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화 〉 39권 가짜 천재와 진짜 천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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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모리가 말했던, '어디까지나 흐름만 짰다'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이 원고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스토리라인과 이야기만 만들어 놓은 콘티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이것이 정말 그런 가벼운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물건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대체 왜 그래? 이게 무슨 내용인데?"
"발신자 불명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네. 기본적인 흐름은 그런 느낌이야."
아마 아모리도 그 작품을 생각하면서 만들었겠지.
다만 발신자 불명의 경우에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유치하다 싶을 정도의 퍼즐과 추리가 들어간 간단한 게임북이었다.
솔직히 선택지도 유기적이지 못한 편인데, 그런 문제를 대부분 감성으로 극복해낸 작품이지.
"그럼 이것도 시간여행을 하는 작품이야?"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
하지만 이 작품은 애초에 그런 감성을 통한 극복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다.
선택지에 따라서 흘러가는 결과물이 너무나 유기적이고 명확했으며,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서브 선택지까지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쉽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곳에 숨겨두는 세세한 떡밥이나 힌트도 좋았고.
"엄청난 퀄리티야. 첫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완벽해."
"하지만 약간 감성 부분을 표현하는 게 약하지 않아? 그림이 귀여워서 그런가?"
"그런 문제는 아닐걸, 뭐 그건 아무래도 처음이니까 약한 부분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을 포함해도 첫 작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대단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냥 결과물만 보면 종합적으로 내 작품과 비슷한 수준이 아니려나.
사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나지만, 그것뿐이라면 이 정도로 당황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진짜 당황스러운 건, 이 작품에 들어가는 퍼즐들이야."
예를 들어 시간여행 마법을 사용할 때 일종의 퍼즐이 있어, 그것을 통해 어디로 돌아갈지를 정해야 하는데.
그 결과물을 실수하든 실수하지 않든, 그것대로 선택지가 되어 나름의 이야기를 전개해주고.
계속 이 퍼즐 하나를 작품 내내 우려먹어도, 쉽게 내막을 유추하기 어려울 정도로 활용도가 높았다.
그래, 결국은 가장 놀라운 점은 이런 부분이었다.
이제까지 없었던 퍼즐과 퀴즈들에 접근하기 쉬우면서 깊이가 있도록 완벽하게 만들어 놨다.
이게 진짜 감탄이 나오는 파트가 아닌가 싶다.
머리로 상상하는 것까지는 간단하지만.
그것을 하나하나 이렇게까지 좋은 방법을 찾아서 구현하는 건 어렵거든.
물론 다른 애들은 작품을 만들어 올 정도의 시간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시간을 들인다고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니까.
"이게 천재...?"
만화의 천재라고 보기에는 조금 다른 방향의 재능이었지만.
천재라는 단어에는 확실히 어울리는 결과물이었다.
생각해보니까 아모리는 정액을 머금어서 서큐버스의 능력이 올라가면, 천재가 되는 식이었지.
'원래는 야한 걸 하는 두뇌가 뛰어난 천재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진짜 두각을 보이는 장르는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완성해내는 부분이었나보다.
어떤 것을 만들어 낼 때 필요한 수학적 논리와 이론을 잘 찾아내고.
없으면 그것도 본인이 만들어내는 종류의 천재인 셈이다.
"대단하긴 한데. 그렇게 놀라야 하는 부분이야? 솔직히 칼리가 시우라는 더 놀라운 사실을 접해서 그런지 그냥 평범하게 느껴지네."
"맞아요. 놀람의 역치가 올라간 느낌이 있죠. 진짜 천재가 그런 말을 해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정작 내 쪽이 천재라고 부르기에는 미묘한 부분이 많다.
기본적으로 지금 실력을 쌓기 위해 투자한 시간부터가, 이 녀석들보다 훨씬 많았고.
이곳과 다르게 쌓여 있는 가르침을 여기저기서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어느 정도 쉽게 배워서 실력이 좋은 거잖아?
'하긴, 얘들이 보기에는 나만큼 대단한 천재가 없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전생의 기억이 있어서 생긴 버그 플레이와도 같은 것이었다.
저 녀석들이 진짜 천재라고 하면.
나는 전생의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 가짜 천재라고 볼 수 있는 셈이지.
"선배...?"
"잘 잤어?"
아직도 잠이 제대로 깨지 않았는지, 아모리는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슬쩍 손을 내렸지만.
아모리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몸을 나에게 기대며 앙탈을 부렸다.
"그나저나, 뭔가 잊고 있지 않아? 너 여기 온 이유 까먹었지."
"알고 있거든요?"
"그럼 왜 그건 묻지도 않고 그러고 있어."
"그건 그거. 이건 이거. 지금 이미 행복한데, 굳이 추가로 뭘 할 필요가 없잖아요."
내가 한숨을 쉬는 사이, 어느새 내 팔에 달라붙은 유리아의 풍부한 가슴이 느껴지고.
그것을 보고 지지 않겠다는 듯이 달려든 로자리아의 가슴....
가슴까지는 아니고 유두에 달린 딸기 모양의 피어싱이 스치는 듯한 감촉이 전해져왔다.
