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 33권 너를 더럽히는 나의 색(3)
* * *
"이러면 일단락이 된 느낌이네."
"뭐야, 생각보다 이번에는 원고가 준비한 게 적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최근에 너무 작품 외의 걸 자주 한 것 같아서,"
가끔은 오로지 작품으로만 승부를 보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물론 여러 가지 많이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있다.
최근에 니케가 태어난 것 때문에 너무 긴 시간 작품 활동을 멈췄기에, 최대한 빨리 후속작을 내기 위해서 오래 걸리는 작업을 쳐냈거든.
"성공할 자신 있다는 거네?"
"그런 자신은 없는데. 나는 재밌거든."
이게 성공할 거라고 어떻게 자신을 하면서 작품을 만들겠어.
그냥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을 최대한 표현해서 보여줄 뿐이지.
물론 내가 재미있다는 부분에서 당당하게 낼 수 있다는 건, 분명 자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기대되는데. 솔직히 칼리가 그린 작품 중에 재미없는 게 없었으니까."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고.... 요즘 너랑 니케한테 신경 못 써서 미안해."
"미안할 게 뭐 있어, 일하는 건데."
어느 정도는 시간을 좀 나누면서 투자해도 되는데, 아무래도 일단 작품을 그리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렵다.
지금 멈추면 그 부분에서 나중에 막힐 것 같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서 자꾸 이렇게 오버해서 달리게 되는 느낌이야.
"그나저나 그럼 이번에는 아무런 특별한 점이 없는 거야?"
"뭐, 그렇지?"
이번에는 정말 초심처럼 책만 낼 생각이었거든.
대신 다음 작품에서 머리를 굴려서 꽤나 괜찮은 걸 뽑아낼 생각이고.
가끔은 이런 부분에서 쉬고 넘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뭐, 그리고 말이 굿즈가 없는 거지....'
이번 작품이 SM 용품 총출동인데, 그것이랑 관련된 제품은 이미 다 생산에 들어갔거든.
그래서 아마 양측 동의로 하는 SM 정도는 유행해서 반쯤 굿즈가 될 각오는 하고 진행하고 있었다.
아니면 아닌 건데, 이제까지 있었던 일들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거든.
그리고 SM이라는 장르 자체는 원래 이쪽 세상에도 존재하는 데다.
마녀 아카데미 때에 어느 정도 유행을 타긴 해서, 기초적인 것들은 다 마련이 되어 있기도 했기에.
이런 제품들이 나오더라도 부자연스럽거나 하지도 않을 테니까 내는 것도 문제없었다.
이게 내가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유행을 건전하게 선도할 필요가 있기도 하고.
'괜히 안전장치 같은 거 없이 해서 위험해지는 것보단 낫지.'
아무래도 자칫 실수하면 사고로 벌어질 수 있는 것이 이쪽 장르니까.
어차피 유행을 타게 할 거라면, 그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편이 내 마음에 편했다.
...그럼 왜 굳이 그렇게 하면서까지 그런 장르의 만화를 그리느냐고 하겠지만, 내가 그리고 싶은 취향의 작품 중 하나인데 어쩌겠어.
애초에 내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려고 만화가를 하는 것이기도 하잖아?
"루비랑 사파이어라, 보석 이름이라 그런가? 더 애들이 예쁜 느낌이네."
"그것 때문에 더 외모에 신경 쓰긴 했어."
외모 표현에 대해서 되게 이쁘고 꼴리게 하는 것에 집중했거든.
살짝 망가지면서 꼴리는 캐릭터도 있지만, 이건 뭔가 예술적인 감탄을 느끼게 하는 야한 장면들을 미는 컨셉이라고 해야 하나?
뭐, 이쪽 인간들은 양쪽 다 예술의 범위에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맞는 말이기도 하고.
"맞다. 그래서 코코아한테 그건 말하기로 했어?"
"아직 고민 중인데.... 역시 말하는 게 맞겠지?"
아무래도 이번에 집필을 하면서 느낀 건데, 맨날 맘 편하게 동아리 방에서 하다가 걔를 피하려니까 일이 크더라....
나 예전에는 이걸 어떻게 숨기면서 했던 거지?
요즘에는 예전보다 여러모로 일이 많아서 바쁜 게 원인인 건가?
"근데 지금 그대로 말할 수는 없지.... 그래도 요즘 확신이 생기긴 했어."
"처녀 따먹을 확신?"
"그렇게 말하니까 좀 그렇다 야...."
책임질 확신 같은 거라고 해줄래?
솔직히 애가 예전 로자리아처럼 똘끼가 있는 게 문제지, 하는 행동들을 보면 착하고 괜찮은 애였다.
아, 그리고 성벽이 좀 M에 가까워서 다루기 힘들다는 점 정도?
니아도 좀 그런 성격이긴 한데, 니아는 일탈 느낌이면 걔는 진짜 위험한 그쪽 체질 같은 느낌이지.
예를 들어 니아의 경우엔, 나를 이렇게까지 다뤄주는 사람이 있다고?
헤으응, 주인님.... 이라고 하는 느낌에 가까운데.
코코아의 경우에는 진지하게 하드하게 박히고 범해지는 것 자체에 보짓물이 흐르는 스타일이다.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멘탈이 약해서, 사랑받는다는 믿음이 없으면 힘들어하는 편이고.
"딱 칼리한테 맞긴 하지. 성 취향은 어지간한 변태적인 건 다 받아주면서, 반대로 성격은 착해서 야한 거 아니면 잘해주고."
