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화 〉 45권 성인식(5)
* * *
"그러니까, 솜사탕을 정말로 성인식 때 먹인다고?"
"응, 다들 좋아한다고 하더라고."
"어...."
물론 모든 집이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소문이 날 정도면 꽤나 퍼졌다고 보는 편이 옳으리라.
아니, 애초에 그걸 애들이 안다는 게 더 당황스러운데.
'끙, 나도 지구의 상식에 너무 매몰되어 있긴 한가 보네.'
이쪽 세계에서 만화는 예술로 취급받는 중이고.
예술에 나이 제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걸 떠나서 야한 것에 대해서 나이 제한 같은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지.
그러니까 당연히 내 작품을 읽는 것이 미성년자라고 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 연재했던 신작의 경우에는 성인물은 아니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당황할 건 아닌데도, 뭔가 나도 모르게 이상한 것처럼 생각이 되었었네.
물론 저쪽에서도 미성년자 팬은 있었다.
원래 금지한다고 해서 말을 듣는 나이대의 애들이 아니니, 금지해도 다 우회해서 보니까.
다만 이쪽에서는 부모들이 그걸 당연히 여기고, 그걸 기반으로 선물까지 사준다는 게 신기했다.
"처음에는 어떤 집에서 생일 파티에서 선물했다고 하더라. 그때 애 반응이 너무 좋아서, 알음알음 소문이 퍼졌대."
"으음...."
근데 작품을 읽어야만 알 수 있는 선물이라면, 아무래도 퍼지는 것에 무리가 있긴 할 거다.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잠시 유행하고 꺼질 불이겠지.
...꺼지겠지?
"그리고 요즘에는 부모님들이 직접 만들어 주려고 해서, 기계를 빌리거나 사는 일도 있다고 하고."
"...선물은 마음가짐이라고 하니까. 그래서 이제 슬슬 충분하다 싶었는데도 주문이 계속 들어오는구나?"
아니, 그런데 그렇게까지 성장할 정도로 시간이 많이 있었나?
여러모로 전개가 빨라서 어지러운데.
하여튼 솜사탕이 유행한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지만, 너무 과열되는 느낌이다.
'무슨 치킨집도 아니고.'
물론 제대로 된 요식업에 비해, 엄청 저렴한 돈으로 시작할 수 있고.
돈 좀 있는 집은 그냥 집에 하나 갖출 정도의 가격대긴 하다.
워낙 우리가 신경을 써서 만든 덕에, 생산 비용이 많이 줄어들었거든.
"그래서 특이한 요정의 실이 많이 생기고 있대."
"오, 그래?"
자기 아이에게 주고 싶은 선물을 만드는 것이니, 아무래도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겠지.
아이가 좋아하는 형태라던가, 음식이랑 접목하고 싶었을 테니까.
원래 그런 수준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유행 방향 때문에 발전이 빨라진 느낌이다.
"짠."
"음? 롤케잌?"
"아니야. 요정의 실이야. 안에 재료를 넣고 말아서 만든 거지.
"아하."
그나저나 저렇게 꾹꾹 눌렀으면 엄청나게 달겠는데?
다만 잘린 단면에 보이는 과일이나 크림 등으로 인해서, 엄청 예쁘긴 했다.
중간에 다른 색 솜사탕을 재료처럼 넣어둔 것도 좋고.
"이런 것 말고도, 사람보다 훨씬 크게 만든 요정의 실이나. 요정의 실로 만든 원통형 케이크도 있어."
"별것들을 다 만들고 있네."
예상했던 것처럼 롤솜사탕은 엄청나게 달았다.
그나마 센스 있게 커피를 준비해놓았기에, 단맛을 어떻게든 중화하면서 다 먹을 수 있긴 했는데....
솔직히 너무 달아서 어지러울 지경이야.
"하으...."
"맛은 있는데, 내가 설탕이 될 것 같은 맛이야."
"그게 좋다니까."
"뭐, 원래 그게 디저트의 본질이지."
저렇게 좋을까.
즐겁게 솜사탕을 먹고 있는 오르카를 보고 있으면, 여러모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다.
최근 들어서 솜사탕 때문인지 그나마 밝은 느낌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아, 맞다. 신작 중에 괜찮아 보이는 건 있었어?"
"응, 이건데...."
놀랍게도 그 작품은 그림이나 만화가 아닌 보드게임이었다.
심지어 다른 만화 작품 등도 없이, 단독으로 보드게임만 있었는데.
그 룰이 마치 이너 메르헨을 잘 이해한 사람이, 그 룰을 최대한 간략하게 바꾼 듯한 느낌이었다.
다만 조금 놀랐던 건, 그 안에 있는 새로운 시스템이었는데.
내 경우에는 밸런싱 한계 때문에 넣기를 포기했던, 덱 빌딩 시스템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임을 간단하게 만들어서 자체 변수를 좀 줄인 대신, 덱을 규칙에 맞는 한도에서는 직접 짤 수 있게 해놓았다.
"...시우 화가님께 고맙다니, 설마 이너 메르헨을 하다가 여기까지 생각이 닿았던 건가?"
이러한 사전 덱빌딩 카드 게임이 만들어졌다는 건, 이제 이 규칙을 통해서 확장팩을 랜덤 카드팩으로 발매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 게임을 만든 화가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지만.
