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 35권 야한 건 안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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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의도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굉장히 세세한 부분이 좋지 않아? 그러면서 귀여운 느낌이 강해서 적당히 중화도 되고."
"응, 그런 부분은 유리아가 그린 거랑 비슷한데, 그림이 기본적으로 귀여운 느낌이라 섬뜩함이 덜해."
귀여운 그림체가 제약일 것 같지만, 은근 이게 원래 있는 제약을 부숴주는 역할도 하거든.
그러면서도 반대로 감정을 줘야할 때는, 그 대비되는 이미지가 확 심장을 움켜쥐는 것처럼 다가오게 연출할 수도 있지.
여러모로 써먹기 좋은 그림이다.
"음, 확실히 이 정도면 칼리가 눈이 돌아갈 만하네."
"그림 잘 그리는 여자랑 가슴 큰 여자한테 약하니까."
"가, 가슴은 상관없잖아. 이번 신입생도 납작하거든!? 카, 칼리가 전에 크기랑 상관없이 가슴이면 다 좋다고 했어."
"...그럼 로자리아 선배 앞에서 큰 가슴이 최고라고 하겠어요? 아무리 칼리가 눈치가 없어도, 그건 아닐걸요."
"으아! 유리아 너는 왜 자꾸 나를 못 괴롭혀서 안달인 건데!?"
"뭘요. 저는 사실을 말했을 뿐인걸요."
"이 애도 없는 년이 진짜?"
"칼리 안 되겠어, 나랑도 하나 만들자."
이 둘은, 진짜 틈만 나면 싸우려고 드네.
그나마 다행인 건, 오르카가 중재하는 것만큼은 둘이 들어준다는 거다.
오르카도 없었으면, 진짜 이 동아리는 여러모로 위태위태했겠네.
"아, 너무 당황하지 말고 앉아. 선배들은 항상 이런 느낌이니까."
"...하, 항상 동아리에서 이런 치정 싸움을 한다고?"
"치정 싸움은 아닐걸? 그냥 둘이 서로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을 거야. 나랑 오르카 선배한테는 다들 상냥하니까."
글쎄, 로자리아야 그런 느낌이긴 한데....
유리아는 솔직히 어느 사람에게나 어처구니없는 말을 내뱉는 애라서, 그게 상냥하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네.
하긴, 로자리아가 상대일 때처럼 집요하게 괴롭히는 일은 없긴 하지.
로자리아가 괴롭힐 때 반응이 가장 재밌다고 했던가?
"자, 자. 놀라지 말고 여기 앉아. 자리는 충분히 있으니까."
"아, 네...."
의외로 오르카는 어른스러운 느낌으로 아모리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지금 자기 친구도 이상해져서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저렇게 자신을 챙겨주는 사람을 만나서 안심한 모양인데.
...솔직히 오르카에 대해서도 진실을 깨달으면, 금방 깨져나갈 이미지라 걱정이 좀 된다.
"뭐 좀 마실래? 지금부터 대충 동아리에서 하는 일들을 설명해 줄 건데, 입이 심심할 테니까."
"...뭐, 이상한 걸 탄 게 아니라면요."
"안 탔거든. 애초에 그런 걸 상대방 동의 없이 타면 불법이야."
"의외로 그런 거 신경 쓰시는군요."
"그걸 신경을 안 썼으면, 코코아가 도발할 때, 그날 바로 넘어갔겠지."
여전히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 모양이지만, 나에게는 굉장히 억울한 일이었다.
정말로 코코아가 나에게 범해 달라고 울면서 빌기 전까지는 방치한 게 사실인데 말이야.
뭐, 아모리를 강간할 생각도 없으니까 나중에는 이해받을 수 있겠지.
"뭐, 신입생 소개도 끝났으니까.... 반대로 너한테 우리 소개도 해야겠네. 일단 너도 알겠지만, 나는 금년부터 만화 동아리의 장을 맡는 칼리야. 잘 부탁해."
"아, 넵."
"그리고 이 3학년 선배가 로자리아, 작년에 이 동아리를 설립한 전 동아리장이야. 핑크빛 일기장 시리즈를 그린 장본인."
"아, 그거라면.... 저가형 만화책의 시초라고 불리는 작품이잖아요."
"그래. 유명한 사람이지?"
로자리아의 마기우스 가문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 굳이 질문을 하거나 신기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자리아가 내 팔을 껴안으면서 내 아이를 임신하고 낳았던 이야기를 할 때 더 큰 반응이었지.
그녀가 예상한 이미지와는 로자리아의 이미지가 매우 달랐나 보다.
뭐, 코코아처럼 나에게 쩔쩔매는 듯한 모습을 상상했던 건가?
"......?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웃으면서 로자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왜 그렇게 웃냐는 듯 로자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내가 대충 말을 돌리고 애정행각을 하자, 배시시 웃으면서 살포시 안겨 왔다.
유리아랑 싸울 때는 그렇게 사나운데, 나한테는 순한 양이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에게 쩔쩔매는 것 같기도 하네.
워낙 평소에 원래 성격이 드러나는 편이라 그렇지, 기본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주려고 하니까.
내가 죽을뻔한 이후로는, 항상 신경 써주는 것이 느껴져서 고마웠다.
"왜 신입생 소개를 안 하고, 부부 소개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유리아야. 반가워 후배."
"아, 안녕하세요."
"여기 붙어 있는 게, 유리아가 그린 그림! 되게 예쁘지?"
"어, 엄청 야한데요!?"
아모리는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부끄러워하더니.
벌려진 손가락 사이로 그 그림을 열심히 관람하며 몸을 떨었다.
