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38권 병명은 사랑이야(1)
* * *
"하아, 하아...."
어떻게든 기숙사로 돌아와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까 선배의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부터 생긴 신체의 이상 현상이 잦아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심장이 무서울 정도로 강하게 뛰고, 선배와 야한 짓을 하는 자신이 머릿속에 잔뜩 떠올라서 주체할 수가 없다.
'역시 이건 정액 결핍증의 새로운 발작이겠지?'
괜찮을 것 같다면서 병을 방치한 결과다.
솔직히 진작에 정액을 구해서 병의 진행을 늦출 생각을 해야 했는데, 야한 것에 대한 반감 때문에 늦어버린 것이 원인일 터.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최대한 몸이 몰려오는 떨림을 멈추고, 이제까지 완벽하게 연습해놨던 마법을 그려냈다.
"선배, 고마워요...."
칼리 선배가 아니었으면, 시기를 놓쳤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천천히 우유병의 마개를 열고, 마법이 적용된 몸의 열기를 견디며 조금씩 정액을 마시기 시작했다.
'어라?'
고소하고 진한 풍미와 달콤한 맛, 그리고 약간의 텁텁함이 느껴졌다.
처음 마시는 정액에 긴장해 있었는데, 이건 조금 진하고 달게 느껴지는 우유 맛이잖아.
이래서 정액을 자지 밀크라는 부르나?
만화에서 정액은 굉장히 점도가 높게 묘사되었던 것과 다르게, 굉장히 묽은 우유에 가까운 점도였다.
혹시 사정한 지 시간이 지나면 이런 식으로 변화하는 건가?
경험 자체가 없어서 그런지 하나하나가 다 신기하게 느껴졌다.
"자, 이제.... 뭐야, 왜 그대로지?"
원래라면 방금 마신 정액이 트리거가 되어, 소량이지만 생기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리고 그걸 마법으로 안정화해, 폭주하지 않고 천천히 흡수해 병을 약화하는 건데.
이상하게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에, 에에?"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대체 왜 실패했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법진 자체는 전혀 틀리지 않았고, 그 검증 부분도 제대로 동작하는데.
정액이 생기로 변환되는 부분만 동작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이유를 찾다가, 아까 스쳐 지나갔던 원초적인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이런 우유 같은 것이 정말로 정액이 맞는가?
처음에 들고 올 때는 미묘하게 색이 우유와 달라, 정액일 거라고 확신했지만.
한 모금 마시면서부터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마, 만약에 이게 정액이 아니면 뭐야?"
사실 색이 조금 특이할 뿐, 그냥 우유였다면?
처음부터 이게 정액이 아니라 우유였다면, 맛이 우유에 가까웠던 것도 설명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우유병 바닥을 확인하니, 로자리아 르 마기우스라는 이름이 적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애초에 칼리 선배가 아니라 로자리아 선배의 병이었던 거다.
그리고 그런 로자리아 선배가 우유병에 담은 우유랑 비슷하면서 다른 거라면....
'이거, 설마 로자리아 선배의 모유야!?'
잠시만, 그럼 선배가 나를 위해서 여기에 정액을 담아줬을 거라고 나 혼자 착각한 거라고?
심지어 그런 이상한 착각 때문에 칼리 선배가 가지고 있던 로자리아 선배의 모유를 훔친 거야?
내가 한 행동을 깨닫자마자, 확 올라오는 부끄러움이 얼굴을 점령해서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미리 우유병을 제대로 살폈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을 텐데.
처음 생각했던 것에 너무 확신한 나머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발작 때문에 마음이 급해도 그렇지,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서, 선배한테 어떻게 말하지? 아, 아모리 이 바보야...."
다행히 발작은 일시적인 거였는지, 지금 확인하니 몸에 큰 이상은 없었지만.
당장 내일 선배한테 뭐라고 말할지 생각하면, 부끄러워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
'아니, 모유 도둑이 말이 되냐고....'
최근에 내가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하던 것을 이유로, 로자리아에게 모유를 받아왔었다.
물론 아이를 줘야 하는 걸 왜 내가 마시냐고 결국 한 소리 듣긴 했는데, 그런 소리를 듣더라도 모유를 마시면서 치유받고 싶었다.
솔직히 요즘 코코아의 초코 모유를 마시지 못해서 모유로 치유받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아까 아모리가 왔었다는 거지?"
"응.... 잠결에 열어줬던 것 같은데."
오늘 로자리아에게 받은 모유를 모든 공부가 끝난 지금 마시려고 침대 머리맡에 두고 나왔는데.
공부하고 돌아오니까 그 우유병이 감쪽같이 사라진 상황이었다.
너무 당황한 탓에 니아까지 깨워서 물어봤는데, 니아는 아니고 다른 용의자만 생겨난 상황이었다.
"...걔가 갑자기 왜 여길 오지?"
너무 상황이 뜬금이 없어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오늘 강의가 끝나고 갑자기 동아리 방에 와서 사과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이긴 했는데.
아무리 애가 이상해졌어도, 갑자기 내 방에 와서 모유를 훔쳐 가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건가?
'무슨 정기 대신 우유를 가져가는 서큐버스 전승도 아니고....'
솔직히 소중한 모유가 사라진 만큼, 당장이라도 기숙사에 찾아가서 따지고 싶었지만.
