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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155화 (155/229)

〈 155화 〉 31권 ­ 희망과 절망의 안티노미(4)

* * *

"다들 대회 일정까지 도와줘서 고마워. 사실 그 부분은 나 혼자 진행해야 하는 건데...."

"우리도 나름 재밌었어. 그리고 애초에 같이 게임 테스트도 하고 그러면서 엄청나게 정들었었고."

"맞아. 우리가 테스트할 때는 생각도 못 한 플레이가 많이 나오기도 했고."

대회와 관련된 모든 일이 끝이 나고, 진행에 도움을 줬던 만화 동아리 멤버들과 뒷풀이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내가 최대한 빨리 일정을 맞춘다고, 우승자 모티브의 카드들을 우선해서 그리는 동안.

미리 부탁한 대로 얘들이 마무리를 처리해준 덕에, 다행히 문제없이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오, 이게 그 우승자 모티브로 그렸다는 새 덱이야?"

"응, 조금 강도가 강해지긴 했는데. 본인이 원하더라고."

"나는 라푼젤도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진짜 심하게 무섭네...."

라푼젤도 꽤나 광기를 담는다고 담았던 캐릭인데.

아무래도 내가 대회장이나 후속 대화에서 본 우승자의 광기가 더 심하더라고.

거의 촉수랑 산란 플레이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것 같단데....

그렇다고 뭔가 범죄적인 걸로 가는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취향이라서 뭐라 할 부분은 아니다.

하긴 애초에 진짜 광기로 집착하는 수준이었으면, 결승전이 아니라 중간부터 그 덱만 썼겠지.

승리를 위해 타협을 하는 걸 보면, 그냥 가짜 광기인 것 같기도 해.

"나는 이거 마음에 드는데. 예쁘게 뽑혔다고 생각해."

"그래?"

나는 가끔 유리아의 미적 감각이 묘하게 비틀려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비틀린 점이 우연히도 나랑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신기했다.

약간 이런 광기가 어린 감정의 극한을 좋아하더라고, 솔직히 나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우승자가 미친 사람이라 더 즐겁게 작업한 것 같기도 해.

"뭐, 이것도 이거지만.... 진짜 대회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박 나서 놀랐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대회도 판매량도 다 예상 범위로 생산하고 준비했잖아."

"넉넉하게 준비한 건데, 그게 아슬아슬하게 맞아떨어진 거지."

일단 이 정도 생산해놓으면, 시간은 오래 걸리더라도 '시우'의 이름값으로 다 팔아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저지를 수 있었고.

대회도 괜히 부족해서 욕먹는 것보다는, 이제까지 나에게 쌓인 돈 좀 낭비한다는 느낌으로 다 때려 박은 거였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때 안 그렇게 했으면 상황이 좀 복잡해졌을 터다.

"아마 주기적인 대회가 열려도 충분할 것 같던데. 예상한 거야?"

"어느 정도는? 사실 대회라고 해서 꼭 규모가 커야 하는 것도 아니니, 적당한 수준은 유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

지금 대회에 몰린 인파 때문에, 인기를 보고 작품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늘어나 작품이 더 잘 팔리는 중이라고 들었다.

원래 이런 게 전부 광고 효과도 있는 부분이거든.

얼마나 재밌으면 대회에 그런 인파가 몰릴까? 혹은 왜 그런 상금이 걸렸을까? 같은 생각에 작품을 건드려보게 되는 법이다.

심지어 만화랑은 상관없이, 우승자를 모티브로 한 새로운 덱도 보드게임 패키지라면서 팔아먹기 시작했고.

그 이외에도 여러모로 다양한 방면으로 게임에 사람들을 유입시키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너 메르헨에 입문해서 다른 덱을 구매하게 되는 것으로, 자연스레 만화를 사게 만드는.

역 입문을 노리는 전략이었다.

"성능 수정은 어떻게 하려고?"

대회 쪽을 보면서 밸런싱을 어떻게 조절할지 고민 중인데, 밸런싱 조절하면 수정 카드를 뿌려야 하니까 굉장히 조심스럽게 결정하려고 하는 편이었다.

최대한 적은 카드를 건들면서, 너무 심하지 않게 원하는 수준만 성능을 건든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제는 대부분 결정을 해놨다.

"이렇게 가려고."

"음, 대부분은 이해가 가능한 수준이긴 한데. 너무 수치 차이가 작지 않아? 이거로 효과를 볼까?"

"볼걸?"

의외로 이런 게임에서는 약간의 파워나, 하나의 코스트 차이가 플레이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

경험상 이 정도 조절이면 충분히 메타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거다.

하여튼 이렇게 성능이 조절된 것은 이후 생산분에 한꺼번에 적용될 거고, 기존 구매자들은 근처의 전시관에서 교환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근데 무조건 교환을 해야 해?"

"교환 받은 사람이랑, 아닌 사람을 확실하게 구분해야 하니까."

"둘 다 가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경우에는 교환하는 대신 카드만 구매할 수 있게 할 거야."

애초에 그 부분은 이미 AS라는 명목으로 마련되어 있다.

특정 카드만 망가졌다면, 그 카드만 구매하는 방식인데.

아마 밸런스 조절 카드를 수집하려면 그 기능을 활용해야겠지.

낱장 판매라서 덱을 통째로 살 때보다는 아무래도 가격은 좀 나간다.

