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130화 월영과의 조사 (1)
* * *
가게 밖에서 투명 마력석이 있는 위치가 표시된 지도를 보고 있으니 파티원들이 내 옆에 달라붙었다.
“주인님, 저랑 같이 가실 거죠?”
“낭군님, 저 혼자 다니기 너무 무서운데 같이 다녀 주시면 안 될까요?”
“저랑 같이 다니시면 일이 많이 편하실걸요~”
릴리와 이샤, 테레나는 나와 같이 가기 위해 콧소리를 냈지만, 엘리자베스와 월영은 그러지 않았다.
궁금해진 내가 엘리자베스에게 물어보니 엘리자베스가 씩씩한 목소리로 답했다.
“이번에야말로 저 혼자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난 엘리자베스를 못 믿은 적 없는데.”
“으으… 그래도요!”
“그래. 엘리자베스는 알겠고, 월영은 왜 같이 가자고 안 해?”
월영에게 묻자 월영이 살짝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노려봤다.
“제가… 할 것 같습니까.”
호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렇게 나오면 더더욱 못 참지.
“난 월영이랑 같이 갈래.”
“네?”
“헤에?”
다른 파티원들이 놀라는 와중에 월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래, 월영?”
“별거 아닙니다. 이왕 할 거면 빨리 시작하고 빨리 끝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래, 그러자.”
혼자 가고 싶다는 엘리자베스는 혼자 조사를 시작하러 갔고, 비전투원인 이샤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릴리와 함께 조사를 시작했다.
테레나는 누가 봐도 걱정이 안 되는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혼자 조사를 시작했고, 월영은 강제로 나와 함께 조사에 나섰다.
월영과 함께 귀족들의 거리로 걸어가는 길, 심심해진 나는 월영에게 말을 걸었다.
“월영.”
“무슨 일이십니까.”
“어제 자기 전에 무슨 생각 했어?”
“무슨 생각을 했냐니, 질문의 의도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어제 내가 많이 사랑한다고 해 줬잖아. 분명 자기 전에 그 말이 떠오르지 않았어?”
“…”
월영은 부끄러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월영을 바라보던 내가 월영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월영의 볼이 살짝이지만 발갛게 물들었다.
여세를 몰아 슬며시 월영의 손을 잡아 봤지만, 월영은 살짝 손을 움직여 내 손 안을 빠져나갔다.
나는 무척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월영을 쳐다봤다. 그러나 월영은 시선을 돌려버렸다.
“월영.”
“또 왜 부르십니까.”
“월영은 왜 여자를 좋아해?”
월영의 몸이 한차례 움찔 떨렸다. 너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나.
“…저도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언제부터 아셨습니까?”
“내 상태창 봤잖아? 내 능력으로 알아냈지.”
“처음부터 저를 따먹… 아니, 저를 취하려는 생각밖에 없으셨다는 게 여실히 드러나는군요.”
월영이 째릿 나를 노려봤다. 그럼에도 내가 싱글벙글 웃고 있으니 월영이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에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저 제 마음이 영주님을 향했을 뿐,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습니다.”
“영주를 좋아한 지는 얼마나 됐어?”
“딱히 세어보지 않아서 잘 모릅니다. 게다가 좋아하기 시작한 날을 콕 집을 수도 없고 말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이쯤에서 한번 월영을 놀려 볼까.
“월영은 영주랑 보지 비비고 싶어?”
“..!?”
갑작스레 나온 내 천박한 말에 월영이 놀랐는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양손에 손가락 두 개씩을 펴 맞물리게 한 뒤 열심히 비벼댔다.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나를 보고 있던 월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무슨 천박한 짓입니까!”
꽤 크게 소리를 지른 탓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볼 정도였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는 내 음담패설을 막을 수 없었다.
“왜, 월영도 언젠가는 영주랑 섹스하고 싶었을 거 아니야. 보지 비비는 게 취향이 아니라면, 양방향 딜도를 사이에 놓고 서로를 껴안은 채…”
“그만하십시오!”
월영의 얼굴이 새빨개지는 게 무척이나 재밌다. 월영이 가만히 서서 씩씩대고 있길래, 나는 월영의 어깨를 톡톡 쳐 줬다.
“장난이야, 장난.”
“그런 장난, 하나도 재미없다고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근데, 월영은 정말 영주랑 섹스하고 싶은 생각이 하나도 없었어?”
“제가 대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실 나랑 섹스하면서도 속으로는 영주랑 하는 섹스를 떠올리고 있던 거 아니야?”
월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월영에게 캐물어 봐도 월영은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침묵을 고수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인가…”
귀족들의 거리답게 이전보다도 훨씬 건물들이 고급스럽고 우아하다. 돌아다니는 사람들 또한 멋들어진 옷을 입은 것이 과연 귀족들의 거리다웠다.
“우리가 갈 곳은…”
나는 다시 지도를 펼쳐 목적지를 확인했다. 머지않은 곳에 목적지가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다시 발걸음을 떼자 월영이 말했다.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사람이 진짜 투명 마력석을 훔쳐갔다 한들, 다짜고짜 내놓으라고 하면 분명 시치미를 뗄 겁니다. 무언가 증거를 찾을 특별한 방법이 있으십니까?”
생각해 보니 그렇군. 투명 마력석을 훔쳐갈 정도의 강심장이 왕궁에서 나왔단 말만 듣고 제 발 저려서 자백할 리가 없지.
“무슨 좋은 생각 있어?”
“저라고 특별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여쭤본 거기도 하고 말입니다.”
“흐음… 그래도 일단 이번 방문에선 투명 마력석에 대한 정보만 얻는 거로 충분하지 않을까?”
