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화 〉 46권 검술 아카데미의 부적합자(3)
* * *
「왜 내가 맞은 건지 설명 좀 해줄래...?」
「몰라요.」
진지했던 분위기가 단숨에 풀려버린 바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긴, 저렇게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즐거운 게 없지.
그러고 보면 칼리도 가끔 저렇게 맞았었지, 경험이 담겨있는 장면인가?
"오...."
그 뒤로는 꽤나 평범하게 대륙을 여행하는 느낌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
다만 이제까지 아저씨에게 설명을 듣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정말로 다양한 무기를 쓰는 세상이라는 것을 체감하기 좋았는데.
그런 다양성 있는 싸움은, 매번 검과 마법만 고려하던 기존의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해주었다.
굳이 따로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암기를 던진다거나.
검처럼 날카롭지 않은 둔기류에 오러를 씌운 경우,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
그리고 검이라는 카테고리를 벗어나면, 얼마나 다양한 무기가 탄생할 수 있는가.
상식과는 다른 세상이지만, 그렇기에 알게 되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마법사와 기사로 나뉘는 기존의 싸움 공식이 뒤집히니.
마치 체스 같은 보드게임을 보는 듯해서 신비한 감각이 느껴졌다.
몬스터랑 싸우고, 그러다 보니 일시적으로 함께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있었지만.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의견 충돌이나, 약탈 등으로 사람들이 충돌할 때였다.
서로 다른 무기를 사용하며, 상대의 무기를 예상하고 그것을 통해 우위를 점하려고 치밀하게 수 싸움을 하는 모습은.
확실히 이 만화가 아니면 즐길 수 없는 부분이었다.
검술에 비슷한 묘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검술에 있는 그런 묘리도 포함하면서, 더 확장되었기에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이었고.
이미 2년가량을 검술에 매진하며 박혀 있는 공식들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은, 꽤나 기분 좋았다.
"방패라니...."
무기 중 가장 신기했던 것은, 방패라는 개념이었다.
방어라는 것은 검을 사용해서 베어내거나 튕겨내는 것이 기본인데.
커다란 방패 자체에 오러를 씌워, 일부러 공격을 맞는다니.
몬스터의 공격을 마법으로 막아준다는 건 들어봤지만, 저렇게 직접 맞아준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일부러 적의 공격을 대신 맞아주는 포지션이라니.
만화 속 세계는 기본적으로 괴물들과 싸우는 것에 익숙하고, 그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런 무기를 사용하는 포지션이 필수로 여겨진다고 한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주민들의 이야기지, 별생각 없이 아는 사람끼리 팀을 짠 주인공과 아저씨의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그들은 부족한 포지션은 돈을 주고 고용하거나, 같은 목표를 가진 일시적 동맹 관계를 구해서 싸우곤 했다.
그 덕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련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굉장히 마음에 드는 파트였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마치 그 사람의 삶을 체험하는 듯한 과정이니.
재미가 없을 리가 없지.
"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괴상한 디자인의 무기를 들고 다니는 이의 이야기였다.
원래는 오러나 단련 따위는 전혀 모르는, 평범한 주민이었는데.
친한 친구가 굉장히 실력 있는 마법사였다고 한다.
그것도 특이하게 기록 마법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많이 만드는 편이었고.
간단하게 활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마도구를 만들어, 선물해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도구로 짐승도 사냥하고, 한적하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괴물.... 그러니까, 요즘 어비스라고 불리는 그놈들 말하는 거지?」
「예, 그 녀석들이 나타나고.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친구를 잃었습니다. 정작 저는 친구가 강제로 멀리 날려 보낸 덕에 죽지 않았지만....」
지금 주인공이 찾고 있는 그 괴물들에게, 친구를 잃고 복수를 꿈꾸며 싸우는 법을 익혔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도구인 이 장비의 공격에 오러가 담기기 시작했고.
그 무기를 이용해 단련하며 싸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총이라.... 신기하게 생겼어."
활과 비슷하게 멀리서 공격할 수 있는 무기라, 주인공과 포지션이 겹치긴 했지만.
이때는 포지션에 상관없이 높은 화력이 필요했기에, 오히려 더 도움이 많이 되었었다,
정말 세상을 여행하는 듯한 기분도 꽤 시간이 흘러, 주인공은 괴물이 아니라 아카데미의 학생을 발견하는 것에 성공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으로, 딱히 괴물에 대한 흔적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실력도 없이 외진 땅에 떨어졌는데, 최고의 아카데미에 다니는 예비기사라는 오만함과 겹쳐.
결국 이쪽 세상에 오자마자 범죄자들의 놀잇감으로 이용되는 끔찍한 생활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그 학생은 지금 꽤 괜찮아 보이는 차림을 하고 있던 주인공을 무시하지 않고, 바로 과거에 그녀를 무시했던 것을 사과하며 도와달라고 했다.
