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156화 (156/229)

〈 156화 〉 31권 ­ 희망과 절망의 안티노미(5)

* * *

상황을 파악한 이후에는, 곧바로 로자리아를 챙겨 아카데미로 돌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직 회식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얘들아, 좋은 자리인데 미안."

"아니야. 아기가 더 급하지. 빨리 돌아가자."

평소에 미리 로자리아를 위해 사람도 파견되어 있고, 아기를 받을 준비도 되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카데미에 준비된 것이었고.

지금은 회식을 위해 수도로 나와 있던 상황이기에, 긴급하게 그녀를 업고 돌아가야 했다.

"도와줘?"

"내가 요즘 체력이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로자리아 하나도 감당 못 할 정돈 아니야."

아무리 2년 동안 그림과 마법에 집중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체력을 비롯한 운동 관련 강의도 듣게 되어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예전에 검술로 쌓인 근력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윽...!"

"최대한 빨리 갈게. 조금만 참아."

벌써 꽤 고통스러운지, 땀을 잔뜩 흘리는 로자리아를 껴안고.

급하게 음식점을 나와 아카데미로 향했다.

수도에서 바로 처리해도 문제야 없지만, 이쪽에서 따로 접수하고 일 처리를 하는 것보다는 이미 준비가 끝난 아카데미에서 진행하는 것이 더 빠를 테니까.

우리를 위해서 따로 배정된 성직자도 없는 상황이라, 갑자기 찾아가면 좀 그렇잖아.

까놓고 말해서 귀족인 우리나 성직자를 구해서 이렇게 조심스럽게 아이를 받는 거지.

일반적인 집안에서는 그냥 가족들이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받아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여튼 지금은 여러 조건을 따져봐도 아카데미로 최대한 빨리 가는 게 좋을 거다.

"오르카, 먼저 뛰어가서 상황 설명 좀 해줄래? 미리 준비할 수 있게."

"아, 응. 그게 좋겠네."

그리고 우리가 가는 사이에 미리 준비하는 것도 가능하기에.

실질적으로 아이를 받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은 적을 거다.

오르카가 옆에 있어서 다행인 부분이긴 하지.

"윽...."

"많이 아파?"

"꽤, 아프네.... 마법 공부하다가 꽤 많이 다쳤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을.... 끄흡!"

나에게 매달린 로자리아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저렇게 순수하게 통증으로 괴로워하는 건 처음 보네.

나는 조금 움직이는 속도를 늦추고,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면서 진정할 수 있게 도와줬다.

"괜찮아?"

"...응."

"너무 참지 않아도 되는데. 너무 아프다고, 책임지라고 머리 좀 쥐어뜯어도 괜찮아."

"이,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내가 가지고 싶어서 가진 애인데."

"우리."

"...우리."

나와 대화를 하고 있기 때문인지, 조금이나마 표정이 나아진 로자리아가 천천히 자신의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최대한 그녀가 불편하지 않을 각도를 찾아가며 그대로 이송했다.

솔직히 검술 배우면서 자란 근육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쓰겠어.

"아, 오셨네. 이쪽에 눕혀주시겠어요?"

"네."

우리가 아카데미에 도착하자, 미리 출산 준비를 마친 성직자분이 로자리아를 받아줬고.

그 이후에는 짧게 성가를 부르면서 그녀에게 축복을 걸어, 아기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도록 버프를 걸어주셨다.

이게 현대에서 여러 출산을 위한 조치들이랑 비슷한 거라고 보면 되겠지.

"슬슬 시작하겠습니다. 붙잡으신 채로 힘 꾹 주셔야 해요."

성직자는 굉장히 능숙하게 로자리아를 다뤘다.

하긴 이쪽 성직자라면,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대부분 이쪽에선 전문가로 활동해 왔을 테니....

솔직히 간단한 치료 자체는 마법에도 있는 편이고, 어느 정도는 포션이나 성수 정도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기가 태어나는 신의 축복을 돕는 것은, 어지간하면 성직자의 몫이니까.

솔직히 평범한 평민 집안은 이렇게 하기 어렵지만.

상당한 기부금을 낼 수 있는 부잣집이나 귀족들에겐 기본이나 다름없는 일이고.

심지어 이렇게 성직자를 통해서 아이를 받아야, 엄마의 성을 바꾸는 작업까지 빠르게 처리할 수 있으니.

그게 당연한 지금, 솔직히 성직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 중 하나가 아기를 낳는 걸 돕는 산부인과 일일 것이다.

"아흑...! 흑!"

"최대한 참으면서 힘주세요. 도와드릴게요."

성직자는 아이를 받기 위해서 준비를 하면서도, 성가를 불러서 축복과 회복을 통해 로자리아를 도와줬고.

나는 굉장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힘을 주는 로자리아의 손을 잡아줬다.

그렇게 그녀가 한참을 고통스러워했을까, 점점 다리 사이의 외음부가 벌어지면서 금빛의 둥근 것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슬슬 아기의 머리가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머리 보인다! 조금만 더 힘내!"

"으그윽...!"

아마 이제부터가 마지막 관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결국은 이 마지막 구멍이 아기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무사히 벌어져야 하는 거니까.

근데 이렇게 아기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신기하긴 하네.

아기가 태어나는 걸 실제로 보는 일은 굉장히 드문 일이고, 당연히 나도 처음 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헉, 허윽...!"