“왕궁에서 나왔다는 걸 밝히실 생각이십니까?”
“아니, 그냥 투명 마력석이 한번 보고 싶어서 왔다고 둘러댈 생각이야.”
“일단은 알겠습니다. 테레나 님이 주신 뱃지는 숨겨놓도록 하겠습니다.”
나와 월영은 의심되는 귀족의 집 앞에 도착했다. 귀족의 집 대문 앞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고 있으니 하녀가 나왔다.
“무슨 일이신가요?”
“이 저택의 주인분을 만나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상하네요. 이미 한 분이 들어가셨는데. 혹시 어떤 일로 오셨나요?”
“투명 마력석을 가지고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왔는데, 꼭 한번 구경해 보고 싶다고 전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하. 네.”
하녀가 돌아간 뒤 가만히 기다리기 심심했던 나는 다시 월영에게 말을 걸었다.
“월영.”
“무슨 일이십니까.”
“월영은 여자를 좋아한댔지.”
“알면서 왜 물어보십니까.”
“그게 꼭 남자를 안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지 않아?”
“저는 별생각 없었습니다만… 요즘 성기 님을 보면 없던 혐오감도 생길 정도입니다.”
“그렇게 내가 싫어?”
“그걸 꼭 말로 해 드려야 아시겠습니까.”
“그래도 난 월영을 사랑해.”
살짝 몸을 돌려 월영을 끌어안자 월영의 커다란 가슴이 푹신하게 내 가슴을 눌렀다. 월영은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런 수작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래? 그럼 역시 월영을 강제로 눕혀 놓고 자지 맛을 보여줘야 나를 사랑하게 될까?”
“애초에 앞에 한 말과 뒤에 한 말이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일관성을 좀 가지십시오!”
월영이 캬악 소리를 질렀다. 나는 낄낄대며 웃다가 다시 월영을 끌어안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월영이 나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믿어.”
“저는 제발 그런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말은 그렇게 한다지만 벌써 내 포옹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됐잖아. 언젠가는 내게 알아서 다리를 벌리게 되겠지.
이후로도 월영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으니 다시 하녀가 나왔다.
“들어오시지요.”
하녀가 대문을 연 뒤, 우리는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에 딸린 정원을 가로질러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목욕 가운을 입고 있는 귀족 남자가 우리를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마침 목욕을 하던 중이라 조금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우리가 왕가에서 나왔다는 것을 모르는데도 예를 갖추는 것을 보니 제법 예가 몸에 익은 남자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겉으로는 예의 바른 척하면서 뒤로는 도둑질을 하는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차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남자는 우리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응접실 테이블에 앉으니 하녀가 차를 내왔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칼레 드 에르타시오라고 합니다. 편하게 칼레라고 부르십시오.”
“반갑습니다. 칼레 님.”
“그래서, 제가 가진 투명 마력석을 구경하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투명 마력석을 가졌는지는 어떻게 알고 오신 겁니까?”
“우연히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칼레는 점잖게 웃고는 찻잔을 들어 품격있게 차를 음미했다. 그러나 귀족의 예법이 몸에 익지 않았던 나는 찻잔을 들어 올려 단숨에 차를 삼켰다.
“호쾌하신 분이군요.”
품격이 없다고 뭐라 할 법도 한데, 칼레는 오히려 내가 차를 원샷하는 모습을 칭찬해 줬다. 머쓱해진 나는 괜히 월영에게 말했다.
“월영, 월영도 차 마셔 봐. 꽤 맛이 좋아.”
“저는 괜찮습니다.”
“이런, 혹시 제가 내어드린 차에 이상한 게 섞여 있을까 봐 걱정하시는 겁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원래 차를 별로 즐기지 않습니다.”
월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잠시 나와 월영을 번갈아 쳐다보던 칼레가 말했다.
“두 분은 연인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자신 있게 대답하자 월영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테이블 밑으로 손을 뻗어 월영의 허벅지를 꼬집었다.
지금은 연인인 척하면서 의심을 푸는 것이 낫다. 갑자기 호위무사를 대동해 왔다고 하면 무언가 미심쩍어 할 수 있으니까.
월영도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직 연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걸 수줍어합니다.”
내가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칼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요.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부러워하실 건 뭡니까? 칼레 님께서는 결혼을 하지 않으신 겁니까?”
“결혼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에휴, 말해서 뭐 하겠습니까. 차를 다 드셨으면, 저를 따라오시지요. 투명 마력석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칼레가 자리에서 일어난 뒤 나와 월영이 칼레를 따라 일어났다.
칼레를 따라 지하실로 가고 있으니 어디선가 앙앙대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여자가 남자와 몸을 격하게 섞는 소리였다.
그것도 보통 소리가 아니라 엄청나게 격하게 몸을 섞고 있는 모양이었다. 궁금해진 내가 물어보려 하니 칼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들리는 소리는 무시하셔도 됩니다. 이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말이죠…”
대체 무슨 사연이 있나 궁금하긴 했지만 더 물어보는 것은 실례일 것 같아 나는 조용히 칼레를 따라 걸었다.
칼레는 우리를 데리고 지하실로 향했다. 어둑어둑한 통로를 따라 걷고 있으니 월영이 차고 있던 검 위로 손을 올렸다.
“월영, 너무 경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내가 조용히 월영에게 속삭였다. 월영은 잠시 고민하다 검에서 손을 내렸다.
“자, 여기가 제 보물창고입니다.”
칼레가 지하실 문을 열었다. 지하실 안쪽으로 시선을 옮긴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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