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화 〉 94화 여관 주인과의 미묘한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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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떠돌이들과 모든 소문이 모여드는 곳.
도시를 거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들르는 곳.
여관에서 정보를 얻어 보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
“여관이라… 확실히 여관 주인이라면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의심받으면 안 되니까 남자인 내가 혼자 갔다 와 볼게.”
“괜찮으시겠어요?”
“응. 혹시라도 위험해지면 크게 소리 지를 테니까 바로 달려 나와 줘.”
나는 방에 파티원들을 놔둔 채로 여관 홀로 내려왔다. 여관 주인은 의자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을 읽는 중이었다.
나는 여관 주인 근처의 탁상을 톡톡 두드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심심해서 나왔어요.”
“이 늙은이랑 이야기해 봤자 딱히 재미는 없을 겁니다.”
“늙은이라뇨. 멋들어진 장년이죠.”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나는 여관 주인과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창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을 무렵, 나는 여관 주인에게 슬쩍 물어봤다.
“당신도 여왕을 싫어하시나요?”
“어유, 이 도시에 여왕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십니까. 당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가 되면 저희를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그러겠네요. 아까 사람들이 여왕을 육노예로 만들어야 한다, 보지 밖에 모르는 보지변기로 만들어야 한다 막 그러더라고요.”
“허허. 조금 말이 지나쳐서 놀랐습니까?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처지가 처지인지라… 너그럽게 넘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여관 주인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이게 아닌데, 이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여관 주인인가?
안 되겠다. 여기서는 내가 먼저 정보를 깔 차례다.
“저는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저한테 여왕을 맡겼으면 제대로 육변기를 만들어 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죠.”
“여자를 그렇게 다루시는 겁니까? 그런 태도는 좋지 않습니다. 파티에 여성도 많으신 분이…”
“아, 저거요? 제 육변기들이에요.”
거기까지 말한 뒤 나는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제발 걸려들어라, 제발…
“육변기라는 말씀이십니까? 죄송하지만 제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하겠습니다. 나이를 먹었더니 의심만 많아져서…”
여관 주인이 가지고 있던 손걸레로 탁상을 슥슥 닦으며 말했다. 잠시 가만히 있던 나는 그대로 복도로 뛰어가 방으로 돌아왔다.
“릴리, 엘리자베스. 따라 나와.”
“왜 그러세요?”
“설명할 시간이 없어. 빨리 따라 나와.”
릴리와 엘리자베스는 후다닥 나를 따라 여관 홀까지 나왔다. 나는 여관 주인 앞에서 릴리와 엘리자베스에게 명령했다.
“바닥에 엎드려.”
“..?”
“명령이야.”
릴리와 엘리자베스는 순순히 바닥에 엎드렸다. 그 모습을 보고도 여관 주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분명히 여관 주인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신호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아직 못 믿는다는 신호기도 하다.
“옷 벗어.”
“네…”
릴리와 엘리자베스는 주섬주섬 옷을 벗었다. 잠시 뒤 속옷 차림이 된 엘리자베스와 릴리는 엎드린 채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됐나요, 주인님..?”
나는 슬쩍 여관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여관 주인은 가만히 서서 내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속옷까지 벗어.”
“우으… 네…”
릴리와 엘리자베스는 곧 완전한 알몸이 되었다. 엎드려 있는 탓에 가슴이 중력을 받아 아래쪽으로 그 자태를 과시했고, 엉덩이 쪽에는 깔끔한 1자 균열이 보였다.
“봤죠?”
나는 여관 주인에게 눈짓했다. 여관 주인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컵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아니야… 아직 모자라…”
아직 모자란다고? 벌써 알몸이 되기까지 했는데?
나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다음에 뭘 해야 되는지를 고민했다. 여기서 당장 섹스를 해 버릴까? 이 두 여자가 정성스럽게 펠라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하나?
“주인님..?”
릴리가 슬쩍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대답할 여유가 없었던 나는 릴리의 말을 무시했다.
