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나도 몰랐던 취향 (1)
* * *
나도 몰랐던 취향 (1)
[귀축 용사가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마녀 사냥꾼이 자신의 플레이어를 더럽히는 짓은 그만두라고 소리칩니다.]
[껍질 기사는 당신에게 기사도 정신이 부족하다고 일갈합니다.]
배후신들의 메시지가 어지러이 떠오르는 와중.
세연이가 상의의 밑단을 잡았다.
금방이라도 옷을 들춰 가슴을 보여줄 것 같은 자세였다.
진짜로 보여주려나?
기대하고 했던 말은 아니었는데?
나보다 더 놀란 건 성훈이였다.
“세, 세연아! 너 설마 진짜 벗으려는 건 아니지?! 그 버프는 되도록 안 쓸 거라며!”
“그럼 저거 네가 처리할 거야? 방법이 없잖아!”
“그건…….”
구아아아아아!
고블린 킹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포효했다.
우리는 그 모습을 두려운 듯 지켜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때, 세연이가 나를 툭 쳤다.
“봐.”
단 한 음절이었다.
이를 꽉 깨문 세연이가 상의를 훅 들췄다.
[마녀 사냥꾼이 경악합니다.]
[껍질 기사의 동공이 흔들립니다.]
[귀축 용사가 집중합니다.]
검은 티 밑으로 그녀의 뽀얀 가슴이 드러났다.
물론 브라는 착용한 채였다.
이 정도 노출은 비키니보다 못한 수준이었으나, 세연이가 직접 자신의 옷을 들추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 점수를 줄 수 있었다.
또한 그녀의 유두를 가리고 있는 것은 수영복이 아니라 엄연한 속옷.
남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될 모습이었다.
“세연아. 나, 난 안 봤다.”
“강성훈 넌 그냥 닥치고 있어.”
“…….”
스윗한남 성훈이는 아예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이걸 참아?
독한 새끼…….
하지만 가슴을 본 나도 그리 행복한 건 아니었다.
“이진현. 이제 됐지?”
“……아니.”
“왜 또?”
“안 꼴려.”
가슴을 드러낸 세연이의 모습이 자극적인 것은 사실이었다.
자지가 조금 움찔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정력왕 금태양도 아니고, 야외 섹스에 미친 변태도 아니다.
내 앞에는 세연이의 가슴과 함께 고블린 킹이라는 무지막지한 괴물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워?
세연이가 내 자지를 직접 잡고 흔들어주기라도 하는 게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 꼴리다니 뭐가! 나 자연이거든?!”
“그게 아니고! 너 같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자위가 하고 싶겠어?!”
“그, 그럼 가슴은 왜 보여달라고 한 건데!”
“혹시 설지도 몰랐으니까!”
“개새끼야!”
상의를 내린 세연이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아니, 나도 고의가 아니었다고.
“이진현. 강성훈.”
세연이가 침착한 목소리로 우리를 불렀다.
“너네 달리기 빠르냐?”
“으응?”
“그게 무슨 소리야?”
불길하다.
달리기 빠르냐고?
육상 선출인 너보다는 당연히 느리겠지.
“나 육상부 출신이거든.”
“알지! 세연이 너 엄청 빠르잖아!”
“육상부가 뭐 어쨌다고?”
“미안하다고. 근데 나도 노력했어. 가슴 보여줬잖아.”
“세연아?”
“야 잠깐만.”
파바바바바바밧!!
달리기 선출 김세연.
뒤돌아선 그녀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
김세연은 정말 빨랐다.
아무리 선출이라고 해도 성별 차이 때문에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큰 오산이었다.
그녀는 10초도 되지 않아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매정한 녀석 같으니…….
정말 다행인 것은 고블린 킹이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 체구에 빠르기까지 하면 1층 보스라기엔 오버파워지.
그리하여 조별 과제 3인방은 다시금 재회할 수 있었다.
우리 셋은 차가운 벽에 기대어 함께 쪼그려 앉았다.
이제 막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참이었다.
나도 그렇고, 세연이와 성훈이도 한껏 지친 상태.
특히 성훈이 놈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흑…….”
“야. 너 우냐?”
