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화 〉 46권 검술 아카데미의 부적합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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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에서 검술이라는 것은 굉장히 특별하다.
그냥 다른 무기보다 우선시 된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무기가 사장되었을 정도로 편파적이거든.
이제까지 다른 무기로는 오러를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한 사람이 없었으니까.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오러를 다른 무기에 담아보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예 실패했고, 성공하더라도 훨씬 낮은 성능으로 인해서 그 이상 발전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지.
그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기록이 완벽하지 않은 옛날부터 이어져 온 세계 전체의 특성이기에.
아무도 이에 의심하지도 않고,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다른 무기를 사용하는 이들이 있긴 한데.
대부분은 검술과 오러를 단련하여 싸우는 기사가 아니라, 마법사들이었다.
애초에 말이 무기지, 그냥 마법으로 공격하는 거나 다름이 없는 경우거든.
그래서 고화력 원거리 공격은 철저하게 마법사의 몫이었고.
그나마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기사는, 전부 검술의 경지로 해결했을 뿐....
무기를 바꾼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흐음....'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 세상의 상식이지.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떤 싸움이 벌어질지를 상상해보는 것도 재밌잖아?
그리고 특히나 요즘에는 현실에 없는 이야기를 쓰는 게 재밌더라고.
'참 아이러니하지.'
판타지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정작 판타지 세상에서도 판타지 작품을 그려내는 격이니.
하지만 원래 작품이라는 건, 이 세상의 모두와 소통하는 물건이고.
그렇다면 이런 신선한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불태울 수밖에 없거든.
"그래도, 갑자기 이런 내용이 나오면 몰입이 깨지니까...."
그럴 때는 상식이 비슷한 주인공을 사용하면 된다.
그럼 훨씬 몰입하기 좋아지고, 그러면서 다른 세상을 여행하는 느낌을 주기도 좋지.
실제로 최근에 연재한 작품들은 그런 느낌이 있었고.
"흐음, 근데 이번에는 아예 세계관 자체가 달라지는 거잖아?"
그렇다면 아주 직관적인 선택지가 하나 있는데.
이쪽과 비슷한 세상에 살던 주인공이,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넘어가는 거다.
...간단히 말해, 이세계물이 된다는 소리다.
'이세계에서 이세계물을 전파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괜히 유행했던 장르가 아니니까, 아마 이쪽에서도 먹힐 가능성이 컸다.
당장 유사 이세계물이었던 두 작품이 연달아 좋은 반응이었잖아?
원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법이거든.
"그럼 일단 주인공은 최근 오르카를 모티브로 하면 좋겠는데."
원래 만화는 대리만족을 위해서 보는 것도 있다.
오르카와 비슷한 고민이 있는 검사는 있을법하고.
그런 주인공이, 이세계에서 그 고민을 싹 해결하는 장면이라면 만족스럽겠지.
검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기가 모두 오러를 구현할 수 있는 세상에 가서.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찾아, 무시당하던 기존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는 거지.
그리고 그러면서 다양한 무기를 사용하는 그 세계관의 사람들을 녹여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을 여행하는 듯한 맛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을 거다.
"괜찮네. 이번에는 이 소재로 해봐야겠다."
어쩌다 보니까 생각난 소재긴 하지만, 일단 그것만으로도 아주 흥미로웠고.
내가 작품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인.
그리는 내가 즐거운가에 대한 조건도 꽤 충족되는.... 내 취향에 맞는 설정이었다.
"와, 그나저나 이런 주인공도 괜찮지."
어릴 때는 촉망 받다가, 나중에 그 재능이 쓰레기 취급당하면서 평가가 나락 간 케이스.
지구에서는 클리셰에 가까워서, 좀 질린다는 이야기도 나올 수 있지만.
그만큼 사랑받는 주인공 형태라는 소리니까.
"...흠, 조금 극단적으로 갈까?"
이제 이런 스토리로 작품을 쓴다고 생각했다면.
방금 그 설정으로 짜인 주인공이 사용할 무기부터 선택해야 한다.
다만 이 부분에서 평범한 무기를 고르면, 아무래도 충격이 약해서 재미도 반감될 테니.
이쪽 사람들이 무기로써 알아보면서도.
오러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현실감을 느낄만한 적당한 무기가 좋다.
"...활?"
생각해보면 이쪽 동네도 활이라는 무기 자체는 활용하는 편이다.
마법사나 마도구를 제외하면,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괜찮은 원거리 무기고.
일단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으면서, 동물이나 사람을 죽일 살상력까지 있으니까.
따라서 주인공이 이세계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무기고.
심지어 검술을 연마하기 전에 사용해서, 원래부터 다룰 수 있던 무기일 가능성도 있다.
그럼 여러모로 적응하기 쉽다는 개연성도 있겠지.
"좋아, 그럼 그런 느낌으로 가면 될 것 같고."
다음은 주인공이 만날 이세계의 동료나 적도 간단히 설정하고.
쭉 설정해 둔 다음에, 전개할 스토리에 맞춰서 필요한 곳에 투입하면 되는데....
역시 이런 경우에는 컨셉을 기반으로 짜는 것이 빠르다.
