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용사의 무기는 암컷타락-74화 (74/157)

〈 74화 〉 73화 ­ 호위무사 월영 (1)

* * *

“어디 먼저 갈까?”

“일단 뭐 좀 먹죠. 아까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왔더니 배가 고프네요.”

“그러자.”

“음식점이 많은 쪽은 이쪽입니다.”

우리의 대화를 들은 월영이 길을 안내했다. 월영을 따라 도착한 거리에는 향긋한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월영, 추천할 만한 음식점 있어?”

“저는 영주님의 호위를 맡은 이후로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그래? 그거 아쉽게 됐네. 그럼 이 기회에 우리랑 같이 음식점에서 먹는 거 어때?”

“원하신다면.”

나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한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가게는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지만, 가게 안에서 흘러나오는 고기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적당히 노릇노릇하게 고기를 구웠을 때 나는 그 풍부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다들, 여기 어떤 것 같아?”

“저는 좋아요!”

“저도요!”

우리는 곧바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서자 한층 더 강해진 고기 냄새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재빨리 메뉴판을 훑고 고기를 주문한 뒤, 나는 월영과 이야기를 나눴다.

“월영, 진짜 말 편하게 해도 괜찮아? 나만 이렇게 말하기 좀 그런데.”

“저는 이제 갓 성인이 된 나이입니다. 괘념치 마시길.”

“그래? 갓 성인이 됐는데 영주의 호위무사를 맡았다고?”

“저는 어려서부터 검술을 연마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영주님의 눈에 띄어 성에서 검술 연습을 받았지요. 덕분에 성인이 되기 전부터 영주님의 호위무사가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호오…”

나는 턱을 만지며 다시 월영을 찬찬히 훑어봤다. 앳돼 보인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제 막 성인이 됐을 줄이야.

“…그렇게 빤히 쳐다보시면 부끄럽습니다.”

“월영은 좋아하는 사람 없어?”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월영이 당황하기를 내심 바랐지만 월영은 차분하게 답했다.

“검을 쓴다고 해서 마음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 누군데?”

“그것까진 비밀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우리 파티원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아 왜~ 힌트라도 줘! 힌트!”

“맞아요! 조금만 알려주시는 건 상관없잖아요? 어차피 저희가 이 도시 사람인 것도 아니고요~”

우리의 성화에 못 이긴 월영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분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고결하십니다. 마치 달빛 아래 꽃과 같은 사람입니다…”

죽어도 누군지는 밝히기 싫다는 말이군. 하지만 그럴수록 더 궁금해지는데?

내가 조금 더 화끈한 질문을 던지려던 찰나, 음식이 나왔다.

“맛있게 드세요~”

“우와…”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푸짐한 고기가 커다란 그릇에 담겨 나왔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것 같은 커다란 고기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크기만 커다란 것도 아니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도, 적당히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것도 아주 일품이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우리 파티원들은 곧바로 고기를 썰어 먹으려 했다. 그러자 월영이 잠시 기다리라는 듯 우리를 멈춰세웠다.

“왜 그래, 월영?”

“혹시라도 독이 들었을지 모릅니다. 제가 먼저 먹어 보겠습니다.”

“그냥 맛있는 거 먼저 먹고 싶은 거 아냐?”

내가 웃으며 농담을 던져 봤지만 월영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 괜히 내가 머쓱해질 정도였다.

월영은 고기를 먼저 맛보고 자기 몸 상태를 확인한 뒤 우리에게 먹어도 좋다고 말했다.

나는 고기를 신나게 썰어 먹었다. 입안에 고기가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이 진한 향기, 그리고 씹자마자 나오는 이 진한 육즙..!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렇게 우리는 배가 터지도록 맛있는 고기를 먹었다. 하지만 월영은 우리의 음식에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았다.

“왜 그래, 월영? 너도 같이 먹자!”

“맞아요, 같이 먹어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임무에 집중하기 위한 겁니다. 부디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월영은 되게 칼같은 사람이구나.

“근데 월영, 있잖아.”

나는 뼈다귀에 붙은 고기를 뜯어먹으며 월영에게 물었다.

“만약에 이 음식에 독이 있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이 음식에 독이 있을까 봐 먼저 음식 맛을 봤잖아? 근데 만약 진짜 독이 있었으면? 그럼 월영만 애꿎은 죽음을 당하는 거 아냐?”

“저는 당신들을 호위해야 한다는 임무를 받았고, 그 임무를 수행할 뿐입니다. 임무 중에 죽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조금 무섭네…”

솔직히 월영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기로 했다. 괜히 더 꼬치꼬치 캐물어서 좋을 게 없을 것 같았다.

만찬을 즐긴 뒤 우리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야, 그렇게 배 터지게 먹었는데 돈이 아직 이렇게나 남았다고? 이거 언제 다 쓰지?”

“저, 재료 상인에게 빨리 가 보고 싶어요! 이 도시에는 어떤 재료가 있을지 너무너무 궁금해요!”

마치 아이처럼 이샤가 나를 보챘다.

“그럼 재료를 구하러 가 보죠. 그런데 이샤.”

“네? 왜요?”

“그… 좋은 재료를 쓰면 포션의 부작용이 좀 줄어드나요?”

“아~뇨? 그럴 리가 있겠어요?”

이샤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이야, 그건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인데…

“그럼 부작용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아까 진짜 화장실에서 죽을 뻔했다고요.”

“원래 좋은 게 있으면 나쁜 것도 있는 법이랍니다~”

우리가 화기애애하게 떠들며 길을 걸어가는 와중에도 월영은 몇 걸음 뒤에서 묵묵히 우리를 따라오기만 했다.

“어디 보자… 재료 상인이…”

이샤는 상점가를 둘러보다 살짝 한적한 골목길로 우리를 이끌었다.

