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 43권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녀의 세계(2)
* * *
"니케는 잠들었어?"
"응. 지금부터 작업?"
"그러려고. 뭐, 그래봐야 콘티 정도지만."
로자리아가 니케를 재웠는지, 침실에서 나오길래 물을 따라서 건네줬다.
이제 곧 아카데미가 개학하니까, 슬슬 콘티 정도는 마무리해야지.
특히 카드 성능 같은 건 빨리 정해야, 미리미리 테스트하면서 보완할 수 있다.
"작품도 좋지만, 몸도 챙겨."
"그래야지. 걱정해줘서 고마워."
"본인이 걱정을 안 하는데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칼리 없으면 못사니까, 꼭 오래 살아야 한다?"
"노력해볼게."
로자리아와 가볍게 키스하고 작업실로 들어왔다.
작업실에는 어제까지 건드리고 있던 콘티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나는 그걸 간단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역시 느낌이 좋아.'
아무리 생각해도 피터 팬의 설정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라니, 동화라는 컨셉을 가진 이너 메르헨에서 채용하지 않을 수가 없지.
이번 신작인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녀의 세계'는 간단히 말해서 피터 팬을 모티브로 한 소녀의 이야기다.
이름은 페트라로, 피터 팬의 자라지 않는다는 컨셉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다만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면, 메르헨을 한 번 잃어버려서 어른이 '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자라고 싶지 않은 아이가 아니라, 자랄 수 없는 아이라는 점에서.
원작의 피터 팬과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녀의 세계'에서의 페트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자라지 않고 싶어 하는 메르헨을 새로 만들어냈고, 그 메르헨을 통해 네버랜드라는 환상의 세계를 꾸며낸다.
"페트라한테는 붉은색 머플러를 넣으면 괜찮겠는데...."
물론 잔혹하고 고민 없는 아이 같은 성정은 그대로 유지된다.
오랜 시간 살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아이 같은 면모를 보이는 영원한 아이.
그것 또한 피터 팬의 본질에 가까운 무언가이니까.
페트라는 자신만 영원히 아이로 살아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느낀다.
그래서 마치 영원히 아이로 사는 것이 최고라는 듯, 메르헨을 각성한 아이들을 꼬드겨서 네버랜드로 데려온다.
그리고 네버랜드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메르헨을 이루지 못하도록 막아서, 어른이 되지 못하게 만드는 정말로 어른이 되지 않는 세상으로 만들어.
다른 애들도 자신처럼 어른이 되지 못하게 해, 영원히 함께 아이로 살고 싶어 한다.
'기본적인 흐름은 그렇지.'
결국 네버랜드라는 컨셉은 카드 게임에서 상대가 어른이 되지 못하게 만든다는 형태로 구현된다.
페트라는 메르헨의 결말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본인이 메르헨의 결말에 도달해서 게임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의 메르헨에 개입할 수 있고, 공격을 입혀서 패나 덱을 부숴버리는 공격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이용해서 상대가 영원히 메르헨을 달성하지 못하게 만들어 승리하는 구조다.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해서 승리하는 게임에서, 공격하고 부숴버려서 물귀신이 되는 것이 승리 방식인 독특한 덱 형태가 된다.
이 네버랜드에는 아주 많은 아이가 끌려들어 오고, 그 아이들은 모두 페트라가 만든 규칙에 따라 어른이 되지 않는 생활을 한다.
다만 절대로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럴 때 직접 페트라가 메르헨 배틀을 해서라도 죽이려 든다.
어른이 될 경우, 페트라에게서 도망쳐서 네버랜드 바깥으로 도망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뭐, 이 이야기에서는 최대한 영웅처럼 그릴 거지만."
그런 뒷 내용은 최대한 숨기고, 마치 페트라를 리더에 영웅처럼 그려낸다.
사실 은근히 잔혹한 면모가 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것과 별개로 매력적인 캐릭터일 필요는 있으니까.
원래 피터 팬 자체가 그런 이야기기도 하고.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페트라가 주인공인 1권에서의 이야기고.
다른 주인공이 나오는 2권에서는 악한 면모도 강하게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이번 작품은 1권과 2권의 캐릭터는 분명히 같은데, 관점에 따라서 완전히 선악이 뒤집히는 형태를 가질 생각이었으니까.
"2권의 주인공은 후크 선장.... 라헬이지."
그녀는 원래 페트라에 의해서 네버랜드에 찾아온 아이였으나.
우연히 자신의 메르헨을 달성하면서, 어른이 되어버리고 만다.
어디까지나 네버랜드는 메르헨의 달성을 막아, 어른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에.
메르헨을 달성하면, 어른이 되어버리고 마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자마자 돌변한 페트라의 공격에 놀라서 도망치게 되고.
자신의 메르헨을 갈고닦아, 혹시 네버랜드에서 어른이 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네버랜드에 남게 된다.
1권에서는 페트라를 괴롭히는 강력한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2권에서는 어른이 되어버린 한 아이를 도와주는 내용이기에, 오히려 페트라가 악역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어른이라는 컨셉을 위해서 엄청난 거유의 미녀로 그려놨다는 점 정도?
하여튼 내가 이번에 준비하는 작품은 이러한 구성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1권에서 선역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1권에 덱이 들어가고.
2권에 선역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2권에 덱이 들어가는 형식이다.
"역시 이런 식으로 컨셉 진영을 나누는 편이 좋다니까."
지난번에는 희망과 절망으로 나누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아이와 어른으로 분류를 나눈 거다.
