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화 〉 35권 야한 건 안돼!(3)
* * *
"코, 코코아는 제 소중한 친구란 말이에요! 정말로 코코아가 그런 억압을 당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아니...."
그냥 너도 변태라, 코코아랑 마찬가지로 야한 짓 당하고 싶어서 들어온다는 거 아니냐?
뭐, 그것과는 별개로 코코아를 생각해주는 건 맞는 것 같지만.
하여튼 동아리에 들어오는 건 좀 그런데?
대충 변명을 만들어서 내쫓는 수밖에 없겠네.
"그건 어려워. 우리 동아리는 만화 동아리고, 어디까지나 코코아는 그 만화 동아리로써 필요한 그림 실력이 있어서 통과한 거거든."
뭐 이것도 정론으로 막는 거긴 한데, 오르카를 생각하면 굳이 지켜야 하는 부분은 아니다.
다만, 내가 작업할 때도 쟤 때문에 귀찮은데다.
기본적으로 나는 동아리에서 야한 짓도 자주 하잖아?
그때마다 난동을 부리면서 발작할 걸 생각하니, 상상만 해도 짜증이 나서 어쩔 수 없었다.
"그, 그럼 제가 만화나 그림을 그려서 통과를 받으면 된다는 거죠?"
"그거야, 그렇지?"
그 경우에는 변명하기 어렵기도 하고, 뭐 어느 정도 실력이 있으면 귀찮음과 짜증을 감수할 만하겠지.
다만 내가 그렇게까지 느낄 정도로 효과적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모리를 받기 위한 조건으로 그림 실력을 걸었다.
"어?"
적당히 잘 그리더라도, 만화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라도 하면서 내쫓을 생각이었는데.
그림을 그리는 것에 집중하는 아모리의 손끝에서 그려지는 선을 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렇게 귀여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녀석이었단 말이야?
"어...."
SD라고 부르기에는 굉장히 큰, LD에 가까운 체형을 그려내고 있는데.
캐릭터를 표현해내는 그림체가, 굉장히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만화로 그려내기에 굉장히 좋다고 볼 수 있는 귀여운 그림체와 익숙하게 적어내는 효과음들의 조화가 굉장히 그럴듯하게 어우러졌다.
"뭐야, 좋은데?"
"그, 그래요?"
사실 여기까지라면, 평범하게 귀엽다고 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데.
효과음이나 일부 디테일에서 보이는 욕구의 자극이 굉장히 세련되게 느껴진다.
살짝 드러난 팬티 위 두툼한 둔덕의 표현도 괜찮았고, 떨림이나 물방울 표현 등도 적절하게 야한 느낌을 준다.
귀여운 그림체에서 야한 요소들을 아주 적절하다 싶으면서도, 일부러 찾아보면 좀 과하다 정도로 집어넣은 느낌인데.
일부러 저런다기보다는, 감각적으로 저렇게 그려내는 것 같았다.
그림체야 타고난 건 같은데, 저런 건 맨날 저런 만화만 보면서 익숙해졌겠지.
특히 조금씩 그로테스크할 수 있는 사실적인 표현을 그림체의 귀여움으로 적당히 환기하면서.
오히려 그 귀여움과 심각한 상황의 대비로 찔러오는 감정의 변화가 나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쪽에는 아직 이런 컨셉을 잡은 만화가가 많지 않았지?
이건 좀 키워보고 싶은데.
"왜, 왜요? 이상해요?"
"와, 역시 예전부터 느꼈지만 아모리가 그리는 그림은 어딘가 야하네."
"야, 야하다고!? 귀여운 게 아니고?"
"귀엽긴 한데, 야하기도 해."
"아, 아니야! 정신 차려 코코아! 그거 다 저 이상한 선배한테 물든 거라니까!"
"아니, 아무래도 말하기 좀 그래서 말하지 않았던 거지.... 처음 봤을 때부터 그렇게 느꼈어."
아모리는 그런 사실을 몰랐는지, 충격받은 표정으로 코코아를 바라보았다.
뭐, 의도해서 그린 건 아닐 테니까 놀랄 수도 있지.
굳이 자세한 이유를 말해줬다가 고치면 악영향이니까, 그냥 평가부터 해야겠다.
"좋아. 합격. 이렇게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나도 뭐라고 하지 못하지."
"저, 정말요?"
"응, 그래도 조건은 있어. 아까 말했지만, 동아리에서 동아리 일도 하지만 사적으로 즐기기도 하거든? 그것까지 방해하는 건 안 돼."
"...네?"
자기 생각대로 되니까 기뻐하던 와중에,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듯 당황하더니.
아까 내가 말했던 코코아 앞에서 열심히 다른 애들과 떡 쳤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는지.
살짝씩 자신의 사타구니를 움찔거리며,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왜, 관람할 생각 하니 기대돼서 그래?"
"아, 아니요!? 제, 제가 서, 선배가 하는 걸 왜 봐요! 하, 하고 계시면 나가 있을 거예요!"
"그럼 나야 좋고."
오케이, 그럼 만화 작업해야 해서 쟤를 내보내야 할 때는 섹스하는 척하면 되겠다.
생각보다 조종하기 쉬울 것 같은데?
부끄러워한다는 게, 이런 장점이 있긴 하네.
"뭐, 그렇다고 항상 너를 혼자 두겠다는 건 아니야. 내가 만화에 대해서 알려줄 수 있는 건 알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일대일 수업이 공짜라 생각하면, 나쁘지 않지?"
"일, 일대일 수업...!? 아, 안 돼요! 그런 거 했다간, 정신 차리는 순간 임신해버려!"