"그럼 슬슬 후속작 준비할 타이밍 아니야? 하긴, 최근에 원하는 내용이 많이 강의에 나온다고 거기 집중하고 있는 것 같긴 했는데."

"드디어 내가 원하던 기록 마법을 제대로 배우고 있으니까. 열심히 배울 수밖에 없지."

저번 학기에 배우던 기록 마법은 아무래도 내가 원하던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너무 기초적인 것만을 알려주는 거라, 내가 생각하는 걸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못하는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이번 학기는 딱 내가 원했던 수준으로 올라와서, 기록 마법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나 기본적인 틀과 규칙을 익히는 본격적인 강의였다.

그리고 아직은 컴퓨터를 만드는 것 자체는 무리였지만, 가능성 자체는 보고 있었고.

그 덕분에 계산기 수준의 물건들은 가볍게 만들어보기 시작한 상태였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기초적인 코딩이 돌아가는 컴퓨터는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림을 그릴 정도로 성능과 시스템을 마련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솔직히 당장은 그게 어디야.

"일단 후속작 준비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닌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엔 애매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해."

"아.... 그렇네."

"응, 다행히 잊어버리진 않았네?"

"내가 아무리 얼빵한 편이라지만, 우리 애가 태어날 시기까지 잊어먹을 정돈 아니야."

슬슬 로자리아가 분만 예정일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아이를 낳은 직후의 로자리아를 챙기려면.

그쪽에도 충분히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상황에서 한번 시작하면 시간을 때려 박아야 하는 만화 작업을 밀고 나가기보단, 그리려고 고민하던 작품들의 콘티 작업 정도로 참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너희도 만져볼래? 슬슬 나올 때가 되었다고 되게 잘 느껴지는데."

"할래! 할래!"

오르카는 로자리아의 몸에서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이 굉장히 신기한지, 여러모로 배를 부드럽게 만지면서 놀라워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작 로자리아의 배를 저렇게 만든 나도 비슷한 생각이긴 해.

내가 아빠가 된다니, 솔직히 좀 신기하고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오르카도 되게 신기하다니까, 일반적으로 이런 관계면 어쩔 수 없이 질투도 나고 그래야 하는데."

"왜? 내가 칼리를 좋아하고, 나도 아기 가지고 싶긴 하지만.... 그 이전에 로자리아도 내가 좋아하는 친구잖아. 그럼 둘이 낳은 아기는 되게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긴 한데...."

유리아처럼 별생각이 없는 거야 그렇다 쳐도.

이렇게 순수하게 기뻐하면서 다가오는 오르카의 행동까지는, 아무래도 신기한 일이었기에.

로자리아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질문했지만, 뭔가 그럴듯하면서도 요상한 오르카의 논리를 듣고는 오히려 혼란스러워하는 듯했다.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하는 건 그렇다 치는데, 순수하게 기뻐해 주니까 기분이 이상해서 그렇지 뭐."

"에헤헤, 기대된다."

"누가 보면 네 아이인 줄 알겠다."

"흐흥, 따지고 보면 나도 엄마라고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그건 또 무슨 미친 소리냐...."

이번에는 황당한 소리를 자주 하는 유리아조차 당황했는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오르카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긴 너무 맥락 없는 소리라서 굉장히 당혹스럽긴 했다.

"왜? 이상해?"

"조금...?"

"뭐, 자기가 낳은 것처럼 아껴주겠다는 뜻이겠지...."

"응! 그거!"

"아하하.... 고마워 오르카."

"좋은 거랑 좋은 걸 더해서 나온 건데 좋지 않을 리가 없잖아."

그거 민트초코는 싫어하지만 민트랑 초코는 각기 좋아하는 사람이 들으면 화낸다.

피치라가 꿀맛이라는 소리 하고 있네.

하여튼 여러모로 태클을 걸고 싶은 발언이긴 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낳지 않은 아이도 예뻐해 주겠다는 소리니까 나쁜 이야긴 아니었다.

오히려 오르카 특유의 순수함과 착한 마음이 만들어낸 특별한 상황 같은 거겠지.

"고마워 오르카."

"에? 갑자기?"

"그냥, 그런 게 있어."

"에에...?"

"후후, 오르카랑 대화하고 있으면 뭔가 답답하던 생각 같은 건 다 잊어버리게 된다니까."

"그러게."

"로자리아랑 칼리 무슨 고민 있었어!?"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예정일이 다가오니까 설레는 기분도 있지만 비슷하게 걱정도.... 윽!?"

"로자리아!?"

웃으면서 오르카와 대화하던 로자리아가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더니.

그대로 자신의 배를 껴안으면서 몸을 웅크렸다.

방금까지 그녀가 쥐고 있던 식기가 바닥에 떨어지며 쨍한 소리를 냈고, 우리는 급하게 그녀를 부축하며 괜찮냐고 물었다.

다만 로자리아는 통증이 워낙 심한지,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배, 배가.... 하악!?"

유리아가 급하게 회복 마법을 사용해줬지만, 어디가 다친 것과는 무관한 고통이라서 그런지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몸에 어떠한 문제도 없는데도 저 정도로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지금 시기에 딱 하나밖에 없다.

'분만이 시작되면서 나타나는 진통...!'

로자리아가 엄마가 되기 위한 가장 큰 관문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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