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화 〉 33권 너를 더럽히는 나의 색(4)
* * *
"루비가 일부러 그랬다고?"
남자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끼면서, 광기에 가득 찬 루비의 웃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물론 초창기부터 사파이어가 광기를 지니고 루비를 가지려 하는 모습에 익숙해져 있기에, 광기가 어린 사랑에는 익숙해져 있었지만.
그런 사파이어를 만들어낼 정도의 광기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던 만큼, 그 익숙함을 완전히 박살 내며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한기를 느끼다가, 정신을 차리고 책의 다음 페이지를 열었다.
일단 여기까지 진행이 되었으니, 그다음은 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이미 결말을 보지 않고 책을 덮기에는 너무 멀리까지 온 상황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그냥 생각도 못 한 진실에 놀랐을 뿐이지 만화가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서 덮을 이유가 없었다.
"불쌍한 대상이 순식간에 바뀌네...."
흥분되는 전개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이렇게 괴롭힌다는 점에서 루비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제는 평범하게 살아가야 했던 인생이 완전히 망가져, 더러운 인생을 살아온 사파이어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어라?
"더렵혀진다.... 설마 제목이 의미했던 더럽다는 게?"
그는 지금 읽고 있는 작품의 제목인 '너를 더럽히는 나의 색'을 떠올리며 의문 하나가 해결되었는지 감탄사를 내뱉었다.
루비가 사파이어에게 몸을 강제로 범해지고 개발 당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파이어가 나쁜 짓을 하는 사람으로 더럽혀졌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더러운 루비가, 사파이어를 자신처럼 행동하게 더럽힌 것.
바로 그런 작품의 설정이 제목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거다.
"생각해보면 원래 어원의 보석인 사파이어랑 루비도 원래는 같은 보석이네. 불순물 차이지."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그는 여성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되물었고.
여성은 마법으로 보석의 성분을 조사하던 사람들이 정리해둔 책을 본 적이 있다며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바로 두 보석의 특징에 관한 이야기였다.
"원래 사파이어랑 루비는 같은 보석이야. 사파이어는 색이 투명한 것부터 여러 가지 색이지만, 루비는 빨간 것만 있잖아? 그게 사파이어 중에 빨간 걸 루비라고 불러서 그래."
"...아하?"
"즉, 사파이어는 좀 포괄적인 녀석이지. 불순물이 적어서 무색투명한 것도 사파이어지만...."
반대로 불순물이 많아서 다른 색으로 더럽혀진 것도 사파이어다.
루비는 무조건 불순물이 있어서 붉게 변한 것만 루비라고 부르니까, 원래부터 더럽혀진 것이고.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이름에 많은 암시가 담겨 있었던 것 같았다.
"하나하나 소름이 돋네...."
"그래도 역시 사파이어는 원래 착했던 애라 그런지 정신도 금방 차리네."
모든 진실을 깨닫고 나서는, 일단 루비를 멀리하면서 이제까지 자신의 행적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었던 자신의 행동이나 루비의 행동을 돌이키기 시작한다.
잘못된 것들을 고치고,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루비는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지 않는 사파이어를 다시 손에 넣으려고 나쁜 짓을 계획한다.
하긴, 루비는 원래부터 이런 성격이었다는 거지?
이제는 그 상황이 당연하다 싶을 정도였고, 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루비의 행동을 납득하며 지나갔다.
이제 정신 차린 사파이어가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려 하지만, 루비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망가져서 자신만을 원하게 되는 것, 그것이 루비가 원하는 유일한 것이었고.
이것은 상대가 '루비'인 이상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모든 걸 해결하겠다고 나선 사파이어가 내버려 둘 리가 없지.
「오랫동안 고민해봤어. 왜 루비 너는 그렇게 해야 하는 걸까. 원래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거야.」
「.......」
사파이어는 루비가 하려던 다음 참사를 막아내고, 루비를 붙잡고 저런 말을 했다.
루비는 당연히 사파이어를 사랑에 가득 찬 눈길로 바라보면서도.
자신을 막는다는 것에 잔뜩 삐진 표정으로 기괴한 웃음을 흘렸다.
둘은 그 장면이 굉장히 무섭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다음 내용을 읽어나갔다.
「하지만 말이야. 네가 선택한 것이 좋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이제 나도 어느 정도는 망가졌으니까 알고 있어. 네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렇다면 막지 말았어야지. 지금 그대로 갔으면 우리 둘만 평생 함께할 수 있었어.」
「아니.」
사파이어는 고개를 저으며 루비를 꽉 껴안아 준다.
여전히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착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그녀가 만족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루비, 사랑이라는 건 있는 그대로 상대를 사랑하는 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그래서는 만족할 수 없어. 사람은 모두 사랑에 바라는 것이 다르니까. 내가 만족하려면....」
「내가 해줄게...!」
「뭐?」
설령 내가 너를 집착하는 방식으로 사랑하지 않더라도.
