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딸감’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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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감’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뜻이 절대로 아닙니다 (2)
스물.
단어에서부터 파릇함이 느껴지는 나이.
한국 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스무 살 김세연은 먹이사슬 상위의 대학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야야. 쟤가 내가 말했던 애야.”
“쟤가 우리 과라고?”
“어. 대박이지?”
“개이쁘네…….”
자신을 보고 수군거리는 남자들.
하루에도 몇 번 그런 소리가 들려오곤 했으니, 아마 세연이 듣지 못하는 곳에서는 훨씬 더 했을 것이다.
남자들의 지나친 관심은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쩐내 나는 수험 생활에서 막 벗어난 세연에게 그러한 관심은 즐거운 편이었다.
밖에만 나가면 내가 주인공.
수업 시간에도, 교내 활동에서도, 회식 자리에서도 세연은 늘 빛났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여름 MT 때 일어난 일 때문이었다.
“세연아. 술 많이 취한 거 아니야?”
“괜찮아요.”
“나도 좀 취해서 그런데, 같이 바람 좀 쐬고 올까?”
“그러죠 뭐…….”
박건우.
군대를 마치고 복학한 3학년 선배이자, 한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부학생회장이었다.
잘생긴 얼굴과 다부진 몸.
매너가 좋고 건실한 이미지의 박건우는 세연의 동기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게다가 부학생회장이라는 지위까지 있었으니, 뭣도 모르는 1학년 입장에서는 그가 대단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펜션에서 조금 떨어진 으슥한 벤치.
건우는 그곳에서 세연에게 고백했다.
“세연아. 나 너 좋아하는 것 같다. 나랑 사귈래?”
“……아니요.”
건우가 대단한 인기남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세연은 그에게 큰 끌림이 없었다.
건우의 주변에는 여자가 너무 많기도 했고, 당시 세연의 콧대는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솟아 있었으니까.
그렇게 끝났어야 할 이야기이건만.
자존심이 상한데다 술에 취한 건우는 선을 넘고 말았다.
“너 얼굴에 뭐 묻었다.”
“네? 윽……! 뭐예요?!”
난데없이 세연의 입술을 덮치려는 박건우.
세연은 육상부 선출의 순발력을 발휘하여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하. 밀어?”
“뭐, 뭐 하는 거냐고요! 이거 놔요!”
건우가 세연의 손목을 잡아 힘으로 눌렀다.
아무리 선출 세연이라고 해도, 건장한 성인 남자를 힘으로 이길 수는 없었다.
“가만히 있어. 기분 좋은 거 가르쳐줄 테니까.”
“소, 소리 지를 거예요! 읍!!”
건우가 세연의 입을 틀어막고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너 나 좋아하잖아? 아니야? 내숭 그만 떨어 짜증 나려고 하니까.”
알콜 냄새가 짙었다.
이제 보니 건우의 눈동자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풀려 있었다.
‘대체 뭐지? 설마 강간하려고?’
찰랑
박건우가 벨트를 풀었다.
그가 바지를 내린 순간.
세연은 주먹을 뾰족하게 세워 그의 주니어를 가격했다.
“꺼지라고!”
퍼억!
“오곡……!”
박건우는 뿅 가 버린 표정으로 고꾸라졌고, 세연은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다음 날에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MT가 끝난 후 학교로 돌아갔을 때, 세연은 ‘국썅’이 되어 있었다.
“야. 국썅 온다.”
“국썅이 뭐야?”
“국문과 썅년 몰라? 쟤가 건우 오빠 가지고 놀았다잖아.”
“남친 있는데 대놓고 꼬셨다더라.”
“대박. 생긴 것부터 그렇게 생겼더라니…….”
“어떻게 학교 나올 생각을 하지?”
“뻔뻔한 년.”
세연은 건우와 있었던 일을 비밀에 부쳤으나, 건우는 세연을 하루아침에 쓰레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선빵필승.
부학생회장인 건우의 영향력은 과내에서 절대적이었고, 세연은 반격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휴학을 때려야만 했다.
