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화 〉 37권 절대로 잊지 않을거야(3)
* * *
「학, 하악....」
강렬한 현장감을 보여주던 둘의 정사가 끝이 나고.
릴리스는 이제까지 느낀 적이 없었던 강렬한 충족감과 개운한 감각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부드럽게 자신을 안아오는 쾌감의 여운에, 약간의 신음과 떨림을 보이면서.
자신을 이렇게 충족시켜준, 상대방에게로 손을 뻗는다.
「애덤...?」
「.......」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고, 조금까지만 해도 그녀를 사랑으로 범하던 육체만이 덩그러니 품에 안겨있었다.
섬찟한 감각을 느낀 릴리스는 급하게 애덤의 몸을 흔들며 그를 불렀지만.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애덤의 몸은, 너무나도 쉽게 그녀의 손을 따라 휘청거렸고....
「애덤...!」
완전히 정신을 잃은 그는 힘없이 쓰려졌다.
아무리 릴리스가 울면서 그의 몸을 흔들어도, 어떠한 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예상했던 결말을 확인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바보 같아...."
그까짓 사랑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까놓고 말해, 이렇게까지 한다고 해도 릴리스는 단명할 터다.
아무리 지금 받은 마력을 아껴 쓴다고 해도 한계는 있고, 마력이 부족해지면 다시 정액 결핍증이 재발할 테니까.
사실 알고 있었다.
이 둘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그것이 전해주는 감동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아무리 엔딩이 이런 것이더라도, 충분히 전해져 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지만, 그게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라면.
아무래도 인정하고 싶지 않게 되는 법인가보다.
그런 바보 같은 사랑 따위는 차라리 없었어야 한다고, 그런 생떼를 쓰게 된다.
「애덤, 나는....」
그리고 꽤나 시간이 흐른 뒤, 여전히 깨어나지 않는 애덤의 모습에 릴리스는 절망하고.
결국은 그를 따라가겠다는 생각에 죽음을 각오하고 절벽에 선다.
그녀가 살아가는 유일한 희망은 애덤이었고, 그 애덤이 사라진 세상에서는 살아갈 가치가 남아있지 않았으니까.
「우욱!?」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결심을 한 그녀는, 몸에서 이상 현상을 느끼게 되고.
이제까지 아끼던 마력을 사용해 몸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하는데.
정말 뒤늦게서야, 자신이 임신한 상태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
물론 둘의 섹스를 연출했던 장면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예상을 했던 부분이지만.
정작 그 장면에 도달하니,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탓에 살짝 구겨진 만화책을 조심스럽게 펴고, 심호흡하면서 다음 페이지로 손을 가져갔다.
「애덤, 설마....」
본래라면 서큐버스가 일부러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임신하는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정액을 아무리 질내에 사정하더라도, 전부 마력으로 변환되는 서큐버스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하지만 애덤은 강렬한 의지로 서큐버스가 받아들일 마력을 넘어설 정도의 생기를 만들어 냈고, 그 덕분에 미처 마력으로 변환되지 않은 정액이 씨앗이 되어 아이가 생겼다.
정말로 애덤은 아무 능력도 없이, 릴리스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고위 서큐버스의 힘을 넘어선 것이었다.
「애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
결국 릴리스는 자신의 뱃속에 자라나는 아이 때문에, 자살을 포기하고 내려온다.
나는 그 장면을 굉장히 원망스럽게 보고 있다가, 굉장히 애틋한 표정으로 자신의 배를 바라보는 릴리스 때문에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솟아올랐다.
차라리 싫어하는 표정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저렇게나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건지.
"그런 표정이면, 섹스 따윈 하지 않는 게 나았다고 말할 수가 없게 되어버리잖아...."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과몰입하면서 작품을 볼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비슷한 상황이더라도, 결국 릴리스가 우리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정액 결핍증으로 죽어버린, 이제는 기억 속에서 희미한 그녀와 같은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초반에는 아는 것이 많아서 몰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상, 하네...."
결국 나는 엄마가 아빠를 죽이고 남은 결과물이었을 텐데.
저런 릴리스의 표정을 보면, 그냥 평범하게 사랑받던 아이인 것만 같아서.
묘하게 가슴에 차오르는 듯한 감동이 느껴진다.
부정적으로 보던 둘의 섹스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너무나 아름답고 빛나 보였던 것이 다시 떠오른다.
야한 것이라는 것이 사람을 죽이는 용도가 아니라.
사실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이 작품 때문에 깨닫게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와.」
「애, 덤...?」
넋을 놓고 넘긴 다음 페이지에는, 놀랍게도 정신을 차린 애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아직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아서, 몸은 꽤나 초췌해 보였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릴리스를 껴안았다.
'어쩌면, 어쩌면 우리 아빠도....'
저렇게 애덤처럼 이겨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물론 실패하긴 했지만, 분명히 저런 미래를 그리고 엄마와 섹스를 하지 않았을까.