"다들 뭐 하는 거야."
"그야, 선배가 자지를 함부로 놀리는 바람둥이라서 생겨난 일 아닐까요."
"방금 그거 진심으로 한 매도 아니냐?"
"에이 설마요. 선배가 변태라서 이런 말에도 기뻐하리라 생각한 것뿐인데요."
오늘따라 코코아의 매도가 좀 아프게 느껴지네.
그래서인지 참교육이 마려워지는 걸 보면, 여전히 코코아의 매도 실력이 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아랫도리만 회복되면 바로 교육 들어가야겠네.
"어쩌다 보니까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돌았는데. 아모리 네가 자는 동안 원고는 다 읽어 봤어."
"어때요?"
"좋아. 이대로 진행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내가 아모리의 그림체를 보고 감탄하던 부분과는 전혀 다른 부분의 천재성이 발휘된 작품이긴 하지만.
결국 퀄리티가 좋고,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아까 로자리아 말처럼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괘, 괜찮았다고요? 정말요?"
"발신자 불명보다 훨씬 선택지랑 퍼즐 퀄리티가 좋잖아."
"쿼, 퀄리티가 좋다뇨. 그냥 따라 했던 건데...."
약간의 소재를 얻은 정도지, 따라 했다고 보기에는 전혀 다른 내용이잖아.
심지어 만약에 정말로 따라 했다고 해도, 이 정도 차이면 그냥 상위호환이다.
퀄리티가 좋다는 건 어떤 시각으로 봐도 사실인 셈이지.
"하여튼, 완성본이 기대될 정도야."
"부족한 부분은 없어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이미 충분히 첫 작품으로는 대단해."
하지만 굳이 그것까지 집착하면서 첫 작품의 품질을 올리려고 할 필요는 없다.
애초에 그것 자체가 하면서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고.
그걸 제외하더라도 작품의 퀄리티는....
"그건 싫어요."
"뭐?"
"제가 목표로 하는 건, 다른 사람도 아닌 선배예요. 선배처럼 완벽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물론 이제 막 시작한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거겠지만, 그래도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더 해보고 싶어요."
"나야말로 타협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게 선배가 나아질 수 있는 건데도 타협하신 건가요?"
"...그건 아니지."
지금 내 주장과 아모리의 주장 모두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개선할 수 있는 거라면, 개선하고 선보여야 한다는 아모리의 의견 자체는 정답에 가깝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이런 부분은 경험을 통해서 나아지는 것이 가장 괜찮아서 말했던 거고.
...다만 내 성격을 이야기하면서 태클을 거는 아모리의 말에는 뭐라고 하기 어려웠다.
내 경우에도 할 수 있다면 그 한계까지 개선을 거듭하는 편이었고.
결국 그 덕에 처음 선보이는 것인데도 높은 퀄리티의 작품들만 보여줄 수 있었다.
물론 원래 세계에서까지 이런 성격은 전혀 아니었지만.
혹시 내가 잘못된 길을 보여주면, 그것이 이쪽 만화계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싶었던 마음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다만 아모리가 보고 따라온 내 자취는 그러한 형태일 테니, 그것을 가지고 뭐라고 변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
"물론 선배가 제 생각을 해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저도 그런 건 싫어요."
"네가 되고 싶은 건, '시우'니까?"
"네."
아모리는 나와 비슷한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 작품을 최종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나와 같은 관점에서 내놓고 싶다는 건데.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방향성이라,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만약 선배가 저라면, 어디까지 개선할 건가요? 선배가 말씀해주시면, 거기까지는 완성하고 작품을 진행하고 싶어요."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아모리의 모습은, 확실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
주변을 둘러보자, 나한테 달라붙어 있던 유리아와 로자리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동의했다.
이게 다들 비슷한 생각이라니.
"좋아. 그럼 최대한 그 부분은 해결해 보자."
"정말요!?"
"하지만 아모리,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너희 생각과 다르게 그다지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세계 최고의 만화가가 그런 소리를 하네."
"지금은 그렇지만, 나중에는 아마 너희한테 이 자리를 내주지 않을까 싶어."
솔직한 사실을 말한 것뿐이다.
내가 가진 노하우를 이 세계에 모두 뿌려내는 순간, 나는 사실상 퇴물이 되는 셈이니까.
다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만화는 좋아하니까 업계 탑이 아니더라도 되게 즐겁게 그리겠지만.
"아니요."
"응?"
"선배,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에요."
"...뭐?"
"선배의 생각은 알겠지만, 그래도 그런 약한 소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애초에 아모리 덕분에 다시금 깨닫게 된 부분이었다.
나는 업계 탑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담은 작품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라는 걸.
하지만 정면으로 아모리가 그걸 부정하니, 뭔가 이상야릇한 기분이었다.
"지금이야 상상도 되지 않지만, 나중에 가면 선배가 정말로 저희에게 밀릴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어...?"
"저희는 최선을 다해 선배를 따라잡을 테니. 반대로 선배는 최선을 다해 그 자리를 지켜주세요."
"......!"
나는 그제야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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