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용사의 무기는 암컷타락-6화 (6/157)

〈 6화 〉 5화 ­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 * *

지하 감옥에 도착한 나는 좁은 독방 안에 내동댕이쳐졌다.

“으윽!”

밧줄로 꽁꽁 묶인 채로 내 몸이 바닥을 굴렀다. 이윽고 쇠창살이 닫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이보세요들! 뭔가 오해가 있으신 모양인데! 난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라고!”

차디찬 바닥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내가 밖을 향해 소리쳐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웃음뿐이었다.

“멍청한 놈. 여왕님께서 그따위 하찮고 비열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실 줄 알았던 거냐? 네놈은 이 차가운 감옥에서 굶어죽을 자격조차 없다. 내일 동이 트기 전 너는 처형장에 끌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다!”

근위대장이 내게 소리를 지르고는 독방 안으로 침을 뱉었다.

개새끼, 넌 나중에 내가 꼭 복수하고 만다.

나는 독방 모퉁이로 기어가서는 몸을 기댔다.

대체 여왕은 왜 그렇게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자기 친구를 타락시킨 것이 싫었나?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내가 나자의 젖가슴을 주무를 때부터 제지했을 것이다.

아니면 여왕이 말한, 내 방법이 너무 천박하다는 것이 진심이었나?

내가 마왕을 암컷타락시켰다가는 타락한 마왕이 이 세상 여자를 전부 암컷타락시키려고 할 거라고?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설득력 높은 말이긴 하지만, 그것도 완벽한 설명은 아니다. 여왕 입장에서는 일단 마왕을 막는 것이 급선무일 테니까.

그리고 만약 내가 암컷타락밖에 못 시키는 그런 존재라면 마왕을 복종시킨 다음 나와 마왕의 목을 한꺼번에 베면 될 테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다 할 이유가 안 떠오르는데. 대체 왜 그런 걸까?

그러나 그런 고민은 지하 감옥의 추위 앞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흔한 거적떼기조차 존재하지 않는 독방은 뼈가 시릴 만큼 추웠다. 나는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죽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죽는 건가.

그나마 저번엔 섹스하다 죽기라도 했지, 이번엔 이렇게 아무도 없는 감옥 안에서 얼어 죽는 건가…

‘아니야, 나자가 분명 나를 살리러 올 거야.’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으며 독방 안에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밖에서 약한 진동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쇠창살 앞에서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곧바로 쇠창살을 향해 기어갔다.

이윽고 내 눈앞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여왕 헤리아였다.

“여왕님? 이곳엔 어쩐 일이십니까? 아니, 어떻게 오신 겁니까?”

“쉿, 목소리를 낮추거라.”

여왕이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소곤거렸다.

“너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 이렇게 몰래 내려왔느니라.”

“하실 말씀이라면..?”

“여전히 목소리가 크다.”

여왕은 주위를 두리번거린 다음 품속에 감춰두었던 무언가를 내게 내밀었다.

“받거라.”

“저도 받고 싶습니다만, 온몸이 밧줄에 묶여 있어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왕은 잠시 눈을 감고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내 몸을 옥죄고 있던 밧줄이 순식간에 불타 사라졌다.

신기한 건 불이 하나도 뜨겁지 않았다는 거다. 이것이 마법의 힘?

“자, 어서 받거라. 시간이 없다.”

여왕이 창살 사이로 팔을 뻗어 내게 건네준 것은 다름 아닌 자물쇠따개였다.

“독방 안에 있는 하수도의 자물쇠를 따고 들어가거라. 하수도는 강 쪽으로 이어져 있으니 물길을 따라가면 탈출할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전 자물쇠따개로 자물쇠를 딸 줄 모릅니다.”

“그 정도는 진짜 용사라면 알아서 할 거라고 믿고 있다.”

오호라, 약간 퀘스트 같은 건가? 좋아, 이 지옥 같은 독방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몇 번이고 시도해 주지.

“네가 정녕 이 나라를 구원할 용사라면, 네가 말한 대로 마왕을 복종시키고 오너라.”

“여왕님께서는 저를 믿으십니까?”

“난 네게서 가능성을 보았느니라. 하지만 그대를 왕실에서 용사로 임명했다가는 이 나라의 백성들이 크게 동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너를 이렇게 보내주는 것이다. 가라, 가서 마왕을 복종시키고 오너라.”

“알겠습니다. 마왕을 꼭 암컷타락시키고 돌아와 여왕님께도 암컷의 맛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아도 괜찮았느니라. 그리고 나자가 있는 곳으로는 당분간 가지 말거라. 근위대장이 네가 없어진 걸 알면 그곳부터 수색할 것이니 말이다.”

여왕은 약한 진동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무래도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아니, 공간이동을 쓸 줄 알면 그냥 날 공간이동 시켜주면 되지 왜 이렇게 귀찮게 한담?’

나는 툴툴거리면서도 곧바로 하수도 뚜껑을 향해 달려갔다. 하수도 뚜껑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다.

‘좋아. 이걸 여왕이 준 자물쇠따개로 따면 된다는 거지.’

나는 곧바로 자물쇠따개를 자물쇠 안에 밀어넣고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나 자물쇠는 좀처럼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좀 열려라!”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힘으로 자물쇠 따개를 자물쇠 안에 밀어 넣기를 몇 번, 그렇게 한참을 노력한 결과 자물쇠가 찰칵 소리와 함께 열렸다.

“좋았어!”

나는 곧바로 하수도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지금은 체면 따위보다 사는 게 급선무였기의 하수도의 독한 냄새도 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

“푸하!”

겨우 밖으로 나온 나는 작은 강 한가운데에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어.’

