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한 만화가 합법인 세상에서-228화 (228/229)

〈 228화 〉 46권 ­ 검술 아카데미의 부적합자(2)

* * *

"이건...?"

"내일 출간되는 시우 신작, '검술 아카데미의 부적합자'라는 작품이야."

"나 내일 일해야 해?"

"아니, 그냥 빨리 보여주고 싶었거든."

요즘 칼리가 이상하다 했더니, 새 작품 준비하느라 바빠서 그랬구나.

이번 작품의 표지에는 아주 진지해 보이는 여자아이가, 부러진 검을 든 채로 쓰러져 있었다.

당장이라도 공격받아 마무리될 것 같은, 약해 보이는 모습.

"엄청 야할 것 같은 표지네. 이대로 강간당하는 거야?"

"아니야. 누가 들으면 내가 무슨 그런 것만 그리는 줄 알겠네."

칼리가 부끄러운지 생각에도 없는 말을 했다.

그나저나 야한 게 아니면, 저대로 공격받아서 죽는 건가?

하지만 표지에 있다는 건, 주인공이라는 소리인데 죽으려나?

"아무튼, 읽어봐. 오르카 너한테 보여주고 싶은 작품이었으니까."

"...나한테?"

"응. 보고 조금이나마 기운을 냈으면 좋겠다고 할까...."

"칼리...."

아무래도 내가 너무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최근에는 요정의 실 쪽이 즐거워서, 그쪽에 최대한 몰입하면 덜 힘들었는데.

결국 그건 도피밖에 되지 않는지, 환상이 깨지고 나서는 같은 현실이 눈앞에 버티고 있었고.

나는 그걸 견딜 수가 없어서, 자꾸 저변에 어리광을 부려버렸다.

"내가 미안하지. 내가 더 잘 할 수 있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아니야. 넌 최선을 다했어. 꼭 1등을 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너와 비슷한 수준도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잖아."

하지만 칼리는, 시우 화가는 제국 최고의 화가다.

그런 사람을 지키는 기사가, 평범한 수준에서 머무른다니....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나는 칼리의 곁에 있는 기사가 되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져야만 한다.

최소한 소드 마스터는 되어야 하는데, 이런 수준에서 멈춰 있다니.

그런 나에게 칼리의 기사를 자처할 자격 따위는 없어.

"또, 그 표정."

"하으!?"

"괜찮아. 조금 막힐 때도 있는 거야.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마음 굳게 가져줘."

"...응."

하지만 칼리는 그런 나조차 저렇게 보듬어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믿고 기다려주겠다고 말한다.

그 따듯한 한마디가, 매번 나를 일으켜 세웠다.

"선물을 받아 버렸네."

물론 내일이면 나도 살 수 있는 물건이긴 했지만.

그래도 칼리가 이렇게 신경 써준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굉장한 힘이 되었다.

요즘 칼리가 나 같은 쓸모없는 건 필요 없다고 버리는 악몽을 꾸는데,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꿈인지 현실을 일깨워주는 느낌이야.

"참 웃기네."

현실이 막막해서 힘든데, 정작 칼리는 현실이 너무 빛나서 힘이 난다니.

결국 전부 내가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의욕만 앞섰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아니야. 이런 생각 그만하라고 칼리가 선물을 준 거잖아."

나는 고개를 흔들며 나쁜 생각을 지워버리고는.

칼리가 나에게 준 만화책을 펼쳤다.

잠시 현실은 잊고, 칼리가 그려낸 세상으로 놀러 갈 시간이야.

"응?"

제목에서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초반부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굉장히 검술을 잘 운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굉장히 어린 모습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주변의 반응도 굉장히 뜨거웠으니.

아마 엄청난 인재로 취급받았겠지.

"...어라?"

그러던 그가, 성인이 되어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후의 모습으로 전환되는데.

그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더 이상 검술을 나아가지 못하고 막혀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그제야 나는 칼리가 말했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이.

그냥 신작을 선물해준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나와 굉장히 비슷했으니까.

"나, 나는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검술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고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결국 철저하게 혼자서 지내는 길을 선택한 주인공을 보며.

나는 이제까지 너무 불만을 터트렸다는 점이 미안해졌다.

나는 그래도 오히려 애들이 너도 사람이었다면서 안심하거나.

처음에는 꼴 좋다는 소리를 하며 날 선 느낌이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위로해주는 친구들이 늘어났는데.

저쪽은 아카데미 대부분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만화 초반부터, 아카데미는 엄청난 수의 괴물들에게 습격당한다.

실력이 꽤 되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그래봐야 아카데미였고.

하필 교수진도 자리를 떠난 상황이라, 아카데미는 정말 손쉽게 부서져 버린다.

주인공은 자신을 유일하게 차별 없이 보던 친구 하나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었지만.

제대로 오러도 만들지 못하는 검으로는, 누군가를 구하기는커녕 본인만 위험에 빠졌다.

아니, 구하려던 사람도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

"이게 표지의 그림이구나."

평소 칼리의 스타일이랑은 조금 다르다.