지금 주인공의 경우에는 이미 정해진 설정을 지니고 있고, 그에 맞는 무기를 챙겨야 했지만.
이외의 인물들은 반대로 무기부터 정하고, 그 무기에서 파생되는 성격으로 캐릭터를 그려내는 편이 빠르고 자연스럽거든.
"흠, 총 같은 것도 괜찮겠다.
이쪽 세계에서 친숙하지 않은 무기여도, 오히려 다른 세계의 신비함으로 느껴지게 되어 있기에.
주인공만 아니면 저런 소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말이 총이지, 마도구를 이용해서 싸우는 건 이쪽도 존재하잖아?
총 모양의 마도구를 마법사 친구에게 받았다가.
그 친구가 죽은 뒤, 그 마도구로 계속 싸우면서 마도구 공격에 오러를 씌울 수 있게 되는 거지.
뭐, 그런 식으로 서사를 짜면 괜찮은 캐릭터가 많이 나올 것 같았다.
"오케이, 이런 느낌으로 가봐야겠네."
느낌 좋게 아이디어들이 쭉쭉 뻗어 나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잔뜩 설정을 짜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날 밤은 자지도 못해서 니아에게 혼났지만, 그래도 아침에 두껍게 쌓인 설정 그림들을 보니까 기분 좋더라.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
"아, 슬슬 가야겠다."
"응, 내일 보자."
오르카가 동아리 방을 나가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아까까지 작업하던 원고를 꺼냈다.
아까는 갑자기 들어오는 바람에, 제대로 방비도 못 한 채로 전부 보여줄 뻔했네.
그나마 오르카가 이런 부분까지 까다롭게 파고드는 성격은 아니라서 다행이지.
"요즘 오르카 눈치를 많이 보네?"
"...음, 너무 대놓고 그랬나?"
"너무 신작 이야기만 나오면 칼같이 방어하잖아. 특히 오르카 있을 때."
"끄응, 하지만 이번에는 스포하기 싫어서 그래."
다른 사람이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르카는 이번에 내 작품을 보면서 여러모로 힘을 냈으면 좋겠거든.
그러니까 최대한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흐음, 역시 아닌 척했지만. 칼리는 작품을 그릴 때 누군가한테 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하는구나?"
"그런 게 아니라.... 이번에도 우연히 그렇게 된 거거든?"
그냥 오르카 덕분에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어쩌다 보니까 주인공이 오르카와 비슷한 상황인 것이 적절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럼 오르카한테 위로가 될 것 같으니까, 하는 김에 같이 신경을 쓰는 거지.
"...흐응. 우연히 작품 두 개로 위로받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부럽네."
"나 좀 억울해지려고 해...."
가끔 다른 의미로 이 세상이 나한테 억까를 한다니까?
아무튼 저번에 작품 콘티를 모두 완성한 이후, 열심히 작품을 그리고 있는데.
혹시 작품의 내용이 오르카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랬더니 유리아가 와서 나를 놀리고 있는 거였고.
"슬슬 오르카가 걱정되긴 했는데, 칼리가 나선거면 그만 걱정해도 되겠네."
"뭔데 그 이상할 정도로 두터운 신뢰는....."
오히려 부담되니까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확실히 요즘 오르카의 모습이 많이 지쳐 보이긴 했다.
슬슬 솜사탕 만드는 것도 검술과 비슷하게 한계에 맞이한 것 같더라고.
'...가장 좋은 건 해결이 되는 건데.'
내 작품을 보고 그녀가 위로받길 기도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위로 정도밖에 되지 않을 거다.
결국 완벽히 해결되려면, 문제가 되는 벽이 부서져야 하는데....
우리 아카데미에 난다긴다하는 교수진이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나라고 특별한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실제로 유리아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내가 완전히 그녀의 트라우마를 지워준 건 아니잖아?
"그래서, 작품은 언제 완성될 것 같은데?"
"이제 슬슬 마무리 단계야. 마지막 엔딩 부분이 약간 고민이라서 시간이 걸렸는데. 그것도 이제 결정했으니까."
"그래?"
"아직 표지 컬러 그림 작업을 못 하긴 했는데.... 일단 내부에 만화책 부분부터 생산 들어가게."
표지는 작품이 끝나고 나서 최종 줄거리에 맞게 구성할 생각이었고, 힘도 꽤 줄 생각이라서 미뤄놨거든.
근데 아마 스토리가 초기 콘티에서 크게 바뀌지는 않아서, 아마 그때 생각한 대로 그리면 될 것 같았다.
"...빨리 마무리하고 잠이나 제대로 자고 싶어."
"너무 서두르는 거 아니야?"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르카가 매일 저런 표정으로 다니니까 잠이 안 와."
"거봐. 역시 오르카 신경 쓰는 거면서."
"...신경은 쓰지. 작품 설정할 때 오르카를 생각한 게 아니라는 거거든?"
굳이 이런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오르카는 내 만화를 좋아하니까 솜사탕처럼 즐거우라는 의미에서라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거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그렇게 주장해도, 유리아는 한결같이 나를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안아주면서 올려치기를 하니.
정말 억울해 죽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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