바보같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저렇게 세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던 미래를 꿈꾸었던 게 아니었을까.
"죄송해요...."
그렇다면, 그 행동이 바보 같다면서 책임을 물 것이 아니었다.
무모하지만 아름다웠던 아빠의 사랑에, 오히려 감사해야겠지.
비록 실패했지만, 그래도 그 도전의 증거로써 내가 이렇게 남아있으니까.
"나, 진짜.... 나는...."
내가 야한 짓이라는 욕망에 빠져서 끝을 맺지 못하던 저주의 혈통이 아니라.
사실은 누구보다 저주를 이겨내고자 했던,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으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결실이라는 걸.
정말 너무나도 늦게 깨닫고, 늦게 인정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행복하게 서로를 안고 있는 둘의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고, 또 바라보다가....
있을 수 없는 꿈과 같은 미래를 가슴에 품고.
천천히 책을 덮었다.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
"죄송했습니다!"
"뭐, 뭐?"
갑자기 아모리가 아침부터 나한테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저거였다.
심지어 어쩔 수 없이 하는 느낌이 아니라, 진지하게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이라니.
이제까지 그녀에게서 느끼던 모습과의 괴리감 때문에 굉장히 당황했다.
"뭐, 뭐가 갑자기 죄송한데? 설마 작품 유출이라도 했어?"
"아뇨. 그게 아니라.... 제가 최근에 계속 선배 말을 믿지 않고 괴롭혔잖아요. 그걸 사과해야겠다 싶어서요."
"...엥?"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모리가 저런 소리를 하니까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물론 나는 그녀가 이렇게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긴 했지만, 솔직히 예상했던 건 코코아처럼 야한 걸로 폭주하는 거였는데.
생각보다 훨씬 정상적으로 사과를 하는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거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거든요."
그렇게 말한 아모리가 꺼내 든 것은, 신작인 '절대로 섹스하지 않을거야'였다.
아마 어제 코코아랑 종일 저거 읽다가 늦게 잔 모양이네.
...서큐버스가 읽은 서큐버스 이야기라는 점에서, 후기가 궁금하긴 하네.
"어땠는데?"
"...오르카 선배가 했던 말이 있어요. 너무 잘 아는 이야기가 나와서, 신기하다고요."
"그 정도야?"
"무서울 정도로, 완벽한 만화였어요."
그나저나 저 작품을 본 거랑 나한테 사과하는 거랑은 무슨 상관이지?
뭐, 야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건가?
솔직히 이번 작품에 그런 의미를 담으려고 했던 건 사실인데.
"선배는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작품만 그려내는지...."
"아하하, 그렇게 직접적으로 들으면 좀.... 응?"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가, 뭔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대화 내용에 당황했다.
분명 '시우 화가'의 작품을 평하는데, 나한테 대단하다고 말한다고?
그건 설마....
"죄송해요. 일부러 엿들으려는 건.... 아니, 엿들으려고 한 건 맞는데 그런 사실을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아, 미친...."
아모리가 돌아간 줄 알고 동아리 방에서 떠들 때, 우연히 듣고 알게 되었나 보다.
아무래도 요즘 일이 다 잘 풀리다 보니, 느슨해져 있었나?
다음부터는 진짜 조심해야지....
"사실, 저는 선배가 야한 것에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어?"
그리고 나오는 것이, 펙트 그 자체라서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내가 야한 것에 미친 사람이라, 작품마다 죄다 야한 설정을 넣고 있기도 하고.
애들이랑 뒹굴면서 잔뜩 섹스하는 것도, 내가 야한 것에 미쳐서 그런 거였으니.
저란 말을 들어도 할 말은 없지.
"하지만 선배는, 그냥 야한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시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거야 항상 생각하고 있긴 한데."
애초에 아름다우니까 꼴리는 거고, 그래서 사람이 미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야한 것만 보면 발작하던 아모리는, 어느새 '시우 화가' 찬양론자가 되어 있었다.
특히 소수의 아픔과 그 마음을 그려낼 수 있는 대리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이제 조금은 알아버린 것 같아요."
"뭐가?"
"선배는, 이상한 성적 취향을 잔뜩 가진 변태 같은 게 아니에요."
"그, 그렇지?"
"어디까지나, 어떤 상대여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 뭐든지 하는 로맨티시스트였던 거죠. 이제야 코코아의 말을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어...."
확실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긴 했는데, 뭔가 조금 과장되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그것과 별개로 내가 꼴려서 같이 했던 건데?
왜 갑자기 사랑을 위해 희생하는 로맨티시스트가 되어 있는 거야?
"하여튼, 오해는 풀었으니까 동아리는 그만두고 코코아를 풀어주는 거지?"
"아뇨."
"...아니야?"
"저도, 이제부터는 진지하게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어요. 코코아와 선배를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선배처럼 멋진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