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42화 알몸으로 개처럼 기어 다니며 복종훈련
* * *
사실 복종 훈련을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암컷각인이 새겨진 이상 내 말에 복종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복종 훈련을 시키는 이유? 그야 내게 거짓말을 한 게 괘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재밌잖아!
“주인님, 제발요. 다시는 거짓말 안 할게요. 제발…”
엘리자베스가 손을 모으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아, 이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엘리자베스가 다른 사람들에게 치부를 보이며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이라니, 상상만 해도 즐겁다.
조금 기다렸다가 사람이 있을 때 복도로 나올 걸 그랬나? 아니면 복도를 돌아다니며 방마다 노크를 하고 다녀 볼까?
“흑…”
뒤에서 엘리자베스가 눈물을 흘리는 소리가 났다. 앙칼지기만 한 모험가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구먼.
엘리자베스는 한시라도 빨리 내 방에 도착하고 싶어 하는 모양이었지만, 기어 다니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나는 엘리자베스와 걷는 속도를 맞추며 여유롭게 복도를 걸었다. 마치 개를 산책시키는 기분이군.
그렇게 걷고 있으니 복도 저 끝에 두 남자가 나타났다. 척 보기에도 술에 잔뜩 취해 보이는 두 남자는 우리를 향해 비틀비틀 걸어왔다.
“우읏…”
엘리자베스는 본능적으로 내 뒤에 숨으려 했다. 나는 그런 엘리자베스의 엉덩이를 한 대 찰싹 때려줬다.
“숨으면 벌받는 의미가 없잖아!”
“하, 하지만…”
“자꾸 그러면 복도에 이대로 남겨놓고 가 버릴 거야.”
그 사이 가까워진 두 남자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어렴풋이 눈치챈 모양이었다.
“야, 내가 진짜 뒤지게 취하긴 했나 보다. 웬 발가벗은 여자가 보이는 것 같아.”
“지랄 좀 하지 마… 어라?”
두 남자는 비틀거리면서도 나와 엘리자베스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앞을 향해 걸었고, 엘리자베스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뒤뚱뒤뚱 기어 왔다.
“저기요.”
두 남자 중 한 명이 내게 말을 걸어왔고, 나머지 한 명은 흘끔흘끔 엘리자베스를 쳐다보며 엘리자베스의 몸매를 감상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그… 당신 눈에도 보여요? 웬 예쁜 금발 여자가 발가벗고 당신 뒤를 졸졸졸 따라오는 것 같은데?”
“아, 제 여자친구예요.”
나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내 말을 들은 남자는 깜짝 놀라 말했다.
“여자친구라고요!? 지금 여자친구를 발가벗긴 채로 뭐 하는 거예요?”
“바람을 피워서, 혼을 좀 내고 있죠.”
“뭐!!! 바람!!!”
갑자기 엘리자베스를 쳐다보던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남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지자 옆에 있던 남자가 그를 말렸다.
“야, 왜 갑자기 그래.”
“놔! 너도 알잖아, 내 여자친구 녀석도 떠돌이랑 눈 맞아서 나 버리고 도망간 거!”
남자는 당장이라도 엘리자베스를 걷어찰 기세였다. 그동안 엘리자베스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아무 말도 없었다.
“바람난 년들은 싹 다 머리채를 뽑아버려야 돼. 씨부랄 것들, 정조도 없는 걸레 같은 새끼들…”
남자는 엘리자베스를 향해 갖가지 모욕적인 말을 쏟아냈다. 그러고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계속 엘리자베스를 걷어차려고 했다.
물론 나는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야, 너 너무 취한 것 같은데. 빨리 들어가자.”
“에잇, 버러지 같은 년… 퉤!”
남자는 엘리자베스의 등짝에다 침을 뱉고는 씩씩대며 걸어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엘리자베스를 내려다봤다.
“흐윽… 흑…”
엘리자베스는 작게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엘리자베스의 등에 묻어 있는 남자의 침을 닦아줬다.
“주인님…”
엘리자베스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람이 궁지에 몰렸을 때는 작은 친절도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내가 노리는 것이 딱 그거였다.
“미안, 엘리자베스. 내가 말렸어야 하는데.”
“아니에요…”
“자, 그럼 다시 가자.”
내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하자 엘리자베스는 군말 없이 나를 따라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한 여자가 복도에 나타났다.
우리 쪽으로 걸어오던 여자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보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아마 머릿속으로는 당장 경비병을 불러야 하나 생각하고 있겠지.
물론 경비병을 불러도 나를 잡아갈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태연하게 앞으로 걸었다.
내 당당한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 여자는 조심스럽게 내 앞으로 와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네? 뭐가요?”
“뭐가요가 아니라… 지금 사람들 지나다니는 곳에서 둘이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아, 별거 아니에요. 제 여자친구가 조금 변태적인 걸 좋아해서 같이 놀아주고 있죠.”
여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나와 엘리자베스를 번갈아 쳐다봤다.
“알몸으로 복도를 돌아다니는 걸, 그것도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도 아니라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걸 좋아한다고요? 그게 말이 돼요?”
“저도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죠. 하지만 제 여자친구가 마조히스트인 걸 어떡하겠어요?”
“저기요, 이 분 말씀이 진짜 맞아요?”
여자가 엘리자베스를 향해 물었다. 나는 엘리자베스를 향해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말해.’
그러자 엘리자베스의 배가 살짝 분홍색으로 빛났다. 엘리자베스가 엎드려 있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만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살짝.
