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150화 (150/229)

〈 150화 〉 30권 ­ 이너 메르헨(4)

* * *

"하우.... 칼리, 일어났어?"

"응? 응...."

방학의 마지막 날.

나는 침대에서 나에게 안겨있는 로자리아를 느끼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이제 슬슬 만삭에 가깝게 부풀어 올라서, 힘겹게 옆으로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나는 천천히 그녀를 뒤에서 껴안아,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우리 아가도 잘 잤나 몰라."

"막 발로 차는 것 같은데?"

"진짜? 어디? 이쪽?"

"어, 거기."

진짜로 아주 작은 진동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

나한테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작 이런 상황이 찾아오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어제 문제없이 작품 제출한 거야?"

"어, 다 확인했어. 아마 만화도 순차적으로 생산했으니까 최대한 빨리 판매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카드 완성한 이후로는 매일 같이 잠도 안 자고 만화만 그리더니, 정말 아카데미 돌아가기 전에 끝냈네."

"조금씩은 미리 작업을 하고 있었으니까."

확실하게 나올 것 같은 장면들은 미리미리 그리고 있었거든.

하여튼 방학 내내 작업하던 걸 끝내니까 개운하네.

이제 한동안은 작품 활동 말고, 출산이 머지않은 로자리아를 케어해주는 것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았다.

"대회도 연다고 했었나?"

"응, 그것 때문에 아카데미랑도 일정 좀 조율했어."

혹시 우리 아카데미 학생들도 원하면 문제없이 대회에 나갈 수 있도록 만들기로 했었다.

솔직히 마법부 대부분이 내 작품의 팬인지라 난장판이 될 것이 뻔한데.

어차피 애들이 강의 빠지고 갈 거면, 일부러 일정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는지 OK 해줬다.

"내가 나가면 반칙이려나?"

"너는 반칙이고 뭐고 몸조리나 잘해. 엄마 되기 직전인데 조심해야지."

"히히...."

나는 실실 웃고 있는 로자리아의 커다란 배를 천천히 쓰다듬어줬다.

우리 애도 기대되고, 새 학기의 강의도 기대되고, 내 작품의 반응도 기대되는.

기대로 가득 찬 아침이었다.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

"다섯 개요...?"

"네, 이번에 나온 작품은 그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성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이번 신작은 무려 한 시리즈의 작품을 5개를 동시에 냈다는 건가?

실제로 표지가 다른 5개의 작품이 따로 있는 것을 듣고, 여성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전부 구매하시나요?"

"네? 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지출이 이루어지는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볼 만화가 많다는 것에 감사했다.

다만 대체 왜 이 5개의 만화를 동시에 판매하기 시작했는지가 조금 의문이었다.

그냥 바로바로 출간하면 되는 것이었을 텐데....

"감사합니다."

하여튼 당장 즐길 거리가 늘었다는 것이 기쁜 것은 사실이었기에.

그녀는 꽤나 행복해진 기분으로, 무거운 손을 흔들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 무게감이면 아마 한동안은 만화를 반복해 보면서,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뭐야, 이거?"

그런데 정작 집에 와서 책을 뜯어본 그녀는 굉장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두께감이 꽤 있었기에, 작품별로 평범한 책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책 하나하나는 굉장히 얇다고 봐도 될 정도의 두께를 하고 있었다.

대신 책별로 이쁜 느낌으로 디자인된 종이상자가 하나씩 붙어 있었는데.

그것을 열었더니, 묘한 디자인의 그림이 있는 카드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녀는 처음 보는 비주얼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런 경우 만화를 읽어보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걸 기억해내고.

일단 상자는 내버려 둔 채로 만화를 읽기 시작했다.

"성냥을 파는 소녀?"

그렇게 적힌 제목 아래에는, '희망의 이야기'라는 부제목 비슷한 것이 달려 있었다.

일단 그림 속에서 어떤 소녀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에 무슨 의도가 담겨있는지는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다.

"여기서 작품을 예상하기 어려운 것도 여전하네...."

정작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저것이 무엇보다도 작품을 관통하는 장면이겠지.

이런 요소 하나하나가 시우 화가의 작품을 재밌게 만드는 부분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책의 표지를 넘겼다.

"어? 가난한 평민 집에서 시작하네."

생각해보면 시우 화가의 작품에서, 이종족이나 귀족 이외의 설정이 나오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그녀는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는 점은 좀 신기하다고 느꼈다.

다만 옷차림은 좀 더럽고, 삶이 불편해 보이는 곳이 정말 많았지만.

그래도 캐릭터의 반짝이는 외모는 그대로였기에 그녀는 별생각 없이 작품을 읽어나갔다.

"아, 돈이 없어서 돈을 벌려고 하는구나."

이건 꼭 평민이 아니라도 가끔 들려오는 일이었다.

원래 삶이라는 것이 돈이 없으면 살기 팍팍한 것이 아니겠는가.

당장 이 책도 5개를 쿨하게 사는 것이 가능했던 것도, 평소에 자신이 버는 봉급 때문이니까.

어찌 보면 저 주인공 캐릭터인 '유리'가 자신이었다면 돈이 없어서 시우 화가의 만화도 보지 못했겠지.