얘는 대체 얼마나 뇌가 썩어 있길래, 일대일 과외라는 말만 해도 제자와 스승의 임신 섹스를 떠올리는 거냐.
여러모로 중증이라서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은 느낌이야.
방금까지 생겨났던 자신감이 다시 사라지려고 하네.
"하여튼, 코코아한테 일정 일러둘 테니까 그거에 맞게 동아리 방으로 찾아와. 우리 동아리원들 소개해줄게."
"아, 알겠습니다."
후, 시발년 얼마나 변태적인 상상을 많이 했으면 애액이 넘쳐서 허벅지 안쪽으로 흘러내리냐.
입고 있는 팬티도 가리는 면적도 적고 딱 달라붙어서 겁나 야하고.
그림도 그렇지만, 본인도 얼마나 야한 몸을 하고 있는지 자각해줬으면 좋겠는데.
"선배?"
"아, 응. 이제 가볼게.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하여튼, 다음에 보자."
"네...."
나는 그녀가 다시 망상으로 폭주하기 전에, 급하게 기숙사 밖으로 나왔다.
역시 서큐버스, 하마터면 나까지 정신을 놓고 망상으로 들어갈 뻔했다.
덕분에 자지가 너무 달아올랐는데, 이건 기숙사 가서 니아한테 한 발 빼달라고 해야겠네.
역시 우리 니아, 내 든든한 파트너!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
"후, 이제야 좀 시간이 나네."
"어, 왔어?"
"응, 이제 좀 시간이 나나 보네?"
"우리 애도 좋지만, 자고 있을 때 만화나 그림 쪽도 건드려야 녹슬지 않으니까."
좀 쌓여있던 과제를 마치고 동아리 방에 들어서자, 꽤 보기 드문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유리아와 로자리아가 모두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서, 차기작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오르카는 신작 만화를 쌓아놓고 읽으며, 하나씩 평가를 적어두고 있었다.
다들 동아리 활동에 완벽하게 전념하고 있는 모양이네.
솔직히 이런 걸 바랬던 건 아니고, 지금 좀 미리 와서 모두한테 준비를 시키려고 했는데.
이러면 그냥 내버려 둬도 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오늘은 내가 시간이 되면서, 코코아한테 아모리를 데려오라고 했으니.
아무래도 동아리의 모습이 건전하고 올바를 때, 예쁜 첫인상을 심어주고 싶었거든.
지금 이 느낌만 유지하면 딱 좋겠네.
"음? 그 펜은 뭐야? 처음 보는 디자인이네."
평소에 내가 쓰는 것처럼, 마력을 넣어서 잉크를 사용하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미묘하게 동작하는 방법이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 펜은 잉크가 번지지 않았을 텐데, 저건 손이 잘못 부딪히면 일부 번지기도 하잖아?
"아, 이거? 별로 실용적이진 않은데, 재밌어 보여서 샀어."
"재미?"
"시간이 지나면 그린 게 지워지는 펜이야."
일부 틀린 게 있으면, 그린 직후에 지우는 것이 가능한 펜은 있었지만.
그린 것이 시간이 지나면 바로 사라지는 펜은, 이쪽에 와서 본 적 없었던 것 같다.
뭐, 지구에서는 비슷한 걸 본 기억이 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면, 뭐 마력으로 썼다가 마력이 증발하고 그런 거야?"
"그렇게 빨리 없어지진 않아. 몇 시간 정돈 걸릴걸?"
"흐음...."
마력을 쓰는 게 아니면, 이쪽에 발달한 잉크 기술로 만든 증발하는 잉크 같은 건가 보다.
지구에도 비슷한 게 있었으니, 비슷한 물질을 발견했으면 가능한 부분이겠지.
근데 저걸 쓸 일이 있나?
"이 자그마한 노트 하나에 연습을 엄청 할 수 있어."
"...그건 오히려 낭비 아니야? 노트를 여러 개 사서 다 기록으로 남기는 편이 낫지."
"그렇게 남기기엔 쪽팔린 연습들도 있다는 말씀!"
"...그래?"
하긴, 나도 굳이 저장 안 하고 삭제했던 연습 파일도 있긴 하다.
이쪽에 온 초기에 연습한 것들도, 그냥 구겨서 버렸던 것 같고.
로자리아 수준에 아직 그런 연습이 필요한 부분도 있구나.
'그나저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잉크라.... 이것도 조금 재밌겠는데, 나중에 원리를 좀 봐야겠네.'
최근에 생각하고 있는 아이디어랑 접목하면, 꽤나 괜찮은 게 탄생할 것 같았다.
물론 이 부분은 내가 생각한 원리랑 다르면 할 수 없긴 한데.
그래도 알아볼 만한 가치는 있겠지, 만약 가능하다면 비용을 좀 쓰더라도 꼭 구현하고 싶은 물건이 하나 있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동아리 방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마 코코아가 아모리를 데리고 왔겠지.
동아리 방으로 들어온 아모리는, 의외라는 듯 진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는 다른 동아리원들에 시선이 고정됐다.
하긴,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이렇게 진지하게 만화 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 해.
"아, 왔네. 다들 저번에 미리 이야기했었지? 이번에 동아리에 들어온 신입생 아모리야."
"아, 안녕하세요."
"귀신같이 또 예쁜 여자애를 데려오네."
"아니, 진짜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니까."
"그래도 크기를 보니까 동지네. 그건 마음에 들어."
로자리아는 그녀와 마찬가지로 납작한 편인 아모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넌 왜 만화 동아리 신입생을 가슴 크기로 마음에 들어 하냐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지려는 마음을 뒤로 밀어두고, 미리 받아둔 아모리의 그림을 모두에게 보여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