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6화 〉 37권 절대로 잊지 않을거야(5)
* * *
"앗...!?"
"아모리? 괜찮아!?"
"응, 갑자기 가슴이 좀 쑤셔서. 별 건 아니야."
요즘 들어 발작하는 주기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슬슬 성인이 되고 시간이 지난 만큼, 내가 가지고 있는 병도 진행이 된 거겠지.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느껴져서 속이 조금 탔다.
"후우...."
"괜찮은 거 맞아? 저번에도 그러더니."
"가끔 그래.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아까 선배에게 사과한 뒤, 코코아와 함께 '절대로 섹스하지 않을거야'의 판매를 도왔다.
사실 관리 감독이라는 일이긴 해도, 실제로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거나 부족한 일손을 더하는 정도라.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은 부족한 손을 도와서 직접 작품을 판매했을 때였다.
"뭔가 엄청나게 뿌듯한 기분이네."
"그래?"
"응, 엄청나게 좋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봐."
"확실히 그런 느낌이 있긴 해."
내가 정말 재밌게 본 작품을, 마치 공유하는 듯한 기분이라.
기분 좋게 신작을 들고 가는 손님들을 보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일이라면 다음에도 하고 싶네."
"아마 한동안은 우리가 맡게 되지 않을까?"
"하긴, 선배들은 바쁘니까."
내가 알기로도 만화 동아리의 세 선배는 전부 상위권 성적을 받는 걸로 알고 있었다.
특히 칼리 선배는 '시우'님인 만큼, 원래부터 대마법사라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아침에 했던 대화를 생각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으니....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라는 것이 된다.
"공부에 작품 활동까지.... 대단한 사람들이지."
"그나저나, 아모리 너는 만화 그려볼 생각 없어?"
"있지. 다른 것보다 어제 그 만화를 보고 더 느꼈고."
사실 마법사가 되려는 건 그다지 대단한 이유가 아니었다.
내가 살려면 지금 가지고 있는 마법의 재능으로, 최대한 정액 결핍증의 증상을 억눌러가며 살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법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왔던 거지.
마법사가 꿈이거나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어제 칼리 선배의 만화를 보면서, 누군가에게 이리 큰 감동과 힘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만화를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그런 경험을 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냥 그리는 걸 넘어서, 만화가를 하고 싶어."
"...흐음."
최근에 떠오르는 직업 이름이었다.
이전에는 그림을 그리든 만화를 그리든 화가라고 칭했지만, 최근 들어서 만화에 집중하는 사람이 늘었고.
그런 식으로 그림보다는 만화를 그리는 걸 더 선호하는 이들을 칭하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말이었다.
"오히려 마법사보다, 그쪽을 더 중요하게 보고 있을 정도로."
"화가 대신 만화가를 하는 게 아니라, 마법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뭐, 아직 연습도 하지 않고 이야기하는 거긴 하지만...."
물론 내가 그림은 그릴 줄 알아도, 만화에 대해서는 경험이 없다.
따라서 꿈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급한 것 같은 건 맞는데.
솔직히 이것 말고는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이 없으니까.
"멋지네."
"코코아가 더 멋지지. 나보다 빨리 꿈을 찾았잖아."
"그래봐야 얼마 지나지 않았잖아."
전에 코코아가 진동하는 자위기구를 가져와서는, 이런 물건을 잔뜩 만들고 싶다고 눈을 빛내며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드워프로서 배운 기술들과 마법을 이용하면, 이렇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물건들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했지.
그 이전에는 가족이 억지로 마법을 공부하라고 해서 짜증 난다는 소리를 했었던 만큼, 많이 바뀐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거, 결국은 칼리 선배 덕분에 찾은 꿈이거든."
"그랬어?"
"응, 이 진동하는 거 여기까지 발전시켜준 사람이 칼리 선배야. 물론 이걸 사용했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제대로 알려준 건도 칼리 선배지만."
거기까지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생각해보면 저 장치의 아이디어가 나온 계기가 선배의 만화였지?
작품이랑 관련 없이 따로 팔리는 도구라, 선배랑 연관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내가 너무 선배에 대해서 나쁘게만 보느라, 그런 사건이 있다는 이야기조차 듣지 못한 건가?
"미안, 나 때문에 최근에 고생이 좀 많았겠네."
"당연하지. 욕구 불만이라 힘들었거든? 시험 기간만 끝나면 바로 달려가서 선배한테 박힐 예정이야."
"야, 야한 거 하는 건 좋은데. 그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는 건 좀 그렇잖아."
"그런가?"
"조, 조심해야지!"
코코아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저런 대사를 다른 사람도 있는 아카데미 내에서 마구 내뱉어댔다.
물론 야한 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건, 이제 인정을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 부끄러운데....
"거기까진 잘 모르겠네. 나는 집이 아나루 온천 마을이라, 요즘 야한 소리 하는 건 너무 평범한 일이 되어버렸어."
"...하긴, 생각해보면 그건 그렇겠네."
항문을 이용한 여러 야한 짓을 권장하는 식으로 운영되는 온천 마을이랬지.
심지어 완전히 망해가던 마을이, 그 컨셉으로 완벽하게 대박을 터트렸고.
덕분에 다들 그런 야한 플레이를 감사하는 상황이라, 분위기 자체가 호의적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칼리 선배를 좋아하게 된 건 그거 때문이야?"
