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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딸감을 자처한다-7화 (7/74)

〈 7화 〉 ‘딸감’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1)

* * *

‘딸감’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1)

오정연.

그녀는 내가 복학하기 전에 먼저 졸업한 동기였다.

오랜만에 그녀의 얼굴을 보니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1학년 MT에서 같은 조였었지.

그녀는 술 게임에 걸릴 때마다 내게 흑기사를 요청했고, 나는 술을 진탕 마시고 뻗었었다.

마실 때는 좋았다.

나도 썸이란 걸 타게 되나 싶어서.

하지만 새벽에 깨어났을 때, 정연이는 복학생 선배와 팔짱을 끼고 앉은 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시발련.

“아니지? 그거 아니지……?”

불쾌함을 넘어 공포가 스며 있는 목소리.

그녀의 손가락에서 세연이 얼굴에 묻어 있던 정액이 늘어지고 있었다.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

솔직하게 말했다간 억울하게 욕이나 먹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세연이의 멘탈이 무너질 것 같았다.

……어떻게든 대충 둘러대자.

“무슨 생각을 하는 건데?”

“무, 무슨 생각이냐니! 세연이 머리 위에 딸감이라고 써 있잖아!”

“딸감이 뭔데?”

“그건……! 그…….”

내가 계속 모른 척을 하자 정연이는 진땀을 뺐다.

이젠 더욱 뻔뻔하게 개소리를 싸지를 차례였다.

“너희들도 배후신이 있지?”

“당연하지.”

“딸감은 한국말이 아니야. 배후신들의 언어지. 직역하자면…… 사냥꾼이란 뜻이야.”

“사냥꾼?”

“그래. 세연이는 하급 사냥꾼이라는 칭호를 받아 우리를 구했거든. 세연이가 육상 엘리트 출신인 건 알지? 엄청 잘 싸운다니까?”

두 동기는 아직 긴가민가한 표정이었다.

역시 너무 개소리였나.

하지만 흔들리면 안 된다.

어찌 됐든 세연이 얼굴에 싼 건 나니까, 책임도 져야지.

“그리고 얼굴에 묻은 건 화이트 슬라임의 체액이야. 너희들도 슬라임과 싸웠다면 알아봤을 거 아냐?”

“우, 우린 고블린이랑만 싸웠어.”

“아 그래? 1층이라고 다 같은 1층이 아닌가 보네.”

“…….”

당당한 태도로 말하고 있었지만 조마조마했다.

귀축 용사를 비롯한 배후신들이 끼어들어 진실을 폭로해 버릴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웬일로 배후신들은 조용했다.

“세연아. 이진현 말이 진짜야?”

“응……? 어! 응응!! 슬라임 때문이야!”

“그렇구나. 난 또 딴 건 줄 알았네……. 어쩐지 냄새가 다르더라.”

손에 묻은 액체를 치마에 슥슥 비벼 닦는 오정연.

응~ 그거 내 정액이야~

그때, 오정연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중요 부위가 찢어진 청바지 때문이었다.

“세연아. 너 근데 바지가…….”

“싸우다가! 싸우다가 찢어진 거야!!”

“아, 그렇지?”

“응! 절대로 막, 야하고, 그런 거 아니야! 나 유교걸인 거 너네도 잘알잖아!”

“?”

나는 지긋이 세연이를 바라보았다.

입 닥치라는 신호였다.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 의심을 사고 그래?

“이걸로 가려.”

“응…….”

겉옷을 벗어 세연이에게 건넸다.

안에 속티가 있어서 상탈 상태가 되지는 않았다.

민망한 듯 붉어진 얼굴로 허리에 옷을 묶는 세연이.

정연이가 그런 세연이를 토닥이며 말했다.

“저쪽으로 가면 잡다한 물건을 파는 곳이 있거든? 옷도 팔고 있으니까 같이 가보자.”

대기실이라는 곳에는 상점도 있는 모양이었다.

오랜 전투로 지쳐 있었는데 잘됐네.

음식과 깨끗한 물이 있으면 좀 사야지.

무기나 방어구도 있다면 코인을 지불해서 사야겠다.

이 망할 놈의 배후신이 주는 무기라고는 러브젤 같은 것밖에 없으니까.

“강성훈. 좀 일어나라 이제.”

아직 쓰러져 있는 성훈이의 뺨을 톡톡 쳤다.

그러자 꿈틀꿈틀하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 중얼거렸다.

“나도 딸칠래…… 나도…….”

“?”

갑자기 웬 딸.

대체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던 거냐.

*

우리는 1층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며 걸었다.

오정연과 박지나는 다른 친구 한 명과 함께 싸웠다고 말했다.

우리와는 달리 보스몹이 따로 없었고, 고블린 30마리를 사냥하는 것이 공략 목표였다고 한다.

우리도 같은 조건이었다면 훨씬 쉬웠을 텐데.