그녀는 끔찍한 상상을 하고는, 굉장히 싫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휘저었다.

하여튼 그녀도 돈을 벌고 있는 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돈을 벌어 가정을 부양하려는 유리가 되게 기특해 보였다.

일반적으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미지는 돈이 없는 만큼 게으른 자들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운이 나빠서 그렇게 된 경우도 많으니까.

그렇게 그녀가 평범한 수준의 공감을 하면서 작품을 읽어나가는데.

굉장히 이상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작품을 읽다 깨달았다.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뭐지? 일반적으로 저렇게 평민들 괴롭히는 귀족들은 무력도 마음대로 쓸 텐데?"

법으로는 그런 행위가 금지되어 있긴 하지만, 평민이 그걸 어디 고발할 수 있을 리도 없으니.

몰래몰래 평민을 핍박하며 자신의 즐거움을 채우는 귀족들은 많다.

그리고 유리의 가족이 그런 상황인데도, 심한 무력으로 협박하거나 하는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이상한 카드 비슷한 것을 들이밀며 비웃는 모습만 보였을 뿐.

"저 카드, 왠지 아까 상자에 들어 있던 거랑 비슷한데."

그리고 간단하게 그것이 뭔지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긴 했기에.

뒤늦게 그녀도 저 카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다.

마치 화신 시리즈에서 아이들이 화신체로 각성하듯, 저런 카드들을 자신의 마음에서 끄집어내는 각성이라는 행위가 이루어지는 세상이고.

그것을 통해 '메르헨 배틀'이라는 행위를 하는 것으로만 모든 분쟁과 다툼을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유리를 괴롭힌 녀석들은 '발푸르니기스의 밤'이라고 하는 연회에 참석한다고 하는데.

바로 제국 최대 규모로 메르헨 배틀을 겨뤄, 어마어마한 우승 상품을 받을 수 있는 대회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상품보다는 워낙 그 대회에 입상하는 것에 담긴 명예가 크기에.

그곳에 참가해 우승을 노린다는 말로, 자신의 강함을 자랑한 것이었다.

"와아...!"

그리고 유리는 그날 밤, 엄청나게 몽환적인 세상에 빠져들면서 각성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것은 유리가 가진 어떤 '이야기'를 마치 말로 전해주는 것처럼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아마 이게 계속해서 나오던 '메르헨'이라는 카드에 담긴 내용이겠지.

"이 이야기 이름이 성냥을 파는 소녀구나."

가난한 집에서 살아가던 한 자그마한 소녀는, 집 모두를 부양하기 위해 직업을 찾게 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어떤 할머니에게 성냥을 파는 일을 배정받아, 일하기 시작하는데.

아무래도 그 추운 밤에 성냥 따위를 사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춥겠다."

최대한 뭐라도 입으려고 했겠지만, 가난한 소녀가 그런 옷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추위를 타던 소녀는, 결국 얼어 죽기 직전까지 내몰리게 된다.

그리고 유일하게 몸을 녹일 수단은 성냥뿐이었기에, 소녀는 성냥에 불을 붙인다.

"와...!"

그러자 성냥에서 소녀가 원하던 따뜻한 불이나, 음식 등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런 마법과도 같은 희망이 성냥에서 흘러나오자.

성냥을 이용해서 엄청 행복하고 따뜻한 밤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서 입소문이 나면서.

마법의 성냥은 아주아주 비싼 값에 팔리게 되고.

그 성냥을 판 값으로 부자가 된 소녀는 자신에게 그 성냥을 준 할머니를 찾으러 갔지만.

할머니가 있던 가게는 감쪽같이 사라졌었다는 이야기다.

"와아...."

그리고 유리는 그 각성을 통해 받은 덱을 들고.

우연히 발푸르니기스의 밤에 참가하는 것에 성공하고.

그 대회에서 강력한 상대들을 상대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우연과 믿음으로 겨우겨우 승리하던 유리는.

점점 자신의 성장하는 힘을 통해, 덱에 있는 카드 일부를 레어 카드로 성장시키게 되고.

그 레어 카드를 통해 강해진 힘으로 대회의 강력한 이들을 하나둘 쓰러트리게 된다.

"메르헨...!"

어느새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메르헨 선언'의 타이밍마다 메르헨을 외치며 작품에 집중하고 있었다.

유리를 열심히 응원하며, '메르헨 배틀'이라는 행위의 즐거움에 잠식되어갔다.

특히 유리가 조금씩 위험에 몰리다가, 그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해결하는 쾌감은 확실히 참기 어려운 즐거움이었다.

"와...."

그리고 그런 승리와 패배 요소 이외에도, 배틀에 동경을 가질만한 요소는 많이 나왔다.

초반에 유리를 괴롭혔던 귀족도 함께 배틀을 하면서 친해져, 진심으로 사과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배틀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사람마다 다른 메르헨이, 그 사람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였고.

그런 만큼 그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배틀은 진솔한 대화나 다름없는 행위가 되었다.

마침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으로, 유리가 부와 명예를 차지하는 행복한 결말로 짧은 만화가 끝났고.

책을 덮은 그녀는, 꽤나 감동한 표정으로 상자에 들어 있는 카드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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