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 147화 울루한테 죽을 뻔한 날
* * *
한시라도 빨리 나자와의 회포를 풀고 싶었기에 서둘러 공간이동을 하기로 했다. 공간이동은 전과 같이 테레나에게 부탁했다.
“다들 마법진 위에 서세요.”
테레나의 말에 우리 파티는 다 같이 마법진 위에 섰다.
“나자도 이리 와요.”
“저는 귀환석을 쓰면 되는데…”
“잔말 말고 이리 와요.”
내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나자는 순순히 귀환석을 집어넣고 마법진 위로 올라왔다. 역시 내 암컷이라 그런지 말을 잘 듣는군.
“저희도 같이 갈래요!”
세이라와 아이라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마법진 위로 올라왔다.
마법진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아홉이다 보니 조금 좁긴 했지만, 테레나는 상관없다는 듯이 주문을 외웠다.
나는 내 옆에 서 있던 나자의 엉덩이에 손을 올렸다. 이윽고 나자의 엉덩이를 꽉 쥐자 나자가 신음을 흘렸다.
“흐읏…”
역시 이 풍만한 엉덩이의 감촉은 숙성된 미시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거다.
물론 우리 파티원들의 엉덩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맛을 보면 좋잖아?
마음껏 나자의 엉덩이를 조물딱대고 있으니 공간이동이 시작됐다. 마력이 강하게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주위를 둘러보자, 공간이동이 시작된 곳이 아닌 다른 풍경이 보였다.
하지만 그곳은 나자가 거처하는 곳이 아닌, 주위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없는 황량한 공터였다.
“테레나, 여기가 아닌데?”
고개를 돌려 테레나를 보니 테레나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실수했네요. 이런 비열한 수를 쓸 줄은…”
“왜 그래, 테레나?”
“누군가 고의적으로 공간이동을 방해해서 이곳으로 오도록 만들었어요. 그건 분명…”
“이 울루 님이시지!”
잔뜩 신이 난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늑대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울루의 하수인인 가니안과 나르타도 모습을 드러내며 허공을 향해 울부짖었다.
“쳇…”
파티원들은 곧바로 무기를 꺼내들었다. 릴리는 주먹에 마력을 불어넣었고, 엘리자베스는 마력으로 된 무기와 방패를 소환했다.
이샤는 곧바로 우리에게 버프를 걸어 줬으며, 월영은 검을 꺼내들고 테레나는 마법진을 그렸다.
“싸우자는 거냐? 하!”
우리의 모습을 본 울루가 코웃음을 쳤다. 이렇게나 강력한 파티인데도 전혀 겁먹지 않다니, 역시 규격 외로 강력한 녀석인가…
“조심하세요, 대장.”
“이번엔 놓치면 안 돼요.”
붉은 갈기와 검은 갈기를 가진 두 늑대인간은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며 우리를 노려봤고, 울루는 등짝에 메고 있던 거대한 도끼를 꺼내들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긴장감에 몸이 떨릴 지경이었지만, 나는 애써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울루는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향해 말했다.
“성기, 어째서 무기를 꺼내지 않지?”
“무슨 소리냐?”
“왜 네 암컷들만 무기를 꺼내고, 정작 너는 무기를 꺼내지 않느냐는 말이다.”
“내 파티원들이 곧 내 무기다.”
그만큼 파티원들을 믿고 있다는 뜻이었기도 하고, 내 무기는 암컷타락이라 그런 말을 한 것뿐인데 울루는 그걸 도발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이 몸을 보고도 무기를 꺼내지 않으려 하다니!”
울루가 성이 가득 난 채로 울부짖었다. 포악하기 그지없는 울음소리에 몸이 찌릿찌릿 울렸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네 암컷들을 형체도 없이 찢어발겨주마! 그리고 성기 네 녀석을 암컷타락시켜 주마!!!”
울루가 허공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우리를 향해 날아온 울루는 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크게 휘둘렀다.
“꺄아아악!!!”
세이라가 비명을 질렀다. 나자는 세이라와 아이라를 꼭 끌어안았다. 이대로면 나자랑 두 여자가 위험한데..!
“위험해요!”