그 예상대로 주인공은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과거에 대한 부분도 꽤 많이 내려놨기 때문에 흔쾌히 도와주게 되면서.
끔찍한 생활에서 벗어나, 주인공과 아저씨를 보좌하는 짐꾼 정도로 삶의 질이 대폭 좋아진다.
그리고 그녀는 주인공이 사라지고 나서 아카데미에 있었던 일들을 설명해주는데.
놀랍게도 그 괴물들은 어떤 마법사들의 사역마로, 마법사 연합 쪽에서 보낸 병력이었다고 한다.
마법사 연합에서는 우연히 차원을 넘어가는 문을 만들어내는 마도구를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했다고 한다.
다만 우연의 산물이라 재현할 수는 없었고, 결국 그 마도구는 다른 차원에 관해 연구하는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어떤 미친 검술 아카데미 하나가 그걸 훔쳐 갔다는 것이다.
결국 화난 마법사 연합이 공격해온 것이었다고.
「상황 설명을 끝내고, 우리를 인질로 해서 되찾으려고 했던 모양인데. 문제는 마도구가 폭주하면서, 괴물이나 우리나 전부 휘말렸다는 거야.」
「갑자기?」
「기억해? 별이라는 애.」
「응, 당연하지.」
유일하게 주인공에게 좋은 취급을 해주었던 아이.
그리고 주인공이 구하지 못했던, 무력함을 느끼게 해주었던 아이.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별이었다.
「그 녀석이 차원을 여는 마도구야.」
「뭐...?」
별은 사람이 아니라, 마법으로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였다는 것이다.
검술 아카데미는 그런 별이가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몰래 아카데미의 학생으로 숨겼고.
결국은 그 사실을 들켜서 습격받았던 것.
「여기 떨어진 건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괴물들을 이용해서 별이를 찾으려고 하는 중이지.」
「...잡히면, 분명 연구를 위해서 엄청나게 혹사당하겠지?」
「너, 설마....」
「구해야지, 너처럼.」
「.......」
사실 주인공에게 별이가 사람이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유일하게 자신을 긍정해주던 사람이기에, 몇 번이고 그녀에게 구원받았고.
그렇다면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할 때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여전하네」
「뭐?」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마법사들이 힘을 못 쓰도록 괴물을 다 죽이는 것부터 시작인가?」
「그러다 보면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겠지.」
「무식한 방법이네.」
「아저씨한테 배웠거든. 가끔은 무식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그녀는 주인공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더니, 자신도 도움을 받은 처지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했고.
심각한 학대를 버티다가 습득한, 몸 자체에 오러를 넣어서 방어를 굳히는 기술을 보여줬다.
원래는 최대한 숨기면서 비장의 도망 수단으로 남기던 것이었지만,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기사가 되려고 마음먹은 기억이 떠올랐고.
이것을 단련해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에, 아저씨와 주인공에게 오픈한 것이었다.
"와, 몸 자체에 오러를 넣는다고?"
물론 그 말 자체는 특이한 것이 없다.
원래 오러에 해당하는 마력을 이용해 신체를 강화하는 것은 검술에서 흔히 쓰이는 기술이니까.
하지만 만화에서 그려지고 있는 개념은 그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마치 자신의 몸이 검이라도 된다는 듯, 몸 자체에 오러를 씌운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무기 대신 좀 튼튼한 갑옷 같은 것을 입어서, 그것 자체가 무기가 되는 특별한 형태였는데.
그 특성상, 방패와 비슷한 형식으로 활용하기에 제격이었다.
"역시 칼리는 대단하네...."
이렇게 상식을 깨버리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신기한데.
그 안에서 오러에 관한 공부가 굉장히 깊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칼리는 어릴 때부터 검술을 했었다고 했으니까 이렇게 잘 아는 건가?
"아...?"
그제야 나는 뒤늦게 무언가를 깨닫고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까지 완전히 잊고 있었지만, 칼리의 원래 진로는 마법사나 만화가가 아닌 기사였다.
칼리는 이것에 대해 언급되는 것을 꺼려서, 그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지 않지만.
로자리아가 옛날 칼리에 대해서 말해주면서, 설명해줬던 것들은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칼리는 유명한 검술 가문의 사람이고, 그래서 굉장히 열심히 검술을 연습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족한 재능은 칼리의 노력을 완전히 배신했고, 그런 결과에 칼리는 셀 수 없이 절망했다고 한다.
나처럼 짧은 시간을 고민한 것이 아니라, 몇 년 동안 자신의 재능에 절망하면서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지만....
끝까지 그의 노력이 빛을 보는 일은 없었다.
"칼리...."
이 작품이 이렇게 아름답고 완벽했던 것은, 칼리가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던 자신의 아픈 과거를 고통을 이겨내며 끄집어냈기 때문이었던 거다.
다름 아닌 나를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찢어가며 그려낸 만화였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 손 안에 있는 이 만화책이 너무나 따스하게 느껴져서....
나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