곳곳에서 오물이 쏟아지고 팔뚝만 한 쥐가 돌아다니는 하수도를 탐방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게다가 쥐들은 왜 그렇게 난폭한지, 날 보자마자 날 물려고 하길래 정신없이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용사라는 놈이 암컷타락시킬 줄만 알고 정작 자기 몸 지킬 기술은 하나도 없다니.’

웃음이 나왔다. 이게… 용사?

강가로 헤엄쳐 온 나는 잠시 강가에 옷을 벗고 누웠다. 꽤 썰렁한 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말려줬다.

그렇게 얼마나 누워 있었을까.

“꺄아악!!!”

누군가가 화들짝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덩달아 화들짝 놀란 나는 상체를 일으켜 주위를 둘러봤다.

한 10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한 여자가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서 있었다.

나는 멋쩍게 인사를 건네려다 지금 내가 옷을 하나도 입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째 세 여자와 첫 만남이 떠오르는구먼.

“꺄악! 변태야!”

여자는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아뇨, 저는 변태가 아니라 용ㅅ…”

나를 용사라고 소개하려던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이 크게 동요할 것이다…’

여왕은 내가 용사인 것을 숨기길 바라는 눈치였다. 게다가 여기서 용사라고 말했다가는 성난 근위대장이 병사를 붙여 추격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

“경비병!!!”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는 사이 여자는 경비병을 부르며 도망쳤다. 이윽고 경비병 두 명이 내 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잠, 잠, 잠깐만!”

나는 황급히 옷가지를 주워들고는 경비병을 피해 도망쳤다.

“거기 서라! 이 변태 자식!”

경비병이 무기를 휘두르며 맹렬하게 나를 쫓아왔다. 다급해진 나는 강 속으로 뛰어들어 강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아무리 경장갑이라고는 해도 전투복은 전투복, 수영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 예상이 맞았는지 헤엄을 치기 시작한 순간부터 경비병들은 나를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다.

평소에 여자들 꼬시려고 운동을 열심히 해 놓은 덕분에 겨우 도망치긴 했지만, 내 옷은 다시 젖었고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다.

일단 시장을 찾아가 보기로 한 나는 축축한 옷을 입고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도시 중심가를 향해 걸었다.

도시의 모습은 전형적인 중세 도시의 모습이었다. 덕분에 시장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시장 거리에 들어선 나는 곧바로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웬 젖은 옷을 입은 사람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니면 수상하게 볼 법도 한데 사람들은 다들 자기 일을 하느라 내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고 있으니 어디선가 향기로운 빵 냄새가 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빵 냄새를 따라 걸었다.

모퉁이를 돌고 나니 갓 구워진 노릇노릇한 빵이 잔뜩 진열돼 있는 빵집이 나왔다.

“어서 옵쇼!”

사람 좋아 보이는 빵집 주인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무엇을 드릴까요?”

“여기 제일 맛있는 빵이 뭔가요?”

“아, 오늘 구운 이 맘모스 빵이 아주 일품입니다. 한 번 드셔 보시겠습니까?”

나는 주저하지 않고 맘모스 빵 조각을 입에 넣었다.

“음~ 맛있다!”

“그렇죠? 이 빵으로 말할 것 같으면…”

빵집 주인이 빵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는 사이 나는 맘모스 빵 한 덩이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자, 이제 돈을 주십시오.”

빵집 주인이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자연스럽게 주머니를 뒤지던 나는 이곳이 내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계라는 것을 떠올렸다.

이곳으로 올 때 알몸으로 왔는데 내가 지갑을 가지고 있었을 리도 없었거니와, 있었다 한들 이곳에서 쓸 수 있는 돈일 리가 없었다.

“저… 돈이 없는데…”

그러자 상점 주인의 사람 좋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뭐야, 돈도 없이 빵을 먹었단 말이야?”

“죄송하지만 돈이 없는 줄 몰랐…”

“그게 말이 돼!!!”

순식간에 빵집 주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와,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금방 변하지? 사이코패스인가?

뭐가 됐든 내가 잘못한 건 맞았기에 나는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 그만… 한 번만 봐주세요.”

“이 거리에 배고픈 사람이 한둘인 줄 알아? 그렇게 다 봐주다간 내 가게가 거덜 나고 말 거라고! 에잉, 재수가 없으려니. 당장 내 가게에서 꺼져! 무전취식으로 경비병한테 신고하기 전에!”

주인이 당장이라도 내 엉덩이를 걷어찰 기세로 말했다. 그 기세에 눌린 나는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것 참 문제다. 사람이 밥도 먹고 옷도 갈아입고, 어디선가 잠도 자야 하는데 돈이 한 푼도 없으니 할 수가 없다.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더니, 그게 어떤 느낌인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았다.

게다가 딱히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여왕은 내게 어느 정도 우호적이라지만 여왕에게 도움을 청하려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간 성난 근위대장에게 목이 잘릴 것이 뻔했고,

나자가 있는 곳으로 가자니 그것도 위험했다. 여왕이 직접 주의를 줄 정도였으니.

결국 내게 남은 선택지라고 해 봤자 골목에서 새우잠을 자며 구걸을 하는 거지가 되는 것밖에 없었다.

‘이왕 자물쇠따개를 줄 거면 돈도 좀 챙겨주든가…’

그렇게 생각하며 울적하게 거리를 걷고 있으니 어디선가 익숙한 향기가 났다.

진짜 코로 느껴지는 향기가 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곳은 나와 아주 친숙한 곳이라는 걸.

나는 거침없이 후미진 골목에 있는 간판도 없는 가게의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것은 내 예상대로…

성인용품점이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