내가 이전에 자궁 문신 스티커를 랜덤으로 팔아먹었으니,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금방 알아차리겠지.
음, 심지어 레어카드 개념까지 나와 있으니까 얼마 안 걸리겠는데?
'하여튼 빠르다니까.'
원래 이런 새로운 시스템이 나오면 당황할 법도 한데, 오히려 그걸 응용해서 개척해나가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이쪽 세상 화가들의 특징인데, 그게 정말 발전 속도에 큰 도움이 되는 느낌이야.
괜히 제국에서 마법이라는 학문이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겠지.
"재밌어...."
"응? 아직 게임 해보지도 않았는데 재밌어?"
"아니, 게임 말고."
이 세상이 재밌다.
솔직히 다른 세상의 지식을 가지고 와서, 그걸 이용해서 존경받는다는 점은 조금 못마땅하지만.
그 지식을 조금씩 뿌리면, 그 조금을 쥐고 미친 듯이 나아가는 이 세상의 화가들을 보면 뿌듯해지니까.
솔직히 이런 사건이 없더라도, 당장 전시관만 가도 감탄이 나오거든.
예전에는 실사체만 가득했던 전시관이, 나도 깜짝 놀랄만한 예쁜 비실사체로 싹 바뀌어 있다는 점이 놀랍고.
그런데도 그 안에 담겨있는 디테일과 감정, 메시지 등은 여전히 거장의 무게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아름답다.
반칙을 쓰고 있다곤 해도, 저런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기분 좋고.
또한 그들과 내가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에 전율이 오른다.
그러니까, 최소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나도 최선을 다해서 그림을 그려야겠지.
"음, 그러고 보니까 칼리 신작 낸다고 하지 않았었어?"
"맞아. 지금 아직은 기획 단계지만."
아무래도 이번 학기에는 솜사탕 기계를 판다고 시간을 많이 쓰는 바람에, 아직 후속작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 빠져 있었는데.
조금씩 그쪽 일들이 마무리되면서, 이제 슬슬 신작 준비를 해야 했다.
"무슨 내용인데?"
"결정난 게 거의 없어서 말하기 뭐하네. 사실 스토리 짜는 것도 마음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서.... 너야말로 요즘 좀 괜찮아?"
"으음.... 모르겠어. 계속 상위권은 유지하고 있는데, 그건 다 저번 학기에 해결한 것들이란 말이지. 발전이 없어."
"고생이네."
오르카가 요즘 들어 솜사탕 덕분에 기분이 좋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많이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본인의 검술이 반년 이상 정체되어 있으니, 멘탈이 흔들릴 수밖에 없겠지.
특히 천재라서 초반부터 문제라는 걸 겪지 못했던 그녀에게 있어, 이렇게 긴 시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당황스러울 것이다.
물론 이런 경험도 해야지 사람이 성장하는 거고, 결국은 그걸 이겨내면서 강인해지는 거긴 한데.
내 예상보다도 더 오래 걸리긴 하네.
"그렇게 실마리를 못 찾겠어?"
"응, 오히려 요정의 실을 만드는 게 더 도움이 될 정도. 뭔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이게 아니라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이게 아니다?"
"응, 물론 요정의 실도 최근 들어서는 비슷해져 가는 느낌인데...."
마치 검술을 펼치면, 이 검술을 이렇게 펼치는 게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벗어나면, 검술이 망가져 버리고.
그렇게 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어버리니, 뭔가 개선을 위한 깨달음 같은 것도 아니라고 했다.
"어렵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
이게 천재의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거라 그런지, 범재인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렵다.
당장 검술 따라가기도, 구현하기도 벅찬데.
저렇게 퀄리티 좋은 수준까지 완성한 다음, 뭐가 아쉽다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
"후우...."
"아, 미안. 기껏 신경 안 쓰고 있었는데."
"아니야. 결국 내 문제 때문에 칼리한테까지 걱정 끼쳐서 미안해."
"그건 괜찮아."
"...그래?"
"응, 오르카는 나를 지켜줄 거라며. 그럼 오르카 일이 내 일이지."
"......."
"오르카?"
"...잠시만 이렇게 있게 해줘."
오르카는 한참을 아이처럼 내 품에 안겨 있다가.
짧게 눈물을 흘린 뒤에야, 겨우 진정해서 자신의 기숙사로 돌아갔다.
눈물을 그친 후에는 최대한 기운이 있는 척을 하면서 나가긴 했지만, 내가 걱정할까 봐 연기한 거겠지.
오르카는 좀 바보에,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은근 마음이 깊고 여린 녀석이라서.
생각보다 마음속에 상처를 곪는 타입이었다.
그녀의 목표는 그 무엇에서도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최고의 기사가 되는 것이었는데.
그런 그녀는 전혀 부서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벽을 만났고, 그 탓에 지금은 목표의 달성 가능성이 아예 보이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벽은 내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오르카가 잘 이겨내길 기도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오르카는 솜사탕을 만들 때도 검술을 구현했었지."
사실 현실적으로 검술은 검으로만 구현되어야 정상이다.
다만 오러를 사용하지 않은, 단순한 묘리만을 담는 것이기에 그것이 단순한 나무 막대기여도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작품 속에서라면?
그런 묘리뿐만 아니라, 오러까지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막대기의 형태가 아닌 그 무엇도 검에 필적하는 무언가가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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