굉장히 지쳐있는 로자리아의 땀을 닦아주고, 같이 손을 잡으며 힘을 주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줬다.

그 덕분인지 아기의 금빛 머리가 온전히 나가는 것에 성공했고.

천천히 힘을 줄 때마다 웅크린 몸통과 팔다리까지 빠져나왔다.

이러면 사실상 거의 다 끝났네.

"후아, 후아아...."

"진짜 고생 많았어."

"우에, 우에에...!"

꽤나 얌전하고 자그마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무조건 시끄럽게 우는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닌 모양이네.

울지 않는 건 아닌데 꽤나 소리가 조용한 편이다.

하긴 이런 부분은 개인차가 있다고 들었으니까.

"아기, 칼리랑 내 아기...."

방금 태어나 축축하게 젖어있는 아기는, 기본적으로는 살짝 신생아 특유의 징그러움이 남아있긴 했지만.

성직자분이 성가를 부르면서 씻겨낸 이후에는 꽤나 귀여운 느낌이 되었다.

아직 누굴 닮았냐를 보기에는 이른 상황이지만, 금발을 이어받은 거 보면 엄마인 로자리아를 닮았을 것 같았다.

"이상 없네요. 예쁜 딸아이입니다. 로자리아 르 마기우스님."

"가, 감사합니다."

아직 탯줄이 채 떨어지지도 않은 채로, 나와 로자리아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만져보거나 안아보았고.

아기는 성가를 들은 이후에는 꽤나 편안한지, 얌전하게 웃고 있었다.

와, 눈앞에 내 애가 있는데도 아빠가 된 실감이 나질 않네.

성직자님은 아이에게 남아있는 탯줄을 자르고, 로자리아의 몸에서 태반을 비롯한 것들을 완벽하게 정리해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자리아와 아기는 말끔한 모습이 되어갔고.

어느 정도 평범한 모습을 되찾은 로자리아가, 아기를 안은 채로 웃으면서 말했다.

"니케야, 엄마야."

"우에...?"

우리는 꽤 긴 시간 동안 아이의 이름을 고민해왔는데.

결론적으로는 내가 대충 던졌던 이름 중 하나를 로자리아가 마음에 들어 하면서, 그걸 사용하기로 했었다.

그 이름이 바로 니케였는데, 로자리아는 뜻을 모를 테지만 어감이 좋다면서 그것으로 하자고 했었다.

하긴 승리의 신 정도면, 우리 딸로는 적절한 이름이긴 하지.

"그럼 이 아이는 니케 드 글라디스가 되겠네요."

"네, 관련 서류는 제가 작성해 놓을게요. 감사합니다."

"아뇨. 로자리아 르 마기우스님의 서류를 작성하면서, 기본적인 부분은 제가 같이하겠습니다. 칼리 흐 글라디스님은 로자리아님의 곁을 지켜주세요."

"...감사합니다."

성직자님이 남은 일 처리를 알아서 하시겠다며 서류를 들고 나가셨고.

우리는 계속 니케에게 집중해서 정신없이 홀려 있는 느낌으로 실실거리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을 가져가자, 니케가 굉장히 조막만 한 손으로 내 손가락을 붙잡는데.

그걸 보고 있으니까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응, 엄마랑 아빠야."

"으에?"

니케는 한쪽 손은 로자리아의 손가락을 잡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손가락을 붙잡고 있다.

아직 여기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불안할 텐데, 금방 방긋 웃고 있는 모습이 참 장하네.

솔직히 벌써 좀 천재인 것 같은데?

"에헤헤.... 귀여워."

"그러게, 그리고 앞으로는 로자리아가 엄마고."

"응!"

어느 정도 원래의 모습에 가까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좀 부풀어 오른 로자리아의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줬다.

아마 한동안은 몸이 잘 회복될 수 있게, 굉장히 조심해서 지내야 할 거다.

그리고 가능하면 나도 옆을 지켜줘야 하고.

"니케, 이쪽 봐. 여기 엄마가 있답니다."

"와, 되게 예쁘다. 우리 딸 최고네."

이게 그 콩깍지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분명 객관적으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싶은 수준의, 좀 귀여운 정도의 아기일 뿐인데.

내 딸이라 그런지 누구보다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외모적인 부분과는 조금 다른 충족감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처음 겪는 감각이라서 기분이 이상했다.

"진짜, 고생 많았어. 물론 낳아버린 이상 앞으로가 진짜 고생이지만."

"진짜 고생이라니?"

"솔직히 로자리아 같은 딸이면 이쁘긴 한데, 말썽 엄청나게 부릴 거 아니야."

"에헤헤...."

"너는 얼굴만 엄마 닮고, 성격은 조금 더 유해져라."

"보통 그걸 본인 앞에서 말해?"

"본인 앞이니까 말하지. 뒤에서 말하면 더 이상하잖아."

"그런가?"

이런저런 농담을 하면서, 우리는 품에 안겨 있는 니케에게 집중했다.

손을 한쪽씩 니케에게 준, 아까의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서로의 손으로 깍지를 끼고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부드럽게 흘려냈다.

"방금까진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행복해서 죽을 것 같아."

"그럼 다행이고. 니케야, 엄마는 네가 엄청 좋나 보다."

"칼리는 싫어?"

"당연히 좋지."

그 뒤로 우리는 한참을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한 아이의 부모가 되었음을 천천히 자각해 나가기 시작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