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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201화 (201/229)

〈 201화 〉 40권 ­ 잔잔한 물가의 일렁임(5)

* * *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만화를 보던 니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다만 그것과 동시에, 슬링이 말했던 자조적인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대충이나마 상황을 이해하게 되어서 그녀는 더 머리가 아팠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슬링에 대해서 나쁘게만 생각했을 텐데.

자기 자신과 처한 상황을 그렇게나 싫어하고, 그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다 보니.

저 마법을 사용하는 슬링의 마음이 타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마냥 나쁘게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슬...링? 지금 대체 뭘....」

「...네가 나쁜 거야. 사랑 따위를 한 네가 잘못한 거라고.」

슬링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벗어났고.

미크로는 치명상을 입은 미즈기를 껴안고 오열했다.

하지만 미크로는 마법에 재능이 없었고, 제대로 어떠한 대처도 하지 못한 채로 미즈기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사랑을 하고, 그 사랑이 절정에 오른 시점에.

그 사람이 눈앞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했으니, 그 절망은 겨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라는 말로 포장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분명 무능력했을 미크로의 몸에서는 새하얀 빛이 터져 나오며, 무언가가 시작되었다.

"어?"

그리고 니아가 다시 페이지를 넘겼을 때는, 여전히 아무 문제 없이 살아있는 미즈기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니, 정확히는 2권의 초반부의 미즈기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때의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니까.

'...시간을 되돌려?'

니아가 그런 발상이 가능했던 것은, 이미 '발신자 불명'에서 비슷한 설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미크로는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신의 능력으로 미즈기를 구하기 위해 시간을 되돌렸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슬링이 마지막에 했던 말과 조합한다면....

'슬링은 미즈기를 사랑한 미크로에게 질책을 하듯 말했어. 즉, 미즈기는 미크로가 사랑한 상대라서 죽었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슬링이 미크로의 근처에 있는 건....

애초부터 슬링의 일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즉, 슬링이 속한 집단은 미크로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하기 위해서 트리거인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고의로 일으켰다.

니아는 그렇게 내용을 해석했다.

"...기억은 없나 보네."

일단 시간을 되돌린 장본인인 미크로는, 어떻게 된 것인지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 빠르게 전개되고, 방금과 마찬가지로 슬링에게 미즈기가 사망한다.

그 뒤에는 오열하는 미크로로 인해서 다시 시간이 되돌아갔다.

'미묘하게 바뀌지 않았나?'

미즈기의 죽음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원래는 시골에 가까웠던 인어섬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원래는 자연 그대로 살아가던 느낌이었는데.

마법을 통해 자동화되거나 마법을 이용해야 필요한 기술들이 조금씩 발전되어갔다.

딱히 시간이 지나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한 번 되돌아갈 때마다 저런 변화가 있었고.

니아는 그것이 슬링이 속한 집단의 짓이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분명, 인어섬 발전 위원회라는 이름이었지.'

슬링은 자신이 속한 곳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자신이 그것에 굴복했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죄책감.

도망가고 싶다는 감정을 위주로 이야기했지만.

그런 슬링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미즈기의 행동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정보는 니아도 알고 있었다.

슬링이 속한 '인어섬 발전 위원회'는 이 인어섬을 관리하는 일종의 귀족 세력으로.

일정 주기로 치르는 수영 대회라는 것에서 우승한 인어들이 모여, 섬의 미래를 결정하는 곳이다.

'인어섬을 발전시키기 위해, 미크로의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이용하고 있는 건가?'

그리고 그 트리거인 사랑하는 사람이 충족되면, 미리 파견해둔 슬링을 통해 죽이도록 명령했겠지.

슬링은 그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만큼.

그 끔찍한 일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리라.

"미크로...."

다만 계속되는 반복에 변화하는 것이 섬의 풍경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예 아무런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미즈기를 사랑했던 감정의 편린을 가지고 있었고.

미즈기를 보면 살아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거나, 그냥 보자마자 어쩔 줄 몰라 할 정도로 사랑을 뿜어대는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감정은 반복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심해져.

이제는 제대로 정신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미즈기를 발견하자마자 자신의 겉옷을 집어 던지며 달려들고.

미즈기의 사타구니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사랑을 갈구할 정도로 피폐해져 있었다.

「미, 미크로!?」

「나를 야한 눈으로 바라봤었잖아. 아니, 최소한 지금은 보고 있잖아. 있지, 잔뜩 범해줄래? 아파, 머리가 너무 아파.... 전부 잊게 해줘. 너라면 날 잊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야한 것을 주의하고 꺼리던 미크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미즈기에게 자신의 몸을 가져다 바치는 집착녀가 되어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남아있는, 그와 섹스하던 시절의 진짜 행복 때문에.