내가 워낙 아슬아슬한 시간에 돌아온 탓에, 기숙사가 통제되기 직전이었다.
지금 나가면 기숙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움직임이 막혀서, 밖에서 자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거다.
"미안, 내가 아무리 졸려도 다른 사람이 있을 때는 깨어있어야 했는데."
"괜찮아. 아모리가 그다지 악의적인 이유로 들어왔을 것 같지는 않아서."
애초에 이미 내 비밀을 알고 있음에도 그걸 악용하지 않는 시점에서, 믿을만한 아이였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이번 일은 혼이 나야겠지만.
내가 오늘 밤에 시원하게 모유를 음미하고 행복하게 자는 걸 꿈꾸며,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
"그, 이런 걸로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응?"
"가, 가슴 만질래?"
내가 어지간하면 마음을 풀지 않을 만큼 잔뜩 화가 나긴 했는데.
우리 니아 폐하의 젖가슴을 주무르면서 잘 수 있는 권리라면, 어쩔 수 없긴 했다.
나는 니아의 말을 듣자마자 사르르 기분이 녹아내리는 걸 느끼며, 그녀의 가슴이 닳아버릴 정도로 마구 만지며 밤을 넘겼다.
"죄, 죄송합니다!"
"......."
조금 의외였던 것은, 아침이 되자마자 아모리가 찾아와서 대가리를 박았다는 점이다.
니아는 첫 교시에 강의가 있어서 일찍 나가서, 기숙사에는 우리 둘만 남아있었고.
그 덕분에 그녀에게 편하게 이번 사태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었다.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내 방에 있던 모유를 훔쳐 가게 되는 건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 그게...."
뭔가 대답하기가 엄청나게 부끄러운지, 그녀는 새빨갛게 변한 얼굴로 우물쭈물했다.
아침부터 사과하러 온 걸 보면,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 모양인데.
대체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 거지?
"말 못 하겠어?"
"그러니까.... 저, 정액인 줄 알고...."
"뭐?"
"선배가 정액을 담아둔 줄 알고, 가져갔어요...."
그건 또 무슨 미친 소리야.
분명히 말을 들었는데,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내용이라서 두통이 몰려왔다.
갑자기 정액이 왜 나오고, 내가 정액을 왜 우유병이 담아둔다는 건지.
"내가 정액을 우유병에 왜 담아놔...."
"서, 선배가 제 병에 대해서 아시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저를 도와주려고 준비하셨나 해서...."
이게 대체 무슨 이상한 말이야.
병에 대해서 알다니, 아모리가 부끄러워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니까 알아먹질 못하겠다.
아모리가 무슨 병이라도 있는....
"설마, 너...."
최근에 그렸던 만화의 내용 때문에, 굉장히 쉽게 떠오르는 병명이 하나 있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상황과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지만, 하필이면 정액이라는 키워드가 마음에 걸린다.
심지어는 내가 뭔가 알아차린 듯한 눈치를 보이자, 아모리가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네, 저는 정액 결핍증을 앓고 있어요."
그제야 부족하던 퍼즐이 맞아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 갑자기 야한 건 안 된다면서 나를 괴롭히던 애가 오해했다면서 사과를 하고 내가 롤모델이라고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유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내가 이번에 그린 만화인 '절대로 섹스하지 않을거야'는 정액 결핍증을 주제로 한 만화다.
정액 결핍증이라는 시련을 넘어서며, 사랑을 이루는 커플의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니.
당장 본인이 정액 결핍증을 겪고 있는 아모리에겐, 많은 힘이 되었겠지.
"그런데, 그거랑 모유를 훔쳐 간 거랑 무슨 관계야?"
아무리 나라도 그 둘의 연관성까지는 이어가지 못했다.
대체 왜 내가 정액을 우유병에 담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고.
애초에 그럼 정액은 왜 가져가려고 한 거야?
"...최근에 마법을 이용해서, 정액을 입으로 마시는 걸로 병을 억누르는 방법이 생겼어요. 저는 선배가 그걸 알고, 저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모아놓은 줄 알았어요. 죄송합니다."
"아하."
내가 그런 서큐버스나 알법한 최신 정보를 알 리가 없잖아.
솔직히 이번에 자료조사 했던 것도 책을 엄청나게 뒤져서 겨우 고증을 살렸던 건데....
하긴, 아모리는 나를 '시우'로 알고 있기도 하니까 이런 부분에서 과대평가할 가능성도 있나.
"사, 사실. 선배한테 정액을 주실 수 있냐고 부탁하러 왔던 거였거든요. 만약에 진짜 정액이 맞았더라도, 허락은 받고 가져가야 했고요. 그런데 갑자기 몸 상태가 이상해서, 마음이 급해졌나 봐요."
"그런 거였구나."
"죄송합니다...."
"괜찮아. 그렇게 풀 죽지 마."
"선배...."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내가 피해를 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모리에겐 목숨이 달린 문제다.
솔직히 이거로 뭐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아, 그러고 보니까 정액이 필요하다고 했지?"
"네, 맞아요."
"좋아, 얼마든지 마셔."
"히익!?"
내가 발기한 자지를 꺼내며 마시라고 말하자, 당황한 아모리가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어라, 이걸 원했던 게 아니었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