“흐으윽…… 대체 여긴 뭐냐고……. 왜…… 왜 꿈이 안 깨는 거야 왜…….”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훌쩍이는 녀석.
우는 모습이 불쌍하다가도 어이가 없다.
네가 뭐가 그렇게 서러워?
넌 적어도 동기들 앞에서 꼬추는 안 흔들었잖아.
그때, 세연이가 성훈이의 고개를 들게 했다.
위로라도 해주려는 줄 알았는데, 성훈이에게 날아간 것은 따뜻한 말이 아닌 손바닥이었다.
철썩!
“컥!”
성훈이의 뺨을 강타하는 손바닥.
“멘탈 챙겨. 질질 짜는 거 질색이니까.”
“미, 미안…….”
뺨 한 대로 성훈이는 집 나간 정신을 되찾은 듯했다.
세연이 말이 맞다.
어차피 여길 나가는 법 따위는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태창.”
──────
[이진현 / Lv2]
[배후신]
귀축 용사
[스탯]
체력: 2
근력: 3
민첩: 1
마력: 0
스탯포인트: 5
[스킬]
딸감 버프
──────
“상태창을 봐.”
“왜?”
“뭐가 달라진 걸 모르겠어? 내 레벨이 올랐잖아. 너희도 확인해 봐.”
내 예상대로였다.
우리의 레벨은 모두 2레벨로 상승해 있었다.
그와 함께 5만큼의 스탯 포인트도 주어진 상태였다.
“우린 더 강해질 수 있어. 스탯은 아직 함부로 찍지 마. 전략을 짜자. 고블린 킹을 상대할 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어떻게 찍어야 하는데? 뭐가 좋은 건지 알 수 있어?”
“난 모르지. 근데 우리한테는 조력자가 있잖아.”
나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곧 배후신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귀축 용사가 흥미를 보입니다.]
“당신도 우리가 오래 살아남아야 좋은 거잖아? 그러니까 힌트 정도는 줄 수 있겠지? 각 스탯에 대해서만 설명해 줘.”
[귀축 용사가 당신의 통찰력을 칭찬합니다.]
여느 소설에서 그런 것처럼, 이곳의 배후신에게도 목적이 있겠지.
플레이어가 활약하면, 배후신에게도 이득이 있으니까 우릴 선택하고 돕는 거다.
아직은 그들의 목적에 대해서 알 수 없지만.
[체력은 지구력과 직결된다고 전합니다.]
[근력은 순간적인 힘의 세기와 직결된다고 전합니다.]
[민첩은 반응 속도를 빠르게 한다고 전합니다.]
[마력은 일부 스킬의 힘을 강화한다고 전합니다. 지금은 쓸모가 없다고도 전합니다.]
배후신은 스탯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특이한 점이 있었다면, 민첩이 곧 스피드와 연결되는 건 아니라는 것.
속도는 아무래도 근력에 영향을 받는 것 같았다.
“그 괴물을 상대하려면 근력을 찍어야 할 것 같은데.”
“아니. 세연이 넌 체력에도 투자해야 돼.”
“왜?”
“현자 타임 버프는 지속 시간이 짧아. 하지만 딸감 버프는 조절만 잘하면 340분도 유지할 수 있어.”
내 말에 세연이의 시선이 밑으로 향했다.
명백히 내 자지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40분? 진짜로……?”
“조절 잘하면 된다고.”
아무리 내 자지가 허접 자지라지만, 얘는 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
자존심 상하네.
“흐흠……. 그래서 왜 체력에 투자해야 한단 건데?”
“지금껏 싸우면서 느낀 점이 없어? 누군가와 싸운다는 건 체력 소모가 엄청나다고. 세연이 넌 적어도 30분은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만드는 게 좋아.”
딸감 버프를 이용한다면 김세연이 가장 먼저 싸우게 된다.
싸움의 기술로만 따지면 누가 봐도 김세연이 최고니까, 그녀가 고블린킹의 체력을 빼놓는 게 베스트.
“나는 근력에 몰빵할게. 세연이가 녀석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현자타임 버프를 받은 내가 최후의 일격을 날려야 할 테니까.”