공략의 난이도는 각 파티마다 다른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에 말하기는 뭐하지만, 세연이 넌 더 예뻐진 것 같아.”

“화장도 엉망이 돼버렸는데 무슨.”

“아냐. 정말이야. 얼굴이 더 좋아졌다니까.”

박지나의 말은 사실이었다.

세연이는 탑에 들어오기 전보다 더 예뻐졌다.

칭호 덕분이지.

[하급 딸감이 되어 동료를 구한]

­외모 +1

­매력 +1

김세연이 부여받은 저급한 칭호는 그녀의 외모와 매력 스탯을 올려주었다.

저 칭호를 달고 있는 것만으로 더욱 훌륭한 딸감이 된다는 뜻이겠지.

그녀를 딸감으로 써 버린 건 미안하지만, 내 덕에 더 예뻐졌으니 세연이가 나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말을 했다간 맞아 죽겠지.

마침내 작은 상점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뜻밖에도 그곳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 100명 정도?

놀라운 건 그 중 20명 정도는 아는 얼굴이었다는 점이다.

“어? 쟤 김세연 아니야?”

“오 이진현이다! 너희도 살아서 왔구나!”

“강성훈!”

주로 대학교 동기, 선후배들이 많았다.

우리 과 교수님도 계셨고, 타과생들도 보였다.

이거 뭐지?

대학교 사람들이 통으로 전이된 건가?

대화를 나누어봤지만, 그들도 딱히 아는 건 없었다.

대충 대학교를 중심으로 이런 일이 벌어졌으리라 추측할 뿐.

지인들과 인사를 나눈 우리는 상점으로 들어가 물건을 살폈다.

“난 옷 좀 골라올게.”

“같이 가자. 나도 쓸만한 게 있으면 사려고.”

세연이와 함께 옷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바닥에 산처럼 쌓여 있는 옷들.

하나 같이 낡아 빠진 옷들만 보였다.

마치 구제 도매시장 같은 느낌이었다.

이건 너무 낡았고.

이건 너무 냄새난다.

이건…… 왜 피가 묻어 있지?

한창 고르고 있는데, 어느새 옷을 구매하고 갈아입기까지 한 세연이가 내 앞에 섰다.

“아직도 고르고 있어?”

역시 세연이는 패션 센스가 다르다.

이 쓰레기 산에서 꽤 괜찮은 스타일의 트레이닝 세트를 골라낸 것이다.

“음…….”

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옷이 더러워 보이지도 않았고, 냄새도 없었다.

다만, 나와는 상성이 맞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나는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근데 세연아. 너 그렇게 입으면 하나도 안 꼴리는데, 안에 섹시한 옷 입어주면 안 돼?”

“?”

의문에서 경멸로 바뀌어 가는 세연이의 얼굴.

욕할 가치도 없다고 느꼈는지, 그녀는 내게 빠큐를 날리고 지나쳤다.

어이없네.

내가 못할 말한 것도 아니잖아?

우리 생존이 달린 문제인데!

문득 불안감이 엄습했다.

탑은 우리를 다이렉트로 2층에 보내지 않고 대기실에 사람을 모았다.

왜지?

혹시 파티가 변경되려나?

그럼 나 세연이에게 버림받는 거 아냐?

이제 누가 딸감 해주냐?

상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더 구매했다.

짧고 낡은 검과 생수 3통, 뻑뻑한 빵 3개, 찢어지기 직전인 낡은 배낭, 두껍고 냄새나는 겉옷 하나.

먼저 도착한 놈들이 싹쓸이를 한 탓에 그다지 쓸 만한 물건은 없었다.

그래도 가방과 옷은 사야만 했다.

탑의 환경이 갑자기 바뀌기라도 하면 곤란했으니까.

물건을 구매한 후.

그나마 안면이 있던 남자애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붉은 고블린 때문에 명훈이가 죽었어.”

“유감이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이럴수록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우릴 이곳에 끌고 온 개자식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복수해주자고.”

“맞아. 우리한테도 능력이 있으니까……. 참, 넌 스킬 있어? 배후신은 누구야?”

“딱히 대단한 것 같지는 않아. 허수아비 농사꾼이라는 배후신인데, 감자를 얻는 스킬이 있어.”

“감자? 그거 대단한데? 식량 걱정은 없는 거잖아?”

“뭐, 그렇지. 그래도 난 우신이가 부럽다. 걔는 신속의 명사수라는 배후신의 선택을 받았는데, 활을 기가 막히게 쏘더라고…….”

“진현아. 네 배후신은 이름이 뭐야?”

“어?”

갑자기 내게로 주목된 시선.

시발.

나한테 왜 그래.

그냥 니들끼리 얘기해.

“아, 내 배후신은 특별한 게 없어서. 별로 재미없을 거야.”

