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113화 마물들의 도시 공습
* * *
우리는 곧바로 성문 쪽으로 달려갔다. 성문 뒤에서 마물들이 요란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문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우리는 곧바로 무기를 들고 싸울 준비를 했다.
“다들, 컨디션은 괜찮아?”
“언제든지 싸울 준비 돼 있어요!”
“무엇이든 베어버리겠습니다!”
다행히도 우리 파티원들의 사기는 충만해 보였다. 단 한 명, 릴리만 빼고.
“릴리, 괜찮아?”
“속이… 안 좋아요…”
마물에게 당했던 기억이 다시 릴리를 괴롭히고 있나?
하지만 릴리의 상태를 걱정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성문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녀석들이 포탈을 타고 도시 안으로 들어온다!”
뒤를 돌아보니 허공에 포탈 몇 개가 열려 있었고, 그 포탈을 통해서 마물들이 도시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저 포탈은 어떻게 닫지?”
“마법사나 성직자들이 처리해 주길 바라는 수밖에요! 지금은 일단 쏟아져 들어오는 마물들을 막는 게 먼저예요!”
나는 자지봉을 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다행히도 포탈을 타고 들어오는 마물의 대부분은 고블린 같은 하급 마물이었다.
자지봉을 휘두르며 고블린들을 제압하고 있으니 월영과 엘리자베스가 달려와 나를 도왔다.
“엘리자베스 님! 뒤쪽입니다!”
“나한테 맡겨 둬!”
엘리자베스와 월영은 서로 합을 맞추며 고블린들을 차례로 베어넘겼다. 내가 자지봉을 휘두를 필요도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기세는 대단했다.
“크르륵…”
어디선가 익숙한 숨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늑대인간 두 마리가 포탈을 타고 넘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젠장, 늑대인간… 만만치 않은 상대인데…
하지만 내 그런 걱정은 월영의 검술 실력 앞에 깔끔히 사라지고 말았다. 월영은 늑대인간이 재생할 틈도 주지 않고 늑대인간을 조각내 버렸다.
마물들은 포탈을 타고 계속해서 밀려들어왔다. 포탈이 소멸하기는커녕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탓에 상대해야 하는 마물은 점점 더 많아져만 갔다.
“젠장, 이래서는 끝이 없겠는데…”
손에 묻은 피를 옷으로 대충 닦아내며 중얼거린 찰나, 어디선가 강렬한 섬광이 번쩍이더니 포탈을 향해 번개가 쏟아졌다.
콰르릉 콰르릉
번개에 맞은 마물들은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죽어갔고, 영원히 닫히지 않을 것 같던 포탈도 일렁이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섬광이 난 쪽을 쳐다보자 한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곧바로 마법사에게 달려갔다.
“당신이 영주의 마법사?”
“그렇습니다만, 지금은 자기소개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을 것 같군요.”
“지금 당장 검사들의 도시로 통하는 포탈을 열어 주세요!”
검사들의 도시에는 실력 좋은 검사들이 많다. 그들을 데려올 수 있다면 이 마물들을 깔끔히 몰아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검사들의 도시와 이곳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곳으로 통하는 포탈을 열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 정신을 집중해야 합니다. 마물들이 날뛰는 이 상황에서 그게 가능할 리가…”
“저희가 당신을 지켜 드릴게요!”
나는 자지봉을 꽉 쥐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그런 흉물스러운 무기로..?”
“진짜 흉물스러운 건 아직 꺼내지도 않았어요.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저희를 믿어야 한다는 거예요.”
“왜 제가 처음 보는 당신들을 믿어야 합니까?”
“어차피 이 도시에 있는 경비병들과 당신의 힘으로는 이 마물들을 다 막기 무리일 거 아니에요! 지금은 지원군이 필요한 순간이라고요!”
마법사는 잠시 마물들을 살펴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이 도시에 있는 병력만으로는 이렇게 많은 마물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포탈을 연다고 해서 그곳에서 지원군을 보내준다고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제가 보증하겠습니다!”
열심히 검을 휘둘러 마물들을 막고 있던 월영이 소리쳤다.
“영주님은 절대로 이런 일을 그냥 지나치실 분이 아니십니다! 영주님의 호위무사인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월영의 말을 들은 마법사는 꽤나 고민하는 눈치였다.
“지금 한가하게 고민 따위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저희를 믿고 포탈을 열어 주세요!”
“좋습니다. 어차피 이대로 있어도 다 죽은 목숨, 당신들을 믿고 포탈을 열어 보겠습니다. 정신을 집중하는 동안 저를 지켜주십시오.”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발밑에 동그란 마법진이 그려졌고, 마법사의 손에서 파란색 기운이 일렁거렸다.
“엘리자베스! 이샤! 월영! 들었지? 우린 이 마법사를 지켜야 해!”
“알겠어요!”
“맡겨만 주십시오!”
“릴리, 아직 못 싸우겠어? 마법사를 지키기 위해선 릴리의 힘도 필요해!”
“윽… 한 번 힘내 볼게요…”
릴리는 여전히 싸우기 힘겨워 보였다. 결국은 내가 릴리 몫까지 싸워야 하는 상황. 나는 바지를 벗고 고추칼리버를 켰다.
마물들의 공세는 가면 갈수록 거세졌다. 성문은 박살 난 지 오래였고, 남은 경비병들과 시민들은 성 근처에 몰려 힘겨운 저항을 이어갔다.
“조심하십시오! 그쪽으로 하나 갑니다!”
맨 앞에 서서 검을 휘두르던 월영이 내 쪽을 향해 소리쳤다. 월영이 가리킨 곳을 보니 고블린 하나가 마법사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어딜!”
