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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216화 (216/229)

〈 216화 〉 43권 ­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녀의 세계(5)

* * *

"와...."

이제까지 페트라가 보여준 모습 중, 가장 괜찮은 모습이었다.

물론 평소에도 강한 힘을 다루며 모두를 지키는 포지션이긴 했지만.

페트라의 소름 돋는 마인드들이 가끔 드러났던지라, 간단히 좋은 캐릭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지금 페트라가 동료가 다치고, 납치당한 것에 분노하는 모습은.

그런 페트라의 이상하고 소름 돋는 모습들을 순간 잊게 할 정도로 강렬했고.

이전 페트라의 모습은 잊고, 순간적으로 소중한 네버랜드의 모두를 구할 영웅처럼 느끼게 했다.

「아쉽네, 이번엔 혹시 끝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아니, 오늘 끝날 거야. 내가 오늘 너를 죽일 거니까.」

「언제는 죽일 생각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한다?」

다만 평소보다 흥분한 페트라의 상태 때문인지, 항상 어느 정도는 앞서가던 페트라가 라헬에게 밀렸다.

그런 페트라를 웬디를 비롯한 모두가 응원하고.

그 응원의 힘으로 새롭게 뽑은 카드는, 놀랍게도 카드를 2장 더 뽑을 수 있는 사기적인 카드였다.

"어?"

그리고 그렇게 추가로 뽑은 2장의 카드는, 밀리고 있던 페트라에게 엄청난 기회를 줬고.

페트라는 그 기회를 발판 삼아, 엄청난 디메리트를 감수하며 화력을 끌어올렸다.

사실상 이번 공격이 막히면 패배할 정도의 디메리트였지만,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공격이 라헬에게 닿았고.

한 끗 차이로 라헬의 메르헨 완성을 저지하며, 메르헨 배틀에서 승리를 따냈다.

「비겁하지만, 나도 살아야 하니까. 이해해줘.」

「...그 손 움직이기만 해봐.」

「그랬다간 내가 죽는데, 설마 그러겠어? 풀어줄 테니까 너도 나를 놔줘.」

라헬은 인질로 잡고 있던 웬디와 아이들을 풀어주는 대가로, 자신을 놓아달라고 했고.

처음에는 힘으로 찍어눌러서 웬디를 구하려던 페트라는.

벨을 구할 방법까지 알려주겠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라헬을 풀어주며 상황이 마무리된다.

페트라와 모두는 자신들의 기지에 돌아와, 라헬이 알려준 방법으로 벨을 구했고.

모두가 이전보다 훨씬 더 끈끈해진 모습으로,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지면서 만화가 끝이 났다.

"...내가 너무 깊게 생각했나?"

다만 만화를 보고 있던 여성은, 그런 점에서 굉장히 이상함을 느꼈다.

시우 화가의 작품답지 않게, 너무 깔끔하게 끝이 났다는 느낌이었으니까.

물론 그런 작품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그녀는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며 2권을 살짝 열었다.

"아?"

그리고 2권의 초반부를 읽어보자마자, 그녀는 자신의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너 메르헨도 희망의 이야기만 읽으면 굉장히 평범하고 밝은 결말이었으니.

아마 이번에도 그런 느낌으로 구성된 모양이네.

"그나저나, 또 어른 이야기인가."

2권은 네버랜드의 일원이자, 웬디의 쌍둥이 동생인 릴리에게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갑자기 납작하던 가슴이 엄청나게 커지고, 허리나 골반 등이 어른의 체형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던 거다.

물론 아직은 메르헨 카드상으로 어린애였지만, 그것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윽...!」

어떻게든 그런 변화를 들키지 않기 위해, 릴리는 자신의 가슴을 붕대로 압박하고.

허리나 골반을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많이 먹어서 체형을 통통하게 하거나.

여러모로 어른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

그녀도 당연히 어른이 될 생각은 없었고.

그냥 자신의 언니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에, 평소 웬디의 모습을 따라하고.

모두를 챙기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을 뿐인데.

어느새 그녀의 메르헨은,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 어른이 되는 형태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을 막기 위해 있는 것이 네버랜드지만.

아무래도 아이로 취급받는 웬디가 목표였던 탓에, 현재 네버랜드의 시스템으로는 막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하여튼 그것도 메르헨의 목표로써 작동하다보니, 그 목표에 다가간 탓에 어른으로 변하기 시작한 셈이었다.

"그나저나, 릴리는 생각도 못 했네."

물론 1권에서도 귀여운 분위기 메이커 캐릭터였고, 그래서 어느 정도 분량도 있었지만.

이렇게 진지한 느낌으로 메인에 때려 박는 식으로 전개가 될 거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으니까.

마냥 귀여웠던 릴리는, 이제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릴리가 좀 이상하네.」

그리고 자기 동생인 만큼, 이런 이상 현상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웬디였다.

릴리가 계속해서 웬디를 피하는 듯한 행동을 하고.

다른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다가도, 자기 혼자 화들짝 놀라서 화장실에 숨는다거나 하는....

평소에 릴리가 하지 않던 행동을 너무 많이 보여줬기에, 웬디는 결국 릴리를 추궁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언니한테만 말해도 좋으니까. 응? 부끄러워하는 걸 보면,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언니는 몰라. 절대로 이해 못할 거야.」

「릴리!」

하지만 릴리는, 언니는 그렇게 멋지면서 어른이 되는 부작용도 없다는 사실에 굉장히 질투하고 있었고.

