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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194화 (194/229)

〈 194화 〉 39권 ­ 가짜 천재와 진짜 천재(3)

* * *

"...이건 무슨 상황이에요?"

"아, 유리아. 어서 와."

우리가 그렇게 니케의 귀여움에 대한 감탄을 내뱉고 있던 와중.

유리아가 캔버스를 들고 동아리 방으로 들어왔다.

이번에 그림을 그린다더니, 그 결과물을 가져온 모양이다.

"우연이네요. 저도 이번에는 비슷한 컨셉의 그림인데."

"오, 그래?"

유리아는 우리가 대화하는 주제가 궁금한지 물어봤고.

그건 자연스럽게 로자리아의 만화를 보여주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작품을 읽은 유리아가 한 말에, 우리는 꽤나 신기하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진짜네...."

놀랍게도 유리아가 그린 그림은, 엄마로 보이는 여성과 딸로 보이는 아이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림이었다.

심지어 그냥 그런 장면인 것이 아니라, 서로 행복하게 웃는 행복한 가족을 그려냈다.

굉장히 포근함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부드러운 선들은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왔다.

"엄청 귀여운데?"

"괜찮아요?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의외네, 이런 그림을 그려올 줄은 전혀 몰랐어."

물론 유리아의 그림은 그림마다 담긴 감정이 확 달라진 전적이 있지만.

전적이 있어도 새로운 표현을 해낸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심한 감각을 다시 한번 보여줄 줄은 몰랐네.

"...이거 걔였네."

"응? 무슨 말이야?"

"잘 생각해봐. 전에 유리아가 그렸던 여자잖아."

"어? 그러네?"

이번 그림에서 엄마의 역할을 하는 캐릭터가, 이제까지 항상 그녀가 그려오던 캐릭터랑 같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다.

같은 캐릭터로 전혀 다른 감정의 선을 완벽하게 표현해, 완전히 다른 감각을 주고 있는데.

그 때문에 순간적으로 다른 캐릭터라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워낙 젊은 캐릭터라서 아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이가 있다는 설정이 있었구나?

그냥 그린 그림이 아니라, 나름 이 캐릭터에도 설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유리아 너는 만화는 그릴 생각이 없어?"

"응. 아직은 그림 하나를 열심히 그려서 완성하는 쪽이 더 좋아."

일러스트나 그림 한 작품을 그려내는 것이 더 취향에 맞는 모양이다.

하긴 그걸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지.

나야 일러스트를 그리는 건 나름 좋아하지만, 만화 쪽이 더 좋아서 만화를 중점으로 가는 거고.

"뭐야, 이거 유리로 된 캔버스야?"

"응. 뒤쪽도 볼래?"

"뒤쪽...?"

딱히 투명한 그림은 아니었기에, 뒤쪽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혹시 뒤쪽에도 따로 그림을 그렸나 싶어서 확인했다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의 그림에 눈을 끔뻑였다.

"뭐야, 어떻게 한 거야?"

"그냥 그린 건데?"

"아니, 그냥 유리잖아.... 반대로 그렸다는 거야 설마?"

"응."

순간적으로 뇌가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일단 유리로 된 캔버스를 뒤집으니까, 그곳에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그림이 있었다.

사실 이것까지는 지난번에도 한 그림을 여러 분위기로 그려내려던 유리아의 느낌이 살아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그 표현 방법이 문제였다.

'신선한 걸 넘어서, 어처구니가 없네. 대체 이걸 어떻게 그린 거야?'

붓이 없어서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뒷면에 보이는 그림은, 평범하게 뒷면에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었다.

유리 겉에 그림이 만져지지 않고, 반대쪽 내부에 그려진 그림이 비치는 셈인데....

"아니...."

"왜?"

"그걸 태연하게 묻는 네가 제일 무섭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림을 그릴 때, 반대쪽에서 이쪽 그림을 거꾸로 그려낸 것이다.

이게 굉장히 어려운 것이, 실수라도 하는 순간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원래의 유화와 작업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그림을 그려야 했다면, 아마도 그냥 종이나 면에 그림을 양면에 그려서 유리에 붙이는 꼼수를 썼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이런 깨끗한 유리 위 유화 질감을 보여줄 순 없겠지.'

이건 유리아가 정공법을 사용했기에 보여줄 수 있는 퀄리티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 작품의 이런 특별한 면모를 더 강렬하게 느끼는 이유는.

뒷면의 그림의 엄청난 분위기 때문이었다.

"유리아 너도 좀 무서운 생각을 하는구나."

"그래요? 평범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노예 제도도 금지된 시점에 자기 딸을 사고파는 그림을...."

놀랍게도 캔버스 뒤쪽에 비치는 그림은, 아까 그 그림과 같은 구도지만 너무나도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딸의 손을 잡고 데려가고 있지만.

어머니의 상태가 굉장히 이상하고, 마치 무언가에 중독된 것처럼 보인다.

어느 정도는 이전 작품의 망가진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것이 포함되어 있으면서.

아이를 바라보며 사랑의 미소를 짓던 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탐욕스러운 표정으로 돈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그 돈으로 얻어야 할 것이 있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딸을 판다니....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판단이야."