"일단은? 어쩌다 보니 이미 좋아하게 되어버렸던 거라, 정확한 건 모르겠어."
잠시 혼자서 생각하던 코코아는 천천히 그때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사실 사랑이고 뭐고, 그녀는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마법사 공부를 하면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고.
그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두려움이 커서 시행하지 못하고 있었단다.
아무래도 여자가 한 번 남자와 이어지면, 영원히 예속되는 것이 요즘 당연한 이치와도 같은 것이라.
한 번 선택한 남자와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데, 혹시 이상한 사람한테 걸리면 힘드니까.
그래서 첩이어도 좋으니, 상대를 되게 잘 보살펴주는 남편을 가지고 싶었던 중.
당시에 아이와 부인을 위해 열심이라는 칼리 선배의 소문을 들었다고.
"그래서, 마법이고 뭐고 칼리 선배한테 시집가서 야한 거나 실컷 하고 싶었던 거야?"
"응, 바보 같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는데."
"그런데 그걸 선배는 진지하게 거절해주고, 내가 어리광부리는 걸 다 받아주고.... 그걸 보면서 애가 타고 달아오르다 보니까. 어느새 선배한테 박히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그러더라."
"실제로 박히니까, 그 생각은 맞았어?"
"...의외네, 그런 것까지 물어보고? 평소라면 야한 건 나쁘다면서 귀를 막았을 텐데."
"말했잖아. 이제 그러지 않겠다고. 부, 부끄러운 건 어쩔 수 없지만."
사실 박히는 것까지는 몸은 만족스러워도, 어딘가 선배가 선을 긋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아쉬웠는데.
코코아가 나에게 선배랑 섹스한 걸 들킨 날, 그날 처음으로 칼리 선배가 코코아의 처녀를 가져가 줬고.
그때 정말 사랑받는 걸 제대로 느껴서, 너무 행복했다며 사랑에 빠진 소녀의 얼굴이 되어있었다.
"만화에서 나온 줄 알았네...."
"응?"
"아무것도 아니야."
만화에서 본 사랑에 빠진 소녀가, 눈앞에 그대로 등장한 듯한 얼굴이라.
순간 칼리 선배가 만화에서 그려낸 표현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실감했다.
저걸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만화 속에 표현해놨지?
"그래서, 이제는 푹 빠졌지. 하여튼, 선배는 충분히 믿을만한 사람이야."
"그건 이제 나도 알아."
그녀가 중간에 만족하지 못했던 건, 어디까지나 그에게 진짜로 사랑받고 싶다던 욕심 때문이었다며.
사랑만큼은 선배가 결정할 일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의 것에서는 너무나 좋은 사람이라고.
만약 고민이 있으면 상담을 해도 좋을 만한 상대라고 말했다.
"내가 고민이 있는 거, 티가 났어?"
"나는 해결 못 해주는 고민인 거지?"
"응.... 아무래도."
이 문제는 남자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으니까.
솔직히 내가 믿을만한 남자라고는 칼리 선배밖에 없다.
내 상황에 대해서 가장 잘 이해해줄 것 같은 사람이 칼리 선배기도 하고.
"고마워."
"가보게?"
"응, 기숙사에 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다만, 이 시간이면 슬슬 선배가 돌아왔을 거라는 생각과 다르게.
여전히 칼리 선배는 공부 때문에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반쯤 잠들어 있던 니아 선배가 안에서 기다릴 수 있게 해줬다는 점이리라.
"선배의 침대...."
침대라는 키워드 때문인지,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나와 선배의 섹스 장면을 급하게 지워냈다.
나는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어라?"
우연히 시선이 닿은 선배의 침대 머리맡에, 침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어떠한 액체가 차올라있는, 투명한 우유병.
대체 왜 저런 것이 침대에 있는지 생각하다가, 방금 떠올랐던 야한 장면과 겹쳐서 하나의 결론이 튀어나왔다.
"서, 설마...."
선배는 작품 때문에 조사를 한 건지, 내가 가진 병인 정액 결핍증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선배라면 내가 정액 결핍증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을 가능성이 있고.
마법을 사용하면 그냥 정액을 입으로 마셔서 완화가 가능해졌다는 사실까지 알 가능성이 크다.
'저, 정액은 자지 밀크라고도 부르니까....'
즉, 이 우유병은 선배가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미리 담아둔 선배의 정액일 가능성이 있었다.
그냥 우유라기에는 살짝 색이 진해서 흰 느낌을 벗어나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정답일 거다.
상황을 알고 있던 선배는 나에게 이걸 줘서 도와주려고 했겠지.
하지만 이제까지 내가 야한 것에 민감하게 받아들였기에, 전해주지 못하고 있었던 거고.
대체 선배는 얼마나 착했던 거야?
'뭐지...?'
아까부터 이상할 정도로 심장이 강하게 뛴다.
그리고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명백한 이상 신호다.
높은 확률로 정액 결핍증이 일으킨 신종 발작인 것 같았다.
'...허락도 없이 가져가는 건 나쁜 짓이긴 하지만.'
당장 병의 진행이 심해져, 마법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늦는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결국은 선배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방금 발견한 병을 집은 채로 선배의 기숙사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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