진짜 대놓고 관람하고 있네.
"그리고 우리 동아리는 다른 활동도 하고 있어. 새로 나오는 만화들을 읽어보고, 괜찮다 싶은 것을 만화관에 비치하는 것! 나는 그걸 담당하는 오르카라고 해!"
"아, 그럼 그림은 안 그리시는 거예요?"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면, 아마 마법부에 들어갔을걸?"
"사실 그래서 조금 의문이었어요. 만화 동아리에 왜 검술부 선배가 있나 싶었거든요."
아마, 내가 동아리에 들어오려면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뛰어나야 하는 것처럼 말해서 그런가 보다.
물론 이것에 대해서는 미리 변명을 준비해 놓았기에, 별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아마 본인도 반박하기 쉽지 않을 걸.
"아모리는 작품에 야한 게 들어있으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편이잖아? 그래서 저쪽은 안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
"따, 딱히 그렇진 않거든요!? 그냥 일부 파렴치할 정도로 야한 설정의 작품들이 문제라고요!"
"그 생각이 문제라는 건데...."
솔직히 그녀가 사실은 야한 걸 좋아한다는 걸 몰랐다면, 내가 꽤나 배척했을 만한 성격이었다.
내 목표가, 이쪽 세계에서는 만화에서 야한 것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 없는 무검열의 세상을 만드는 건데.
야한 것이 문제라며 검열하려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상의 아이니까.
'뭐, 부끄러워서 저러는 거니까. 아직은 괜찮지.'
가끔 속에서 올라오는 역겨움을 지워내며, 미소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어차피 이쪽 세상은 그런 꼬락서니도, 사상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나는 최대한 속을 진정시키며, 아모리에게 다음 설명을 이어갔다.
"뭐, 그 부분도 익숙해지면 괜찮겠지. 네가 그런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싶으면, 이쪽 일도 나눠줄게. 이건 우리 동아리 전원이 해도 되는 일이니까."
"하여튼.... 저는 이쪽이 맞지 않을 것 같아서, 그림 실력을 봤다는 거죠?"
"응. 코코아의 경우에는, 원래 신입 동아리원을 받을 예정이 없던 시기인데. 워낙 실력이 좋으니까 놓칠 인재가 아니라고 받았다고 하고."
"아하...."
대충 동아리에 대한 설명이 끝난 뒤에는, 간단한 교육부터 시작했다.
비치되어있는 만화용 그림 도구들의 사용법을 대강 알려주고.
표지를 비롯한 컬러의 활용법이나, 칸을 나누는 것에 대한 것 등 만화의 기본적인 표현 흐름도 설명해줬다.
"뭐, 코코아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아모리도 만화 자체는 많이 읽어봤다고 했지? 그럼 대충 이해했으리라 생각해."
"으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시험 삼아 단편 같은 걸 조금 그려서 보여주거나 하면, 다들 도와줄 거야."
"네...."
아모리는 이 정도로 제대로 된 활동을 하리라 생각하진 못했는지, 기본적으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일단 하면 열심히 하는 성격인지, 제대로 집중해서 뭔가 해보려는 모습이 느껴졌다.
물론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머리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긴 했지만.
"오늘은 이쯤이면 적당히 친해진 것 같네."
나는 은근슬쩍 코코아의 꼬리를 쓰다듬었고, 코코아는 갑작스러운 자극에 야한 신음을 흘렸다.
당연히 그걸 놓칠 리 없는 아모리가, 새빨갛게 변한 표정으로 덜덜 떨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마치,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이 색마! 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항상 하던 거 해야지."
"네, 네엣...♡ 선배가 하고 싶은 대로 마구 괴롭혀 주세요♡"
"히, 히이...."
점점 타오르는 분위기에, 아모리는 살려달라는 표정으로 가장 믿음직해 보이는 오르카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오르카가 가장 먼저 내 사타구니로 뛰어들어 머리를 비비비는 걸 보고, 배신당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점점 다 같이 야한 짓을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되자, 굉장히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녀가 야한 것을 속으로는 좋아한다고 쳐도, 친구가 선배한테 박히는 걸 직관하는 건 무리겠지.
코코아한테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도 발작했으니, 그걸 본인이 직관하는 건 어련하겠어.
결국 아모리는 급한 일이 생겼다면서 급히 짐을 챙기고 동아리 방을 나섰다.
"이게 진짜 되네. 다행이다. 이제 동아리 방에서 내쫓아야 하면, 이 방법을 쓰면 되겠어."
"뭐야, 진짜 하는 거 아니었어?"
"해도 되긴 하는데, 그 이전에 해야 하는 게 있어."
"응?"
"코코아한테 아직 말 안 했거든. 말하려는 순간 아모리가 기숙사에 돌아왔던 바람에...."
"어, 저요?"
내가 시우 화가라는 사실에 대해, 원래라면 그 타이밍에 코코아에게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판 남인 아모리가 계속 붙어 있어서 기회를 놓치고 있었고.
그런데 지금은 아모리가 도망갔으니, 기회라고 생각해서 말을 꺼낸 참이었다.
"...서, 선배가 시우님이라고요!?"
"그래. 아무래도 동아리에서 작업도 하고 그러다 보면, 알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애초에 코코아 너는 이제 내 사람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코코아도 내 작품에 신세를 진 적이 많았던 건지, 꽤나 충격받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환기하려고, 작업 중인 그림을 꺼내서 구경시켜주려고 했는데.
갑작스레 오르카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자리에서 뛰쳐나가 문을 벌컥 열었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응? 아니야. 기분 탓이었나 보네."
...와, 방금 가슴 흔들리는 거 역동감 존나 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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