“주인님… 늘 하던 거 하게 해 주세요…”
릴리가 다시 말했다. 늘 하던 거라니?
내가 되물을 새도 없이 릴리는 내게 기어 와 내 신발과 양말을 벗기더니 내 발가락을 츕츕 빨기 시작했다.
릴리..? 이게 무슨..?
하지만 곧 릴리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걸 눈치챈 나는 의자에 앉아 마음껏 릴리가 발가락을 빨도록 내버려 뒀다.
“저도… 저도 빨게 해 주세요…”
대충 상황을 눈치챈 엘리자베스도 다가와서 내 발가락을 핥았다. 나는 나머지 한쪽 발로 릴리와 엘리자베스의 머리를 차례로 밟았다.
“허허. 제법 괜찮은 연기를 하는군.”
어느새 내 옆까지 다가온 여관 주인이 말했다.
“연기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주인이 곤경에 빠진 걸 보고 자네의 암컷이 도와주는 것 아닌가.”
그걸 꿰뚫어보다니, 다 틀린 건가..!
“하지만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아…”
여관 주인은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는가 싶더니 열쇠를 들고 잠겨있던 방문 하나를 열었다.
“따라오게.”
내가 여관 주인을 따라가려고 하니 내 발가락을 핥던 릴리가 조용히 물었다.
“저흰 어떡할까요?”
“어딜 암컷노예 주제에 주인님 이야기에 껴들으려고…”
나는 일부러 여관 주인이 들을 수 있을 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릴리와 엘리자베스는 곧바로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부디 이야기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
나는 릴리와 엘리자베스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여관 주인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여관 주인은 방문을 닫고 조그만 탁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아무 데나 앉게.”
“감사합니다.”
“더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겠군. 성노예들의 도시 슬레이런에 가고 싶은 거지?”
슬레이런, 그게 그 도시 이름이구나. 영주가 보여줬던 지도에서는 다른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 자기들 입맛대로 이름을 바꿨나 보지.
“그렇습니다.”
“자네 같은 젊은이들을 많이 봤네.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들은 거로 슬레이런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
“…”
“그냥 자네 암컷들이랑 행복하게 지내면 되지, 왜 슬레이런에 가려고 하는 거지?”
“제 암컷들을 더 잘 조교하고 싶습니다.”
“더 많은 성노예를 거느리고 싶다고 말하는 멍청이는 아닌가 보군.”
여관 주인이 껄걸 웃었다. 나는 괜히 따라 웃으며 여관 주인의 눈치를 살폈다.
“그래. 내가 보기에도 자네는 더 암컷들을 잘 조교할 필요가 있네. 자네 말을 듣는 암컷들의 행동에는 군더더기가 있었어.”
“어떤 군더더기 말씀이십니까?”
“명령을 듣고 싶어서 듣는 게 아닌, 들어야 해서 듣는 느낌이 있었다는 거지.”
“그렇습니까.”
“그 정도는 척 봐도 보이네. 그리고 둘만 끌고 나온 걸 보면 나머지 둘은 제대로 된 조교를 해 본 적도 없는 모양이고.”
숨긴다고 숨겼는데,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하지만 꼭 가고자 한다면 내가 말릴 이유는 없지.”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아직 일러. 슬레이런에는 암호가 있네. 암호를 모르고 들어가려 한다면 경비병이 바로 자네 모가지를 비틀어 버릴 걸세.”
역시 무턱대고 들어가지 않기를 잘했다. 모가지가 비틀어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등골이 오싹하다.
“암호가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니. 아직 자네는 내게 성의를 보이지 않았네.”
“어떤 성의를 원하십니까?”
“원래는 내 앞에서 암컷들을 조교하는 걸 보는 게 소소한 낙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군. 괜히 책잡혀서 좋을 건 없으니 말이야.”
