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어디, 나 없이 잘 사나 보자 (4)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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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나 없이 잘 사나 보자 (4)
2층 공략 10일째.
1층과 달리 2층은 상당히 넓었다.
10일 동안 쉴 새 없이 움직였음에도, 아직 전체를 탐험하지 못한 상태.
식량은 보물 상자에서 나오는 퍽퍽한 빵으로 버틴다고는 하지만, 식수가 문제였다.
“웅덩이다…….”
바닥에 고인 물을 본 세연이가 읊조렸다.
작은 날벌레 시체가 둥둥 떠 있는 고인 물.
역겨웠다.
“물 얼마나 남았지?”
“세 통 반…….”
“이제 슬슬 아끼지 않으면 안 되겠네.”
“김세연이 씻는다고 물 낭비만 안 했어도 썩은 물은 안 마시는 건데.”
“나, 나도 이럴 줄 몰랐지!”
사실 세연이 탓을 하기도 뭣한 게, 우린 물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사왔다.
공략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설마 물이 모자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근데 여기서 10일이나 버티게 될 줄 누가 알았겠냐고.
“……내가 먼저 마실게.”
세연이가 웅덩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서 상체를 숙이는 그녀.
후 불어 날벌레 시체를 멀리 보낸 그녀가 마치 고양이처럼 고인물을 할짝거렸다.
“맛은 괜찮네. 썩은 것 같진 않아.”
“잘됐네. 빨리 마셔. 목마르다.”
맛을 확인한 그녀가 물을 빨아들였다.
1층에서부터 느꼈던 거지만, 세연이처럼 예쁜 애가 납작 엎드려 지저분한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은근히 꼴린다…….
내가 원래 이렇게 쓰레기였나?
혹시 귀축 용사에게 영향을 받아 뇌가 절여진 것은 아닐까?
고인물로 목을 축인 우리는 계속해서 이동했다.
성훈이의 지도를 보며, 아직 탐사하지 못한 곳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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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2층]
튜토리얼은 끝났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됩니다.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내 옆의 동료를 소중히 여기세요! 동료를 놓치는 순간, 공략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공략 조건]
보스몹 사냥.
[제한 시간]
없음.
[난이도]
보통.
[현재 인원]
4명.
이진현 (귀축 용사)
강성훈 (껍질 기사)
김세연 (마녀 사냥꾼)
송다희 (돌연변이 짐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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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목표는 보스몹을 찾는 것.
그 정체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조금 불안한 것은 인원 알림이었다.
“근데 박건우 말이야. 역시 죽은 거겠지?”
“인원에 안 뜨는 걸로 봐서는 아마도…….”
다른 애들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성훈이와 속삭였다.
[현재 인원]에 박건우가 사라진 것으로 보아, 그는 아마 죽어 버린 것 같다.
“성훈아. 이 설명도 좀 불안하지 않냐?”
“뭐가?”
“동료를 놓치는 순간, 공략이 더 어려워질 거라잖아.”
“그야 인원이 적어지면 힘드니까 그런 거겠지.”
성훈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야 누렁이.
시스템 창 속에 힌트가 있는 건 기본 상식이라고?
그때, 앞서가던 세연이가 소리쳤다.
“뭔가 있어!”
스릉
일제히 무기를 드는 우리들.
10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싸웠더니, 이제 전투를 준비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꾸물꾸물…….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아주 기분 나쁜 꾸물거림으로.
“심상치가 않아……. 이진현.”
“왜?”
“바지 벗을 준비해.”
“…….”
드디어 버프를 줄 때가 온 건가?
오랜만에 하려니 또 부끄럽네…….
벨트를 풀고 있는데,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끄어어어어…… 끄아아아아아아…….”
“뭐, 뭐야 저거…….”
“건우 오빠?”
그건 박건우였다.
아니, 분홍 젤리와 하나가 된 박건우라고 해야 하나?
거대한 분홍색 젤리가 박건우의 시체를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귀축 용사가 반가워합니다.]
[저 괴물은 핑크 슬라임으로, 대상을 성적으로 유혹하여 잡아먹는 귀여운 괴물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른 생물의 성적 호기심을 본능적으로 자극할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설명합니다.]
[게다가 잡은 생물로 다른 생물을 유혹하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많은 생물을 잡아먹을수록 강해지니 조심하라고도 이릅니다.]
[그냥 붙잡혀서 실컷 쑤셔지는 것도 나름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입니다.]
갑자기 분위기 나무위키.
