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 80화 외설적인 예술의 거리
* * *
“불가능하다고? 왜?”
“저는 성기 님의 파티원이 아닙니다. 영주님은 성기 님을 호위하라고 하셨고, 저는 그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잠깐 따로 행동한다고 해서 명령 불복종은 아니잖아?”
“만약 따로 행동하는 동안 성기 님이 잘못되실 경우, 그 책임은 오롯이 제가 지게 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허어…”
월영은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월영 양도 쉬어야 되지 않겠어요?”
“맞아요. 게다가 성기 씨 옆에는 저희도 있다고요. 저희가 못 미더우신 거예요?”
릴리와 엘리자베스도 거들어 봤지만 월영은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월영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일단은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나는 파티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 햇살이 쨍쨍한 가운데 우리는 음식점으로 갔다.
여느 때와 같이 월영이 독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음식을 먹으며 나는 월영을 흘끔흘끔 쳐다봤다.
월영이 저러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월영은 영주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고, 그러기 위해선 이번 임무에 실패해서는 안 된다.
월영을 계속 데리고 다니자니 이샤와 마음 놓고 섹스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월영을 아예 떼어놓자니 월영을 내 것으로 만든다는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식사를 마친 뒤 거리를 걷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은 이샤와 월영 생각으로 가득했다. 아무리 저울질을 해 봐도 둘 중 하나를 포기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성기 님?”
“왜?”
“무엇을 하실 계획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수사를 계속해야지.”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음…”
사실 정해진 건 없었다. 대충 고민하던 나는 월영에게 물었다.
“여기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없어?”
“예술가들의 거리가 있긴 합니다만…”
“그럼 그곳으로 가 보자.”
나는 월영의 안내를 받아 예술가들의 거리로 향했다.
예술가들의 거리는 입구부터 화려했다. 각종 조각상과 미술품들, 도자기와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까지.
“이런 곳엔 왜 왔어요?”
이샤가 내게 물었다.
“이샤도 들었잖아요? 녀석들이 예술이란 말을 했다는 걸. 그래서 예술가들의 거리로 와 본 거예요.”
“그 사람들이 이런 곳에서 대놓고 자기 예술을 설파하고 있겠어요?”
“혹시 모르는 거죠.”
나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각종 예술품들을 관람했다. 마치 미술관에 온 느낌이랄까.
그렇게 걷고 있으니 월영이 주춤거렸다.
“왜 그래, 월영?”
“여기서 더 들어가면… 조금 외설스러운 예술품들이 전시된 거리가 있습니다.”
뭐라고? 그럼 당장 가 봐야지!
하지만 월영은 그런 곳에 들어가는 게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월영 양은 갓 성인이 돼서, 그런 거에 저항이 없는 모양이네요.”
옆에서 릴리가 키득거렸다. 그 말을 들은 월영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야, 정 불편하면 안 따라와도 돼.”
“아닙니다. 잠시라도 성기 님과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저런 위험천만한 곳에서는 더더욱.”
“그래? 그럼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거리 한복판에 쳐진 천막을 걷어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 뭐라고 천막까지 쳐 놨대, 무슨 창녀촌 입구 들어가는 기분이네.
하지만 거리에 들어선 나는 곧바로 천막을 쳐 놓은 이유를 이해했다.
꽃이나 하늘을 담던 액자들은 어느새 여자의 벗은 몸과 남녀의 몸정을 담고 있었고, 조각상들은 살아 움직이듯 사랑을 나눴다.
성기를 닮게 조각한 도자기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고,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는 노랫소리는 무척이나 천박한 말을 입에 담고 있었다.
“여기 정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런 천국이 있었다니, 여기야말로 내가 원하던 곳이다.
“어이, 형씨! 여긴 무슨 일로 오셨나?”
넉살 좋게 생긴 아저씨 하나가 내게 손을 흔들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꼴에 안내원까지 있는 모양이었다.
“구경하러 왔죠.”
“그래? 형씨가 관심 있는 건 뭐야? 조각상? 그림? 그것도 아니면 혹시 성인용품을 보러 오셨나?”
“성인용품, 그거 좋네요. 괜찮은 가게가 있나요?”
“내 특별히 안내하지.”
안내원은 우리를 성인용품점이 즐비한 곳으로 안내했다. 성인용품점이 눈에 띄자마자 릴리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와! 이런 곳은 처음 봐요!”
“릴리가 떠돌아다니던 곳 중에 이런 곳은 없었어?”
“네. 웬만해선 성인용품은 터부시돼서 뒷골목에서 장사를 하거든요. 이렇게 합법적으로 많이 있는 곳은 처음 봐요.”
“하하, 아가씨도 이런 곳에 자주 와 봤나 보지? 우리 도시는 성에 개방돼 있는 편이라고! 마음껏 둘러보게나.”
나는 파티원들을 데리고 성인용품점으로 들어갔다. 매대에 잔뜩 전시된 딜도와 자위기구들이 우리를 반겼다.
“어… 음…”
이샤와 월영은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했다. 그에 반해 릴리는 자연스레 딜도의 상태와 품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음… 이건 마감이 잘 안됐고, 이건 살짝 작은데…”
릴리는 마치 자기가 쓸 딜도를 고르듯이 꼼꼼히 딜도들을 살폈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딜도를 찾았는지 릴리는 딜도 하나를 들고 내게 왔다.
“주인님, 이거 사 주세요.”
“왜? 릴리 네가 쓰게?”
“아뇨, 이건…”
릴리는 엘리자베스를 슥 쳐다봤다.
“엘리자베스 줄 선물이에요.”
“선물?”
“엘리자베스랑 아직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화해의 선물이라도 하나 줄까 했죠.”