"크흠...."
저게 칭찬인지 돌리는 건지 알 수가 없네.
물론 로자리아니까 진심으로 칭찬하는 것일 가능성이 컸다.
하긴, 내가 너무 저런 거로 돌리는 세상에 찌들어서 그렇겠지.
이 순수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나도 좀 순수해질 필요가 있었다.
"하여튼 작품부터 처리하고, 다음 순위로 코코아부터 진행해야지."
코코아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만족을 시켜줘야 하는 부분이니까.
정확하게 어떤 것들을 진행할지는 어느 정도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뭐, 나도 즐거울 것 같으니까 즐거운 고민이 되겠지만.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
"의외네."
"뭐가?"
"아니, 이번 작품 말이야. 딱 책만 파는 거."
"하긴, 요즘에 시우 화가님이 매번 뭔가를 같이 팔긴 했었지."
"이번엔 뭘까 조금 기대했는데...."
'너를 더럽히는 나의 색'이라는 책을 나란히 들고 있는 두 사람이, 전시관을 빠져나가면서 약간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그나마 최근 작품 중에 이런 것이 없었던 건, '행복은 애널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정도가 될 것 같은데.
그것도 자체 굿즈는 없어도 수많은 애널 용품이 나와서 해결이 되었었다.
"어, 역시 그런 거 아닐까?"
"응?"
"브래지어나 애널 자위도구처럼, 만화에 나오는 것들이 그냥 시중에 풀리길 바라신 거 아닐까?"
"아, 이번에도 그런 거다? 그래서 굳이 추가로 팔지 않고?"
"응, 그런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네."
여자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실내에 들어오자마자 먼저 만화책을 펼쳤다.
어쩌다 보니까 여자한테 말려들어서 시우 화가의 작품에 빠져든 지도 꽤 시간이 흘렀기에.
이렇게 같이 만나서 작품을 보는 것이 굉장히 익숙해져 있었다.
"뭐야, 왜 먼저 읽어."
"꼬우면 아까 메르헨 배틀에서 이겨서 간식 준비를 나한테 시켰어야지."
"내가 졌으니까 할 말은 없는데, 그렇게 메르헨 배틀을 승자의 도구로만 이용하면 나중에 카드한테 배신당한다?"
"하지만 맨날 드로우로 배신당하는 거 그쪽이죠?"
"끙...."
한동안 티격태격하면서 말싸움을 이어가던 둘은, 언제 그랬다는 듯 작품에 몰입해서 내용을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특히 사파이어가 루비를 납치하고, 성적인 고문을 하기 시작하는 부분부터는 아주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다른 성별이라서 더 그렇지만, 이런 파트가 나올 때는 서로 이야기 없이 작품에만 집중하는 것이 둘 사이의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일단 네 예상이 맞았네."
하지만 오히려 그 정적이 오래 이어지는 것이 어색했는지.
아니면 계속해서 둘이 크게 침을 삼키는 소리만 들리는 것이, 여러모로 선을 넘을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했는지.
남자는 기존의 불문율을 깨고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응.... 아마, 이것들 엄청나게 나오겠네."
"...살거냐?"
여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아무래도 가능하면 다 모으고 싶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애널 플러그니 뭐니 별 이야기를 다 하는 사이라서, 이 정도야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오늘따라 상대방이 그걸 사용하는 모습이 떠올랐는지, 남자는 급하게 시선을 돌리며 어색한 톤으로 대답했다.
"아하, 아하...."
"왜, 같이 쓰고 싶어서 묻는 거야...?"
"뭐!?"
"아니, 이번 건 혼자는.... 그, 못 쓰니까?"
"그, 그렇긴 한데.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미, 미안. 잠시 너무 작품에 몰입했나 봐."
아무래도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향락에 젖어있는 것만 보다 보니, 그것이 부러워서 헛소리한 모양이라며 여성은 손사래를 쳤다.
둘은 굉장히 어색하게 웃으면서 겨우겨우 상황을 모면하고는.
다시 자신들이 관람하던 작품으로 되돌아갔다.
"어, 어?"
"왜 그래?"
"아, 아니야. 잠시만...."
조금 작품을 일찍 일던 여자 쪽에 뭔가 당황한 목소리를 내자.
아직 그곳에 도달하지 않은 남성은 쟤가 왜 저러나 싶어서 당황했다.
대체 무슨 내용이 뒤에 있기에 저러는 거지?
"음?"
그리고 점점 남자도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을 보며 슬슬 당황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사피이어가 루비에게 한 조교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완전히 사파이어가 루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데.
그 후에 이상하게 사파이어가 발견하는 것들에 수상함이 묻어나는 것이 많았다.
그의 기억과 조금씩 충돌하는 과거 사건들은 물론이고.
완전히 함락되었을 루비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해 보이기 시작한다.
기존에는 괜찮던 것들이, 의심하고 나니까 다 이상한 것 천지였다.
"와...."
그리고 사실은 사파이어가 루비를 위험한 짓까지 해서 가지고 싶도록 밀어붙인 당사자가 루비라는 것이 밝혀지고.
사파이어가 이제까지 사용했던 불법 미약이나 납치 감금과 맘먹는 수준의 범법 행위를 저질러가며, 사파이어가 루비한테 미친 듯한 사랑을 느끼도록 조작되었던 사실이 밝혀진다.
결국은 당신을 사랑하기에, 가지고 싶기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루비의 설명을 들으며.
사파이어는 물론이고, 지금 이 자리에서 만화를 읽던 둘의 멘탈까지 함께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