“네…”
“어머머, 망측해라. 어떻게 그런 걸 좋아하시는 거예요?”
여자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엘리자베스를 보고 말했다. 나는 슬며시 엘리자베스와 여자의 사이로 끼어들며 말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 수도 있죠 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사람이…”
“아무튼 저흰 계속하겠습니다. 볼 거 다 보셨으면 지나가 주세요.”
여자는 멍하니 엘리자베스를 쳐다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여자의 모습이 멀어지는 가운데 여자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뭔… 하여간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여자의 모습이 사라지자 나는 살짝 쪼그려앉아 엘리자베스의 볼을 어루만져 줬다.
“대답 잘 했어, 엘리자베스.”
“네, 주인님.”
“이건 상이야.”
나는 엘리자베스의 턱을 잡고 고개를 올린 뒤 엘리자베스와 입을 맞췄다. 엘리자베스는 눈을 감고 나와의 입맞춤에 집중했다.
잠시 입을 맞춰 준 나는 다시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내 방을 향해 걸었다.
어떻게 할까, 이 정도면 엘리자베스도 충분히 복종하게 된 것 같은데 빨리 내 방으로 데리고 갈까?
사실 엘리자베스가 불쌍한 것보다는 엘리자베스가 모욕을 받는 모습이 너무 꼴려서 지금 당장이라도 덮치고 싶었다.
괜히 복도에서 섹스하다 걸리면 일이 복잡해질 것 같아서 참고 있는 거지.
“엘리자베스.”
“네?”
“조금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겠어?”
“노력해 볼게요.”
내 방에 거의 다다를 때까지 몇 명의 손님들이 더 우리를 지나쳐갔다. 대부분은 자기가 술에 취해 헛것을 보고 있나 하는 반응이었다.
물론 그때마다 나는 태연하게 엘리자베스와 나의 관계를 설명했다. 물론 주종 관계가 아니라 연인 관계로 잘 포장해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젊은 여자가 정신이 나갔군. 딱하기도 해라…”
엘리자베스를 동정하는 시선부터,
“저도 그런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있죠.”
내게 동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기, 혹시 이 여자 대 달라고 하면 안 대주나요? 제 방으로 오면 무료로 따먹어드릴 수 있는데…”
되도 않는 수작을 부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물론 그따위 짓을 그냥 넘어갈 내가 아니었다.
생글생글 웃고 있던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감추고, 남자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한다.
“야, 너 자지 크냐?”
“아니, 왜 갑자기 반말을 하고 그러세요?”
“자지 크냐고.”
“제 자지 크기가 무슨 상관인데요?”
“내 여자친구는 내 자지 말고는 만족할 수 없거든.”
나는 바지를 내려 내 고추를 보여주며 말했다. 남자는 말도 안 되는 내 자지에 크기에 놀란 모양이었다.
“히익..!”
“너도 자지 한 번 까 보든가. 너 따위 작은 좆으로 내 여자친구 만족시켜 줄 수 있겠어?”
“죄, 죄송합니다!”
남자는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나는 바지를 올리며 엘리자베스가 들을 수 있을 만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딜 고추도 작은 새끼가 남의 여자를 건드리려고 하고 있어?”
엘리자베스는 내 암컷노예다. 다른 누구도 내 허락 없이 내 암컷 노예에게 손을 댈 수는 없다.
그 모습이 엘리자베스에게는 나름 감동적이게 보였나 보다. 덕분에 나를 향한 엘리자베스의 복종심은 한층 더 커졌다.
어느 정도 복종 훈련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생각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엘리자베스의 뒤에 서서 엘리자베스가 내 방을 향해 기어가는 모습을 감상했다.
아,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당장이라도 저 뻐끔거리는 보짓살에다가 내 자지를 처박고 싶다.
엘리자베스에게 이제 두 발로 일어나 걸어가도 괜찮다고 말하려는 순간, 내 옆에 있던 문이 열렸다.
“어!?”
“에!?”
깜짝 놀랐다. 방 밖으로 나온 사람이 다름 아닌 이샤였으니까.
여전히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관에서까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을만한 사람이 이샤 말고는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목소리가 딱 이샤의 목소리였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샤는 떠돌이 상인이니까 당연히 집이 아니라 여관에서 묵을 텐데.
그래도 이 넓은 도시에 여관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이렇게 만난단 말이냐..! 그것도 이런 상황에서..!
이샤는 나와 엘리자베스를 번갈아 쳐다봤다.
“저기… 이게… 무슨..?”
이샤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을 더듬거렸다. 나는 아까 그랬다시피 태연하게 말을 꺼냈다.
“아, 제 여자친…”
잠깐, 이렇게 말해도 되나?
이샤는 지금 우리 파티의 일원이 아니다. 그리고 난 이샤를 어떻게든 따먹어야 한다. 그래야 암컷타락을 시켜서 우리 파티에 데려올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엘리자베스를 내 여자친구라고 소개한다? 뭔가 일이 꼬일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엘리자베스를 모르는 척할 수도 없었다. 내가 여기서 엘리자베스를 모른 척해 버리면 여태 쌓아 놓은 엘리자베스의 자발적인 복종심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기껏 쌓아놓은 복종심을 수포로 되돌려 버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빨리 자기를 여자친구라고 말해 달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고 있고, 이샤는 지금 당장 설명을 하지 않으면 소리를 지를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젠장, 외통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