나는 곧바로 고블린에게 달려가 고블린을 고추칼리버로 두 동강 냈다. 그 순간,
쾅
굉음과 함께 고블린의 시체가 폭발했다. 폭발에 휘말린 나는 그대로 나가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크윽…”
“괜찮으세요!?”
이샤가 허겁지겁 달려와 내게 힐을 해줬다. 꽤나 중상이었던 것 같은데도 이샤의 힐을 받으니 금방 씻은 듯이 나았다.
“방금 뭐였죠?”
“아무래도 고블린이 체내에 마력 폭탄을 심어놓고 자살공격을 감행하는 모양이에요. 이래서는 제대로 방어하기가 힘든데…”
“이샤, 일단은 제게 실드를 둘러 줘요. 지금은 뭐가 됐든 마법사를 지켜야 해요.”
고추칼리버를 다잡으며 말하자 이샤가 포션을 내밀었다. 나는 곧바로 이샤가 준 포션을 들이켰다.
지금은 부작용 같은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일단은 이 생지옥에서 살아나가는 게 먼저다.
점차 주위의 시간이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고추칼리버로 마법사에게 돌진하는 마물들을 하나씩 베어 넘겼다.
개중의 일부는 아까 폭발했던 고블린처럼 자살 공격을 감행했지만, 이샤의 실드 덕분에 다시 중상을 입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싸웠을까, 마법사의 발밑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포탈을 열 수 있는 거예요?”
“아직입니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마법사가 마법진을 향해 손을 뻗은 채로 소리쳤다.
“여러분! 곧 있으면 지원군이 올 것입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싸워 주십시오!”
“와아아!!!”
“힘내자!!!”
다행히도 시민들과 경비병의 사기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죽기 싫다는 모두의 바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힘을 얻은 나는 월영의 옆까지 고추칼리버를 휘두르며 나아갔다. 월영의 옆에 도착해서 보니 상황은 전보다도 나빠 보였다.
이미 마물은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우리의 모가지를 물어뜯으려는 듯 달려오기 바빴다.
‘영주처럼 필살기라도 날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내 스스로의 모자람을 탓하며 다시 고추칼리버를 휘두르려는 순간, 마물들의 진격이 멈췄다. 마물들은 우리와 거리를 둔 채로 더 이상 진격해 오지 않았다.
“이제 와서 겁을 먹기라도 한 건가?”
“마물들이 겁을 먹을 일은 없을 겁니다. 저것들은 그저 명령에 복종하는 것밖에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럼 왜 멈춘 걸까요?”
어느새 내 옆까지 다가온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우리를 빤히 노려보던 마물들은 무언가를 위해 길을 터 주는 듯 양옆으로 비켜났다.
“저건..?”
“릴리!?”
릴리는 어느새 마물에게 붙잡혀 있었다. 늑대인간 하나가 릴리의 모가지를 잡은 채로 앞으로 걸어 나왔다.
“켁… 켁… 주인님…”
“이 개자식! 릴리를 당장 놔 줘!”
내 분노가 서린 외침에도 늑대인간은 그저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잠시 가만히 있던 늑대인간은 갑자기 손톱으로 릴리의 갑옷을 거칠게 찢어발겼다.
“꺄아악!!!”
릴리가 비명을 질렀다. 늑대인간은 순식간에 알몸이 된 릴리를 바닥에 짓누르고는 자지를 꺼내들었다.
늑대인간의 덩치만큼이나 흉악한 늑대인간의 자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개의 물건처럼 빳빳하고 굵어 보였다.
“너 이 자식… 설마..!”
“싫어요, 싫어요..! 주인님, 살려 주세요..! 마물에게 또 범해지긴 싫어요..!”
릴리가 늑대인간의 팔을 뿌리치려고 애쓰며 울부짖었다.
“이 늑대인간, 저를 겁탈할 생각이에요..! 저를 개처럼 범하고, 제 안에 늑대인간의 정액을 잔뜩 뿌려 버릴 생각이라고요..!”
릴리는 진심으로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공포심이 몸을 지배해 제힘을 못 내는 모양이었다.
“이 자식들이!”
나는 당장 릴리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다른 하급 마물들이 길을 막아서 릴리에게 다가가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 사이 늑대인간은 릴리의 보지를 향해 자신의 큼지막한 자지를 조준하고 있었다.
“멈춰, 이 개만도 못한 자식들아!”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진 아무렇게나 고추칼리버를 휘두르며 정신없이 뛰었다. 하지만 릴리에게 닿기는 무리라고 생각이 든 찰나,
“하아아압!!!”
뒤에서 월영의 기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그때 영주가 썼던 궁극기처럼 거대한 검이 마물들을 내리쳤다.
순식간에 월영과 늑대인간 사이에 있던 마물들은 흔적도 없이 뭉개지고 말았다.
“길을 내 드렸습니다! 빨리!”
“고마워, 월영!”
나는 그대로 늑대인간을 향해 달려갔다. 늑대인간은 월영의 검 끝에 맞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나는 고추칼리버로 늑대인간의 머리를 꿰뚫었다.
“크아아악…”
늑대인간이 쓰러지며 릴리는 풀려났다. 나는 곧바로 릴리를 끌어안았다.
“무서웠지, 릴리?”
“무서웠어요… 안 오실까 봐…”
“무슨 소리야. 난 절대 우리 파티원을 버리지 않아.”
릴리는 내 품에 꼭 안겨 흐느꼈다. 하지만 감동적인 재회를 계속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다른 마물들이 우리를 덮칠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가자, 릴리!”
나는 릴리를 일으켜 세우고는 월영이 있는 쪽으로 달릴 준비를 했다.
“잠시만요, 주인님!”
“왜 그래, 릴리?”
릴리는 잠시 제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안 오실까 봐 정말 무서웠다고요.”
그 말과 함께 내 배에 주먹을 날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