이렇게 빨리 표지의 내용이 나오는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아무튼, 그렇게 주인공이 몬스터에게 습격받으려는 타이밍에.

주인공이 쓰러져 있던 건물 주변이 무너지며, 그대로 구멍 안쪽으로 떨어져 버렸다.

"위로해준다더니, 뼈를 때리네."

물론, 이건 농담이었다.

오히려 이건 내가 매일 하는 상상이었으니까.

칼리를 지키지 못하는 내가, 저런 쓸모없는 최후를 맞이한다는....

힘들 때마다 터놓았던 속마음이었는데, 아마 지금 내 상태를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응...?"

분명 떨어진 곳은 건물이었는데.

도착한 곳은 강렬한 태양이 비치고 있는 들판 위였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당황했지만, 그 이동 연출이 마치 네버랜드에 들어갈 때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그리고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주인공이 도착한 세계는 특별했다.

검술이 아닌 다른 무기도 발전해 있고, 발전 정도가 아니라 오러 등을 사용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세계였으니까.

무기의 종류는 경지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정말 특별한 세계였다.

주인공은 그 세계에서 어떤 아저씨에게 신세를 지게 되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사냥 전력이라도 하려고 검을 든다.

하지만 아저씨에게 왜 자신에게 맞지 않는 무기를 사용하냐는 지적을 받게 되고.

처음으로 무기를 바꾸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부럽네...."

이제야 칼리가 말했던 위로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나에게도 저런 기회가 올 거라고 말하고 싶었겠지.

올곧게 검술의 슬럼프를 극복하는 내용이라면, 오히려 초조해졌을 텐데.

거기까지 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뭐, 칼리한테라면 발가벗겨져도 상관없지만."

그 와중에 주인공이 고른 새 무기는, 놀랍게도 나도 자주 사용해본 활이었다.

활이 솔직히 숲에서 사냥할 때 최고기도 하고, 쏘다 보면 재밌거든.

그런 활이 제대로 단련해 사용하는 무기로 쓰인다니, 솔직히 좀 흥미가 동했다.

"...어?"

그리고 처음에는 당황하던 주인공이, 점점 활을 다루는 것에 익숙해지더니.

검에도 오러를 담지 못하던 그녀가, 화살에는 오러를 담을 수 있었고.

심지어 오러가 담긴 화살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날려 보내는 것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의 손을 떠난 상태에서 오러를 유지한다는 건.

소드 마스터 이상에서나 가능한 고난이도 기술이고.

아무리 재능이 좋아도, 처음으로 오러를 사용하는 사람이 가능한 행위가 아니었다.

화살 뒤쪽에서부터 오러가 사라지도록 불태워, 앞쪽 오러는 상대에게 맞을 때까지 남아 있게 한다.

누구에게 그것을 배운 것이 아니라, 오롯이 본인이 활을 연습하다가 깨달은 것이었다.

검을 사용할 때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주인공은, 활을 잡자마자 미친 듯이 실력이 좋아지는 중이었다.

"아...."

검이 아니라 활에 재능이 있었기에, 검을 잡아도 더 강해질 수 없었지만.

이제는 재능에 맞는 길을 찾았으니, 폭발적인 성장세로 강해지는 일만 남아 있었고.

이제까지 제자리걸음을 하느라 잊고 있던 성장의 즐거움에, 주인공은 잠을 자는 것도 잊고 훈련에 몰두한다.

훈련의 성과를 보며 즐거워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즐거운 시간.

그리고 무시당하는 삶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생활.

만화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기운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만다.

"...하긴, 이렇게 끝나기에는 작품이 너무 많이 남았지."

역시나 그런 행복한 시간이 쭉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때 아카데미를 습격했던 괴물들은 놀랍게도 이쪽 세계까지 넘어와 있었고.

이번에는 주인공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 보금자리를 습격해왔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아저씨의 수준으로는 막아내기에 벅찬 수일 텐데.

단숨에 아저씨의 실력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성장한 주인공은, 원거리라는 장점을 살려서 멀리서부터 차근차근 괴물들을 줄여나갔고.

덕분에 집 근처까지 도달한 괴물들은 극히 적어, 아저씨가 모두 처리하는 것에 성공했다.

"아...."

이제 주인공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고.

처음으로 이들 가족을 구하면서, 이 세계에 오기 전에 부서져 버린 마음을 고칠 수 있었다.

사람들을 지키고 싶던, 순수한 마음에 검을 집던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역시, 마음에 걸려요.」

아카데미에서 나타났던 그 괴물들이 이곳에서 나타난 것은 물론.

그 괴물들의 전리품에서 아카데미 교복 조각이 발견되는 등.

관련자인 주인공이 마음 편히 넘어갈 수 없는 것들이 많이 드러났고.

결국 주인공은 소중했던 새 보금자리를 떠나기로 한다.

특히 그녀에게 활 쏘는 법을 알려준 적은 없어도, 따뜻한 온기만큼은 잘 알려준 아저씨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거의 울다시피 하면서 집을 떠나려는데....

「자, 가자.」

「에...?」

「뭐야, 준비 다 끝난 거 아니었어?」

정작 아저씨도 여행길에 따라 나와서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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