1권에 덱이 수록되는 캐릭터들은 '아이'를 대표하는 셈이고.
2권에 덱이 수록되는 캐릭터들은 '어른'을 대표하는 셈이니까.
그렇게 각기 권별 주인공인 페트라와 라헬과 그 주인공들과 함께하는 조연들이 등장할 예정이다.
조연들은 각기 주인공들에게 도움을 받거나 구원받은, 추종자에 가까운 컨셉으로 생각하고 있다.
원래 극에 서 있는 대표자와 추종자는 느낌이 확 다르거든.
'그리고 남은 하나가.... 사실상 얘가 진짜 주인공인데 말이지.'
1권과 2권에 각기 페트라와 라헬의 이야기는 나오긴 하지만.
정작 중점이 되는 흐름은 다른 진짜 주인공을 통해서 진행된다.
페트라의 손에 이끌려 네버랜드에 새로 들어온 '웬디'의 시점에서 대부분의 메인스토리가 흘러가거든.
누구보다 어른이 되기는 싫어하지만, 그만큼 어른의 내막을 아는 어른스러운 소녀.
사실상 네버랜드에 가지 않았다면 금방 어른이 되었을 아이지만.
네버랜드로 가면서, 아이로서 페트라와 친해지는 캐릭터다.
당연히 이 캐릭터도 1권에서 페트라에게 감화되어, 페트라와 함께하며 아이들을 네버랜드에 묶는 역할을 하고.
그런 만큼 1권에서는 페트라와 비슷한 느낌의 덱이 사용한다.
물론 캐릭터가 달라서 덱 자체는 완전히 다르지만, 상대를 방해해서 승리한다는 메커니즘은 똑같이 가져간다.
'대신 다른 1권 캐릭터들과 다르게, 좀 어른스럽지.'
아이가 되고 싶을 뿐, 이미 꽤 어른스럽다는 점이 다른 아이들의 비상식적인 부분과 충돌한다.
그런 부분을 덱에 녹여서, 비슷한 컨셉인 다른 1권 덱들과 차별화를 가지게 할 생각이었다.
아이인 덱이 아니라, 아이가 되고 싶은 덱으로 말이지.
하지만 그 컨셉조차 웬디가 2권에 가는 순간,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바뀐다.
물론 여전히 어른이 되는 것은 싫어하지만, 라헬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네버랜드의 진실을 알게 되거든.
따라서 페트라의 잘못된 네버랜드 운영 방식에 반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연히 페트라는 그런 웬디에게 실망하고.
웬디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녀를 죽이려 한다.
그런 그녀를 보며, 웬디가 자신이 아이가 되고 싶다는 마음보다 더 이루고 싶은 새로운 꿈—메르헨—을 찾게 되는 거지.
그래서 진지하게 자신의 메르헨을 달성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메르헨 배틀로 그려내는 캐릭터다.
따라서 그녀의 덱은 2권에서 다시 수록되는데, 거기서는 정상적으로 메르헨을 달성해야 하는 어른의 덱으로 바뀐다.
1권의 아이의 덱과 2권의 어른의 덱이 모두 공존하는 유일한 캐릭터인 셈이지.
"아, 그림 변화도 빠질 수 없지...."
그나마 아이티를 벗지 않고 있던 1권의 웬디와 다르게.
2권에서 어른이 되는 웬디는, 확실하게 어른의 몸매가 가지는 파괴력을 보여주는 거지.
"이 정도면 기본적인 구성은 괜찮겠다."
물론 세부적인 사건이나, 부족한 부분들은 이제부터 채워나가야겠지만.
기본적은 컨셉과 흐름은 다 짜진 느낌이다.
"그나마 조금 더 다듬을 건 메르헨 배틀에 대한 설정인가?"
이번 작품은 확장팩 개념으로 만들어지는 거긴 하지만, 기존 작품의 프리퀄이기도 하다.
아직 메르헨 배틀이라는 설정이 완전하지 않은, 초창기라는 컨셉이라.
그 컨셉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규칙이나 연출이 필요하겠지.
기본적으로 메르헨 배틀이라는 건, 공정한 기사도에 기반하는 대련과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그 기사도를 무시하고 물리적인 해를 끼치는 예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고.
강력한 힘인 만큼, 메르헨 배틀은 확실한 정도를 따를 것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신작 시점에서 메르헨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다.
메르헨을 달성해서 어른이 되고 나면, 더 이상 카드놀이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애들 장난인 줄 알았던 메르헨 배틀이, 생사의 의미로 쓰이게 된 건 페트라의 악용 때문이고.
그때부터 메르헨 카드의 힘이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시작된다.
그래서 메르헨 카드를 기반으로 개인의 힘을 키우는 것이, 일종의 검술 같은 것으로 성장하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힘과 권력의 상징으로 변화하게 되는 건데....
신작의 시점에서는 어디까지나 그런 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는 시점이라, 조금 다르게 그릴 필요가 있다.
'물론 전작에서도 메르헨을 전쟁에 이용하긴 했지만, 그건 다 절제된 기사의 행동이었지.'
자신도 잘 모르는 힘을 이용해서 싸우고, 그 부작용이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그려낸다.
연구되지 않은 강력한 힘을, 뭣도 모르는 어린애들이 가지고 노는....
제대로 위험천만한 느낌을 줄 수 있겠지.
"좋아, 지금부터 네버랜드는 전쟁터로 변한다...."
어른들은 냉큼 꺼지시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