“그래도 농사꾼인 나보다는 낫겠지. 뭐 어때? 얘기해 봐.”

귀축 용사라고, 딸딸이를 치면 딸감이 강해지는 스킬이 있어. 주무기는 미끈미끈해서 기분이 좋아지는 러브젤이야. 내 고추를 더욱 단단하게 해주지.

­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대충 얼버무리려야지…….

입을 떼려는 그때,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내 앞에만 떠오른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곧 어떤 영상이 재생되었다.

로브를 써 얼굴을 가린 남자가 말을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플레이어 여러분. 저는 탑의 관리자입니다. 먼저 1층 공략에 성공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재잘재잘 떠들던 소리는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탑의 관리자가 하는 말이라면 이 곳의 정체에 대해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모두가 화면 속 남자의 음성에 집중했다.

­지금부터 간략히 탑의 시스템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벌써 눈치채셨겠지만, 하나의 층을 공략하시면 대기실로 이동됩니다. 대기실에서는 NPC로부터 물건을 구매하는 등의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탑에는 여러 대기실이 존재하며, 층수와는 관계없이 다른 플레이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탑 내부에는 여러 개의 대기실이 존재하므로, 그때마다 다른 대기실에 배정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의 심적 안정을 위하여 되도록 현생의 인연이 많은 대기실로 배정되도록 설정해두었습니다.

왜 대학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지 이제야 알겠다.

지인들이 많은 대기실로 꾸겨 넣다보니, 대학교 사람들이 많이 몰린 거겠지.

근데 이게 왜 심적 안정이야?

나처럼 배후신이 부끄럽거나 세연이처럼 딸감 칭호가 붙은 경우엔 벌칙이나 다름없다고!

­현재 지구 인원의 약 10%가 탑에 도전 중이며, 숫자가 줄어드는 만큼 새로이 충원될 예정입니다.

“뭐, 뭐라고?”

“10퍼센트나……?”

예상치 못한 설명에 술렁이는 소리가 일었다.

그리고 다음 설명이 이어졌을 때, 우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1층의 도전자는 약 7억 7천 명이며, 현재 약 5억 9천여 명이 탈락했습니다. 탈락자 비율은 77%입니다.

“77퍼센트나 죽었다고……?”

“말도 안 돼!”

“왜 이딴 살인 게임을 벌이는 거야 대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외침.

그러나 로브 쓴 남자는 우리의 말을 들을 수 없는 듯했다.

­다음 공략까지는 약 3시간이 남았으며, 한 파티의 인원은 최대 5명입니다. 지금부터 자유롭게 파티를 구성하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1층은 튜토리얼이었습니다. 2층부터는 본격적으로 난이도가 상승할 테니, 신중하게 파티를 선택해 주세요. 무운을 빕니다. 대기실에서 또 만날 수 있기를!

픽.

그게 끝이었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교차했다.

불합리한 상황에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똑똑한 사람들은 벌써 파티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1층도 개빡쎘는데, 그게 튜토리얼이었다고?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세연이를 잡아야 한다.

*

“세연아. 나랑 파티 해줄 거지?”

“꺼져.”

세연은 진현의 파티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그 매정한 반응에 진현은 꽤나 상심한 듯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세연도 몹시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들의 수준은 고만고만했다.

그나마 자신이 강한 편에 속한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닭대가리들 사이에서도 학들이 존재하기는 했다.

“저희랑 같이 하실래요? 저 레벨 5거든요. 상태창 확인해 보세요.”

다부진 체격의 남자.

운이 좋아 1층에서 레벨 5를 달성한 유일한 플레이어였다.

그를 제외하고도 꽤 많은 플레이어들이 세연에게 파티를 제안해왔다.

그러나 모두 거절했다.

‘예상은 했지만 어떻게 싹 다 남자지? 하여튼 남자 새끼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자에 환장하는구나…….’

세연에게 파티를 제안한 건 전부 남자였다.

그것도 힘 센 남자.

유교걸 김세연의 눈에는 자신에게 파티를 제안한 남자들이 전부 음흉한 늑대로 보였다.

만약 그들이 돌변하여 세연을 겁탈하기라도 한다면, 저항할 방법은 없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여자들과 파티를 이루자니, 유능한 파티에는 자리가 없었다.

허접들과 함께 하기에는 2층의 난이도가 마음에 걸렸고.

‘어차피 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면, 그래도 아는 쓰레기가 낫지 않나? 이진현은 나보다 약하기도 하고.’

그럴 거라면 차라리 이진현과 함께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고민하던 와중이었다.

한 남녀 커플이 세연에게로 다가섰다.

“세연아. 너 세연이 맞지?”

“……건우 선배?”

“진짜 오랜만이다.”

박건우는 활짝 웃었고,

김세연은 얼굴을 구겼다.

박건우.

그는 신입생 세연을 과탑 인기녀에서 아싸로 만들어 버린 원흉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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