“여기가 가장 큰 재료상이죠? 맞죠?”

“허허, 잘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말대로 저희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재료상입니다! 뭐든 말씀만 하십쇼!”

이샤는 필요한 재료를 사러 재료상 안으로 들어가고, 엘리자베스와 릴리는 이샤를 따라 재료들을 구경하러 갔다.

덩그러니 남겨진 월영과 나는 어색한 침묵을 이어갔다.

“저기…”

침묵이 싫었던 내가 월영에게 말을 붙이려던 순간,

월영은 나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

“월, 월영?”

놀란 내가 뒷걸음질을 쳐 봤지만 월영이 내게 다가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고추칼리버를 꺼낼 만한 시간도 없었다.

젠장, 역시 바지를 벗고 다녔어야 하나..!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월영을 너무 믿어버렸어. 월영이 조직의 일원일 수도 있다고 당연히 예상했어야 하는데…

“하아앗!”

월영이 칼을 휘둘렀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그 순간,

“크어억!”

월영의 칼이 향한 곳은 내가 아니라 내 등 뒤에 있는 남자였다. 멍하니 있는 나를 놔두고 내 등 뒤에 있던 남자가 쓰러졌다.

“어, 어?”

“조심하십시오, 성기 님. 더 옵니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곧바로 자지봉을 꺼내들고 맞서 싸울 준비를 했다.

하지만 내 그런 준비가 무색할 정도로 월영은 순식간에 주위에 있던 남자들을 제압했다.

칼을 들고 춤을 추듯이 사람들 사이를 날아다니면서도 치명상은 피하도록 검을 조절하는 월영의 솜씨는 척 보기에도 대단했다.

월영이 칼을 한 번 휘두르면 두 사람에서 세 사람이 쓰러졌고, 누군가 월영에게 무기를 휘두를 때면 월영은 보지도 않은 채 가뿐히 무기를 피했다.

릴리에게도 꿇리지 않을 법한 속도였고, 엘리자베스는 가뿐히 압도하는 검술 실력이었다.

결국 내가 자지봉을 한 번 휘두르기도 전에 월영은 주위를 깔끔히 정리했다.

“무슨 일 있어요!?”

재료상 안에 있던 세 사람이 우당탕탕 달려 나왔다.

“어… 난 멀쩡해…”

나는 살짝 넋이 나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만큼 월영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잠깐 본 것만으로도 실력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감히..!”

릴리가 손을 풀었다. 아무래도 쓰러진 남자들을 한 대씩 쥐어박아 주려는 모양이었다. 물론 릴리 입장에서는 쥐어박는 거지만, 저 사람들 죽을지도 모르겠는데?

하지만 릴리는 월영에게 제지당했다.

“더 이상 하실 필요 없습니다.”

“자기는 칼로 신나게 썰어제꼈으면서?”

“일부러 치명상은 입히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경비병들이 압송해 갈 것입니다.”

월영은 가지고 있던 손수건으로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 짧은 시간에 이 사람들을 다 제압한 거예요?”

엘리자베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월영에게 물었다. 하긴, 같은 검을 쓰는 엘리자베스로서는 실력의 차이가 더 절실히 느껴지겠지.

“대단한 건 아닙니다.”

“어떻게 대단한 게 아니에요! 정말… 정말 부러워요…”

“원하신다면, 검술을 조금 가르쳐 드릴 수도 있습니다.”

“정말요!?”

엘리자베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마치 좋은 재료가 있다는 말을 들은 이샤의 눈빛을 보는 것 같았다.

“좋네요, 엘리자베스의 실력도 올릴 겸.”

“얼마든지 맡겨주십시오.”

우리는 이샤가 필요한 재료를 다 사기를 기다린 뒤 도시에 있는 한적한 공터로 갔다.

“엘리자베스 님이라고 하셨습니까? 일단 검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네.”

엘리자베스와 월영이 동시에 검을 뽑았다. 나는 흥미진진하게 두 사람의 대련을 구경하고 있었고, 이샤는 포션을 만들고, 릴리는 옆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대로 저를 공격해 보시겠습니까?”

“하지만 진검으로 하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엘리자베스가 살짝 머뭇거렸다.

“괜찮습니다. 제가 다칠 일은 없을 겁니다.”

은근히 자기를 무시하는 말투에 엘리자베스도 살짝 기분이 상했는지 엘리자베스는 그대로 진검을 들고 월영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실력은 너무나도 차이 났다.

엘리자베스가 검을 몇 번 휘두르기도 전에 월영은 엘리자베스를 완전히 제압했다. 마음만 먹었으면 엘리자베스를 아주 가지고 놀 수 있었을 정도?

“으윽… 분해라…”

엘리자베스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월영은 검을 집어넣고 엘리자베스의 자세를 지도해 줬다.

“여기서는 이렇게, 발을 이렇게 짚고 휘두르셔야 합니다. 칼을 잡을 때는 조금 더…”

나는 흐뭇하게 그 광경을 지켜봤다. 엘리자베스의 실력이 성장하는 건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그만큼 우리 파티가 강해지는 거니까.

아니, 이렇게 된 거 나도 월영에게 검술 지도를 요청해 볼까? 나도 검술을 배워 놔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은데.

월영과 엘리자베스의 개인 교습은 몇십 분 동안 계속됐다. 결국 지친 엘리자베스가 나가떨어진 뒤, 나는 월영에게 다가갔다.

“월영, 아직 체력 괜찮아?”

“저는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한테도 검술을 조금 가르쳐 줬으면 좋겠어서.”

“검술 말입니까? 하지만 성기 님의 무기는 검보다는 봉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만…”

“아니, 나도 검이 있어.”

나는 그대로 월영의 앞에서 바지를 내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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