지금의 불안함을 벗어던지고 그 행복에 다가가기 위해, 지옥 같은 현실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미크로의 모습에.

미즈기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며, 그녀와 몸을 섞어 안심하게 해주지만.

하필이면 그것이 트리거였던 만큼, 더 빠르게 슬링에게 죽음을 맞이할 뿐이었다.

반복으로 인해서 미크로가 가진 집착이 심해질수록, 둘이 이어지는 것에 걸리는 시간은 짧아졌고.

이후에는 2권이 아니라 1권 극 초반부, 둘이 처음 만나는 부분에서 바로 섹스로 넘어가는 첫 대면 즉발 섹스 수준이 되었으며.

사실상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미즈기가 사망하기 시작했다.

이미 인어섬은 제국의 수도와 비슷할 정도로 발전을 이룩했고.

그쯤에서야 마법으로 미즈기를 죽이던 슬링의 공격이 멈추고, 오히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진짜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사실상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망가져, 미즈기에게 안기는 것 말고는 하지 못하게 된 미크로와.

갑자기 미크로의 주인이라는 느낌으로 인어섬에서 극진하게 대우받는 미즈기.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상황 속, 미즈기는 미크로에 대한 설명으로 ‘개조 인어’라는 키워드를 듣게 된다.

"개조 인어?"

인어 중 일부 개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발전하기 위해, 인어섬은 이전부터 인체실험을 거듭했고.

그 결과로 미크로 같은 성공적인 실험체를 얻어내, 발전에 굉장한 도움을 받았다는 것.

「당신이 협조해 주신다면, 미크로의 능력을 안정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을 겁니다.」

워낙 의존도가 강해진 지금이라면, 꼭 죽음이 트리거가 아니라 버리겠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하다며.

미즈기가 주기적으로 미크로를 조종하여, 과거로 시간을 보내게 하겠다는 계획을 전달한다.

미즈기는 이 미친 계획에 동참할 생각은 없었으나, 대충 슬링이 반발하면 죽는다는 사실에 대해 눈치를 줘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쪽은 같은 프로젝트의 실패작이에요. 비키니라는 이름이죠.」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네요.」

「아무래도, 부모님이 자기가 실패작이라 죽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겠죠.」

자기들의 인체실험으로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 놓고.

마치 실험체의 잘못이라는 듯 말하다니....

니아는 기분이 나빠져서 표정을 구겼다.

「그리고 여기가, 과거로 전송할 서류를 모아두는 곳입니다. 이전에 받은 것들은 다음에 과거로 이동할 때 초기화되니, 계속해서 추가하느라 양이 이렇게 늘어났죠.」

「이 서류를 미크로의 능력으로 보내는 겁니까?」

「네, 정기적으로 미래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거든요.」

필요한 정보가 밝혀지면, 서류를 추가해서 트리거를 켜는 식으로 과거를 바꾼다.

그런 식으로 인어들은 지금의 기술력과 힘을 가지게 되었다.

"분명 인어들은 살기 좋아졌는데...."

실험체로 취급되는 소수 인어의 희생으로.

분명 인어섬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

마법 문명은 최고 수준이며, 다른 나라의 약탈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만 친구를 배신하고, 희생시켜서 만들어낸 평화를 전부 지켜본 니아는.

그녀가 원하던 '나라의 부흥'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칼리 또한 정치적 목적으로 선택한 만큼, 만약 정치적 방향성과 칼리가 충돌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에 대한 고민이 천천히 그녀의 안에서 자라났다.

"슬링...."

미즈기는 그곳에 놓인 서류들을 전부 불태워, 모든 것을 없던 일로 만들려고 했고.

슬링은 그 행동을 막기 위해 미즈기를 죽이려 한다.

그런데 그런 슬링을 미크로가 막아서더니, 망가진 상태로 애원했고.

결국 슬링은 그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싸움을 포기한다.

「쓸모없기는. 이렇게 되면 빨리 서류를 복구한 다음에 트리거를 죽여서....」

「슬링...?」

그리고 슬링은 곧바로 그녀의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살해당한다.

하지만 슬링에게 몇 번이고 배신당한 미크로에게, 놀랍게도 여전히 슬링은 자신의 친구로 인식되고 있었고.

소중한 친구의 사망으로 인해 폭주하게 되어, 곧바로 시간을 되돌려 버린다.

그리고 기적처럼 이번 되돌림에서는 미즈기가 기억을 잃지 않았고.

기억을 지닌 미즈기가 본색을 드러낸 슬링을 막아서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슬링은 배신하는 시점에서, 모든 것을 포기했는데.

여전히 미크로는 그녀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배신자가 아니라, 그녀는 여전히 사랑하는 친구라는 듯이 그녀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

"아...."

만화책을 덮은 니아는 처음으로 친구가 아니라 나라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던 자신의 행동 원리에 회의감을 느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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