김세연이 체력을 빼고, 내가 처리한다.
연속된 버프를 이용한 작전이었다.
내 말을 듣고 있던 성훈이 놈이 물었다.
“그럼 난 뭐해?”
“넌 적당히 죽지 않을 만큼만 도와. 너한테 버프가 갈 일은 없을 테니까.”
“…….”
아무리 레벨이 올랐다고 해도, 버프 없이 고블린킹과 싸우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니 강성훈은 자동으로 깍두기 처리.
“우선 1층을 더 돌아보자. 고블린이 보이면 사냥하고, 고블린킹이 보이면 도망치면 되니까.”
우린 너무 일찍 보스몹을 발견했다.
그러니 1층을 더 탐험할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뜻밖의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
던전 곳곳에는 상자가 있었다.
그 안에서 금화나 오래된 빵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손에 쥐는 순간 금화는 사라지며 상태창에 기록되었다.
아마 나중에 쓸모가 있겠지.
뻑뻑한 빵 덕에 식량은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물이었다.
상자 안에서 생수병이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친절은 없었다.
결국 우린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을 마셔야만 했다.
벌레가 둥둥 떠다녀서 처음에는 다들 주저했지만, 탈수 증세가 시작되자 없어서 못 마시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생존한 지 3일째.
이제 우리의 레벨은 3으로 올랐다.
전에 비하면 제법 강해진 상태다.
버프까지 받는다면 고블린 킹 정도는 손쉽게 이길 수 있을지도?
4일째 새벽으로 추정되는 시간.
차가운 벽돌 바닥에서 불편한 잠을 청하고 있는데, 스윗 성훈이가 나를 깨웠다.
“진현아. 일어나 봐.”
“왜…….”
“부탁이 있어.”
“뭔데…….”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성훈이의 결연한 얼굴이 보였다.
어쩐지 느낌이 온다.
이 새끼. 웬지 멍청한 소릴 할 것 같다.
“내가 세연이 좋아하는 거 알지?”
“어. 고백했다가 차였다며.”
“아직 좋아하고 있어……. 그래서 도무지 세연이가 네 딸감으로 쓰이는 걸 보고 있을 수가 없더라.”
“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한숨을 푹 내쉰 강성훈.
결심한 듯한 눈빛의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세연이 대신 나를 딸감으로 써줘!”
“???”
웃음기가 없었다.
이 황당한 말이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라는 뜻이었다.
널 딸감으로 쓰라고?
이거 미친놈 아니야?
그딴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거야? 진심으로?
“성훈아.”
“응.”
“그거 알아?”
“뭐가?”
“사실 후장에 박으면 영구 버프를 받을 수 있어.”
“?”
“일시 버프보다는 영구 버프가 낫잖아? 바지 벗어 씹련아.”
난 똥게이가 아니다.
개소리를 위해 내 잠을 방해한 죄로 성훈이를 조금 놀려주려는 것뿐.
“윽! 미, 미안! 미안해!!”
“이미 늦었어. 씨발.”
지금 나는 성훈이보다 힘이 세다.
근력에 스탯을 몰빵했기 때문이지.
녀석에게 개통의 공포를 심어주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귀축 용사가 당신의 폭 넓은 취향을 칭찬합니다.]
내가 성훈이의 바지를 잡고 늘어지고 있는 사이, 세연이가 잠에서 깼다.
우리를 본 그녀의 표정은 썩어 있었다.
“드러워.”
“…….”
“…….”
아니, 세연아 오해인데.
이거 그냥 장난이라고…….
마른 세수를 한 세연이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이진현. 잠깐 따라와 봐.”
“응? 왜?”
“상의할 게 있으니까.”
성훈이를 뒤로한 채 우리는 방을 나섰다.
“상의할 게 뭐야?”
“그거 진짜야?”
“뭐가?”
평소의 기세와는 다르게 부끄러운 듯 머뭇거리는 세연이.
아무도 없을 게 뻔한데 괜히 주변을 살피기까지 했다.
볼이 발그레진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뒤로 하면 영구 버프라는 거, 진짜냐고.”
“???”
어…… 음……?
그러니까 영구 버프가 진짜면?
뒤로 하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