가만히 서 있던 내 손목을 릴리가 잽싸게 낚아챈 뒤 빠르게 움직였다.
덕분에 나는 허공에 던져지다시피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지면을 몇 바퀴나 구른 뒤였다.
하지만 릴리가 괘씸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방금까지 내가 서 있던 곳 근처가 완전히 산산조각 나 있었으니까. 멍하니 있었다가는 충격에 휘말려 죽을 수도 있었다.
잠깐, 나는 릴리가 보호해 줬다고 쳐도, 나자는? 세이라랑 아이라는?
다급해진 나는 곧바로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나자!”
“전, 전 괜찮아요!”
다행히도 어디선가 나자가 콜록이면서도 곧바로 대답했다.
“나자랑 두 여자는 테레나가 공간이동시켜서 안전해요.”
릴리가 나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언제까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울루는 월영에게 시선을 고정한 뒤 뚜벅뚜벅 걸어갔다.
“내 도끼랑 네 검 중에 뭐가 더 강력한지, 궁금하지 않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울루가 도끼를 휘둘렀다. 월영이 검으로 도끼날을 막아 봤지만, 힘이 밀리는지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크윽..!”
월영은 입술을 깨물며 버티다 이내 검을 치우며 몸을 뒤로 뺐다.
울루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월영을 향해 도끼를 마구 휘둘러대며 전진했다.
계속해서 뒷걸음치던 월영은 결국 발이 꼬여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울루는 씨익 웃으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죽여주마!!!”
“안 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무리 월영이라도 저 녀석의 내려찍기를 막아내기는 힘들 텐데..!
월영이 최후의 저항으로 검을 들어 올리며 맞서려는 순간, 울루의 도끼를 마력으로 된 벽이 막아섰다.
덕분에 덜 휘둘러진 도끼는 마력으로 된 벽에 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테레나 님!”
“뭘 멍하니 있어요? 감사 인사는 나중에 하고 빨리 자세부터 다시 잡아요!”
테레나가 정신을 집중하며 만들어낸 벽은 이내 쩌저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월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울루의 공격을 피했고, 마력 벽을 부순 울루의 도끼는 아무도 없는 땅바닥을 내리찍었다.
“성가시게 하는군!”
울루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다음 상대를 물색했다.
“이대로는 너무 불리해요.”
내 옆에 있던 릴리가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이 저랑 월영, 테레나만 함께 싸워도 벅찬데, 지켜야 할 사람들까지 있어서 제대로 힘을 낼 수가 없어요.”
“엘리자베스랑 이샤는?”
“엘리자베스가 잘 싸우기는 해도, 울루를 상대하는 건 무리예요. 이샤 양은 애초에 비전투원이고요. 우리 파티 지키는 것도 벅찬데, 지켜야 할 사람이 셋이나 더 있으니…”
릴리의 말을 듣자 문득 위험하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울루는 그렇다 쳐도, 가니안과 나르타는 어디 갔지?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니 가니안과 나르타는 자세를 낮추고 사냥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붉은 털을 가진 가니안은 테레나가 울루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나자와 두 여자를 덮치려 했고, 검은 털을 가진 나르타는 열심히 버프를 걸고 있는 이샤를 덮치려 했다.
“릴리! 이샤를 지켜 줘!”
그렇게 외치며 나는 냅다 가니안이 있는 쪽으로 달렸다.
“어디 가요, 주인님!”
릴리가 뒤에서 외쳤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달리다 가니안의 근처에서 바지를 벗고 고추칼리버를 꺼냈다.
“이 자식!!!”
내가 가니안을 향해 고추칼리버를 휘두르자 가니안이 뒤로 도약해 내 공격을 피했다.
“젠장, 좋은 기회였는데!”
“그렇게 놔두진 않는다!”
“대장이 너를 암컷타락시키겠다고 하셨으니 죽일 수는 없지만, 사지를 불구로 만드는 정도는 괜찮겠지!”
가니안이 킬킬대며 발톱을 쫙 폈다.
슬레이런으로 갈 때 싸웠던 늑대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중압감이다. 과연 내가 나자를 지키면서 이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까..!
불리하기 그지없는 싸움을 시작하려는 그때, 난데없이 천둥과도 같은 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누가!!! 감히!!!”