우리끼리는 그렇게 사랑하기로 약속을 해서, 루비를 만족시키기 위한 배려를 한다.
대신 루비도 그 대신에 평소에는 그를 배려해서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굉장히 특별한 사랑의 형태를 선언한다.
「정 뭐하면 네가 알아서 생각해도 좋아. 내가 주인님이라며, 내 말을 들어야지.」
「...주인님?」
잠자리에서만큼은, 둘이서 사랑을 나눌 때만큼은 그녀를 그때처럼 집착하고 가두고 괴롭히며 자신의 가장 소중한 물건처럼 취급해준다.
그 정도로 집착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루비를 배려한 섹스 방식이다.
그리고 평소에는 평범한 부인으로써 살아간다.
그것이 사파이어가 제안한 해결법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애초에 노예가 감히 주인님의 평소 생활을 방해하면 안 되는 거잖아? 어딜 바깥까지 기어 다니면서 활동을 하는 거야?」
「그건 그렇네.」
사파이어는 일부나마 루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여전히 사파이어는 루비를 사랑하기에,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면서도 루비를 자신의 곁에 둘 방법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루비와 자신이 모두 바뀌지 않으면서 생활을 유지한 타협점을 찾은 것이었다.
"와...."
서로가 동의한, 사랑이 가득 담긴 과격한 성생활이 펼쳐진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생활을 진행하지만.
둘이 밤에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 저건 폭력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행동들을 마구 해버린다.
그 심한 방식은 작품 초반에 나왔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은근히 보이네.'
남자는 매번 사파이어가 루비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성적으로 괴롭히고는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섹스를 위한 컨셉일 뿐.
실제로는 어느 정도 수준을 잘 조절하면서 배려해, 기분 좋게 해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 사랑의 감정에 루비가 충분히 만족하면서.
둘의 관계는 점차 안정화되고, 그나마 좀 평화로운 형태로 마무리되기 시작했다.
물론 보지에 진동 로터를 붙여서 자극당하는 상태로, 가문 사람들한테 인사를 가는 등의 일상 조교 같은 장면이 좀 어지럽긴 했지만....
'이런 감정을 뭐라고 하더라...?'
예전에 다른 작품에서 본 단어가 하나 있었는데.
아마 '배덕감'이라고 부르는 성 취향과 관련된 용어였을 거다.
하여튼 충분하게 진짜 사랑이 어떤 것인지에 논하는 작품이었던 만큼, 충격을 이겨내고 결말에 도달했을 때의 충족감은 꽤나 괜찮은 편이었다.
"...오늘도 재밌었다."
"그러게. 이번엔 뭔가 특별한 건 없지만, 작품 자체가 꽤나 충격적인 게 많았네."
"맞아. 나도 확실히 그런 도구로 자위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런 괴롭힘은 별로라 생각했어. 근데 마지막에 둘이서 사랑하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플레이 전용으로 즐기는 걸 보니까 기분 좋아 보인다고 해야 하나...."
"...뭐?"
"어? 나, 나 지금 뭔가 말했나?"
자신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깨달은 그녀는 손을 마구 휘저으며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남자는 머릿속에서 그녀가 그렇게 괴롭힘당하는 장면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그것을 본 그녀는 반대로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는 뭐라 말도 못 하고 어버버거렸다.
"아무튼 아니거든!?"
"아, 알아. 어차피 진짜더라도 남자부터 생겨야 하잖아."
"그, 그렇지. 혼자서는 못하니까.... 물론 사파이어처럼 이해해줄 수 있는 남자도 필요하고."
"응, 그렇지."
"시우 화가 작품을 같이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을 텐데."
"......."
그리고 그녀는 자꾸 이야기가 이상한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경망스러운 자신의 입을 자책했다.
지금 그 시우 화가 작품을 같이 좋아하는 남자애랑 같이 있으면서, 그런 사람이 미래에 함께하면 좋겠다니 미쳤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이면 쟤랑 그렇고 그런걸....
"아, 아으....."
"그, 오해하지 말고 들어봐."
"응!?"
"그러니까, 그.... 나도 알아. 너랑 나는 그냥 오래된 소꿉친구고. 그냥 그게 끝이긴 한데...."
"어, 어!?"
그건 어디까지나 지금의 관계일 뿐이다.
사실 모든 것이 시작하기 전인 루비와 사파이어도 별다른 관계는 없었지 않은가.
하지만 거기서 사랑에 빠진 둘이 달려간 끝에 이루어진 거고, 그사이에 비틀린 성격과 상황 때문에 많이 돌아갔던 거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만화로 다 아니까. 굳이 돌아갈 필요가 없어.'
"...어디까지나 네가 원할 때의 이야기인데 말이야."
"으, 응?"
"내 노예가 되어주지 않을래?"
남자는 결국 방금 만화에서 보았던 대사를 그대로 내뱉으며, 꽤나 어처구니없는 방식의 프러포즈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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