아무래도 섹스랑 관련된 괴물을 좋아하나 본데…….
이거 가능충이네.
게다가 쑤셔진다니?
이 새끼 후장도 개통된 놈인가?
내 배후신은 진짜 알면 알수록 극혐이다.
“거, 건우 오빠!”
박건우의 모습이 보이자, 송다희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그의 포옹을 매몰차게 거절했던 그녀였지만, 막상 그가 떠나가고서 제일 걱정했던 것도 그녀였다.
아무래도 후회스러웠겠지.
꿀렁…… 꿀렁…….
핑크 슬라임은 박건우를 가까이 들이밀었다.
우린 무기를 겨눈 채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건우 오빠! 말 좀 해 봐! 살아 있는 거야?”
“끄어어어어…….”
박건우는 죽었다.
눈깔이 하나 빠지고, 혀가 축 늘어져 있는 게 그 증거였다.
핑크 슬라임은 송다희를 유혹이라도 하려는 건지, 박건우를 흔들기 시작했다.
통. 통. 통.
앞뒤로 골반을 튕기는 박건우.
그는 마치 교미를 하는 듯한 시늉을 시작했다.
유혹의 댄스였다.
“세에에엑스으으으으으…… 세에에엑스으으으으으…….”
“오, 오빠?”
“뒤로 빠져 송다희! 저 새끼 죽었어.”
“하지만, 아직 말을 한다고요!”
“넌 저게 살아 있는 걸로 보여?”
“흑…… 오빠가 나 때문에…….”
결국 즙이 터져 버렸다.
그녀의 흐느낌 위로 ‘세에엑스으으’를 외치는 음침한 음성이 덮였다.
“다들 뒤로 물러서. 얼마나 강한지 내가 먼저 확인해 볼 테니까.”
커다란 검을 어깨에 댄 채로 전투를 준비하는 세연이.
역시 우리 리더는 든든하다.
그런데 송다희가 문제였다.
“언니. 설마 건우 오빠를 베려는 건 아니죠?”
“이미 죽었다니까?”
“살아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차라리 제가 확인해 볼게요! 슬라임만 골라서 처리하면 건우 오빠를 살릴 수 있을 거예요!”
“안 돼!”
세연이 말리려고 했지만 다희는 막무가내였다.
그녀는 핑크 슬라임에게로 직진했다.
세연이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이진현! 세웠어?!”
“당연.”
“빨리 딸 쳐! 다희 보고!!”
“이미 치고 있어.”
탁탁탁.
[★☆이진현의 딸♡감이 된 송다희☆★]
다희는 딸감 버프를 받고 있는 상태.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그녀를 버프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 딸딸이는 무쓸모한 행위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츄루루루루룹!
“꺄아아악!”
“다희야!!”
순식간에 핑크 슬라임에게 덮쳐진 송다희.
“사, 살려!”
도움의 외침을 다 끝마치기도 전.
우득
그녀는 목이 90도로 꺾이며 눈의 초점을 잃고 말았다.
“다, 다희야…….”
충격적이었다.
10일 동안 동고동락한 사람이 죽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게다가 나랑은 섹스까지 한 사이였는데…….
핑크 슬라임은 박건우와 마찬가지로 송다희도 조종하기 시작했다.
“세에엑스으으으…… 세에엑…… 세에에엑스으으으으으…….”
“자아아지이이이……. 서어엉후우우우니이이오오오빠아아…… 자아아지이이이줘어어어…….”
다희는 신선도가 높아서 그런지, 다양한 단어를 말했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성훈이를 부르기까지 한 것 같다.
근데 왜 하필 강성훈을 불러?
여자에 환장한 성훈이가 제일 꼬시기 쉽다는 걸 알고 저러는 건가?
“다희야! 그래! 성훈이 오빠야! 아직 살아있는 거지?! 날 부르는 걸 보니까 역시 너도 날 좋아하고 있었구나! 오빠가 구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강성훈 공략 완료.
1초 만에 속아 넘어간 스윗한남충은 무지성으로 돌격했다.
퍼걱!
“억…….”
다행히도, 그 전에 세연이가 배빵으로 저지했다.
“강성훈. 나대지 마.”
“다, 다희야…… 존나게 사랑했다…….”
배를 부여잡은 채 고꾸라지는 강성훈.
그래. 넌 좀 자라.
어차피 도움도 안 되는데.
[마녀 사냥꾼이 조심하라 이릅니다.]
[핑크 슬라임은 아주 역겨운 괴물이라고 설명합니다.]