잠깐, 이거 설마?
“위대한 모험가를 죽이려 드는가!!!”
난데없는 불호령에 늑대인간들과 우리 파티원 모두 싸움을 잠시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내 구름 사이로 무언가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면을 향해 빠르게 활강하는 그것의 정체는 바로,
드래곤이었다.
“미친, 저게 뭐야!”
드래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선두에 선 드래곤을 따라 수십, 수백 마리의 드래곤들이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야, 야! 이건 안 되겠다! 후퇴! 후퇴다!”
울루는 잔뜩 당황한 듯 펄쩍펄쩍 뛰며 후퇴를 명령했다. 가니안과 나르타 또한 겁을 먹었는지 후다닥 울루의 옆으로 달려왔다.
“다음에는 꼭! 너를 암컷타락시켜주마! 남성기!”
“이상한 소리 할 시간 있으면 빨리 도망이나 가자고요!”
나르타가 무언가를 바닥에 집어던지자 검은 연기가 세 늑대인간을 감쌌다. 연기는 빠르게 흩어졌고, 세 늑대인간은 보이지 않게 됐다.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늑대인간들뿐만이 아니었다. 하늘을 뒤덮던 드래곤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내가 깨끗해진 하늘을 보며 멍하니 있으니 파티원들이 내 주위로 모여들었다.
“방금 그건…”
“나도 모르겠어. 근데 누가 한 건지는 알 것 같아.”
이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나자가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칼벤!”
나자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니, 칼벤이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성기.”
“오랜만이에요, 칼벤. 방금 그건 대체 뭐였어요?”
“녀석들이 다시 오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일단 돌아가지. 거기 파란 머리…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테레사였나?”
“테레나예요.”
테레나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둘이 알고 있는 사이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일단은 여기를 벗어나는 게 먼저다.
“테레나, 빨리 이동하자.”
“네.”
테레나는 곧바로 마법진을 펼쳤고, 우리는 나자와 칼벤이 사는 곳으로 공간이동했다.
***
푹신한 의자에 앉아 칼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나자가 차를 타 왔다.
차를 홀짝인 뒤 나는 칼벤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방금 그건 대체 뭐였어요? 분명히 드래곤이었는데?”
“자네 눈에도 그렇게 보였나?”
“네. 설마 칼벤이 한 게 아니에요?”
“그럴 리가 있나. 사실 그건 환영일세.”
“환영요?”
머리가 띵해졌다. 진짜로 드래곤들을 몰고 우리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 그냥 환영으로 겁을 준 것에 불과했다고?
“대부분의 마물들은 지능이 낮아서 환영 마법을 보면 겁먹고 도망가는 일이 잦다네. 성기 자네를 노리고 마왕이 보낸 녀석이라 과연 통할까 했는데, 통해서 다행이군.”
“그 녀석들이 좀 멍청하긴 하죠.”
“똑같이 속은 자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그러기예요?”
나와 칼벤은 서로를 보며 낄낄댔다. 그래서 들키기 전에 빨리 이동하자고 했던 거구나.
“아무튼, 자네한테는 나랑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군.”
칼벤이 차를 홀짝이며 말했다.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칼벤을 쳐다보니 칼벤이 손가락으로 옆에 있던 나자를 가리켰다.
“나보다 자네와의 회포를 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 그런 거군요.”
나는 차를 원샷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나자에게 다가갔다. 나자가 살짝 움츠러들며 뒷걸음질 치는 가운데, 나는 나자를 확 끌어안고는 나자에게 입을 맞췄다.
“흐웁… 츄읍…”
나자는 나와 입을 맞추자마자 바로 나를 팔로 끌어안으며 더욱 깊숙이 내게 혀를 밀어 넣었다. 역시 음탕하기 짝이 없는 밀프라니까.
그대로 나자의 젖통을 주무르려 하니, 나자가 살짝 내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밖에… 저 말고도 성기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같이 회포를 푸는 게 어때요?”
회포를 푼다고 표현하는 걸 보면 우리 파티원은 아닌 것 같은데, 나랑 떡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고?
나자가 나를 속일만한 위인은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자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자의 말대로 같이 회포를 풀만한 사람이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