“책 잡힐 게 뭐가 있습니까? 어차피 이 여관에 올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얼마 전에 사건이 있었다는 건 자네도 알 텐데? 혹시라도 그 녀석들이 추적해 오기라도 하면 괜히 골치 아파지지.”
다행이다. 여관 주인은 내가 그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
“이 늙은이의 소소한 재미까지 빼앗으려 들다니, 잡히면 내장을 모조리 긁어내 버릴 거네…”
“맞습니다. 그런 녀석은 목을 매달고 채찍으로 사정없이 패 버려야 합니다.”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껄껄… 아무튼 지금은 뒤탈이 없는 게 중요하니, 그냥 돈으로 내게.”
“얼마를 원하십니까?”
“사람 하나에 금화 한 개.”
완전 날강도 아니야? 그 귀한 금화를 사람 하나당 한 개씩 내놓으라고?
금화 다섯 개를 눈뜨고 뺏기게 생긴 나는 머리를 굴렸다. 조금만 깎아달라고 해 볼까? 아니야, 목숨 값이라고 생각하면 이건 나름 싼 편일지도..?
아, 알겠다.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나는 방에서 나와 내 방으로 돌아왔다.
“뭔가 소득이 있어요?”
“미안해요, 이샤. 지금 좀 바빠서.”
나는 황급히 금화를 챙긴 뒤 다시 여관 주인에게 돌아왔다.
“그래, 얼마나 가져왔지?”
나는 여관 주인에게 자신만만하게 금화 하나를 내밀었다. 여관 주인이 금화를 손에 쥔 채로 나를 쳐다보자 나는 당당히 말했다.
“사람은 저 하나뿐입니다. 나머지는 제 암컷노예, 육변기들 뿐이니까 말입니다.”
내 설명을 들은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내가 원하던 대답일세. 언제나 저들을 사람으로 대해서는 안 되네. 그걸 알고 있는 자네는 슬레이런으로 갈 자격이 있군.”
“암호를 알려 주시겠습니까?”
“’암캐 세 마리와 암퇘지 한 마리가 들어갈 축사를 찾고 있습니다’. 오늘 대화는 이것으로 마치지.”
“감사합니다.”
“편안한 여행길이 되길 빌겠네. 그리고 원래는 데려온 암컷들은 방이 아니라 가축용 축사에서 재우네만…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나는 릴리와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내 방으로 돌아와 파티원들에게 내가 알아낸 정보를 이야기했다.
물론 릴리와 엘리자베스가 뭘 했는지, 내가 왜 금화를 한 개만 들고 갔는지도 빠짐 없이 이야기했다.
“…”
이샤와 월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괜찮아, 월영? 지금이라도 돌아가도 돼.”
“아닙…니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없이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월영, 생각보다 고집이 강하구나. 아니면 그만큼 영주를 사랑하는 것일 수도.
“암호도 알아냈으니,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바로 슬레이런으로 출발하자.”
“알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저희도 이만 방으로 돌아가 볼게요.”
릴리와 엘리자베스, 그리고 월영이 떠난 뒤 방에는 나와 이샤만이 남게 되었다. 내가 먼저 침대에 누우니 이샤가 내 옆에 조심스레 누웠다.
“이샤.”
“네..?”
“아까 제가 한 말을 듣고 충격받았어요?”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어요. 사람으로 치지도 않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긴지…”
“어쩔 수 없어요. 놈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놈들의 방식을 따라야 하니까.”
“그렇죠…”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이샤를 바라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이샤도 몸을 옆으로 돌려 나를 바라봤다.
서로의 눈빛이 마주치는 가운데 이샤가 내게 말했다.
“성기 씨, 정말 저를 사람도 아닌 암컷노예로 보고 있는 건가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렇죠..? 괜히 걱정이 돼서…”
“그렇게 걱정이 돼요?”
“솔직히 맞아요… 저는 남자 경험도 없는데, 이런 데서 잘 연기할 수 있을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곧바로 이샤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럼 지금 만들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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