[녀석에게 패배한다면, 가는 모습이 추해질 것이라 경고합니다.]
“대충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세연이가 호기롭게 말했다.
벌써 공략법을 알아냈다고?
판타지 소설을 수두룩하게 본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진현! 딸딸이 쳐!”
“진짜 괜찮겠어?”
“당연하지.”
스각
세연이의 검이 묵직하게 날아가 박건우를 베었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박건우.
그럼에도 핑크 슬라임은 구애의 춤을 멈추지 않았다.
“세에에에엑스으으으…… 세에엑……?!”
콰직!
박건우의 머리통에 대검이 직격했다.
그의 두개골이 완전히 부숴지며, 얼굴의 형체를 잃어버렸다.
“속이 다 시원하네! 이 강간범 새끼! 지옥에나 가라!!!”
미소를 머금은 채 박건우의 시체를 난도질하는 그녀.
앞으로 세연이한테 적당히 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세연이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다만, 송다희는 썰지 않았는데, 아직 그녀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죽어! 죽어! 이 변태 괴물아!!”
[귀축 용사가 핑크 슬라임을 가여워합니다…….]
세연이는 슬라임을 조각내고 있었다.
확실히 떨어져 나간 젤리는 다시 움직이지 못했다.
녀석의 크기는 금세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하아. 하아아…….”
“세연아? 너 왜 그래? 벌써 지쳤어?”
“벌써라니? 풀스윙으로 내려치지 않으면 잘리지를 않는다고!”
세연이는 나름 밸런스 캐릭터였다.
마력을 제외한 체력, 근력, 민첩에 고루 투자한 케이스.
그런 세연이조차 힘에 부칠 정도면, 저 슬라임을 조각내는 게 상당히 힘든 일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일단 후퇴하자.”
“아니. 그건 안 돼.”
“왜? 너 지쳤잖아.”
“지금 저걸 쓰러뜨리면 송다희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존나 빡통에다가 문란하긴 해도, 우리랑 며칠이나 같이 지낸 사람이라고.”
역시 그런 거였나.
나도 다희를 살릴 수 있다면 살리고 싶었다.
내 아다를 깨준 여자가 죽는다는 건 좀 그렇잖아.
“하는 수 없지. 그럼 사랑한다고 말해봐. 흥분도를 높여서 버프를 더 강력하게 해줄게. 지금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살짝 뒤로 빠진 세연이가 돌아보았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그녀.
무언가 할 말이 있는데, 부끄러워서 차마 입을 못 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뭔데?”
“그…… 강성훈 의식 있는지 확인해 봐봐.”
갑자기 성훈이를?
의문이 들었지만, 순순히 따랐다.
“의식 없어. 숨은 쉬고 있고.”
“그래. 하아.”
“뭔데 그래?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
“너…… 이 옷 별로라고 했지?”
“옷? 별로긴 하지.”
지금 세연이가 입고 있는 옷은 상하의 세트 트레이닝복.
펑퍼짐한 옷이라서 굴곡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옷이었다.
“오해하지 마. 네 말 듣고 산 거 아니니까.”
“?”
그때가지만 해도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상의 지퍼가 내려가고,
어깨끈이 X자로 교차된 비키니가 등장했을 때.
하의 끈을 풀자 스르르 내려간 바지 안에서 골반 뼈를 가리지 못하는 끈 비키니가 등장했을 때,
내 자지는 벌떡 일어서 환호했다.
“…….”
발그레한 볼, 살짝 비튼 고개.
비키니 차림이 부끄러운지 가슴과 허벅지를 애매하게 가리는 그녀.
그러나 그녀의 폭력적인 몸매가 가려질 리 없다.
지금까지 저런 몸을 트레이닝복 안에 숨기고 있었다니.
지구적 손실임에 분명했다.
게다가 수영복은 세연이의 커다란 가슴을 감당하기에는 사이즈가 다소 작았다.
가슴을 가린 천 쪼가리 옆으로 세연이의 옆 가슴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비키니가 조금 힘들어 보일 정도.
“……어, 어때? 좀 꼴려?”
그녀의 불안한 눈초리가 나의 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야한 옷 좀 입으라고 했을 때는 그렇게 싫어하더니, 알아서 다 준비하고 있었던 거야……?
“부끄러우니까 빤히 보지 말고! 어떠냐니까?!”
어떠냐니…….
김세연. 네가 이렇게 사랑스러워 보인 건 처음이야.
“존나 꼴려.”
네게 당분간 ‘최고의 딸감’이라는 영예를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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