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화 〉 30권 이너 메르헨(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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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응, 이번에는 '행복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처럼 서로 다른 단편이 여러 개 나오는 방식이야."
물론 그것보다는 좀 기니까, 단편마다 화신강림 정도의 분량을 예상하는 중이었다.
일단 초안으로는 5개 정도를 생각하고 있으니, 다 합치면 엄청난 분량을 자랑할 거다.
그래도 그 정도는 해야지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5개? 그럼 엄청 두꺼워지는 거 아니야?"
"아니야. 왜냐면 이번에는 책을 다 따로 만들 거거든."
그래서 5권을 모두 구매하려면 비용이 꽤나 지출이 심할 거다.
근데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긴 했다.
이번 작품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의 만화가 아니었으니까.
최근에 로자리아의 보드게임인 '딸기 우유 만들기'의 개발을 도와주면서.
이런 보드게임 종류의 게임을 내 작품에서도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원작 만화 하나의 파워로 전 세계를 석권한 보드게임 하나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어떤 대형 사이트의 '보드게임' 게시판에서 저 보드게임 이야기만 하고, 일반적인 보드게임 이야기는 다른 게시판에서 하고 있겠어.
"TCG를 어떻게 참아."
트레이딩 카드 게임.
카드팩을 뜯어서 랜덤하게 카드를 구매하고, 그 카드로 덱을 만들어 진행하는 보드게임의 하위 장르다.
다만 나에게 그렇게 다양한 커스텀마이징을 지원할 정도로 밸런싱을 잘할 자신은 없었기에.
TCG게임에서 흔히 사용하는 전투 시스템 형태만 채용한 보드게임을 낼 생각이었다.
아마 게임을 판매하는 방식의 경우에는, TCG처럼 카드를 랜덤으로 뽑아 그것으로 직접 덱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덱이 완성된 게임 자체를 구매해서 그것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일반적인 보드게임에서 사용하는 확장팩 판매 방식을 이용할 생각이다.
사실 중요한 것은 TCG의 여부가 아니라는 거지.
나는 아까 말한 그 작품처럼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카드 게임을 출시하는 것 자체가 진짜 목표였다.
중요한 것은 카드 게임 만화에서 그려내는 특유의 감성이지, 카드를 획득하는 방식이 아니었으니까.
"아, 그러니까 책이랑 게임이 한 세트라는 거지?"
"응."
책에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책의 주인공이 사용하던 덱이 들어있다.
다른 덱의 카드를 섞어서 사용할 수는 없으므로, 아무 만화나 사서 덱을 얻으면 게임을 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혼자서 게임을 할 수는 없으니, 실질적으로는 두 개를 구매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어느 정도 유행할 것을 고려하면, 어지간해선 혼자 사도 플레이에 문제는 없을 거다.
"그럼 그 게임이라는 거 우리랑 테스트 해야 하는 거지?"
"2인용이라서 로자리아랑 둘이서 해도 괜찮긴 해. 너희도 도와주면 더 빠르겠지만."
당연히 테스트 인원이 올라가면 편하지.
하여튼 지금은 딸기 우유 만들기의 테스트를 하기에 바쁘므로, 그사이에 내가 이쪽 아이디어에 맞게 카드 덱을 다 짜놔야 할 거다.
어지간하면 카드부터 다 완성하고 만화 작업을 들어갈 거거든.
'콘티 자체야 완성이 되어 있으니까. 덱 컨셉이랑 카드 컨셉은 미리 만들 수 있어.'
그렇게 컨셉이랑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밸런싱을 마치고 나면.
이제 그때부터 완성된 최종 성능을 기준으로 에피소드의 세부적인 진행을 만들면 된다.
가능하면 만화에 등장하는 카드의 효과랑 실제 카드의 효과를 같게 맞추고 싶거든.
이번 작품의 컨셉은 '동화'를 모티브로 하는 카드 배틀물로.
주인공들은 자신의 마음과 가장 유사한 이야기인 '메르헨'을 덱으로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메르헨을 이용해서 카드 배틀을 하는 것으로 적과 싸운다는.
은근히 화신 시리즈와 비슷한 각성형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화신 시리즈의 침식처럼 무자비하게 생존을 건 싸움을 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
이쪽도 자신과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거는 진중한 싸움이라는 것은 다르지 않지만.
여기는 일종의 이권을 다투는 전쟁에 가깝거든.
그리고 화신 시리즈에서 화신체가 되는 각성이 특별한 일이었던 것과 다르게, 이곳에서 메르헨을 카드로 만들어내는 것은 다수의 사람이 겪는 일상에 가까운 일이다.
심지어 저것도 어디까지나 그건 기본적인 세계관일 뿐이고, 주인공마다 이 카드 배틀로 이루려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세계관에 맞게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며 최전방에서 카드 배틀을 하는 소녀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카드 배틀을 통해 던전이라도 털어 돈을 벌려는 평범한 소녀도 있는 식이거든.
기본적으로 카드 배틀 만능주의인 세상인지라, 여러 목표를 모두 카드 배틀을 통해서 얻어내는 장면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자신의 덱을 공부해, 최종적으로 목표를 이루는 것으로 뽕을 채우는 것이 작품의 기본적인 흐름.
당연히 작품 내내 멋진 모습을 보여준 덱은 작품에 포함되어 있으니, 직접 그 덱으로 배틀을 할 수 있게 되는 거고.
