 존재하지만, 적극적으로 이렇게 뭘 만들려는 분위기가 없다는 거지.

특히 이 게임에 그렇게 자세한 스토리 같은 걸 적용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IP를 활용하는 경우는 당연히 없고.

"근데 형태가 조금 고민이야.... 아무래도 책이면 문제가 많겠지?"

"그럼 트럼프 카드처럼 카드 형태로 만들면 어때? 언제든 순서를 바꿀 수 있는 책처럼 만드는 거야."

"아...!"

이건 나도 들어본 건데, 마피아 게임 같은 걸 사회자 없이 하면 이런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카드에 직업 같은 걸 적어서 랜덤으로 나눠주고 그러는 거지.

하여튼, 책의 페이지 하나하나를 카드 한 장이라고 생각하면.

게임북 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플레이에 사용할 수 있지.

"칼리 고마워! 딱 내가 필요한 조언이었어!"

"...별말씀을?"

근데 진짜 쟤는 무슨 게임을 만들려고 저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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