"이건 꽤 기분 나쁜 감각이 비집고 들어오네."

뭐라고 해야 할까, 워낙 그림의 표현력이 좋아서 문제다.

아까 그 행복한 감정은 물론이고, 지금 이 탐욕적이고 망가진 감정이 잘 대비되며.

희생되는 아이의 두려워하는 감정과 마지막까지 엄마를 믿으려는 감정이 섞인 미묘한 표정까지 와닿는다.

"작품에 내 감정이 휘말릴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칭찬이지?"

"그렇지? 애초에 이 주제를 그려냈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애초에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준다는 점에서 감점을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으니까.

어디까지나 취향과 작품의 특성에 해당하는 부분이지.

"솔직히 말해서 흠잡을 곳 없어. 오히려 나보고 이런 걸 만들라고 하면 어려워할걸?"

"...정작 칼리 너도 일러스트는 엄청 예쁘게 그리잖아."

"나는 이 정도 감정을 구현하려면, 그냥 평범하게 편한 곳에 온 힘을 쏟아부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

이렇게 특수한 장치까지 추가하면서, 그것에 의한 기술적인 감동까지 만들어낼 자신은 없었다.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 외에, 디테일한 부분도 칭찬할 것투성이였다.

예를 들어서 뒤쪽으로 보면 앞쪽과 좌우가 반전되어 보이게 그렸는데, 그걸 거울 내부 같은 디자인을 테두리에 함으로써 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말이야.

"근데 이렇게 그리면 사본 따기가 어렵지 않아? 이 퀄리티 유지가 안 될 텐데."

"괜찮아. 사본은 앞면만 팔 거니까."

"...뭐?"

"굳이, 비정한 현실을 돈 받고 팔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비정한 현실이라.

유리아는 아무래도 저 거울 내부로 표현한 뒷면 내용을 현실 쪽이고.

바깥의 기본 그림이 환상이라고 생각하며 그린 모양이었다.

그런데 거울로 표현된 것은 반대인 것이 참 아이러니하네.

"하여튼 작품은 완벽하다고 생각해. 지금 당장 출품해도 문제없겠다."

"다행이네. 뭔가 이걸 시작한 계기가 너라서 그런지 꼭 보여주고 싶었거든."

"카, 칼리가 계기? 사실 칼리는 애를 버릴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런 거겠냐!?"

어디까지나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나라는 것일 터다.

원래 그림을 그리던 로자리아와 다르게, 유리아는 그림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가.

나 때문에 아카데미 입학시험 요건에 그림만으로 통과하는 것이 생겨났고, 그 출품작을 내 그림을 보고 그려낸 것이 그녀의 첫 그림이었다.

"오늘 눈 호강 많이 했네."

그나저나 아까 로자리아가 그린 만화를 보면서도 느낀 거지만.

어쩌다 보니까 내 주변에는 천재들이 아주 많은 것 같았다.

꼭 만화나 그림에 국한하지 않으면, 오르카도 검술 쪽은 꽤나 천재라고 볼 수 있고.

'심지어 우리 동아리가 아닌 니아도 그렇지.'

황태자라는 자리에 가려져서 당연한 취급을 받아서 그렇지, 그 녀석도 상당한 재능이 있었다.

솔직히 그녀가 학생회를 해야 하는 것만 아니었다면, 만화 동아리에 끌고 들어오고 싶을 정도니까.

"아, 안녕하세요오...."

"어라, 아모리?"

"엄청 피곤해 보여. 괜찮아?"

저번에 만화에 대한 몇몇 팁만 받고 사라졌던 아모리가 다크서클을 잔뜩 붙이고 나타났다.

아마도 밤을 새우면서 작업한 모양이네.

마력도 꽤나 소모했는지 가슴 크기가 오르카 수준으로 줄어 있었다.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느라 늦었어요...."

"아니, 빠른 편이라고 생각해. 애초에 나는 신작 메인 작업도 못 들어갔는데?"

"저도 기본적으로 작품 흐름이랑 그런 거만 다 짠 거예요. 물론 제가 기억하려고 간단한 만화랑 그림 정도는 덧붙였지만...."

"대체 뭘 만들길래 그 산더미 같은 원고로 미완성 소리를 하는 거냐."

하지만 반쯤 맛이 가 있는 서큐버스는, 내 말에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구석에 있는 침대에 기어들어가 쓰러지듯 잠들었다.

얼마나 피곤하길래 저러지, 심지어 그 와중에 나를 보여주겠다고 이걸 정리해서 가져온 게 참....

"뭐, 이 정도 분량이면 살피는 데 시간도 꽤 걸릴 테니까."

그동안은 그녀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휴식 시간을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모리가 야한 것에 취한 모습은 자주 봤지만.

피곤함에 찌들어서 잠에 취한 건 처음 보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가 가져온 원고를 살피기 시작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길고 자세한 원고를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아파졌고.

모든 내용을 읽은 후에는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시발 미친."

아무래도 내 주변의 천재 리스트에 한 줄을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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