찰랑
아직도 박건우가 벨트를 푸는 그 소리가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남자에 대한 불신이 생겨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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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연아. 너 세연이 맞지?”
“……건우 선배?”
“진짜 오랜만이다.”
그런 박건우가, 지금 자신의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잘 지냈어?”
“잘 지내든 말든 뭔 상관이에요?”
“그렇지. 지금 그런 말 할 때가 아니긴 하지. 근데 너 머리 위에…….”
“!”
건우의 시선이 세연의 정수리 위로 향했다.
[★☆하급 딸♡감이 되어 동료를 구한 김세연☆★]
이진현에 의하여 새겨진 천박한 문구.
대기실에서 이 문구 때문에 줄곧 곤란했다.
남자들이 세연에게 파티를 제안한 건, 어쩌면 이 천박한 칭호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 이거 그런 뜻 아니거든요?!”
“응? 그럼 무슨 뜻인데?”
“배후신들의 언어로 딸감은 사냥꾼이라는 뜻이라고요! 멋대로 오해하지 마요! 기분 나쁘니까!!”
“아아. 그렇구나.”
그냥 변명하지 말걸.
이진현이 말할 때는 분명 그럴듯했는데, 자신의 입으로 말하자니 그렇게 구차할 수가 없었다.
“참. 소개를 안 했네. 여긴 내 여자친구 송다희야. 다희야. 여긴 우리 과 후배 김세연.”
“안녕하세요. 송다희라고 해요.”
“……김세연이에요.”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여자친구를 나에게 소개하는 걸까?
한번 해보자는 건가?
어쩌면 박건우는 자신의 행동을 까먹었을지도 몰랐다.
혹은 만취한 상태여서 기억조차 못 하거나.
“파티할 사람 없으면 우리랑 같이 하는 건 어때?”
“저랑요? 대체 왜요?”
“그야…… 우린 선후배 사이고, 옛날에는 친했잖아.”
박건우의 눈빛은 한없이 착해 보였다.
누구나 그를 좋게 여길 법했지만, 세연은 그 위선이 구역질이 날 뿐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이 마치 복수의 기회처럼 느껴졌다.
“선배네 파티 두 명이 끝이에요?”
“응. 한 명은 1층에서 그만…….”
“마침 잘됐네요. 저희는 셋이거든요.”
“정말? 나도 아는 애들인가?”
“이진현이랑 강성훈이요. 제 동기들이니까 아실걸요?”
“아아! 걔네 알지! 진짜 잘됐다.”
세연은 순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물론 그 미소 뒤에는 음흉한 계획이 숨어 있었다.
‘그래. 아주 잘됐지 이 개새끼야. 네 여친이 이진현의 딸감이 됐을 때, 네 표정을 볼 수 있을 테니까.’
*
“씨발 세연아. 지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만난 세연이는 헛소릴 지껄이고 있었다.
내 귀를 의심할 정도의 헛소리.
“건우 선배랑 같이 하기로 했다고. 너희도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아.”
“대체 그 쓰레기 새끼랑은 왜?!”
나와 성훈이는 세연이에게 전해 들었기에 박건우의 실체를 알고 있었다.
사실 세연이에게 얘기를 듣기 전부터 박건우가 쓰레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새끼는 예쁜 신입생마다 따먹고 다니는 걸로 아주 유명한 씹새끼였으니까.
“그래 세연아! 다시 생각해 봐! 우리 파티에 쓰레기는 이진현 하나만으로 족하잖아!!”
그나저나 강성훈 이 서윗남은 언제 떨구지?
별 도움도 안 되는데 그냥 네 명이서 하자고 할까?
그때, 세연이가 우리 둘의 어깨를 붙잡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들 친구지?”
“당연히 친구지.”
“으응……. 친구라도 될 수있다면…….”
“이진현. 네가 좋아하던 후배 박건우가 가로챘다며.”
“그랬지. 정확히 말하면 가로챈 게 아니라 그냥 둘이 눈 맞은 거지만.”
“강성훈. 너는 아주 대놓고 여친을 뺏겼잖아.”