“기특한 생각을 다 하네. 근데 릴리 너는 딜도 깎을 줄 알잖아. 네가 직접 만든 딜도를 주는 게 더 좋지 않겠어?”
“오,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딜도 재료가 있는지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릴리가 매점 직원과 이야기하러 간 사이 나는 엘리자베스를 슬쩍 봤다. 엘리자베스는 딜도를 처음 보지만 신기하다는 듯이 매대를 둘러보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네?”
“마음에 드는 거 있어?”
“아뇨, 그냥 신기해서 둘러보고 있어요.”
“딜도 써 본 적 없어?”
“음… 뭐 비슷한 건 써 본 적 있긴 하지만, 딜도를 써 본 적은 없죠.”
“하나 사 줄까?”
“딜도보다 좋은 주인님이 있는데 굳이요?”
엘리자베스가 내 팔을 꼭 붙들며 말했다. 그래, 그래야 내 암컷노예답지.
“저… 여기서 빨리 나가면 안 될까요?”
이샤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어젯밤에 내 자지 가지고 자위하기까지 했으면서, 이런 거엔 내성이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릴리만 오면 바로 나가죠.”
오래지 않아 릴리는 나무 도막 하나를 들고 룰루랄라 걸어왔다. 성인용품점을 나온 뒤 나는 릴리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릴리, 너도 거리 예술가들처럼 여기서 나무 도막을 깎아 보는 게 어때?”
“여기서요?”
“그래. 네 실력을 사람들에게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잖아?”
“뭐, 한번 해 볼까요.”
릴리는 손을 풀더니 거리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나무 도막에 마력을 집중했다. 자연스럽게 주위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의 시선이 릴리에게 끌렸다.
릴리의 손에서 나무 도막은 딜도로 바뀌어갔다. 저절로 깎이기도 하고, 커졌다 작아졌다도 하는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무척 신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도막은 멋진 딜도로 재탄생했다.
“이야! 아가씨 솜씨가 대단하군!”
“이렇게 빨리 고급진 딜도를 만들어내다니!”
“그 딜도 얼마죠? 제가 사고 싶은데.”
곳곳에서 칭찬이 쏟아졌다. 릴리는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릴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줬다.
“잘했어, 릴리.”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건 오랜만이라 조금 머쓱하네요.”
그렇게 시시덕거리고 있으니 한 여자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아까 그 솜씨는 잘 봤어요.”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그 배에 있는 문신은 누가 새겨 준 거죠?”
그러고 보니 릴리가 비키니 아머를 입고 있는 탓에 배에 있는 암컷각인이 다 드러나 보이는구나.
“어느 이름 없는 문신사가 새겼겠죠, 뭐.”
“아, 당신이 새긴 게 아닌가요? 그럼 혹시 노예 각인..?”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여자는 우리를 데리고 으슥한 거리로 들어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사람이 누울 만한 침대 몇 개가 보였다.
그중 한 침대에는 한 여자가 웃옷을 벗은 채로 누워 있었고, 누군가가 여자의 가슴에 대고 정밀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여긴 뭐 하는 데죠?”
“문신소예요.”
여자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노예 각인을 지우고 싶지 않으신가요? 저희 가게 전문이에요.”
릴리의 암컷각인이 노예 각인인 줄 알고 지워주려 하는 거였구나.
하지만 릴리의 배에 새겨진 저건 내 마력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암컷각인이다.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 분명할뿐더러, 지워서도 안 된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쉽게 지워지진 않을 거예요.”
“왜죠?”
“다른 가게에서도 시도해 봤거든요.”
나는 대충 둘러대고 가게를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여자는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다른 가게는 어땠을지 몰라도, 저희는 전문가가 따로 있어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그 각인을 완벽하게 지워 드릴게요.”
“마력이 깃들어 있어도요?”
“마력이 깃든 각인은 조금 어렵긴 하지만 불가능하진 않아요. 맡겨만 주시라니까요?”
“그래도 관심 없어요.”
“그 이유를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저는…”
더 이상 여자와 입씨름을 하기 싫었던 나는 생각나는 말을 대충 뱉었다.
“저는 지우는 것보단 새기는 데 더 관심이 있거든요.”
그러자 여자의 표정이 의미심장해졌다. 여자는 살짝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역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알긴 뭘 알았다는 거야?
“이쪽으로 따라오십시오.”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내 직감이 나를 멈춰세웠다.
뭔진 모르겠지만 이 여자는 지금 내게 뒷거래를 시도하고 있다. 말투가 갑자기 바뀐 것과 나를 어딘가로 끌고 가려는 것이 그 증거다.
과연 이런 외설적인 거리에서 뒷거래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저기요.”
“왜 그러십니까?”
“그…”
파티원들을 데리고 가도 되냐는 말을 꺼내려던 나는 잠시 주춤했다. 지금 어리숙한 티를 내면 일이 깨질지도 모른다.
“이 암컷년들도 데리고 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내 말을 들은 월영과 이샤는 경악했다. 월영이 바로 내게 따지려는 순간, 나는 고개를 돌려 쉿 소리를 냈다.
“지금은 장단에 맞춰.”
나는 파티원들과 함께 여자를 따라갔다. 으슥한 뒷골목으로 굽이굽이 들어가던 여자는 어떤 입구 앞에서 멈춰 섰다.
“안으로 모시기 전에...”
여자는 우리에게 가면을 나눠줬다. 아마 고객들의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가면을 쓰나 보지?
잘 된 일이다. 혹시라도 그놈들이 나나 월영의 얼굴을 알아보면 곤란했을 테니까.
일이 이렇게 잘 풀리다니, 뭔가 수상할 정도지만 일단 여기까지 온 이상 별 수 없나.
나는 가면을 쓰고 안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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