그 질투는 자매의 소통을 계속 틀어막게 했다.

그러는 동안, 릴리는 점차 언니처럼 되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이전보다 더 메르헨의 결말에 가까이 가자, 더는 숨기기 어려울 정도로 몸이 자라나 버렸다.

결국 마지막에는 완전히 어른이 되면서, 옷이 터져서 커다란 어른의 몸매를 드러냈고.

그것을 본 페트라는 곧바로 카드를 들고 릴리에게 공격을 날렸다.

물론 그 공격을 알아차린 웬디가 막아서면서, 릴리가 크게 다치는 것은 면했지만.

싸늘한 표정으로 어른이 된 릴리를 바라보는 페트라는 꽤 무섭게 느껴졌다.

「배신자는 처단한다. 그게 네버랜드의 규칙이잖아? 기억하고 있을 텐데?」

「릴리가 배신자라니, 대체 무슨 말이야.」

「저걸 보고도 모르겠어? 다 같이 아이로 살겠다는 약속을 배신하고, 혼자 어른이 되었잖아. 틀려?」

「나, 나는 그런게....」

분명히 모두와 함께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페트라의 모습과.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에 분노하는 모습 등.

많은 페트라의 모습을 보면서 잊혔던 소름 돋는 모습이, 단숨에 뇌리에서 복구된다.

"와, 이건 진짜 기분이 이상하네."

차라리 멋진 모습에 감동하지 않았으면 모르겠는데.

한번 페트라의 이미지가 세탁된 상태에서, 이런 식으로 기존 이미지를 다시 보여주니까.

이전보다 훨씬 더 소름 돋게 느껴졌다.

"심지어, 나름 동료였는데. 저렇게 싸늘하게 말할 수가 있나?"

물론 어른들에게 많이 당하기도 했고, 당장 저번 사건도 어른들에게 당한 거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쫓는 정도가 아니라, 죽이겠다는 판단을 저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걸까.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고 친구며 가족인데....

「너는 정말 여전하네.」

「...라헬?」

그리고 어째서인지 근처에 있었던 라헬이 나타나, 웬디 대신 페트라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다른 어른들은 라헬이 페트라를 막고 있는 사이, 릴리의 몸을 새 옷으로 갈아입히더니.

릴리를 부축하고 이 자리를 급하게 떠나기 시작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분명 이곳의 모두를 괴롭히던 라헬과 어른들이.

이상하게도 지금은 다른 것보다 릴리의 안전을 생각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페트라가 릴리를 죽일 수 없게 막았으니까.

「설마, 너희들 짓이야? 너희들이 릴리를 어른으로 만들었어?」

「그럴 리가. 어디까지나 다른 이유 때문이야. 우리는 너희보다 눈치가 빨라서, 미리 알아차리고 대비한 것뿐이지.」

「이번에도 동료를 늘리기 위해서....」

「여전하네,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방식도.」

웬디는 지금 상황에 굉장히 혼란스러워했지만, 페트라와 라헬은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싸우기만 했다.

페트라를 제외한 이들은, 아무리 그래도 동료였던 릴리를 죽이면서까지 어른이 되지 않게 막을 생각이 없었고.

그렇게 페트라가 발이 묶인 사이, 릴리는 완벽하게 다른 곳으로 대피하는 데 성공했다.

「자, 그럼. 나중에 또 보자.」

「또 도망을...!」

「이길 수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주의라서.」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라헬은 자신도 페트라에게서 도망치며, 완벽하게 릴리를 구해냈다.

릴리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일단 자신을 구해준 것은 사실이기에, 라헬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는 무슨, 이거 하려고 여기 있는 건데.」

「네?」

「뭐, 너도 이제 우리 사람이니까 말해줘도 되겠지. 우리가 네버랜드를 나가지 않고, 어른인데도 여기서 지내는 이유는. 너처럼 페트라에게 죽을지도 모르는 녀석들을 살리기 위해서야.」

"뭐?"

이제까지 라헬이 주기적으로 페트라를 공격했던 건, 그 원인인 페트라를 죽이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가끔 네버랜드에서 지내는 아이들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도 있었다.

그러다가 만약, 어른이 될 것 같은 아이를 발견하면, 이렇게 구출해낸다고 한다.

「자, 잠시만요. 그럼 설마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래, 원래는 전부 페트라와 함께하던 어린애들이야.」

하지만 페트라가 배신자라는 이유로 죽이려 들었고, 그때 라헬이 구해줬던 거다.

이곳에 남은 뒤로는 라헬의 일을 도우면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어른'들을 구하게 된 것이다.

「물론 네가 원하면 네버랜드 바깥으로 보내줄 수 있어. 실제로 그렇게 돌아간 녀석들도 많고.」

「...아뇨, 그건 상관없는데요.」

「그래?」

「다들 라헬이 구해줬다고 했는데, 그럼 라헬은 어떻게 된 거예요?」

「오, 초장부터 그런 질문을 하는 녀석은 처음이네.」

라헬은 한동안 키득거리며 웃더니, 자신의 메르헨 카드들을 꺼냈다.

그리고 카드를 하나씩 짚어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도 크게 다른 거 없어.」

「에이, 설마요.」

「진짜야. 페트라에게 초대받아서 네버랜드에서 살게 된 평범한 아이였거든.」

라헬은 나름대로 릴리의 질문이 마음에 들었는지, 자신의 옛날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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