“뺏긴 건 아니고 환승이었어.”
“네 전여친이랑 박건우랑 며칠 사귀었다고 했지?”
“3일…….”
“환승이 아니라 먹버네.”
“그러네……. 박건우 개새끼……!”
박건우는 개쓰레기 망나니였다.
마치 만화 속 금태양 같은 놈이었지.
나야 그렇다 치지만, 성훈이는 진짜로 여친을 빼앗겨 버린 케이스였다.
그것도 3일 먹버.
나도 여친이 있었다면, 박건우에게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휴. 모쏠이라서 다행이야.
“그러니까 우리 다 복수할 동기는 충분하잖아.”
“야 김세연. 너 설마…….”
“맞아.”
세연이의 눈이 무섭게 빛났다.
아무리 사람이 밉다지만, 그래도 그건 좀 심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건 좀 심하잖아…….”
“?”
세연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내게 꿀밤을 먹였다.
“누가 죽인대? 내가 싸이코패스냐?”
“죽이려는 게 아니었어?”
“당연히 아니지! 그냥 네 능력을 이용하려는 것뿐이라고.”
“?”
내 능력을 이용한다고?
딸감 버프를 얻어서 박건우를 죽지 않을 만큼 패 버릴 생각인 걸까?
“박건우 걔, 여친이랑 같이 있더라고.”
“!”
“그러니까 일부러 위기를 만들어서 박건우 여친을 보고 딸딸이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 가는 거지. 박건우는 자기 여친이 딸감으로 전락하는 걸 무력하게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어. 아마 낙인까지 찍히겠지. ‘이진현의 딸♥감이 된 박건우 여친’. 뭐 이런 식으로.”
“너 천재냐?”
내겐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잖아!’ 방패가 있다.
이걸 이용하여 박건우의 멘탈을 부순다는 것이 세연이의 계획이었다.
그건 박건우를 죽이거나 죽도록 패는 것보다 죄책감도 더하고, 쾌락은 더욱 큰 복수였다.
“같이 할 거지?”
알파메일의 여친을 NTR해 버린다?
이건 못 참지.
“씨이발 빨리 하자.”
“나야 끼워만 준다면 하지. 근데 그 계획에서 난 뭘 하면 되는 건데?”
“넌 가만히 있으면 돼.”
“…….”
그렇게 조별 과제 밥 친구 3인방은 다시 뭉치게 되었다.
그런데 문득 걱정이 들었다.
그 대단하신 박건우의 여친이니까 보나마나 예쁠 테지만, 내 취향이 아니면 어쩌지?
“근데 세연아.”
“왜?”
“박건우 여친 어떻게 생겼어?”
“그냥 귀엽게 생겼어.”
“너보다 예뻐?”
“……나보다 예쁘면 뭐 어쩌게.”
세연이의 이마에 순간적으로 힘줄이 솟아났다.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니, 물어볼 수도 있지.
반응이 왜 그리 살벌해?
“네가 더 예쁘면 곤란하잖아. 더 예쁜 쪽으로 눈이 가는 건 본능이니까…….”
“흠. 뭐, 그건 그렇지.”
그래도 예쁘다는 말이 싫지는 않은지, 세연이의 화는 금방 풀어졌다.
“생각해 보니까 괜찮겠다. 세연이 너 옷 하나도 안 꼴려서 눈이 안 갈 듯.”
세연이는 자신의 옷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더니 주먹을 쥐어 보였다.
“진짜 뒤지고 싶냐?”
“?”
또 다시 화를 내는 다혈질 세연이.
아무래도 뭔가 오해를 한 것 같다.
“그런 뜻이 아니야. 넌 당연히 꼴리지. 가슴도 크고 엉덩이도 개쩔고 얼굴도 내 스타일인데. 근데 그 펑퍼짐한 트레이닝복이 안 꼴린다는”
“그냥 죽어 변태 새끼야!”
결국 나를 향해 진심 펀치를 날리는 그녀.
아니 이건 외모 품평이 아니라니까?
생존을 위한 상황 분석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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