'동화 부분은, 조금씩 이쪽이랑 저쪽이랑 비슷한 내용이 있으니까. 아마 내가 아는 동화들을 적당히 수정해서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써먹을 수 있어.'
현재 결정이 난 동화는 '웃지 않는 공주', '성냥팔이 소녀', '라푼젤', '양치기 소년', '신데렐라' 정도였다.
어디까지나 저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덱의 컨셉이 되는 '메르헨'이지만.
그래도 이번 작품의 메인이 되는 소재니까 굉장히 신경을 써서 고른 편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번 시리즈의 컨셉을 가장 확실하게 담겨 있는 것이, 이제까지 내가 열심히 짜둔 콘티들이었다.
음, 아무래도 캐릭터 디자인이 가장 먼져 진행된 '샤프'의 콘티부터 하나씩 점검을 하긴 해야겠다.
분명 저번에 만들었을 때는 거의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보니까 모자란 부분이 보이네.
샤프의 경우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소녀 기사인데.
당연히 이 세상에서 기사라는 존재는 '메르헨'을 이용한 카드 배틀로 싸우는 존재고.
샤프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메르헨'을 각성해서, 그 메르헨을 사용해 적과 싸우게 되어 있었다.
샤프의 메르헨은 '웃지 않는 공주'라는 동화를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로.
웃음을 잃은 공주를 웃게 만들기 위해, 왕이 온갖 이들을 데려오고.
나중에는 공주를 웃게 만드는 사람을 사위로 맞이하겠다는 왕명까지 나와서 나라가 발칵 뒤집히는 것으로 시작하는 동화다.
다만 그렇게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공주는 웃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점점 상황은 심각해져 가는데, 그 와중에 우연히 왕명을 본 한 기사가 공주가 웃지 않는 이유를 고민하게 되고.
조금씩 공주가 남겨둔 '웃지 않는 이유'를 알아차리게 되는 이야기이다.
마지막에 기사는 공주가 원하는 것을 깨닫게 되어, 욕심부려서 남을 괴롭히는 자들을 데려가 정의 구현을 하게 된다.
그것을 본 공주가 처음으로 웃게 되면서, 그 기사가 공주와 결혼하게 된다는 이야기.
원전과는 조금 다르지만, 이쪽 세상의 비슷한 설화와 섞어서 나온 결과였다.
"카드는 공주가 웃음을 잘 짓지 않는다는 점에서. 방어력 강화와 특수효과 무효화 등이 많은 단단한 덱."
샤프는 그러한 메르헨을 들고, 적들과 싸워나간다.
사실상 샤프가 싸우고 있는 적들 자체가,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아주 강인한 적들이었고.
애초에 전쟁부터가 국력에서 싸움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녀는 꺾이지 않고 위험한 상황을 이겨나간다.
그녀의 신념 안에서 욕심을 부려서 남을 괴롭게 하는 이들은 쓰러져야 하고.
그들의 적은 누구보다 그 욕심 때문에 자그마한 이 나라를 침범했으니.
그녀의 메르헨이 절대로 그런 적들을 용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간마다 다른 주인공들과 엮여서 실력을 쌓는 데 서로 도움을 받고.... 뭐, 이런 식으로 다른 캐릭터의 광고 느낌을 넣어주는 건 중요하지."
하여튼 내용 자체는 그렇게 대단한 것이 없긴 하다.
말 그대로 별것 아닌 기사가, 열심히 실력을 쌓아서 적들을 도륙을 내 나라를 지킨다는 멋진 이야기일 뿐이니까.
근데 그 모든 행위가 검술이나 마법 같은 평범한 시스템이 아니라, 카드 배틀을 사용한다는 점이 재미있는 요소지.
비겁한 수를 쓰는 상대도, 카드 배틀을 꼼수를 써서 사용하려 할 뿐.
카드 배틀 자체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게 이런 세계관의 약속이니까.
"딱히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그나마 마음에 걸리는 것은, TCG게임 작품에서 사용하는 카드를 획득하고 덱을 커스텀마이징 해서 강해지는 부분을.
카드 일부를 각성해서 '레어 카드'로 만드는 장면으로 변경한 것이었다.
작품 내에서야 원래 약하던 카드를 강하게 만드는 것에 성공한 셈이지만.
실제로 주어지는 카드는 강한 상태기 때문에, 실제 카드로 비슷한 경험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 부분은 좀 뽕이 차게 잘 그려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다가, 작품 내에서야 그런 표현이 가능하지만.
게임 도중에 이런 덱의 핵심이 되는 '레어 카드'의 뽕 맛을 어떻게 해야 늘릴지 생각해봤는데.
역시 '레어 카드'라면 디자인적 차이가 제일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아는 레어 카드란, 기본적으로 반짝이가 붙어서 화려한 느낌을 주는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 그런 코팅이 등장하지는 않은 상태라서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고.
그나마 차별점으로 생각한 것은 레어 카드만 컬러 카드로 생산하는 것이었다.
'이건 종이 재질에 신경을 많이 써야겠네.'
뒷면과 옆면으로는 절대 카드를 구분하기 힘든 수준이어야 플레이에 지장이 없으니까.
그것만 해결하면, 기본 흑백인 카드들 사이에서 레어 카드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나타낼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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